나의 이야기463 2020. 12. 24. 이안이 눈사람 이안이 눈사람 이현숙 밤사이 눈이 내렸어요. 미국에서 태어나 아홉 살이 되도록 눈 구경을 제대로 못한 손자 이안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아침밥도 안 먹고 나가자고 졸랐어요. 마침 아들네 집수리를 하느라 우리 집에 며칠 묵고 있었거든요.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아파트 앞 사가정공원으로 나갔어요. 며느리와 손자는 눈을 뭉치고 눈싸움을 하느라 신이 났어요. 나는 그저 바라보며 동영상을 찍었죠. 며느리는 어떻게 해야 눈이 잘 뭉쳐지는지 열심히 가르쳐주더군요. 두 개의 눈덩이를 올려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와 사철나무 잎을 따다가 눈, 코, 입을 만들고 팔도 만들었어요. 며느리는 미대를 나와서 그런지 뭐든지 잘 만들어요. 다 만들더니 손자가 또 하나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좀 작은 눈.. 2020. 12. 24. 2020. 12. 11. 심심풀이 땅콩 심심풀이 땅콩 이현숙 사대 화학과를 나와 중학교 물상 선생님을 32년 동안 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간에 지름 8cm쯤 되는 큰 혹이 있다고 했어요. 초음파 찍고 CT 찍고 하더니 암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다고 정기적으로 검사하자고 했어요. 학생으로 16년, 교사로 32년 평생 학교만 다니다가 인생 쫑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끝내기에는 어쩐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학교를 그만 두고 밖에 나가 나를 위해 살고 싶었어요. 명퇴하고 나와서 이것저것 놀 궁리를 했어요. 월 수 금은 수영과 요가, 화요일은 등산, 목요일은 수필교실에 등록을 하고 열심히 놀러 다녔어요. 벌써 17년이 되었네요. 이렇게 마냥 놀다보니 심심해져서 블로그를 만들어 보.. 2020. 12. 11. 2020. 12. 6. 우리 아이 숟가락 우리 아이 숟가락 이현숙 우리 집 숟가락 통에는 40년도 넘은 숟가락이 담겨있다. 우리 아들이 어려서 먹던 작은 숟가락이다. 어디서 받았는지 샀는지 기억도 없다. ‘LITTLE TOMMY’라는 글자도 희미하다. 이건 아들이 한 살도 되기 전 이유식을 떠먹였던 숟가락이다. 이제 아들이 45살이나 되고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데 왜 안 버리고 있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간다. 그냥 아들의 어린 시절을 잃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들은 태어날 때 3kg 밖에 안 됐다. 그런데 어찌나 식욕이 왕성한지 한 달 만에 6kg으로 늘었다. 지금도 그 식욕이 줄어들지 않아 마구 먹어대니 110kg이 넘게 나간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힘들어 하는 모양을 보면 안쓰럽다. 식욕도 중독인가보다. 아니면 유전인가? 손자도 .. 2020. 12. 7. 2020. 12. 1. 장모 없는 장모 생일 장모 없는 장모 생일 이현숙 11월도 다 가고 달력을 뜯어내니 달랑 한 장 남는다. 12월 22일에 동그라미가 쳐 있고 장모 생일이라고 쓰여 있다. 남편은 매년 연말이 되어 새 달력이 생기면 각종 기념일을 표시한다. 작년에는 새어머니가 살아계셔서 음력 11월 8일인 이 날에 표시를 한 것이다. 새어머니는 담낭암으로 2년 넘게 투병하시다가 올 2월에 돌아가셨다. 계속 집에 계시다가 요양병원으로 옮긴지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 집에 계실 동안에는 화장실도 다니고 크게 아픈 기색도 없었다. 요양병원으로 옮긴 다음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면회도 못 했으니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올해 84세이니 좀 빠르긴 하다. 그래도 고생을 많이 안 해서 다행이다. 요양병원에서 10년 넘게 고생하는 사람도 있는데 죽을 복.. 2020. 12. 1. 2020. 11. 26.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이현숙 ‘외향적인 사람은 두세 명의 내향적인 사람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 좋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심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디어도어 루빈이란 사람의 말이다. 이 사람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일이 없지만 위의 말에는 공감이 간다.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대 성향의 친구를 두면 그 친구를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나는 외향적인 면 보다는 내향적인 면이 더 많다. 어떤 자리에 가나 구석에 앉기를 좋아한다. 남 앞에 서려면 엄청 부담스럽다. 그냥 투명인간이 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급적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한다. 일체의 장신구도 하지 않고 화장도 거의 .. 2020. 11. 29. 2020. 11. 21. 여인의 꽃 여인의 꽃 이현숙 친정의 언니는 나의 선구자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와서 찔찔 울며 엄마에게 하소연한다. “엄마~ 똥구멍에서 자꾸 피가 나와.” 엄마는 깜짝 놀라며 “아이구 이년아 달거리가 시작 됐구나.” 하면서 하얀 소창으로 만든 기저귀를 주며 뒤처리 방법을 일러준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생리가 시작됐다. 이미 언니를 보고 사전 지식을 가진 나는 놀라지 않고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혼자서 자꾸 닦아내다가 무심코 오강에 앉아 소변을 보고 일어나는데 엄마가 눈치 채고 하얀 헝겊으로 된 기저귀를 주며 차는 법을 알려준다. 뻘건 기저귀를 빨려면 대낮에는 남의 눈에 띌까봐 캄캄한 밤에 마당의 수돗가에서 빨아 널었다. 낮에 장독대 위에서 펄럭이는 기저귀를 보면 누가 볼까봐 낯이 뜨거워지곤 했다. 무슨.. 2020. 11. 29. 이전 1 ··· 23 24 25 26 27 28 29 ··· 7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