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11. 26.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아~ 네모네! 2020. 11. 29. 14:09

투명인간이 되고 싶어

이현숙

 

외향적인 사람은 두세 명의 내향적인 사람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 좋다. 그러면 다른 사람의 심리를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디어도어 루빈이란 사람의 말이다. 이 사람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본 일이 없지만 위의 말에는 공감이 간다.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반대 성향의 친구를 두면 그 친구를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나는 외향적인 면 보다는 내향적인 면이 더 많다. 어떤 자리에 가나 구석에 앉기를 좋아한다. 남 앞에 서려면 엄청 부담스럽다. 그냥 투명인간이 되고 싶을 때가 많다. 그래서 가급적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노력한다. 일체의 장신구도 하지 않고 화장도 거의 하지 않는다. 파마도 염색도 하지 않는다. 남들이 왜 화장도 안 하고 파마도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남의 눈에 띄기 싫어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 그게 더 눈에 띈다고 한다. 사실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게 가장 눈에 띄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언젠가 남편 친구의 부인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남편이 모임에 갔다 오면서 어떤 여자 흉을 보더란다. 생긴 것도 뭣 같이 생긴 게 화장도 안한다고. 이 말을 듣는 순간 속이 뜨끔했다. 이 사람이 날 볼 때도 이런 생각을 했겠구나 싶은 게 낯이 뜨거워졌다. 사실 생긴 게 엉망이면 칠이라도 해서 보완을 해야지 무슨 똥배짱으로 그냥 생얼을 내밀고 다니는지 나도 모르겠다. 기본이 안 되어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나는 화장을 하려면 괜히 쑥스럽고 생긴 것도 뭣 같은 게 쳐 발랐다고 흉 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 결혼식 때와 아이들 결혼 시킬 때만 화장을 했던 것 같다. 아이들 결혼 시킬 때 하객으로 온 한 선생님이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자 한 마디 한다. 분장이 아닌 변장을 했다고.

  내가 내성적인 성격이 된 것은 어쩌면 외모에 대한 열등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가져오면 언니는 내 얼굴을 손가락으로 콕 찍으면서

얘가 젤 못 생겼다.” 라고 기를 죽였다. 사실 내가 봐도 사실인지라 한 마디도 반박 할 수가 없었다.

  20대 때 엄마 친구들이 우리 집에 오면 좋은 자리 있는데 중매를 할까 묻곤 했다. 그러면 엄마는

인물이 없어서.” 라고 말끝을 흐리고는 보자 소리를 안 했다.

결혼을 해서도 내가 우리 아이들은 다 아빠를 닮았다고 하면

너 닮은 것 보다 백배는 낫다.” 하며 아이들이 아빠 닮은 게 다행이라고 했다.

  한 번은 아들이 어렸을 때 병원에 데리고 갔다. 아들을 안고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데 앞에 앉은 할머니가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너는 누구를 닮아서 그렇게 이쁘니?”한다.

아들과 딸

  거기다가 남편도 마찬가지다. 내가 박색 마누라 만나서 안 됐다고 하면 술집에 가면 예쁜 여자 많다고 마누라는 예쁘지 않아도 된단다. 하긴 마누라가 예쁘면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나야 뭐 길바닥에 내놔도 쳐다보는 이 없으니 평생 걱정할 일 없어서 편하기는 할 거다.

  언젠가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남편 핸드폰이 울린다. 운전하면서 받기 좋게 하려고 차에 연결을 해놔서 소리가 잘 들린다. 웬 여자가 다짜고짜

지나 예요.”한다. 남편이 집사람과 함께 어디 가는 중이라고 말하자 뚝 끊는다. 내가 뭐라고 묻지도 않았는데 남편은 가끔 가는 술집 주인인데 술 마시러 오라고 전화한다고 스스로 자수를 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린가보다.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몇 년 전 화요트레킹에 5번 동생과 함께 갔다. 동생을 본 회원들이

진짜 친 동생 맞아요? 유전자 검사해봐야 하는 거 아냐?”하더니

언니는 공부 밖에 할 게 없었겠다.”하면서 확인 사살을 한다.

  70년이 넘도록 무수히 이런 수모?를 당하다 보니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뼈에 사무쳐 그저 누가 뭐라고 해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맷집이 늘었나보다. 아름다움이란 내 사전에 없는 단어라고 생각하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산다.

  그런데 왜 유독 인간만 화장을 하는 것일까? 다른 동물도 발정기가 되면 변색이 되긴 하는데 다른 물질을 칠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인간은 유독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큰 것일까? 하긴 내가 봐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예쁜 사람이 좋기는 좋다.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생각을 하면 최소한의 치장은 필요한 것 같다. 기본 예의라도 갖추려면 억지로라도 좀 바르고 다녀야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른다고 뭐가 나아지려나? 아직도 용기가 나지 않으니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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