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11. 21. 여인의 꽃

아~ 네모네! 2020. 11. 29. 14:04

여인의 꽃

 

이현숙

 

  친정의 언니는 나의 선구자다. 하루는 학교에 다녀와서 찔찔 울며 엄마에게 하소연한다.

엄마~ 똥구멍에서 자꾸 피가 나와.”

엄마는 깜짝 놀라며

아이구 이년아 달거리가 시작 됐구나.” 하면서 하얀 소창으로 만든 기저귀를 주며 뒤처리 방법을 일러준다.

 언니

  나는 초등학교 졸업할 때쯤 생리가 시작됐다. 이미 언니를 보고 사전 지식을 가진 나는 놀라지 않고 엄마에게 아무 말도 안 했다. 혼자서 자꾸 닦아내다가 무심코 오강에 앉아 소변을 보고 일어나는데 엄마가 눈치 채고 하얀 헝겊으로 된 기저귀를 주며 차는 법을 알려준다.

  뻘건 기저귀를 빨려면 대낮에는 남의 눈에 띌까봐 캄캄한 밤에 마당의 수돗가에서 빨아 널었다. 낮에 장독대 위에서 펄럭이는 기저귀를 보면 누가 볼까봐 낯이 뜨거워지곤 했다.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누가 알까봐 전전긍긍했다.

  내 딸이 나이를 먹어가자 언제 생리가 시작될지 몰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놀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고 공연히 긴장되어 딸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하루는 딸의 베개에 피가 묻어있어 깜짝 놀라 이게 뭐야? 하고 물으니 코피가 났단다. 딸은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생리가 있어서 중3 때 시작됐다. 학교에서 이미 사전 지식을 다 얻었고, 학교 앞에서 생리대도 나눠주며 광고도 했다고 가져오곤 했다. 딸은 별 어려움 없이 이 고비를 잘 넘겼다. 요즘 아이들은 일회용 패드가 있으니 빨아 널 필요도 없고 남의 눈치 볼 일도 없으니 참 좋기는 좋다.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시리아 난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다룬 영화다. 주인공 소년은 여동생이 생리를 시작한 것을 보고 얼른 닦아주고 옷까지 빨아주며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게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근처에서 가게를 하는 아저씨가 이 여동생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남자는 소년에게 이쁜이 갖다 주라고 선물을 주곤 한다. 소년은 매번 이 선물을 길바닥의 쓰레기통에 버리며 철저하게 동생을 보호하려고 한다. 하지만 소녀의 부모는 딸의 생리가 시작된 것을 기뻐하며 이 남자에게 시집을 보낸다.

  그 후 소녀는 어린 나이에 임신이 되고 하혈이 심해 죽고 만다. 이 소년은 칼을 들고 남자를 찾아가 칼을 휘두르며 죽이려한다. 결국 재판이 열리고 판사가 남자에게 왜 어린 소녀를 임신시켰느냐고 묻자 꽃이 피기에 다 자란 줄 알았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들은 소년은

꽃은 무슨 꽃~” 하며 소리를 지른다.

  여자의 생리는 정말 꽃일까? 빨간 색을 보면 그럴 듯도 하다. 생리가 시작되면 아이를 낳을 수 있으니 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여자는 세 가지가 붉어야한단다. 붉은 볼과 붉은 입술과 붉은 생리를 뜻한다.

  이제 이 세 가지 색을 다 잃고 보니 그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생리가 끊긴 여자들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꽃이 진 후의 허탈감이랄까? 하지만 나는 생리가 끝나니까 너무 좋았다. 여행 갈 때 이게 걸릴까봐 전전긍긍할 일도 없고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릴 일도 없으니 그야말로 날개를 단 기분이었다. 전천후로 놀 수 있으니 그저 신나고 갱년기 우울증이란 내 사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약까지 먹어가면서 생리를 하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꽃도 좋겠지만 난 꽃이 떨어진 지금이 훨씬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