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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0. 12. 24. 이안이 눈사람

by 아~ 네모네! 2020. 12. 24.

이안이 눈사람

이현숙

 

  밤사이 눈이 내렸어요. 미국에서 태어나 아홉 살이 되도록 눈 구경을 제대로 못한 손자 이안이는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아침밥도 안 먹고 나가자고 졸랐어요. 마침 아들네 집수리를 하느라 우리 집에 며칠 묵고 있었거든요.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아파트 앞 사가정공원으로 나갔어요.

  며느리와 손자는 눈을 뭉치고 눈싸움을 하느라 신이 났어요. 나는 그저 바라보며 동영상을 찍었죠. 며느리는 어떻게 해야 눈이 잘 뭉쳐지는지 열심히 가르쳐주더군요. 두 개의 눈덩이를 올려 눈사람을 만들었어요.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와 사철나무 잎을 따다가 눈, , 입을 만들고 팔도 만들었어요. 며느리는 미대를 나와서 그런지 뭐든지 잘 만들어요.

  다 만들더니 손자가 또 하나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이번에는 좀 작은 눈사람을 만들어 작은 것은 이안이, 큰 것은 엄마라고 했어요. 뒤에다가 이름도 써서 공원 한켠에 잘 놓았어요. 사진도 찍고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손자가 이 눈사람을 집에 가지고 가겠다는 거예요. 집에 가면 따뜻해서 다 녹아버린다고 했더니 냉장고에 넣어두자는 거예요. 냉장고가 작아서 안 된다고 했더니 손자는 몹시 아쉬워하며 집으로 왔어요. 누가 망가뜨릴까봐 걱정을 하면서요. 집에 와서 놀다가 오후에 또 나갔어요. 누가 건드렸는지 머리가 떨어져 있었어요. 손자는 다시 머리를 얹어놓고 잘 다듬어 수리를 했어요.

  다음 날은 아들네가 집으로 갔어요. 손자는 우리를 보고 눈사람 잘 있는지 매일 가보라고 신신당부했어요. 다음 날 가보니 누가 아래쪽으로 옮겨놓았어요. 사진을 찍어 보내며 잘 있다고 했죠. 그 다음 날 또 나가보니 다 부서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다 녹았다고 보고를 했죠.

  우리 인간은 어째 이렇게 사소한 것에 연연해하며 사는 걸까요? 어린 아이일 때는 그야말로 하찮은 것에 울고 웃으며 살죠. 우리가 볼 때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장난감을 갖고 싶어 애를 태우곤 하죠. 그러다가 나이가 들수록 집착하는 대상이 점점 변해가는 것 같아요. 외손자 건희와 송희는 이제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어 주로 게임에 열중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면 부동산이나 명예, 명품에 집착하느라 참 행복을 잃는 것 같아요. 평생 이렇게 어딘가 매여 사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인가봐요. 모든 생물에게 가장 큰 집착은 생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요? 어떻게든지 이 세상에 더 머물고 싶어 온갖 좋은 음식과 영양제를 먹으며 아등바등 살고 있죠. 하지만 영원히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잘 아는 생물들은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식물은 혼신의 힘을 다해 꽃을 피워 벌 나비를 유혹하고, 온갖 동물도 짝을 차지하기 위해 생명을 걸어요. 아마도 이 집착을 버리는 날 우리는 무한한 자유를 느끼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