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12. 11. 심심풀이 땅콩

아~ 네모네! 2020. 12. 11. 16:51

심심풀이 땅콩

이현숙

 

  사대 화학과를 나와 중학교 물상 선생님을 32년 동안 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어요. 간에 지름 8cm쯤 되는 큰 혹이 있다고 했어요. 초음파 찍고 CT 찍고 하더니 암인지 아닌지 확실치 않다고 정기적으로 검사하자고 했어요.

  학생으로 16, 교사로 32년 평생 학교만 다니다가 인생 쫑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 끝내기에는 어쩐지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학교를 그만 두고 밖에 나가 나를 위해 살고 싶었어요.

  명퇴하고 나와서 이것저것 놀 궁리를 했어요. 월 수 금은 수영과 요가, 화요일은 등산, 목요일은 수필교실에 등록을 하고 열심히 놀러 다녔어요. 벌써 17년이 되었네요. 이렇게 마냥 놀다보니 심심해져서 블로그를 만들어 보았어요. 사진도 올리고, 기행문도 올리고, 끼적거리던 글도 올렸어요.

  블로그란 게 심심풀이 땅콩 같아서 재미가 쏠쏠했어요. 요즘같이 해외여행 못 갈 때 한 번씩 들어가 예전에 썼던 기행문을 보면 다시 여행 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70이 넘어 눈도 침침해지고 갈수록 컴퓨터를 가까이 하기 힘들어지지만 그래도 시행착오를 거듭하다보면 그런대로 함께 놀 만한 친구인 것 같아요. 이 친구는 시간 불문, 장소 불문 아무 때나 내가 부르면 즉시 달려오죠. 이런 친구는 아마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계속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뒤져보고 남들 사는 모습도 들여다보면 이거야말로 노후대책으로 딱이란 생각이 들어요. 오늘도 심심풀이 땅콩을 먹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어요.

경운회보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