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12. 25. 12년만의 크리스마스

아~ 네모네! 2020. 12. 26. 14:08

12년 만의 크리스마스

이현숙

 

  남편이 소파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키친타올에 소독제를 묻혀 현관 손잡이와 엘리베이터 누르는 버튼을 닦는다. 오늘 아들네 식구들이 오기로 했다. 애들이 올 때마다 소독을 한다. 아들 내외는 출근을 하지 않아서 큰 걱정이 안 되지만 손자는 학교에 다니니 항상 조심스럽다. 지난달에도 한 아이가 확진되어 전교생이 코를 쑤셔 코로나19 검사를 했다.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되돌아온 손자는 오후 4시에 검사를 하러 다시 학교에 오라는 연락을 받자마자 눈물을 쏟았단다. 지난 8월 미국에서 들어와 자가 격리 들어갈 때도 검사하느라 코를 쑤시며 눈물 콧물 쏟았는데 몇 달 안 돼서 또 검사를 하라니 정말 겁나고 싫었나보다. 하도 울어서 아들이 장난감 사준다고 했더니 뚝 그치고 학교에 갔단다.

  요즘은 생활 속 거리두기 2.5단계가 되어 학교에 가지 않고 영상수업을 하니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항상 걱정이 된다. 내가 어디서 코로나 묻혀와 손자에게 옮길까봐 전전긍긍 한다.

  며칠 전 TV를 보니 12230시부터 13일까지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이 내렸다. 나는

“5인 이상이면 우리 두 식구에 아들네 세 식구 합쳐서 다섯 명이니까 우리는 모여도 되겠네.”

했더니 남편이 이상이라고 하면 그 숫자를 포함하는 거니까 5인도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무슨 수학문제 푸는 것도 아닌데 설마 그렇겠냐고 했다. 그런데 저녁 때 뉴스를 보니 남편 말이 맞았다. 4인까지만 되고 주민등록이 같이 되어있는 경우만 5인 이상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네는 요새 며느리 친정집에서 살고 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건 되는데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안 된다는 게 어쩐지 억울한 느낌이다.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 가는 바람에 11년 동안 크리스마스를 함께 하지 못했다. 올해 드디어 12년 만에 함께 보내겠구나 했더니 다 틀렸다. 남편은 가족 카톡방에 올해는 아들이고 딸이고 모두 각자 집에서 가족끼리 보내자고 올렸다.

  작년까지는 딸네 식구들과 함께 성탄절을 보냈다. 올해는 아들 딸 모두 모여 더 성대한 파티를 벌일 줄 알았더니 모든 기대가 산산이 무너졌다. 섭섭한 마음을 안고 하루를 지냈는데 다음 날 새로운 뉴스가 떴다. 서울시에서 직계가족은 예외로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즉시 아들네 카톡방에 크리스마스날 와도 된다고 다시 올렸다. 딸네는 사위가 공무원이니 조심스럽고 아들네와 함께 가면 형제자매는 직계가 아니라서 안 될 것 같다.

  저녁때가 되자 아들네 식구들이 왔다. 며느리가 만든 케잌과 쿠키를 들고 손자가 신이 나서 들어온다. 아들, 며느리, 손자가 손 글씨로 예쁘게 쓴 카드도 준다. 손자는 미국서 한글을 쓰지 않아서 맞춤법이 서툴다. ‘아파ㅌ 할아버지 할머니 Merry 크리스마스라고 쓰고 메뚜기인지 베짱이인지 모를 그림까지 그린 후 밑에다 김이안이라고 서명까지 했다. 아마 자기가 좋아하는 로봇일지도 모른다. ‘자를 쓸 줄 몰라 만 쓴 것 같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단독 주택에 사는데 우리는 아파트에 사니 우리를 아파트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른단다. 하긴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도 친할머니가 대전에 사니까 대전할머니라고 불렀다.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나름 구분을 하나보다.

  모처럼 아들네 식구들과 함께 노래도 부르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니 안 먹어도 배부르다. 갈팡질팡하는 정부 행정명령에 우리 기분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래도 천신만고 끝에 멋진 파티를 하게 되어 서울시에 감사하고 싶다. 경기도는 직계가족 예외 조항을 두지 않아 경기도에 살았다면 이런 호사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코로나가 이토록 우리 생활을 좌지우지할 줄이야. 보이지도 않는 놈이 우리를 울렸다 웃겼다한다. 그야말로 우리 코를 끼워서 질질 끌고 다니며 우리를 조롱한다. 누가 만물의 영장인지 아리송하다. 아마도 우리 인간보다 바이러스가 훨씬 더 오래 이 지구상에 머물 것이다. 인간이 화석이 되어 지층 속에만 존재할 때도 이 바이러스들은 이 세상을 차지하고 활개 치며 살고 있을 것이다.

 

며느리가 만든 케익

 

며느리가 만든 쿠키
며느리가 만든 쿠키
크리스마스 카드
아들과 며느리의 글
손자 이안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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