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 3. 작은 고추가 매울 수밖에

아~ 네모네! 2021. 1. 4. 13:44

작은 고추가 매울 수밖에

이현숙

 

  4번 동생 남편이 올 하반기부터 시작하여 1230일에 드디어 100명산을 끝냈다. 제부는 경복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내년이 개교 100주년이란다. 그걸 기념하려고 올 해 동창회에서 지정한 100대 명산을 다 오르는 사람에게 상금도 주고 기념품도 준단다.

  제부는 처음에는 별 관심을 안 가지더니 후반부에 들어서 갑자기 욕심이 생겼는지 도전장을 내밀었다. 하루에 두 세 개씩 해치우고 어떤 때는 한꺼번에 5일을 잡아 아홉 개 열 개씩 연달아 달성했다. 주로 대사님 부부와 함께 다녔는데 동생과 대사님 부인도 함께 다녔다. 동생은 85산을 올랐다고 한다. 대사님도 100개를 달성했는데 그 동기 중에 100개를 채운 사람은 단 세 명이라고 한다.

  이미 올랐던 산이 대부분이지만 동창회에서 준 깃발을 들고 다시 인증샷을 찍어 카톡방에 올려야하니 다시 다 올라가야한다. 동창회 깃발에는 100명산의 이름이 적혀있다. 하나씩 지워갈 때마다 느끼는 희열이 엄청 컸을 것 같다.

  올해처럼 코로나 19로 해외여행도 못 가는 때 이렇게 기막힌 이벤트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정말 아이디어 상을 줘야할 것 같다. 연말에 경상도 쪽 다섯 개 산을 하기로 했는데 생활 속 거리두기가 3단계로 올라가면 특별한 업무가 아니면 이동도 할 수 없다고 해서 엄청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2.5단계가 유지되어 천신만고 끝에 목표 달성을 했다.

  동생의 근황을 수시로 물으며 나도 엄청 긴장됐다. 다 달성했다는 소식을 듣자 내가 달성한 것처럼 뛸 듯이 기뻤다. 99번째 부산 금정산과 100번째 경주 남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볼수록 흡족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의 소원이 하늘에 닿아 뜻을 이루게 된 듯하다.

  동생의 큰아들 정민이도 얼마나 기뻤는지 100명산을 완주한 아빠에게는 100만원, 85산을 오른 엄마에게는 85만원을 주었다는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특하다. 말이 그렇지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토록 많은 산을 정상까지 오른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동안 집안에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고 날씨가 혹독하여 입산 금지가 될 수도 있다.

  올 여름 우리 자매들과 평창 여행 갔을 때 계방산에 오르기로 했다. 하지만 홍수로 등산로가 폐쇄되어 입산이 금지되는 바람에 오르지 못하고 겨울이 되서야 올라갔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발목을 잡으려하니 그야말로 천운이 따라줘서 목적 달성을 한 거다. 경주 남산에서 마지막 100번째 산행을 끝냈다는 연락이 올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4번 동생은 우리 여섯 자매중 키가 가장 작다. 하지만 체력은 단연 으뜸이다. 어려서부터 하도 잘 뛰어다녀서 엄마가 총알이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총알처럼 빠르다.

  제부도 우리 집 사위 중 가장 키가 작다. 엄마는 그게 싫었는지 공연히 트집을 잡으며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긴 엄마가 마음에 들어한 사위는 셋째 사위밖에 없다. 키도 크고 얼굴도 허여멀건 것이 엄마 맘에 딱 들었나보다. 그런데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란 걸 엄마는 몰랐나보다.

  예부터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하는 말이 있다. 생각할수록 옳은 말이다. 같은 양분을 받아 작은 고추를 만들었으니 모든 양분이 축적되어 그 농도가 진해지고 매울 수밖에. 자라면서도 큰 친구들에게 공격당하기 쉬우니 스스로 단단히 무장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키도 크고 살도 찌고 그야말로 동네 할머니들이 장군감이라고 했다. 그런데 장군은커녕 툭하면 눈물을 흘리는 약골이다. 체력도 약해 망우산 오르는 것도 힘들어한다. 몸도 마음도 모든 것이 희석되어 묽어졌나보다.

  아들이 어렸을 때 동해 바다에 간 적이 있다. 딸은 파도치는 바닷물에 들어가 잘 노는데 아들은 겁에 질려 누나 빨리 나오라고 손짓하며 난리다. 아들이 안 들어가니 할 수 없이 근처 시냇물로 가서 놀게 했다. 냇물에 가서 물에 들어가라고 하니 이번에는 옷 젖는다고 안 들어간다. 수영복은 젖어도 되는 거라고 아무리 달래도 안 들어간다. 기어이 옷을 몽땅 벗기고 알몸이 되어서야 들어가 놀았다. 얼마나 겁이 많은지 유치원 들어갈 때까지 미끄럼도 못 탔다. 지금도 동작이 둔하고 매사에 어리버리하다.

  손자도 지금 자기 반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데 마음은 여리다. 울기도 잘한다. 몸도 크고 체력도 강하고 마음도 강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 늙은 할미의 헛된 욕심이겠지?

  무엇이든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다 장단점이 있다. 그저 나에게 딱 맞는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다고 생각하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99번째 금정산
100번째 경주 남산의 금오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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