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 5. 갈팡질팡

아~ 네모네! 2021. 1. 6. 14:03

갈팡질팡

이현숙

 

  오늘은 시어머니 제삿날이다. 예전에는 대전에 사는 조카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갔다. 퇴근 후 대전까지 내려가 제사를 지내고는 밤을 패고 집에 와서 다음 날 출근하려면 엄청 피곤했다. 서울까지 올라올 때는 졸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어느 결에 깜박 졸곤 했다.

  남편이 차도 폐차시키고 몸이 안 좋아지면서 제사에 가지 않는다. 몇 년 전 조카며느리가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절에 모시고 다시는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그게 서운했는지 우리 집에서 그냥 막걸리나 한 잔 부어놓자고 했다. 남편이 하고 싶다는데 어쩔 수 없어 그러마고 했다. 말이 제사지 남편이 좋아하는 떡갈비와 조기, 평소에 먹던 반찬을 그대로 놓고 막걸리 한 잔 부어놓고 잠시 묵도를 할 뿐이다. 그야말로 무늬만 제사다.

  올 해는 아들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12년 만에 아들네 식구도 오라고 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문제다. 중대본에서 이달 17일까지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연장한다고 했다.

  지난번에 수도권만 5인 이상 집합금지 명령을 내렸을 때 직계가족은 예외라고 했다. 그래서 11일에는 아들네와 우리 두 식구 모두 다섯 명이 모여 떡국을 끓여 먹었다. 나는 당연히 이번에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그게 아니란다. 지난번은 서울시에서 내린 명령이고 이번은 중대본부에서 내린 거라서 서울만 예외 조항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별 말이 없으면 지난번과 동일한 거니까 괜찮다고 해도 남편은 굳이 아들에게 카톡을 보내 알아보라고 한다.

  아들이 인터넷을 찾아보더니 서울신문에는 가능하다고 나오는데 다른 신문은 안 된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남편은 안 되겠다고 오지 말라고 카톡방에 올렸다. 아들은 손자만 데리고 오겠다고 답장이 왔다.

  나는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120다산콜재단에 문자를 보냈다. 서울시내 거주하는 직계가족이면 5명이 모여도 되냐고 물었더니 즉시 답장이 왔다. 가족관계증명서에 직계가족으로 되어있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산콜센터 누가 만들었는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모르는 건 무조건 여기에 물어본다. 사소한 민원 사항도 즉시즉시 해결해준다.

  남편도 한참 들여다보더니 수긍을 한다. 아들에게 다시 카톡을 보내 3명 다 와도 되겠다고 하고 다산콜재단에서 보낸 메시지를 캡처해서 보냈다.

  오늘도 남편은 아이들 오기 전에 또 현관문 손잡이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소독할 것이다. 12년 만에 아들, 손자, 며느리와 함께 성대한?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숨소리 한 번 내는 법 없는 코로나가 우리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정부도 갈팡질팡, 신문도 갈팡질팡, 너도 갈팡, 나도 질팡, 온 인류가 갈팡질팡한다.

  중생대에 살던 그 큰 공룡은 운석이 떨어지면서 지표면과 충돌할 때 솟아오른 먼지가 태양빛을 차단해서 멸망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인류는 바이러스 때문에 멸종될 것 같다. 모든 생물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게 운명이다.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는 놈이 가장 오래 이 지구상에 남을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나약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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