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1. 1. 13. 소확행

아~ 네모네! 2021. 1. 14. 13:50

소확행(小確幸)

이현숙

 

  밤사이 눈이 엄청 내렸다. 남편과 스틱을 챙겨 용마산 둘레길로 향했다. 근처에 가니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벌써 구청 직원들이 나와 눈을 치우고 있다. 미끄러울 줄 알고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는데 벌써 거의 다 치웠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데크길을 걸었다. 오거리 정자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데 위에서 눈을 치우고 내려오는 두 사람이 보인다. 나도 모르게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아침 시간에 벌써 다 치운 걸 보면 새벽부터 나와 작업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마냥 감사하고 싶어진다. 120다산 콜센터에 문자를 보냈다.

용마산 자락길에 있는 눈을 일찌감치 싹 치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서울시 최고

중랑구 최고

라고 보냈더니 금방 답장이 왔다.

따뜻한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편안하고 건강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따뜻한 답장을 받으니 내 마음도 따뜻해진다. 작은 행복감이 넘친다. 이런 걸 소확행이라고 하나보다.

  내려오면서 바닥을 보니 조금 남아있던 눈도 서서히 녹고 있다. 문득 5번 동생 생각이 난다. 지난주부터 맹추위로 수도가 얼어서 물이 안 나온단다. 금요일에 네 자매가 낙산 순성길을 걷기로 했는데 아침에 카톡이 왔다. 수도가 얼어서 자기는 못 가니 동대문역에서 만나 걸어서 돈암동 자기 집까지 오라는 것이다.

  20년 만의 강추위라고 해서 잔뜩 긴장을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얼음길에 나가자빠질까봐 스틱을 의지해 게걸음으로 간신히 동생집까지 갔다.

  동생은 그래도 보일러가 돌아가서 다행이라고 하며 나가서 점심을 먹고 집에 와서 커피를 마시자고 한다. 물이 안 나오니 화장실에도 갈 수 없다. 식당에 가서 화장실도 가고 낙지전골로 뜨끈한 국물을 먹었더니 몸이 확 풀린다. 생수 한 병을 사가지고 집에 와 커피를 마시는데 수도 녹이는 아저씨가 왔다. 스팀으로 녹인다고 그나마 한 바가지 밖에 없는 물도 기계에 부었다. 아무리 스팀을 쏘여도 소식이 감감이다.

  3번 동생과 나는 기다리다 못해 집을 나섰다. 화장실도 못 가니 지하철역에 와서 화장실에 들러 집으로 왔다. 저녁에 카톡을 해보니 아무리 해도 안 녹아서 그냥 포기하고 갔단다. 동생도 화장실에 가려면 전철역까지 가서 볼일을 봐야한단다.

  다음 날 다른 사람을 불러 전기로 녹이려했지만 수도관이 플라스틱으로 되었는지 전기가 안 통해서 또 포기하고 갔단다. 물도 못 녹이고 출장비만 5만원 주었단다.

  그 다음 날은 급기야 보일러도 멈췄다. 엄동설한에 동생이 추위에 떨 생각을 하니 기가 막히다. 우리 집에 와 있으면 어떻겠나고 하니 그래야할 것 같다고 한다. 동생이 온다고 하니 빵도 사고, 딸기도 사고, 반찬도 사놓고 기다렸는데 오후가 되도 오지 않는다. 언제 올 거냐고 하니 그냥 집에서 전기 매트 깔고, 전기 히터 틀고 자보겠다고 한다. 하긴 새벽에 일 하려 가야하는데 우리 집에서 가려면 너무 멀다.

  다음 날 아침 잘 잤느냐고 하니 그런대로 견딜 만 하단다. 이제 계량기까지 터져서 공사하는 사람을 불렀더니 계량기도 갈고 수도관도 열선을 넣어 다시 이어야한단다.

  계속 씻지를 못해 어쩌나 걱정했더니 집 앞에 있는 모텔에 가서 사장님께 애기했더니 하루에 5천 원씩 내고 샤워실과 화장실을 사용하라고 했단다. 그나마 모텔이 집 앞에 있어서 다행이다. 물이 없으니 밥도 해먹을 수가 없어 김밥을 사다 먹으며 연명을 하고 있단다. 동생이 추위에 떨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지낼 생각을 하니 내 마음도 춥고 배고프다.

오늘 영상으로 올라갔으니 수도가 녹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밤에 카톡이 왔다.

기뻐해주세요~~~

물 나와요~~~

와우~~”

하며 기쁨에 들떠 형제자매방에 올렸다. 모두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1주일 가까이 고생한 동생의 문제가 해결되니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속이 후련하다.

  옛날 같으면 우물물을 길어다 먹으니 물이 끊길 염려가 없고, 장작불을 땠으니 추위에 떨 일도 없다. 화장실도 재래식이니 언제든 맘 놓고 볼 일 볼 수 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위험 요인이 많아진다. 수도관, 가스관, 전기줄로 연결되어 연명하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중환자실에 갇힌 중환자인지도 모른다. 어느 줄 하나만 끊겨도 우리는 살 수 없다. 모든 것을 기계에 의존하고 생각하는 것도 인터넷에 맡기고 사는 우리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다. 나는 딸과 아들의 전화번호도 못 외운다. 이러다가 우리 얼굴은 얼이 긷든 굴이 아니라 얼빠진 굴이 될 듯하다.

  오늘 나는 물이 나와서 행복하고, 불이 들어와서 행복하고, 함께 울고 웃을 동생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그야말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