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12. 9 프루스트의 독서에 대하여 (독후감)

아~ 네모네! 2018. 12. 9. 20:43

독서에 대하여

프루스트의 독서를 읽고 -

아 네모네 이현숙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책이 무지 얇다는 점이다. 독서를 별로 안 하는 나는 항상 가장 얇은 책으로 고른다.

둘째는 일주일만 고생하면 3개월을 맘 편히 지낼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어야할 책인데 좀 미안한 생각도 든다.

사진 1. 책 표지


   이 책을 쓴 마르셀 프루스트는 187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위생학자인 아버지와 부유한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신앙을 따라 카톨릭교 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나중에는 무신론자가 되었다.

   작가이자 평론가, 번역가로 살았으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출간한 후 명성을 얻기 시작했고 이 후 공쿠르상을 받았다. 아홉 살부터 천식을 앓았는데 평생 지병이 되어 1922년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 책을 번역한 백선희는 덕성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 3 대학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주로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 글로 번역하였다.

   백선희가 쓴 서문의 제목이 프루스트라는 미로이다. 그의 말대로 그야말로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프루스트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별로 읽히지 않는 작가이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그는 벽면마다 코르크를 붙여 소리를 차단한 침실에서 누운 채 글을 썼다. 오후 서너 시쯤 일어나 동이 틀 때까지 일하고 오전에 잠들었다고 한다. 그는 글을 쓰면 끊임없이 수정하고 가필했다. 그의 육필원고를 보면 여백마다 수정 메모가 빽빽이 채워져 있고, 그것도 모자라 아코디언처럼 접어 붙인 쪽지까지 더덕더덕 붙어 있다고 한다. 이 글을 보니 권남희 선생님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긴 쪽지는 1m 40cm나 된다고 한다. 그는 작품을 끝내기 전에 죽을 까봐 두려워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는 원고를 끝내고 몇 달 뒤 완전히 소진된 상태로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은 그가 쓴 세 편의 서문을 모은 책이다. 영국 작가 존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고 쓴 역자 서문 한 편과 지인들의 책을 위해 쓴 서문 두 편이다. 세 편 모두 다른 작가의 책에 대한 서문인 셈이다.

   첫 번째 글은 프루스트가 유일하게 번역한 러스킨의 작품 참깨와 백합이란 책의 서문이다. 사진의 제목에서 보듯 세사미는 참깨라는 뜻인 것 같다.

사진 2. 참깨와 백합 표지

   이 글에서 프루스트는 러스킨의 글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자기의 어린 시절 독서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독서에 대한 성찰을 말하고 있다. 그는 독서를 서가에 손을 뻗어 맛보기만 하면 되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한다. 독서는 우리 내면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요 정신적 삶의 문턱으로 이끄는 안내자라고 말한다.

   다른 작가들과 찍은 아래 사진의 가운데 앉아있는 사람이 프루스트인데 무척 우수에 젖은 눈을 가졌다.

사진 3. 세 명의 작가

   말이 서문이지 끝없이 이어지는 자기 생각에 진저리가 처질 지경이다. 자그마치 이 서문은 17쪽에서 98쪽까지 이어진다. 존 러스킨은 프루스트보다 더 작가다운 모습인데 왜 프루스트에게 서문을 부탁했는지 모르겠다.

사진 4. 존 러스킨

   두 번째 글은 리타 드 모니 백작부인의 캐리커처 모음집 비스투리 왕국에서를 위해서 쓴 편지 형식의 서문이다. 첫 번째 서문과는 대조적으로 짧고 가벼운 이 글에서 저자는 아쉬움을 가장한 찬사를 전하며 캐리커처 화집 저자인 모니의 남편과 함께 했던 사적인 추억을 애기 하고 있다.

비스투리 왕국에서라는 책의 표지를 보면 만화처럼 퍽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진 5. 비스투리 왕국에서 표지

             

비스투리 왕국에서에 실린 모니 백작 부인의 그림을 보면 목발을 짚은 남자의 어깨에 천사 날개가 달려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여인들의 모습도 재미있다.

사진 6. 모니의 커리커처

   세 번째 글은 폴 모랑의 단편집 달콤한 비축물에 실린 서문이다.

사진 7. 폴 모랑

여기서도 프루스트는 겨우 끝에 가서 폴 모랑을 사물들을 새로운 관계로 잇는 작가라고 슬쩍 추켜 세울 뿐 그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다. 문학과 동시대 작가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을 뿐이다.

   프루스트의 글을 읽는 것은 그가 완전한 정적과 고독 속에서 만들어낸 미로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솔로몬의 전도서에 보면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고 했는데 프루스트는 너무 많은 책을 읽고 무수한 글을 쓰다 보니 피곤하고 지쳐서 빨리 죽은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은 독후감은 한 마디로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미로 속에서 헤매다가 나온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