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10. 28. 엄마가 젖을 텐데

아~ 네모네! 2018. 12. 12. 13:54

엄마가 젖을 텐데

아 네모네 이현숙

 

  비가 온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빗소리를 듣는다. 우르릉 쾅 쾅, 번쩍 번쩍 천지가 진동한다. 이불 속이 더 포근하고 보송보송하게 느껴진다.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섭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긴 하늘이 쪼개질 것 같은 소리가 날 때는 조금 겁나기도 한다. 하지만 난 빗소리와 천둥, 번개가 좋다. 온천지가 소리 높여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것 같다. 세상 천지에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웅장한 코러스가 또 있을까? 천지가 개벽을 할 듯 으르렁거릴 때 그 소리에 심취한다. 설마 우리 집이 떠내려가지는 않겠지 생각하며 이불깃을 당긴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후 빗소리를 들으면 엄마 생각이 난다.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갈 생각을 하면 엄마가 걱정된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엄마가 젖을 텐데 하며 어쩌지도 못할 염려를 한다. 내 몸이 젖는 느낌이다. 눈이 오면 엄마 산소에도 흰 눈이 덮이겠구나 하고, 날이 추워 얼음이 얼면 엄마가 얼마나 추울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엄마는 육신을 빠져 나갔으니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못할 거라고 혼자 위안을 해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후 31년을 더 살다가 94세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산소는 엄마 무덤 옆을 파고 나란히 합장을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던 날 새벽에 동생이 꿈을 꾸었는데 엄마가 나타났단다. 엄마가 부엌으로 들어가며 빨리 밥을 해야 한다고 말하더란다. 아버지 밥을 정성껏 지어 이불 속에 파묻어 두었던 엄마는 죽어서도 밥순이 일을 못 놓고 있나보다.

   아버지 산소를 만들 때 보니 관을 내리고 천으로 덮은 후 석회 가루로 덮는다. 관의 아래와 옆도 석회가루로 채운다. 그걸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석회가 물을 흡수하면 단단히 굳어져 그 후로는 물이 스며들어가지 못할 것 같다.

   비록 영혼이 빠져나간 육신이지만 엄마가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운 걸 보니 마음이 흡족하다. 엄마 혼자만 차가운 땅에 누워 있을 때는 마음이 짠했는데 함께 누운 걸 보니 내 마음도 편안하다. 이제 추워도 둘이 있으니 덜 추울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엄마 아버지 산소에도 비가 내릴 것이다. 예쁜 낙엽도 덮여 있을 것이다. 엄마는 유난히도 꽃을 좋아해서 산소에 갈 때 동생은 꼭 꽃다발을 사 간다. 엄마와 아버지가 그 꽃을 보고 함박웃음을 지을 것 같다.

   시댁 산소가 있던 곳에는 공업지구가 생길 예정이라 다 나가라고 해서 납골당을 지어 거기에 모셨다.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산소를 파고 유골을 화장하여 거기에 모셨다. 돌로 된 차가운 건물에 칸칸이 순서대로 납골함을 넣었다. 우리 부부가 들어갈 자리도 정해져 있다. 우리 아이들 까지는 충분히 들어갈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가운 돌 선반에 덜렁하니 놓여 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으스스해진다. 비록 비에 젖을망정 땅 속으로 들어갔으면 싶다. 이것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고 우리 아이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그냥 화장하여 가루로 만들어 땅에 뿌려달라고 하고 싶다.

   땅속으로 들어가야 비도 맞고 눈도 맞으며 하루라도 더 빨리 자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자연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창조해내는 기막힌 존재다. 이 자연의 일부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 다시 새 생명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모든 생물의 운명이다. 이 운명을 거스를 존재는 그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