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이기지 못해
아 네모네 이현숙
조영일 시인의 ‘신유년 겨울’이란 시에 ‘서울을 이기지 못해 돌아선 천 리 먼 길’이란 구절이 있다. 서울을 이기지 못했다는 말에 공감한다.
나는 서울 종로 5가에서 태어나 칠순이 된 지금까지 서울에 살고 있다. 중심가에서 점점 밀려나 이제는 서울의 동쪽 끝 망우산 자락에 살고 있다. 면목 없는 면목동에서 벌써 45년째 살고 있다. 고개만 넘으면 구리시다.
서울이란 도시는 낯설어서 내겐 항상 타향 같은 느낌이다. 평생을 살아도 적응이 안 된다. 생긴 것도 촌스럽게 생겨서 누가 봐도 촌년이다.
우리 아들이 면목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나는 면목중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3월초에 부임을 하니 사람들이 효석이 엄마가 왔다고 수군수군 한다. 그 때는 4년마다 전근을 다니니 어딜 가나 아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나는 과학교사라서 과학부실에 근무했다. 몇 달이 지나서 과학실에서 같이 근무하는 남선생님이 한 마디 한다. 자기는 효석이 엄마가 온다고 해서 엄청 세련된 사람이 오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부임 인사할 때 보니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닭 같은 여자가 오더란다. 사실 내가 봐도 나는 촌닭처럼 생겼다. 우리 아들은 얼굴이 허여멀건 것이 약간 귀티가 나게 생겼다. 이 남선생님은 우리 아들을 가르쳐서 잘 알고 있다. 사실 나는 평생 예쁘다거나 세련 됐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얼굴도 광대뼈와 턱뼈가 튀어나와 별명이 아네모네다. 꽃 이름이 아니고 ‘아~ 네모네!’다 면목중학교 근무할 때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인데 재미있는 이름이라 내 닉네임으로 즐겨 쓴다.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도 항상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서울이 너무 크고 복잡해서 일까? 아니면 잘 난 사람, 돈 많은 사람, 똑똑한 사람, 세련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주눅이 든 것일까? 아무튼 나는 죽을 때까지 서울을 이기지 못할 것 같다.
자고로 고향이란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고 만만해야 정이 가는 법인데 이건 태어날 때부터 바삐 오가는 사람들, 빵 빵 대며 달리는 차들,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이 나의 숨통을 조여 왔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지만 한적한 시골에 가서 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농촌 생활을 해보지 않아서 그마저도 용기가 안 난다. 늙을수록 병원 가까이 살아야한다는데 그냥 서울에 빌붙어 살며 비굴하게 살아야할 것 같다.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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