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8. 12. 28. 공공의 적

아~ 네모네! 2019. 1. 1. 14:15

공공의 적

아 네모네 이현숙

  

  중학교 때 음악시간이다. 나는 주번이라 교실에 남아있었다. 그날은 음악 실기시험을 보는 날이다. 나는 교실을 지키느라 시험을 볼 수 없었다. 지금 애들 같으면 선생님을 찾아가 주번이라 못 보았다고 혼자라도 보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선생님을 찾아갈 용기도, 선생님 앞에서 혼자 노래 부를 용기도 없던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선생님도 왜 시험을 안 봤느냐고 묻지 않았다. 성적표가 나왔는데 65점이다. 아마 최하 점수를 준 것 같다. 어디서나 주눅이 들어있던 터라 이런 점수를 받고 보니 더 기가 죽었다. 노래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 때 생긴 것 같다. 누가 노래를 하라고 하면 잔뜩 긴장하여 알던 노래도 잊어버리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집 앞에 있는 문화체육관 노래교실에 10년이 넘게 다녔다. 선생님이 가르쳐준 후 앞에 나와서 노래를 하라고 하면 서로 앞 다투어 나와서 하는데 나는 10년이 넘도록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그야말로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다. 연말이면 송년회를 한다고 식당에 가서 회식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데 매년 회비만 내고 안 간다. 올 해도 회장이 회비만 내지 말고 꼭 같이 가자고 하는데 엄두가 안 나 또 포기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직원 회식이 끝나고 노래방에 갈 때가 많았다. 나는 식당에서 노래방으로 이동하는 도중 슬그머니 빠져서 뺑소니를 쳤다. 이런 나를 교장 선생님은 공공의 적이라고 이름 붙였다. 공공의 적이 안 되려 해도 그게 쉽지 않다.

   사람마다 잘 하는 게 다르다. 하지만 노래 잘 하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남들 앞에서 온갖 모션을 써가며 멋들어지게 한 곡 뽑고 앵콜송까지 부르는 사람들은 얼마나 희열을 느낄까? 그야말로 기분 짱일 것이다. 나도 오래 살다 보면 이런 날이 오려나? 꿈속에서라도 안 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노래는 기쁨이 아니고 공포다. 나는 언제 노래 한 곡 기막히게 불러 공공의 적이 아닌 공공의 동지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