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19. 1. 11. 너와 나는 하나

아~ 네모네! 2019. 2. 24. 13:49

너와 나는 하나

아 네모네 이현숙

   남편이 서울의료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오더니 간호사들이 근조 리본을 달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 뉴스를 보니 신내동에 있는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에서 링거를 맞고 있기에 몸이 안 좋은가 하고 봤더니 죽어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유서에 자신을 서울의료원으로 데려가지 말라는 것과 그 병원 사람들은 조문도 오지 말라는 유서를 남겼다. 얼마나 직장이 싫었으면 이런 말을 남겼을까?

   서울의료원에서 5년간 일 해온 이 간호사는 지난달 간호 행정부서로 인사발령을 받았고 그 후 심리적 압박감을 호소했다고 한다. 결국 부서 이동한 후 20일도 안 돼 목숨을 끊었다.

   유족들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병원 측은 고인의 발인이 끝날 때까지도 간호사의 죽음을 몰랐다고 한다.

   화장을 마치고 남동생이 사진을 들고 가는데 병원에서 왜 출근하지 않았냐고 전화가 와서 동생이 우리 누나 죽었다고 소리쳤단다. 죽기 전 가족들과 나눈 메시지를 보면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었다.’ ‘온종일 물 한 모금 못 마셨다.’ ‘커피를 빼다가 넘쳐서 야단을 맞았다.’는 등등의 글이 있다. 내 딸이, 나의 손녀가 이런 생활을 했다면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간호사 사회에는 태움이라는 집단 괴롭힘이 있다는 말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다. 얼마나 닦달을 했으면 이런 단어까지 생겼을까?

   내 남동생의 아들도 간호사 일을 하는데 집에 와서 종종 괴로움을 토로하곤 했다. 직장을 그만 두고 싶다는 적도 있었다. 간호사 일이란 것이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타인의 생명을 잃게 만들 수도 있으니 엄격하게 교육시켜야 하는 점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고의적은 괴롭힘은 사라져야한다. 이런 현상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싶다. 지나친 경쟁 사회를 만들어낸 우리들이 이토록 삭막하고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지 싶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지하수가 각각의 샘으로 흘러나와 여러 개의 여울물로 흐르다가 결국에는 바다로 가서 다시 하나가 된다. 우리도 어쩌면 전생에서 하나의 생명이었다가 각각의 생명체로 태어나 각자의 길을 가다가 저 세상에서 다시 하나의 생명으로 합쳐지는 것은 아닐까?

   너와 나는 각기 다른 존재가 아니고 결국은 하나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전과 후를 모르고 지금 당장 보이는 것이 서로 분리된 존재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짓밟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너를 괴롭히면 결국 나를 괴롭히는 것인데 말이다. 저 세상에 가서 다시 합체가 되면 너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너의 괴로움이 곧 나의 괴로움이 될 것이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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