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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18. 12. 27. 동반자살 안한 상

by 아~ 네모네! 2019. 1. 1.

동반자살 안한 상

아 네모네 이현숙

 

  오늘은 2018년 마지막 수필 수업이 있는 날이다. 수필교실 선생님이 급한 용무가 있어 우리끼리 자습하는 날이다. 우리 중의 수제자가 대신 수업을 진행했다. 몇 개의 주제를 주고 이 중 맘에 와 닿는 것으로 돌아가며 발표하라고 했다. 그 중 하나가 ‘2018년 올 해 나에게 상을 준다면?’이다.

   내가 올 해 무얼 잘 했나 생각해 보니 잘 한 건 별로 없는 것 같고 남편과 동반 자살 하지 않고 잘 견딘 내게 상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퇴직한 후 8년이 넘도록 취미생활도 하지 않고 주로 망우산이나 한 바퀴 돌고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낸다. 나도 같은 취향이면 좋았을 텐데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머리 골치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된다. 친정 엄마가 점을 보니 나는 엉덩이를 땅에 붙일 새 없이 돌아다닌다고 했다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남편만 홀로 두고 몇 주일씩 해외여행을 매년 다녔더니 남편이 혼자 있기 너무 힘들었나보다. 올 봄에 네팔 갔다 오니 마중도 못 나오고 눈이 퀭하니 들어가서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다 죽게 생겼다.

나 없는 동안 망우산 갔다가 넘어졌는데 갑자기 공황상태가 온 듯 정신이 혼미했다는 것이다. 어깨를 다쳐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뼈는 이상 없다고 물리치료만 받았는데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 후 계속 기운이 없다고 하여 한의원 가서 보약도 지어 먹이고, 개소주도 해 먹이고, 족발도 끓여 먹였지만 나아지는 기색이 없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혈액검사나 소변검사에서 별 이상도 없고 체중 변화도 없는데 혹시 건강 염려증일지 모르겠다고 한다.

   몸이 좋아지면 괜찮겠지 하고 열심히 해 먹였지만 8개월이 지나도 좀처럼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기운 없다고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링거 주사를 맞으러 다녀도 효험이 없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정신건강학과로 갔다. 그간의 상황을 다 얘기하니 일주일 약을 먹고 와보란다.

   이삼일 약을 먹더니 더 기운이 없단다. 급기야 새벽에 죽을 것 같다고 난리다. 택시를 불러서 응급실로 가보자고 하니 택시 타러 내려가지도 못 하겠단다. 할 수 없이 119를 불렀다. 5분도 안 되어 금방 도착한 구급차를 타고 종합병원으로 갔다. 여기서도 다시 혈액검사 하고, 엑스레이 찍고 심전도 검사했지만 별 이상이 없다고 링거 주사나 맞고 집으로 가란다.

   매일 매일 기운 없다, 무릎이 시리고 힘이 없다, 가슴에 근육통이 온다고 하소연하며 죽을상을 하고 있으니 옆에서 보는 나도 돌아버릴 지경이다. 아침밥을 먹다가도 기운 없어 못 먹겠다고 반쯤 먹다 말고 소파에 가서 드러누워 버리니 남긴 밥과 국을 버려야한다.

   뚜렷한 대책도 없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나 생각하니 빨리 죽고 싶은 마음뿐이다. 둘 중 하나 죽어야 이 상황이 끝날 것 같다. 그랬다고 남편보고 죽으라고 할 수도 없고 혼자 죽자니 그것도 안 될 것 같고 같이 동반자살하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스관을 열어 놓고 죽으면 잘못하다 화재가 날 것 같고, 번개탄을 피워놓고 죽어도 위험할 것 같다.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으면 주민들에게 끔찍한 꼴을 보여 그들을 괴롭힐 것 같다. 집 앞에 있는 망우산에 가서 나무에 목을 매달까 생각한다. 그냥 매달리기는 힘들 것 같아 의자가 있어야할 것 같은데 의자를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 주위 사람들이 수상하게 생각할 것 같다. 별 별 생각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다보니 나는 체중이 쑥 쑥 주는데 남편은 허기진다고 자꾸 먹으니 오히려 체중이 는다.

   그래도 약을 바꿔가며 몇 주일 약을 먹으니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지금도 링거 주사를 맞으러 갔지만 그래도 얼굴이 조금 펴졌다. 이제야 나도 안도의 한 숨이 조금 나온다. 여전히 얼굴도 어둡고 웃음을 잃었지만 그래도 괴로운 표정이 덜 하다. 올 봄부터 친구도 안 만나고 모든 모임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문득 문득 나 때문에 저런 병에 걸렸나 하는 생각도 든다. 비단결처럼 곱고 나긋나긋한 여자를 만났으면 행복하게 살았을 지도 모른다. 마른 장작개비처럼 뻣뻣하고 고집불통인 나를 만나 45년간 살아오느라 속으로 골병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언젠가는 나아지겠지 하며 희망을 가져본다.

   오늘 아침은 몇 일째 혹한이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남편이 대야를 들고 보일러실로 간다. 보일러실 바닥에 물이 고였다는 것이다. 너무 추우니 보일러와 배수구 사이가 얼어 관이 막히니까 연결 호스가 빠진 모양이다. 걸레를 들고 가서 열심히 닦는 남편을 보니 아직 쓸모가 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나이에 남편이 무슨 필요가 있나 했는데 아직 유효기간이 안 지났나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올 해 내가 제일 잘 한 것은 동반자살하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 올 해 상을 준다면 동반자살 안 한 상을 주고 싶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내가 동반자살 하자고 했으면 남편이 순순히 따라 나섰을까? 아니면 너나 혼자 나가서 죽으라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