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평생지기
아 네모네 이현숙
10여 년 전 갑자기 옆구리가 결려 돌아눕기도 힘들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커브만 틀어도 아구구 소리가 절로 났다. 병원에 가서 초음파 사진을 찍으니 간에 지름 8cm의 거대한 혹이 있단다. 의사는 혹이 이렇게 크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여태 복부사진을 한 번도 안 찍어 봤느나고 묻는다.
무슨 신기한 물건이라도 발견한 듯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여러 명을 불러들여 구경을 시키며 뭐라 뭐라 한다. 순간 죽을병에 걸렸나 겁이 더럭 난다. 암이 아닐까 의심하는 의사는 CT 사진을 찍자고 한다. 경과를 봐야한다고 1주일 후에 와라, 2주일 후에 와라 하며 계속 추이를 보더니 보통 물혹은 겉 표면이 매끈한데 내 혹은 비쭉 비쭉 거칠다고 한다. 한 달 후에, 두 달 후에, 6개월 후에 계속 초음파 검사를 하더니 물혹인 것 같은데 더 두고 봐야하니 2년 후에 오란다. 수술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혹이 너무 커서 혹을 들어내려면 간 전체를 다 떼어내야 하니 그 후의 상태가 더 나쁠 것 같다고 한다. 아무래도 암은 아닌 것 같아 그 후로는 가지 않았다. 평생 같이 가야할 동지가 생겼다. 지금도 오래 차를 타거나 많이 걸으면 옆구리가 쿡 쿡 쑤시고 결려서 숨 쉬기가 힘들다.
그 후 발에 갑자기 통증이 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바늘로 찌르듯 아프다. 정형외과에 가니 인대가 늘어났다고 물리치료를 계속한다.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으니 의사가 신경종인 것 같다고 한다. 신경 근처에 생긴 종양이 신경을 건드려 통증이 생긴다는 것이다. 수술해야 하냐고 물으니 수술해도 재발이 잘 되고 별 효과가 없으니 그냥 살란다. 지금도 가끔씩 발을 디딜 때마다 통증이 오지만 서서히 통증이 약해져 그냥 지낸다. 이 혹도 같이 가야할 친구다.
작년 여름에 수영 모자를 쓰다가 손이 빠지면서 고무 모자가 귀를 때렸다. 그 순간 갑자기 귀에서 웽~ 하는 소리가 난다. 괜찮아 지겠지 했는데 물속으로 들어가니 더 크게 들린다. 이비인후과에 가니 이명이라고 약을 지어준다. 1주일을 먹고, 한 달을 먹고, 1년 넘게 약을 먹어도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처음에는 소리가 너무 울려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서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귀 근처에 마취주사를 맞은 듯 먹먹하고 딱딱한 느낌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잠시도 있기 힘들다. 이제는 신경이 무뎌졌는지 소리가 약하게 들려 살만하다. 의사도 평생 약을 먹을 수 없으니 3달만 더 먹고 그만 먹으라고 한다. 평생지기가 또 하나 늘었다.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가니 어깨뼈에 있는 인대에 염증이 생겼다고 인대와 인대 사이에 주사를 놓고, 물리치료하고, 약을 먹으란다. 일주일에 두 번씩 여섯 번을 맞고, 그 후에는 연골 주사를 맞으란다. 빨리 낫지 않을 거라고 하는 걸보니 이놈도 평생지기로 머물려나보다.
내 몸 안에 날이 갈수록 평생지기가 늘어난다. 내가 죽음의 문턱을 넘을 때까지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놈들이 하나하나 늘어나니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날 이놈들도 함께 종말을 맞을 것이다. 더 이상의 평생지기는 맞이하고 싶지 않은데 또 어떤 놈이 불쑥 끼어들어와 같이 가자고 할지 두렵기만 하다.
하긴 계속 건강하고 팔팔하면 언제 죽을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노인 인구가 많아 초고령사회가 되었다고 하고, 지하철 공짜 손님이 너무 많아 적자가 난다고 한다. 건강보험료가 노인들에게 너무 많이 지급되어 적자에 허덕인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너무 오래 살아서 걱정인데 이렇게 죽지 않겠다고 버티다 보면 언제 죽을 수 있겠나 싶기도 하다. 나와 함께 저 세상으로 같이 갈 친구들이 많아질수록 고맙게 생각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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