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속 금붕어 신세
이현숙
수필 교실에 가려고 전철에 오른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다. 머리 위에서는 환풍기 바람이 뿜어져 나온다. 머리숱이 적으니 정수리가 써늘하다. 어항 속 금붕어가 된 기분이다. 이 작은 공간에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산화탄소를 토해내니 환풍기가 멈추면 몇 분이 못 되어 다들 질식할 것이다.
집에서 금붕어를 키운 적이 있다. 더운 여름에는 아무리 공기를 불어 넣어도 금붕어가 수면 쪽으로 올라와 뻐끔거린다.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고체는 더운물에 잘 녹지만 기체는 찬물에 잘 녹는다. 맥주나 사이다를 뜨뜻한 곳에 두면 거품이 많이 올라온다. 물속에 녹아있던 이산화탄소가 분리되어 나오는 것이다. 겨울에는 물이 차서 금붕어가 잘 죽지 않는다. 물속에 산소가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물 위에 허연 배를 하늘로 향한 채 벌러덩 누워있는 금붕어를 보면 가슴이 저리다. 다시는 금붕어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다가 그 아픔을 잊을 만하니까 이번에는 비단잉어를 사 왔다. 남편은 지극 정성으로 물도 갈아주고 어항 청소도 해주었다. 이렇게 공을 들였는데도 어느 날 또 죽어서 떠 있다. 인생무상 아니 어생무상魚生無常이다.
지난번 금붕어도 한 마리가 죽기 시작하자 나머지도 다 죽었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에는 다 죽기 전에 방생하기로 했다. 양동이에 물을 담고 비단잉어를 넣은 후 차에 싣고 덕소로 갔다. 한강 변으로 내려가 얕은 물가에 양동이의 물과 함께 비단잉어를 쏟았다. 잉어는 순식간에 깊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 부디 넓은 세상에서 아프지 말고 잘 살라고 기원했다. 살던 곳에 그냥 두면 될 것을 굳이 잡아다가 어항 속에 가두고 키우는 인간의 행위가 참 어리석고 부질없다.
전철 속에 공기를 불어 넣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인간을 다른 동물들이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참 바보들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다른 동물들은 자연 속에서 그냥 살아가는데 유독 인간들은 수많은 생명 보조장치를 만들며 살아간다.
우리 집을 생각하면 중환자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도관 가스관 수많은 전선과 통신을 위한 선들이 줄줄이 들어온다. 이게 다 끊어지면 인간은 추위에 얼어 죽고 도시인들은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을 것이다. 중환자의 몸에 연결된 콧줄 오줌줄 링거줄 심장 박동을 알아보는 계기판의 줄들과 비슷하다. 이걸 다 끊으면 환자는 즉시 죽음을 맞을 것이다. 어항 속 금붕어가 기포 발생기를 빼버리면 죽는 것과 흡사하다.
전철을 타고 가며 어항 속 금붕어 신세 같은 우리 모습을 바라보며 모든 생명의 덧없음을 생각한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2. 17. 기슴팍이 하는 일 (0) | 2024.02.27 |
---|---|
2023. 12. 23. 징징대는 년 (2) | 2023.12.25 |
2023. 11. 27. 나는 절도범 (0) | 2023.11.27 |
2023. 11. 19. 세월아 네월아 (2) | 2023.11.24 |
2023. 10. 30. 약인가 독인가 (3) | 2023.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