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도범
이현숙
추적추적 내리던 가을비가 잠시 멈췄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우산을 들고 망우산 데크길을 걷는다. 한참 올라가는데 길옆 의자에 우산이 하나 보인다. 누가 깜빡하고 두고 갔나 보다. 그냥 지나치며 생각하니 가져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가기는 그렇고 혹시 주인이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올라갔다. 데크길 끝까지 갔다고 돌아올 때도 그대로 있으면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망우산 순환로와 만나는 곳에서 데크길이 끝난다. 여기서 다시 돌아내려오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가지고 가다가 주인을 만나면 뭐라고 할까? 내 작은 우산은 주머니에 있으니 소맷자락에 넣어 가지고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뭔가 걸쩍지근하다.
내려오면서 보니 그 자리에 우산이 그냥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좀 낡았다. 들어보니 약간 무겁다. 그냥 두고 다시 내려온다. 올라갈 때보다 우산의 위치가 조금 달라진 걸 보면 나 같은 인간이 또 있었나 보다. 어쩌면 우산이 새것이고 비싼 것이었다면 가져왔을 것이다. 좋은 물건을 보면 그 유혹을 이길 수가 없다.
인간은 왜 남의 물건을 탐내는 것일까? 탐심은 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살다 보니 이것저것 필요해서 생긴 습성일까. 하와가 선악과를 보았을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해서 따 먹었다고 한다. 인류의 조상인 하와도 이렇게 탐심이 있었던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이 그런지도 모르겠다.
지하철 광고에서 보면 분실물을 가져가는 것도 절도라고 한다. 성경에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도 남의 물건을 가져갈 마음을 품었으니 이미 절도를 저지른 것이다. 나는 절도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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