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11. 19. 세월아 네월아

아~ 네모네! 2023. 11. 24. 16:08

세월아 네월아

이현숙

 

  연말에 남미 여행을 계획했다. 미국은 환승만 하는데도 비자를 요구한다. 볼리비아도 비자를 받아야 한다. 볼리비아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인지가 없어서 신청을 안 받는다는 공지가 떴다. 몇 주 후에 인지가 도착했다고 해서 신청하려고 했더니 5일 만에 또 인지가 떨어졌단다. 황열병 예방주사 증명서도 있어야 하고 숙박 예약증명서, 항공권 증명서, 영문 잔액 증명서 기타 등등 요구사항도 많다. 신청 양식에는 결혼 여부를 묻는 난도 있다. 싱글이냐 사별이냐 이혼이냐 부부가 다 있냐 하며 별걸 다 묻는다. 이거야말로 환장하고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다. 내가 과부 되는데 보태준 거라도 있냐 말이다.

  더더욱 한심한 것은 70세가 넘었다고 여행사에서 보호자 동의서까지 요구한다. 남편도 가버렸는데 어쩌나 하다가 아들에게 써달라고 했다. 결혼 전까지는 부모님이 내 보호자였고 결혼 후엔 50년 동안 남편을 보호자로 생각하고 살았다. 갑자기 보호자를 아들로 바꾸려니 생소하다. 어려서는 내가 아들의 보호자였는데 이제는 아들이 내 보호자가 되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다.

  그런데 세월은 무엇일까? 시간의 흐름인가? 시간은 무엇인가? 인간은 지구의 자전주기를 1일로, 공전주기를 1년으로 정했다. 우리가 움직이는 속도가 얼마나 되나 궁금하다. 지구의 지름은 약 12,700km. 지구의 둘레는 지름에 3.14를 곱하면 되니까 37,680km. 지구가 하루에 한 바퀴를 도니까 지구 둘레를 24시간으로 나누면 한 시간에 1,570km를 달린다. 시속 1,570km로 달리는 차에 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약 북위 38°에 있으니까 이보다는 느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 모든 사물이 지구에 붙어서 함께 움직이기 때문일까. 지구는 중력이 강해서 공기 분자까지 단단히 붙잡고 있다. 달은 중력이 약해서 공기 분자를 잡을 힘이 없다. 그래서 달에는 공기가 없다.

  지구는 자전하면서 공전한다.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는 약 15천만 km. 이건 공전궤도의 반지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지름은 약 3km가 된다. 여기에 3.14를 곱하면 지구가 공전하는 원의 둘레가 된다. 1년에 94,200km를 달리는 것이다. 지구가 한 번 공전하는 시간은 1년이다. 1년은 365일이고 1일은 24시간이니까 94,200km365로 나누고 또 24로 나누면 한 시간에 107,500km로 달리는 것이다. 이렇게 달려도 아무 느낌이 없다. 한 마디로 우린 지구라는 작은 돌멩이에 붙어서 상상하지 못할 속도로 팽팽 돌고 있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세월아 네월아 하고 시간이 안 가더니 이제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가속도가 붙어 점점 빨라진다. KTX는 저리 가라다. 시간은 대체 어디를 향해 흐르는 것일까. 모든 생명체는 생로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이걸 보면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게 확실하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반대로 가지 않는다. 지구에도 나이가 있고 태양도 수십억 년이 흐르면 죽어가며 서서히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잉태되는 순간 사형선고를 받는다. 단지 사형집행일을 모를 뿐이다. 모든 생명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사망 열차를 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기 위해 사는 것인가. 모든 인간은 영혼 불멸을 믿는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영생을 준비하려고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죽은 후에 그 혼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 제사를 지낸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위해 죽는 것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는데 지금 세월아 네월아 하며 놀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시바삐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해야겠다.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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