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로 말하다
이현숙
거의 매일 사용하는 접시가 있다. 25년 전 미국 살던 언니가 보내준 것이다. 언니는 30대 초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 20여 년의 이민 생활이 힘들었는지 암에 걸렸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간암이라고 했다. 술도 담배도 안 하는데 간암이 온 것이 이상하다고 정밀 검사를 했더니 대장암이 간까지 전이된 거였다. 가망이 없어 보였다.
미국 간 지 20년이 넘도록 언니네 집을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다. 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방학을 맞이하여 남편과 함께 언니네로 갔다. 언니는 차를 끌고 시애틀 공항까지 나와 우리를 집으로 데려갔다. 핸들을 잡은 언니 손을 보니 오골계 발처럼 까맣게 변했다.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세포가 죽어가나 보다. 언니는 우리를 위해서 곰국도 끓여놓았다. 아직 걸을 수는 있어서 동네 산책도 다녔다. 언니와 1주일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비행기에 올라 좌석에 앉으니 눈물이 솟구친다. 다시는 언니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다음 해 봄 중간고사 기간에 시험이 끝나고 선생님들과 영화를 보러 갔다. 집에 오니 남편이 나에게 말한다.
“언니가 죽었대.”
순간 어안이 벙벙하고 가슴이 먹먹하다. 눈물도 나지 않는다. 가슴 한편이 텅 비워지는 느낌이다. 언니 결혼식 날 예식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언니 모습을 보았을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학기 중이니 가볼 수도 없다. 몇 달 전부터 언니네 집에 가서 언니를 보살피던 5번 동생이 장례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언니는 암이 폐까지 전이되어 죽기 전 2주 동안은 눕지도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누우면 숨을 쉴 수 없었다고 한다. 죽은 후에 눕혀보니 간이 배 위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고 한다. 형부에게 저녁 식사를 차려주고 방에 가보니 언니가 이미 죽었단다. 형부에게 말하니 형부는 아무 말 안 하고 밥을 끝까지 다 먹었다고 한다. 동생의 마음이 서운했나 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다. 형부는 언니를 화장하여 LA로 가져와 그곳 묘지에 묻었다.
언니가 간 날 밤에 꿈을 꾸었다.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깨어나서 언니가 천국으로 갔구나 생각했다. 언니는 부활절날 목사님이 집으로 가져온 성찬까지 받아먹고 그날 죽었다고 한다.
동생이 짐을 풀며 나에게 접시를 내민다. 언니가 날 갖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코렐 접시 세트다. 내가 언니네 갔을 때 이 접시를 사려고 언니와 대형 마트에 갔었다. 그런데 그게 없었다. 언니는 그걸 생각하고 이 접시를 사 두었다가 동생 편에 보낸 것이다. 그걸 보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때 언니 나이 53살, 내 나이는 50이었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그 후 LA에 갈 일이 있어서 그곳에 있는 이태리안경점을 찾아갔다. 그 안경점은 언니 시누네가 하는 곳이다. 가보니 마침 그 집 둘째 아들이 와 있다. 이 아들은 대학교 가기 전에 내가 과외를 해준 일이 있어서 잘 안다. 형부의 안부를 물었더니 언니 간 후 3년 정도 지나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언니와 함께 나란히 묻혀 있다고 한다. 언니네 아들은 가끔 만나느냐고 물으니 LA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사는데 아들 둘 낳고 잘 산다는 것이다. 자주 만난다고 했다. 마음이 놓인다.
이 접시를 쓸 때마다 언니 생각이 난다. 죽어가면서도 동생이 원하던 걸 사주고 싶어한 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언니는 지금도 이 접시로 그의 사랑을 말하고 있다. 나는 사후에 아이들에게 무엇으로 내 사랑을 말 할 수 있을까? 별로 사준 것도 없고 해준 것도 없는 듯하다. 그때는 산후 휴가를 한 달밖에 주지 않아서 한 달 된 핏덩이를 팽개치고 학교에 갔다. 그걸 생각하면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젖먹이 동물에게 엄마는 생명줄이다. 엄마가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은 매일 이런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나의 사랑을 이 글로 말할 수 있을까. 나중에 아이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나의 사랑을 알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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