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이현숙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토~옹일’
우리가 어렸을 땐 이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요새 애들은 별로 부르는 것 같지 않다. 통일에 대한 염원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추석날이 다가오면 보름달을 보려는 기대가 커진다. 매스컴에서도 미리미리 일기예보를 하며 보름달을 볼 수 있을지 알려준다. 올 추석에는 날씨가 맑다고 하니 둥근달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추석 보름달이나 대보름 달을 보면 흔히 소원을 빈다. 새해 일출을 보면서도 소원을 빈다. 이걸 보겠다고 12월 말일이 되면 일출 명소로 이동하는 차량이 줄을 잇는다.
수 년 전 동생들과 하와이에 갔다. 마우이섬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출을 보려고 할레아칼라 비지터센터로 다시 갔다. 우리만 부지런한 줄 알았더니 차들이 벌써 불을 밝히고 줄줄이 올라간다. 비지터센터 앞에 주차공간이 부족하여 올해 2월부터는 하루에 100대만 들여보낸다고 한다. 이것도 제부가 일찌감치 예약해두어 마음 편히 올라가는데 미처 이런 사실을 모르고 올라갔던 차들은 되돌아 내려오고 있다. 중간에 관리인이 주차 허가증을 검사하여 허가받은 차만 통과시킨다.
비지터 센터 앞에 가니 벌써 많은 사람이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해 뜨기를 기다린다. 아직 일출 시각이 남아있어 우리는 차 안에서 준비해간 간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와 과일까지 완벽하게 해결했다. 차에서 내리려니 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날아갈 지경이다. 모두들 추위에 대비하여 두꺼운 옷을 입었는데 담요로 칭칭 감은 사람도 있고 터번으로 둘둘 감은 사람도 있다.
높이 3,000m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생각만 해도 감동적이다. 막 해가 떠오르는 순간 어디선가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커다란 소리가 들린다. 원주민의 말 같은데 뭔 소린지는 모르지만 경건함이 느껴진다. 한참을 외우더니 멈추고 그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한다.
정신없이 일출을 찍어대는데 한 여자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자기들은 밴쿠버의 TV 방송국에서 일한다고 하면서 일출을 볼 때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고 묻는다. 갑자기 묻는 말에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4번 동생은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빌었다고 잽싸게 말도 잘한다. 이럴 때는 영어로 해야 할 텐데 한국말로 했으니 방송에는 안 나왔을 것 같다.
사람들은 왜 해나 달을 보면 소원을 비는 것일까? 자연의 경건함과 웅장함에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에 대한 믿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몸에 배어있는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는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 갖고 싶은 물건이나 장래 희망을 말하곤 한다. 나는 학교 다닐 때 의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등록금이 가장 싼 국립사대로 가게 되었다. 아들 하나에 딸 여섯인 우리 집은 등록금 마련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엄마는 딸들에게 고등학교까지만 보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내가 등록금이 만원 정도인 국립사대로 가겠다고 하자 마지못해 허락했다. 이렇게 길을 터줬더니 동생들은 이대, 고대 등 사립대학교로 진학했다. 언니도 갔으니 자기들도 간다는 것이다.
사대를 졸업하고 32년 동안 중학교 과학 교사로 근무했다. 퇴직할 때가 가까워져 오자 의사보다는 교사가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허구한 날 얼굴 찡그린 환자들만 보는데 교사는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활기차게 움직이는 아이들만 바라보니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려면 의사가 건강보험증에 있는 소속을 보았는지
“방학했어요?” 하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면 방학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자기는 이 속에 갇혀서 꼼짝없이 감옥살이한다고 한다. 생각할수록 교사라는 직업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퇴직하고 나이가 들어가니 소원이 바뀐다. 노인들 대부분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잘 죽는 거라고 한다. 나도 아프지 말고, 자식 속 썩이지 말고 어느 날 잠자다가 갑자기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옛 어른들도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죽는 복이라고 했다. 잘 사는 것보다 잘 죽는 게 더 좋다는 말이다. 지금 나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고 죽음이다. 죽음 중에서도 편안한 죽음이 나의 가장 큰 소원이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구경 한번 잘했네.’ 하며 가고 싶다. 오늘도 하나님께 이 소원을 들어달라고 빌고 또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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