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8. 9. 끝나지 않은 동행

아~ 네모네! 2023. 9. 17. 22:24

끝나지 않은 동행

 

이현숙

 

  망우산 오솔길을 걷는다.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데크길 옆 난간에 앉아 함께 물을 마시던 모습도 보인다. 동화천 약수터를 지난다. 페트병을 가져와 약수를 받던 모습이 보인다. 능선길에 있는 난간 모양의 나무판도 눈에 들어온다. 남편이 물을 지고 올라와 이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던 곳이다. 집으로 돌아온다. 텅 빈 소파가 눈에 들어온다.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의 모습이 떠오른다.

  며칠 전 동생들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밤 1159분 버스를 타고 백무동으로 갔다. 버스가 중간에 함양에서 잠시 멈춘다. 남편과 함양에 왔던 기억이 난다. 상림에서 둘이 걷고 있는데 앞에서 어떤 사람이 다가와 우리 모습을 찍어도 되느냐고 묻는다. 걸어오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단다. 괜찮다고 했더니 뒤로 가서 다시 한번 걸어와 달라고 한다. 그 사람은 사진을 무엇에 썼는지 모르겠다.

  다음은 인월 버스터미널에 선다. 여기도 남편과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남편 차를 끌고 인월에 와서 하룻밤 자고 새벽에 택시를 불러 성삼재로 갔다. 캄캄한 산길을 걸어 노고단에 올랐다. 여기서 일출을 보고 반야봉으로 갔다. 나는 개인적으로 천왕봉보다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이 더 좋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느낌이 좋다. 반야봉에서 내려와 화개재에서 뱀사골 계곡으로 내려왔다. 반선에서 버스를 타고 다시 인월로 와서 우리 차를 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던 낯익은 곳이다. 50년 동안 남편과 하도 싸돌아다녔더니 전국 방방곡곡 어디를 가도 남편과의 추억이 떠오른다. 이 많은 기억을 지워낼 수가 없다.

오늘은 남편 간 지 1년 되는 날이다. 저녁에 아이들과 추도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엊저녁에는 어쩐지 허전한   마음이 들어 남편이 좋아하던 삼겹살을 사다 놓고 막걸리를 한 잔 부어놨다. 남편은 제조 일자가 얼마 안 된 생막걸리를 좋아했다. 그래서 어제 새로 나온 막걸리로 사 왔다.

  아파트 방충망에 매미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한참 울더니 날아간다. 남편이 집에 오고 싶어서 왔다 갔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매사에 남편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졸업 1년 뒤 결혼했다. 50년을 함께 하며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가는데 마다 남편의 모습이 박혀있다. 잠자리에 들면 옆에서 남편의 숨결이 느껴진다. 코 고는 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무의식적으로 베개 두 개를 놓았다가 다시 치울 때도 있다.

  남편은 퇴직 후 13년 동안 건강검진을 받지 않았다. 같이 가서 받자고 해도 싫다고 했다. 어린 애도 아니고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없어 그냥 지냈다. 작년 봄부터 갑자기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동네 가정의학과에 가서 소염진통제도 지어 먹고 통증의학과에 가서 주사도 맞았다. 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아니 점점 심해졌다. 나중에는 일어설 힘도 없고 병원에도 못 가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119를 불러 신내동에 있는 서울의료원 응급실로 갔다. 여기서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폐에 물이 찼다며 입원하라고 한다. 병명은 급성 신부전증이라고 했다. 치료하면 낫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검사를 더 하더니 암이 온몸에 퍼졌고 척추까지 전이 되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안 되니 그저 집에서 마음만 태웠다. 남편은 전화로 위암 4기라고 하니 그냥 퇴원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암이 말기가 되면 통증이 극심하다는데 어떻게 견디겠냐고 그냥 호스피스 병동에라도 가서 진통제라도 맞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본인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그러마고 했다.

  2주 정도 지나서 의사가 보호자 면담을 하자고 했다. 아들과 함께 갔더니 이미 암이 온몸에 퍼져서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한다. 간호사실 옆 방으로 환자를 옮겨줄 테니 얼굴이나 한번 보고 가라고 한다. 2주 만에 얼굴을 보니 그새 얼굴이 몰라보게 수척해졌다. 본인도 이미 마음을 내려놓은 듯했다.

  서울의료원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없다. 북부병원에는 호스피스 병동이 있지만, 대기자가 많아서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한단다. 일단 북부병원 일반 병실에 입원하여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다. 할 수 없이 북부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병원을 옮긴 지 2주도 못 되어 갑자기 밤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보호자가 병원에 와서 대기하는 게 좋겠다고 급히 오란다. 자정이 다 되어 북부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은 이미 의식이 없는 듯하다. 말도 못 한다. 의사는 들을 수는 있으니까 말을 해보라고 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위는 장인어른, 지금까지 잘 사셨어요. 장인어른 가셔도 저희들끼리 우애 있게 잘 지낼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며 위로의 말을 한다. 나는 그냥 손만 붙잡고 쓰다듬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 후 새벽에 갑자기 혈압이 뚝뚝 떨어진다. 간호사들이 달려온다. 나는 손을 꼭 잡고 남편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숨을 쉬지 않는다. 심장 박동이 멈추었는지 계기판에 직선이 나타난다. 남편은 허공을 바라본 채 눈을 멍하니 뜨고 있다. 결국 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입원할 때까지만 해도 집에 다시 못 올 거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북부병원에는 장례식장이 없어서 다시 서울의료원으로 옮겨 장례를 치렀다.

  남편을 화장한 후 그날은 비가 너무 심하게 내려 유골함을 들고 집으로 왔다. 만져보니 따뜻했다. 남편의 체온이 느껴졌다. 남편이 집에 다시 한번 오고 싶었나 보다. TV 옆에 두었다가 다음날 가족 납골당으로 모셨다. 그 자리에 아직도 유골함이 있는 듯하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남편과의 동행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내 안에 남편의 기억이 남아있는 한 이 동행은 계속될 것 같다. 사람은 평생 살아가면서 수많은 동행자를 만난다. 부모 형제자매 친구 자녀 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만나는 사연도 가지가지다.

  나는 의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언니는 대학에 지원도 못 해봤다. 이런 형편이니 6년씩이나 다녀야 하는 의대에 간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결국 등록금이 가장 싼 국립사대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국립사대는 수업료가 없고 내가 입학할 당시 등록금이 만원 정도였다.

  남편도 전 해에 상대를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사대로 오게 되었다. 남편은 사회과고 나는 화학과라서 만날 일도 없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과에 다니던 친구가 농촌활동을 하는 동아리에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산을 좋아하는 나는 산악회 따라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산악회에 들었으니 다른 동아리에 갈 마음이 없다고 하자 두 개 들어도 되니 함께 가자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생각지도 않던 경암회라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여기서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농촌활동도 다니고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가까워졌다.

  사람이 만나 평생 동행하게 되는 것은 필연일까 우연일까. 어찌 보면 필연인 것 같고 어찌 보면 우연인 듯하다. 내가 사대에 가게 된 것도 그렇고 대전 사는 남편이 서울까지 오게 된 것도 그렇다. 남편이 상대에 떨어진 것도 그렇고 사대로 오게 된 것도 그렇다. 어떻게 만났건 한 번 만나 동행하게 된 부부는 현세에 이어 내세까지 이어지는 게 아닐까.

  남편이 살았을 때는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이런 인간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가버리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고, 다시 한번 망우산 길을 걸어봤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천국에 가면 서로 얼굴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혹시라도 서로 알아볼 수 있다면 거기서 또다시 동행하며 살아보고 싶다. 치매에 걸리면 자식도 못 알아본다는데 죽어서는 더더욱 알아보지 못할 것 같다. 남편 없는 동행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내가 치매라도 걸린다면 영원히 끝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남편과 끝나지 않은 동행을 계속하고 있다. 먼 훗날 기억이 흐려지면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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