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3. 12. 23. 징징대는 년

아~ 네모네! 2023. 12. 25. 22:25

징징대는 년

이현숙

 

  오늘은 아들네와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들 앞에서 자꾸 어린 양을 하게 된다. 몸이 괜찮으냐고 물으면 속이 거북하다느니 허리가 아프다느니 하면서 엄살을 부린다.

  나의 시어머니도 우리 앞에서 오만상을 찡그리며 죽는 시늉을 했었다. 환갑이 지난 후 쓰러져서 한 10년 정도 살다가 돌아가셨는데 그 몸으로 우리 집에 1년 정도 와 계셨다. 한 번씩 목욕을 시키려면 어찌나 힘이 드는지 온몸에 땀 범벅이 되었다. 자꾸 아프다고 하니 듣기도 싫고 그냥 참으면 될 것을 저렇게 입으로 꼭 말을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일 하러 나가야하는 아들 며느리에게 부담을 주는 것이 싫었다. 그렇지 않아도 초치기로 일을 마치고 시어머니 도시락까지 싸놓고 가려면 매일 동동거리며 살았다.

  아침에 허연 머리를 내밀며 방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모습을 보면 저 노인네 죽지도 않고 또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런 내 모양을 보며 지금 당장 벼락을 맞아 죽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친정 엄마는 나이 60살에 저녁밥까지 다 해놓고 쓰러져 그날 밤 돌아가셔서 이런 꼴을 보지 않았다. 그 때는 너무도 애통했는데 시어머니를 보며 우리 엄마가 참 복이 많구나 생각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3년 만에 새어머니가 오셨다. 새어머니는 우리 엄마와 띠 동갑이다. 엄마도 소띠인데 새어머니도 소띠, 나도 소띠다. 나와 새어머니는 12살 차이다. 그래도 꼬박꼬박 어머니라고 불렀다. 새어머니와 함께 해외여행을 갈 때면 엄마는 해외여행 한 번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새어머니도 어디 가려면 항상 몸이 아프다고 징징거렸다. 감기가 걸렸다느니 열이 난다느니 하며 죽는 시늉을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새어머니라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기를 빌었다. 남편이 먼저 갔으니 내 소원대로 되었다. 그런데 내 정신이 회까닥해서 우리 아이들 입에서 새아버지라는 말이 나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오늘은 아들 앞에서 징징거리지 말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즐겁게 식사해야겠다. 아프다는 말은 의사 앞에서나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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