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렁 울렁 울릉도
이현숙
기간 : 2022년 2월 6일 ~ 2월 13일
장소 : 울릉도
울릉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에는 가장 길게 7박 8일 일정으로 떠났다. 예전에는 쾌속선을 타고 가느라 멀미가 심했는데 작년에 크루즈가 생겨 한결 편해졌다.
2월 6일 임고서원, 치술령, 문수산
★ 임고서원 (정몽주의 혼이 깃든 곳 )
임고서원(臨皐書院)은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정몽주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조선 명종(明宗) 때 만들었으며 명종으로 부터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位田)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임금님이 이름을 쓴 액자를 하사한 서원)이다.
정몽주는 이곳 임고면 우항리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여기에 위패를 모셨다. 1554년에 ‘임고’라 사액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이듬해에 다시 사액되었다.
서원 안에는 선죽교와 단심가 시비가 있고 아름다운 연못과 오래된 은행나무가 인상적이다.
★ 치술령 (술에 취한 치술령) : 761m
울주군에 있는 치술령으로 갔다. 치술령이란 곳은 듣도 보도 못했다. 박제상 유적지에서 법왕사를 지나 치술령까지 올라갔다. 한참 올라가니 정상까지 0.8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있다. 그런데 더 올라가니 0.9km 남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치술령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 하나 보다.
한참 더 올라가니 능선 왼쪽으로 박제상 유적인 망부석이 나타난다. 사람 모양의 바위인 줄 알았더니 박제상의 부인이 치술령에서 일본 땅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돌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제상은 일본에 인질로 잡혀있는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기 위해 왜국으로 건너가 구출했지만, 자신은 붙잡혀서 포로가 되었다. 왜왕은 그의 신하가 되라고 했지만 끝내 거절하자 불에 태워 죽였다.
박제상의 부인 치술 부인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실성왕의 딸이다. 즉 박제상은 실성왕의 사위였다. 미사흔은 자신을 살려낸 박제상의 차녀와 결혼하는데, 박제상의 아내 치술신모가 왕의 장모를 뜻하는 국대부인으로 추존된 점을 고려하면 장녀는 눌지왕의 처가 된 것으로 보인다. 치술이 뭔가 했더니 박제상 부인의 이름이다.
★ 문수산(600m)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 가는데 문수산으로 향했다. 문수산은 정상에 기지국 있어서 정상 가까이까지 차로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는 커다란 돌탑도 있는데 돌탑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하산길에 보이는 울산시 야경도 아름답다.
문수사로 내려와 다시 차를 타고 크루즈를 타기 위해 포항으로 향했다. 깜깜한 산길을 핸드폰 앱을 보며 내려오려니 조수가 많아 차가 산으로 다시 올라갈 판이다. 그래도 어찌 어찌하여 큰길로 나오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 영일만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준 밥이고, 제일 예쁜 여자는 처음 본 여자라는데 대장님 왈 제일 멋있는 데는 안 가본 데라고 한다. 생각할수록 명언이다.
포항에 도착하니 사방이 캄캄하다. 그런데 영일만의 야경이 환상이다. 우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바닷가로 갔다. 길가의 조명도 화려하지만 바다 위에 세운 영일대도 멋스럽다.
죽도시장에서 저녁을 먹으려했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다. 식당을 찾아 시내를 뺑뺑 돌다가 식육점 식당에 들어가 고기로 포식했다. 영일만의 신항으로 가니 벌써 승선하는 중이다. 우리도 배에 올라 지정된 방에 들어갔다. 6인실 침대방인데 그런대로 아늑하다.
2월 7일 성인봉
★ 성인봉 (성인이 노는 성인봉)
성인봉은 산이 높고 유순하게 생겨서 마치 성인들이 노는 장소 같다고 하여 성인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밤새 배의 기계음 때문에 잠을 설쳤다. 사동에서 7시 20분에 하선하여 버스를 기다렸다. 8시에 버스가 온다고 하여 30분을 기다리다가 4명이 택시를 타고 도동에 있는 중앙식당으로 갔다. 여기서 아침 식사 후 짐을 맡기고 10시 40분 도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로 갔다.
우리는 나리분지로 가려 했지만 버스 기사가 눈이 많아 나리분지까지 갈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KBS 중계소로 올라갔다.
중계소 앞에서 스패츠와 아이젠으로 중무장을 하고 출발했다. 바닥에는 눈이 많지만 나무에는 상고대가 없이 뽀송뽀송하다.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위에는 상고대가 있다고 한다. 한참을 올라가니 과연 상고대가 나타난다. 환상적인 상고대를 보니 설국에 들어온 것 같다.
성인봉에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눈이 많아 성인들도 다른 곳으로 피신 갔나 보다.
겨울에는 나리분지로 가는 길을 폐쇄하여 갈 수 없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아무도 가지 않아서 발자국도 전혀 없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되돌아가려고 했는데 대장님이 그냥 나리분지로 가자고 한다. 대장님은 울릉도에서 1년 넘게 살아서 이곳 지리가 손바닥 보듯 뻔한가 보다. 눈이 얼마나 내렸는지 바람 부는 방향 반대쪽으로 눈처마가 만들어졌다.
길도 없는 산길을 눈썰매를 타며 내려온다. 나는 겁이 많아 ‘천천히 천천히’를 외치는데 대장님은 ‘밀어 밀어’ 하며 빨리 내려가려 한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선수가 된 미숙씨는 쏜살같이 내려가서 우리 내려오는 동영상을 찍는다. 나중에 올린 동영상을 보니 “ 오라이 오라이 너무 잘하고 있어요. 좋아요 좋아.” 하면서 신이 났다.
신나게 썰매를 타며 내려오는데 부반장이 썰매 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른다.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아 난간에 부딪혀 다쳤다는 것이다. 양숙씨와 나는 스틱을 짚으며 조심조심 내려오는데 뒷 사람들은 그냥 타고 내려온다. 결국 네 사람이 양숙씨와 나에게 충돌하여 멈췄다. 나와 양숙씨는 쓰러지며 추돌을 당했는데 그 바람에 내 스틱이 부러졌다. 내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스틱이 부러진게 천만다행이다. 부러진 스틱이 접히지 않아 한 손에는 부러진 스틱을 들고 한 손으로 다른 스틱을 짚으며 내려오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결국 부러진 스틱은 대장님이 들고 양숙씨가 빌려준 스틱을 짚고 내려왔다.
대장님은 부반장이 다친 게 걱정되는지 뼈는 괜찮으냐고 묻는다. 그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20년 가까이 대장님을 보아왔지만 이런 표정은 처음 본다. 천하의 대장님도 한 사람의 지아비라는 생각이 든다. 애인이 아프다고 하면 가슴이 아프고 마누라가 아프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더니 부반장은 아직도 대장님의 애인인가 보다.
신령수에 오니 약수물이 흐른다. 여기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에도 갔다. 누군가 화장실 앞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았다. 웬 푸른 눈의 눈사람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소주병 뚜껑을 박아 놓았다.
알봉분지까지 내려오니 웬 청년이 눈썰매를 끌며 걸어온다. 나리분지까지 버스가 올라오냐고 하니 못 온단다. 그래서 깃대봉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 아가씨가 또 올라온다. 나리분지에 버스가 못 오느냐고 하니 오전에는 못 올라왔는데 지금은 올라온다는 것이다. 앞의 남자는 못 올라온다고 하던데 어찌 된거냐고 물으니 그 사람은 자기 동생인데 육지 사람이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게 웬 떡이냐하며 나리분지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울릉도 아가씨 때문에 버스를 타게 생겼다. 우리는 귀인을 만났다고 기뻐하며 나리분지를 향해 걸었다.
버스 종점 대합실에서 대장님은 스틱을 접느라 톱질을 하고 난리다. 칼로 잘라도 접히지를 않는다. 결국 그냥 스틱을 뻗치고 버스에 올랐다. 천부까지 내려와 버스를 갈아타고 도동 숙소로 돌아왔다. 중앙식당에서 오삼불고기로 포식을 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미숙씨가 찍은 동영상을 카톡방에 올리니 다들 재미있다고 난리다. 양숙씨는 무슨 베이징 동계 올림픽 중계하는 거냐고 댓글을 달았다. 다들 퍼 나르기 바쁘다. 나도 가족방에 올렸더니 며느리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 같다고 한다.
온종일 걸었더니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2월 8일 관음도, 대풍감
★ 관음도
9시까지 1층으로 내려오라고 해서 느긋하게 있었더니 8시 5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고 하여 달리기를 해서 버스터미널로 갔다. 타고 보니 마스크도 안 했다. 이 버스의 기사님은 전국노래자랑에 나가 울릉도 대표로 뽑혔단다. 중절모를 쓴 멋쟁이다.
관음도 앞에서 내려 관음도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 돌아보니 바닷가에 방사상 주상절리가 보인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식을 때 생기는 기둥 모양의 틈인데 여기는 방사상 모양으로 된 특이한 형태다.
관음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삼선암과 죽도가 일품이다. 삼선암을 보라고 바위에 손가락까지 그려놨다.
관음도에서 나와 삼선암 쪽으로 걸어갔다. 삼선암은 보는 방향에 따라 1선암도 되고, 2선암도 되고 3선암도 된다.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천부까지 갔다. 천부에서 점심을 먹으려니 기사 아저씨가 맛 좋은 중국집이 있다고 가르쳐준다. 골목을 따라가니 대가야란 간판이 보인다. 안을 보니 사람이 가득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 주인이 자리가 없다고 하자 대장님이 밖에서 먹겠다고 한다. 밖의 탁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짬뽕이 나온다. 버스 시간이 임박하여 느리게 먹는 사람부터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11그릇이 나오려니 시간이 걸리고 결국 버스를 놓쳤다.
느긋하게 먹고 다음 버스를 기다리다가 근처에 있는 해중전망대를 보러 갔다. 매표소에 무료입장이라고 쓰여있어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공사 중이다. 도로 나오는데 버스가 온다고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또 달리기를 하여 겨우 버스를 타고 추산으로 갔다.
추산(송곳 추 錐 뫼 山)은 송곳처럼 뾰족한 바위 봉우리다.
송곳봉 아래 성불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추산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태하로 갔다. 태하에는 성하신당이란 사당이 있다.
조선 태종은 삼척 사람 김인우를 울릉도 안무사(按撫使)로 명하여 울릉도 거주민을 육지로 데려오도록 했다. 병선 2척을 이끌고 태하동에 도착하여 이곳을 유숙지로 정하고 도내 순찰을 마치고 내일이면 출발할 작정으로 잠을 자던 중 이상하리만치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해신이 나타나 동남동녀 한 쌍을 울릉도에 남기라는 것이다.
날씨가 나빠서 출항을 못 하고 수일간을 기다리던 중, 안무사는 문득 전일의 현몽이 생각나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일행 전원을 모아놓고, 동남동녀 2명에게 일행이 유숙하던 곳에 필묵을 잊고 왔으니 찾아올 것을 명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이 발길을 재촉하여 총총히 밀림 사이로 사라지자 그렇게 심하던 풍랑이 거짓말처럼 멎고 항해에 적당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다. 안무사는 결국 일행을 재촉하여 급히 출항할 것을 명하니 배는 순풍을 받고 일시에 포구를 멀리하게 되었다.
이 무렵 속은 줄도 모르는 어린 남녀는 아무리 찾아도 필묵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해변으로 돌아와 보니 배는 벌써 수백 리 해상에서 순풍을 타고 육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동남동녀는 땅을 구르며 고함을 쳤으나 배는 어느덧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말았다.
원망스러워 울부짖던 두 어린 남녀는 지쳐서 어쩔 수 없이 본래 유숙하던 자리로 돌아왔으나, 날이 감에 따라 공포와 추위, 그리고 굶주림에 시달리다 결국은 서서히 죽어갔다.
한편 안무사는 무사히 본국으로 귀환하여 울릉도 현황을 보고하였으나 당시 연민의 정과 죄의식이 마음 한구석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러다 수년 후 재차 울릉도 안무(按撫)의 명을 받고 울릉도에 와서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태하동에 상륙하여 수색하였다. 전에 유숙하던 그 자리에 와보니 두 동남동녀가 꼭 껴안은 채 백골이 되어 있었다.
안무사는 이 정황을 보고 회한에 찼으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혼령을 달래고 애도하기 위해 그곳에신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돌아갔다. 그 후 매년 음력 2월 28일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며 풍년을 기원하고 위험한 해상작업의 안전도 빌었다. 그리고 새 선박의 진수를(새로 만든 배를 처음으로 물에 띄움) 할 때면 꼭 태하의 성하신당에 제사하여 해상작업의 무사 안전과 사업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한다.
골목을 지나 한 식당을 보니 수족관에 홍삼(붉은 해삼)이 있다. 귀한 거라고 세 마리에 10만 원을 주고 샀다. 우리는 맛있게 잘 먹는데 대장님과 부반장님은 회를 못 먹으니 그림의 떡이다.
태하의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니 인간극장에 출연했다는 김두경 가옥이 나타난다. 집은 허름한데 안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나온다. 부지깽이나물을 팔고 있다.
김두경 가옥에서 다시 나와 향목전망대 쪽으로 가니 연리지가 보인다. 이름하여 동남동녀 연리지다. 성하신당의 동남동녀를 닮았다고 하여 동남동녀 연리지라고 불렀다.
★ 대풍감
향목전망대에 오르니 태하등대도 있고 공암(코끼리바위)와 똥 바위, 송곳산까지 아스라이 펼쳐진다. 여기서 다시 대풍감 전망대로 올라갔다. 대봉감도 아니고 대풍감이 뭔가 했더니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는 곳이라 한다.
울릉도에는 배를 만들기 좋은 나무가 많다는 소문을 들은 육지 사람들이 헌 배를 타고 와서 새 배를 만든 후 여기서 육지 쪽으로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대풍감 전망대에서 내려와 해안 산책길 쪽으로 가는 길은 온통 소나무밭이다. 오래된 소나무 숲이 완전 그림이다. 소나무밭에서 볼일을 보았는데 미숙 씨가 뒤에서 올라오며 노루오줌 냄새가 난다고 하며 여기 노루가 사나보다고 한다. 나는 내심 찔끔하여 내 오줌 냄새가 아닌가 했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해안 쪽으로 내려오니 해변 산책로가 보인다. 데크길이라 걷기 편하다.
조금 더 걸어오니 멋진 바위가 보인다. 이름하여 매바위다. 마치 매가 부리를 바다로 향하고 날아오르는 모양이다.
해안 산책로 끝에 나선형 계단이 있고 계단을 내려오면 붉은 황토가 섞인 황토 굴이 보인다. 이름하여 대황토구미다. 학포에는 소황토구미도 있다. 원래 태하에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에 보면 황토를 파낸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조 때는 이곳의 황토가 나라에 상납까지 되었다고 하고, 또 조정에서 3년에 한 번씩 삼척 영장을 이 섬에 순찰 보냈는데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서 이곳의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도 한다. 개척 때 사람들이 이곳에 와 보니 바닷가 산에 황토를 파낸 굴이 있었기 때문에 큰황토구미(큰黃土邱尾)라 하였다. 큰황토구미를 한자식 지명으로 표기할 때 대하(臺霞)라 하다가 다시 태하(台霞)라 표기하였다.
여기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한 아주머니가 김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 김이 엄청 크다. 보통 김의 네 배 정도다. 한 장에 3천 원인데 여기서만 난다고 한다. 사려고 했더니 팔 것이 없다고 한다. 조금 더 오니 한 집에서 팔 것이 있다고 하여 공금으로 6만 원을 주고 20장 샀다. 이건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나는 긴잎돌김인데 맛과 향이 기막히다고 한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도동으로 돌아왔다. 대장님이 산 위를 가리키며 울릉도에서 가장 오래된 향나무인데 2500년 됐다고 한다. 너무 오래되어 쓰러지려고 하는지 줄로 매어놨다.
2월 9일 행남등대, 봉래폭포
★ 행남등대
아침 식사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미숙 씨와 명금 씨는 해수탕에 갔다. 식당이 조용하다. 양숙 씨가 두 사람이 없으니 울릉도가 조용하다고 하며 아마 해수탕이 시끄러울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아침 식사 후 옛 군수관사로 갔다. 1962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기록을 보려 했지만 9시가 넘어도 문이 안 열려 포기하고, 명금씨가 자기는 1962년생이라고 하며 계단에서 사진만 찍었다.
성당이 있는 골목을 지나 행남등대로 향했다. 성당 앞에서 대장님이 한 주민에게 산 위에 살던 할아버지 아직도 살아계시냐고 하니 작년에 95세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산으로 올라가 할아버지 집에 가니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수선화만 피어 우리를 반긴다. 그 향기가 어찌나 진한지 너도나도 향기를 맡았다. 주인 없는 집에 수선화는 여전히 피어나는 걸 보니 인생무상이 느껴진다.
전망 바위로 올라서니 도동항 방파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대나무가 우거져 터널을 이룬 길이 어찌나 아름답고 편안한지 그야말로 실크로드다.
행남등대에 오니 저동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대 앞에는 돌고래 조각품이 있는데 명금씨는 그 입에 소시지를 넣으며 즐거워한다.
행남이란 마을 앞에 큰 살구나무가 있었다. 행 杏은 살구라는 뜻이고, 남은 나무라는 뜻이다. 그래서 행남을 살구남이라고도 했다. 저동 쪽으로 가는 길은 막혀서 바닷가로 내려와 도동 쪽으로 갔다. 해안 산책로를 잘 만들어 걷기 편하다. 중간에 바위 구멍도 있고 통천문 모양 바위도 있다.
바위 굴도 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걷는다.
도동항에 도착하니 울릉도와 독도의 해저 모양을 나타낸 그림이 있다. 그야말로 독도는 빙산의 일각이다. 언제 없어질지 모르겠다.
도동항에 있는 조각상도 모두 마스크를 쓴 모습이 코로나 시대임을 말해주고 있다.
★ 봉래폭포
오후에는 렌터카를 빌려서 봉래폭포로 갔다. 조금 올라가니 풍혈이 나온다. 땅속에 지하수가 흘러 항상 4℃를 유지하는 시원한 곳이다. 여름에는 천연 냉장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동래폭포 데크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눈사람이 우리를 반긴다.
하산길에 삼나무숲을 지났는데 그 울창한 숲이 마치 원시림을 보는 듯하다.
★ 남양 해변 구멍 바위
이번에는 대장님과 부반장님만 아는 비경을 보러 갔다. 차를 길가에 세우고 걸어가다가 대장님이 길가에 있는 큰 포대의 끈을 열심히 푼다. 아무래도 자일 대용으로 쓰려는 듯하다. 부반장님은 공사 중 표시로 설치한 납작한 긴 끈을 푼다. 무엇에 쓰려나 했더니 안전벨트로 쓰려는 것이었다.
조금 더 가니 멀리 뻥 뚫린 바위가 보인다. 대장님이 먼저 올라가 자일을 묶고 안전벨트를 내려 허리에 묶으라고 한다. 용감무쌍한 미숙 씨가 먼저 올라갔다. 나도 궁금하여 그다음으로 올라가니 천연으로 뚫린 커다란 구멍에 입이 딱 벌어진다.
순자 씨와 순환 씨도 올라왔다. 넓은 바위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마어마한 해안절벽도 볼만하다.
다시 밧줄을 몸에 묶고 서서히 내려왔다.
이날도 해가 지도록 돌아다니다가 깜깜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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