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22. 1. 18. 환상의 탐라 여행

아~ 네모네! 2022. 1. 24. 21:32

환상의 탐라 여행

 

이현숙

 

                                                                                          기간 : 2022118~ 120

                                                                                          장소 : 제주도

 

  롯데화요트레킹에서 모처럼 해외여행을 떠났다. 코로나 때문에 진짜 해외로는 못 가고 바다 건너 제주도로 갔으니 해외는 해외다.

  제주도의 옛 명칭은 탐라도다. 탐라국은 그곳에 존재했던 국가의 이름인데 탐라라는 말은 섬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

 

118일 도두봉, 한담길, 카멜리아힐, 송악산

도두봉( 島頭峰 섬의 머리가 되는 산)

  새벽부터 집을 나서 김포공항에 17명이 모여 비행기에 오르니 마음이 설렌다. 코로나가 없었으면 적어도 1년에 두 번씩은 비행기 타고 기내식 먹으며 여행 다녔을 텐데 2년째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제주 공항에 내려 가이드 박문수 기사님을 만나 도두봉으로 향했다. 도두봉은 말 그대로 섬의 머리가 되는 산이다. 정상 가까이 가니 나무 터널 사이에서 입맞춤 포즈로 사진을 찍는 연인이 보인다. 그리로 밀고 올라가기가 뭐해서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 정상에 갔다. 정상에 오르니 쪽빛 바다와 제주공항 활주로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바다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 한 바퀴 둘러보니 웬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다. 무슨 줄인가 다가가 보니 아까 본 장소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다. 젊은 연인들이나 신혼부부들은 여기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도 추억이 되겠지만 우리 같은 늙은이야 줄까지 서서 찍을 일은 없을 것 같아 그냥 내려왔다.

한담길

  도두봉에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애월 한담길로 향했다. 해안도로로 갔는데 차도 옆 추락 방지 기둥에 알록달록 무지개색을 칠해놨다. 이름하여 무지개 해안도로란다. 밋밋한 시멘트 기둥에 예쁜 색을 칠해서 보는 이의 마음도 따뜻하다.

  한담길에 도착하니 안내판이 보인다. 애월읍 애월리의 옛 이름이 한담 마을인데 여기서부터 곽지해수욕장까지 1.2km에 만든 산책길이다. 안쪽으로 조금 걸어가니 표해록이란 표지석이 있다. 인동 장씨 장한철이란 사람이 영조 시대에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일본 오키나와에 착륙했는데 거기서 다시 한양까지 가면서 본 것들을 기록으로 남긴 책이다. 표해록은 해양문학의 백미로서 제주도 유형문화재 27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파도와 검은색 바위가 어우러져 눈부신 광경을 연출한다. 한담길은 그 이름처럼 한가하게 걸으며 담소를 나누기 딱 좋은 길이다.

동백동산 카멜리아힐

  제주도에 여러 번 왔어도 카멜리아힐은 처음이다. CAMELLIA는 동백나무이고 HILL은 동산이란 뜻이니 우리말로 하면 동백동산이다. 출발하기 전부터 상윤씨가 여기는 꼭 가야 한다고 부르짖던 곳이라 기대가 크다.

  카멜리아힐은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 수목원이다. 6만여 평의 대지에 겨울을 대표하는 동백꽃뿐만 아니라 철쭉, 튤립 같은 봄꽃과 여름을 대표하는 수국, 가을에는 핑크 뮬리, 팜파스그라스가 사계절 내내 아름답게 채워준단다. 그중 카멜리아힐을 대표하는 것은 단연 동백꽃이다. 80여 개국의 동백나무 500여 품종이 있으며 수목원 전체에 총 6,000여 그루가 심겨 있다고 한다.

  나무에 달린 꽃도 예쁘지만, 바닥에 떨어진 핏빛 동백도 눈부시다. 그야말로 동백나무가 피를 토해 놓은 것 같다. 곳곳에 만들어 놓은 장식들과 연못, 전망대도 아름답다. 여기서 바라보는 한라산도 기막힌 절경이다. 곳곳에 수국도 많았는데 꽃이 져서 아쉽다. 회원들은 수국 보러 6월에 또 오자고 대장님을 졸라댄다.

송악산

  오늘의 마지막 코스는 송악산이다. 송악산(松岳山)은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오름이다. 산방산과 이웃해 있으며 이중 분화구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도 서남쪽에 위치해서 가파도와 우리나라 최남단 섬인 마라도를 볼 수 있다.

  예전엔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훼손되어 지금은 올라갈 수 없다. 2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둘레길은 없었지만, 정상에는 갈 수 있어서 움푹 들어간 분화구를 보았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곳곳에 발달된 사층리를 볼 수 있다. 사층리란 기울어진 층리를 말한다. 검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선 사층리를 보면 태고 시대의 지각 변동을 한 눈으로 보는 듯하다.

  바다 건너로 마라도와 가파도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빚을 얻고 싶을 때는 가파도나 마라도 사람에게 빌리라는 말이 있다. 그러면 가파도 되고 말아도 된단다.

  하루에 4탕이나 뛰고 저녁 식사 후 호텔에 들었다. 새벽 4시 반부터 일어나서 설쳤더니 피로가 몰려온다. 그런데 방이 어찌나 더운지 잠을 잘 수가 없다. 설정온도를 21로 낮춰도 실내온도는 계속 29에서 내려가지를 않는다. 할 수 없이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

119일 한라산

은하수를 잡는 산

  한라산이라는 이름에서 한()은 은하수(銀河水)를 뜻하며, ()는 붙잡을 라이다. 산이 높아서 산꼭대기에 서면 은하수를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도시락을 챙겨 차에 올랐다. 육개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성판악으로 향했다. 성판악에 도착해 입장 QR코드를 찍는데 내 이름이 아닌 임경희 님 이름으로 되어있다. 나는 대장님이 임경희 이름으로 예약했나 하고 무심하게 들어갔다. 관리소 직원도 신분증 보자는 소리를 안 했다. 나중에 대장님께 얘기했더니 그렇게 하면 나중에 임경희 님이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캄캄한데 아직 달이 있어 어슴푸레 길이 보였다. 길은 외길이니 길 잃어버릴 일도 없다. 땅에는 눈이 많은데 나무에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다. 겨울 한라산에 이렇게 상고대 없는 건 처음 본다. 속밭 대피소를 지나 사라오름 갈림길에서 장미반은 사라오름으로 가기로 했다.

  향금씨와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뒤에서 부대장님이 나타난다. 부대장님은 다른 일행과 사라오름까지 갔다가 온다는 것이다. 성판악에서 같이 출발했는데 완전 날다람쥐다.

  모란반은 정상을 향해 진달래대피소에 이르니 9시 반밖에 안 됐다. 진달래대피소에서 12시에 출발해야 정상에 갈 수 있다기에 부지런히 왔더니 일찍 도착했다.

  아침에 기사님이 가르쳐준 대로 도시락 주머니에 발열제를 넣고 물을 부으니 뜨끈뜨끈해지며 김이 올라온다. 여기에 밥이 들어있는 비닐 주머니를 넣고 15분을 기다리는데 생쥐가 발아래로 지나간다.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는데 향금씨는 기절하듯 소리를 지른다. 나는 강심장인가 보다. 우리 어려서는 방 천장에서 쥐들이 운동회를 하듯 찍찍거리며 쿵쾅거리는 게 예사였다. 천장이 종이로 되어있어 밤이면 그 소리가 요란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태연하다.

  잠시 후 대장님이 들어오고 다른 회원들도 들어와 어떻게 도시락을 데우느냐고 묻는다. 몇 분 빨리 해 본 우리가 가르쳐주고 있는데 대장님이 갑자기 배낭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모두 놀라 어쩔 줄 모르는데 한 사람이 여기 주인 없는 배낭이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우리는 이 배낭 주인이 누구냐고 크게 외쳐도 아무도 대답을 안 한다. 아무래도 누가 배낭을 잘못 지고 간 것 같다. 대장님 배낭이 뭔가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바꿔갔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 배낭 주인의 신분증이 있을지도 모르니 열어보자고 해도 대장님은 안 된다고 하며 침착하게 점심 도시락 준비를 한다. 항상 명색이 대장이라고 부르짖더니 과연 대장은 대장이다.

  우리는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잠시 후 두 남자가 헐레벌떡 들어오며 배낭을 바꿔갔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자기 배낭을 가지고 나오라고 했는데 잘못 가지고 나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올라갔다 왔는지 두 남자 모두 땀을 흘리며 숨이 턱에 닿았다. 자세히 보니 그 남자 배낭도 검은색이고 대장님 배낭과 비슷하게 생겼다. 우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점심을 먹었다.

  진달래대피소에서 나와 눈밭에서 사진을 찍으며 올라가는데 정상 가까이 가자, 웬 사람들이 계단에 길게 줄을 서 있다. 무슨 줄인지 몰라 옆으로 계속 올라갔다. 백록담에 올라보니 정상 표지석 나무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다. 길이 얼마나 긴지 마치 개미 떼처럼 보인다.

  관리소 직원은 길이 너무 길어 하산 시간 전에 사진을 다 찍을 수 없으니 한 장씩만 찍으라고 연신 방송을 한다. 정상에서는 130분 전에 하산을 시작해야 한다.

  백록담 白鹿潭은 흰 사슴이 물을 먹는 연못이란 뜻인데 흰 사슴은 없지만 흰 눈이 가득하여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서 또 부대장님을 만나 백록담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상 표지석에서는 사진 찍을 엄두도 낼 수 없으니 멀리서 대충 찍고 관음사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1968년 대학교 1학년 때 한라산에 왔었다. 그때는 비행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목포까지 완행열차를 타고 하루 잔 후 배를 타고 제주도에 왔다. 제주도 오는 바다에서 아무 섬도 보이지 않고 오직 망망대해만 보이는 지점이 있다. 배도 작은 배라 멀미를 하며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관음사 위에서 텐트 치고 하룻밤을 잔 후 개미등으로 올라가 지금의 왕관릉 자리쯤에서 또 하루를 잤다. 다음 날 백록담에 올라가 호수로 내려가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맘대로 휘젓고 다녔다. 지금은 뺑뺑 돌려 다 막아 놓고 들어가지도 못 하게 하니 참 아쉽다. 호수에 내려가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이리저리 맘 판 뛰어다녔으면 좋으련만.

  그때는 영실로 내려와 바닷가까지 걸어가 해안 도로를 타고 모슬포까지 갔다. 내륙을 관통하는 도로는 없고 오로지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해안도로뿐이었다. 가는 길에 한 민가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려고 하는데 화장실 구석에 있던 돼지가 꿀꿀거리며 다가오는 바람에 나오려던 똥이 쏙 들어갔던 기억도 떠오른다.

  정상에서 내려와 왕관릉의 넓은 눈밭에서 상윤씨가 준 과자를 먹었다. 이럴 때 서울서 깎아온 사과를 먹었으면 딱 좋았을 텐데 아침에 깜빡 잊고 호텔 방 냉장고에 그냥 놔두고 왔다. 에고~ 내 팔자야~.

  여기서부터는 완전 급경사의 눈길이라 옆의 밧줄을 잡고 통사정을 하며 내려와야 한다. 더 내려오다가 보니 한 청년이 사진을 찍는데 소시지를 들고 있다. 웬일인가 자세히 보니 소시지로 사진을 찍는다. 겨울에는 소시지가 최고라고 장갑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다. 나도 앞으로 해봐야겠다.

  소시지를 보니 이순희 씨 생각이 떠오른다. 함께 티베트에 갔을 때 라싸에서 북경까지 칭장 열차를 타고 왔다. 열차 안에서 순희 씨가 천하장사 소시지를 회원들에게 나눠줬다. 사람들이 이걸 보며 남자의 거시기 닮았다고 이거 먹으면 천하장사 되는 거냐고 해서 배꼽 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길이 하도 가파르고 미끄러워 선자 씨가 어떻게 내려오나 걱정하며 한참 내려오니 용진각 대피소 자리가 나타난다. 예전 용진각 대피소 사진과 태풍에 의해 없어졌다는 안내문이 있다.

  거기서 더 내려오니 삼각봉 대피소다. 삼각봉은 말 그대로 삼각형의 뾰족한 봉우리다. 대피소 난간 눈 위에 이백양 사랑해라고 쓰고 하트까지 그려놨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다 해도 여전히 이 세상은 사랑이 충만한 곳이다.

  삼각봉 대피소에서 더 내려오니 구린굴이 나타난다. 나는 전망대에 올라서서 계곡 사진을 찍으며 구린굴에서는 구릿대가 나나?” 하니 옆의 젊은이가 웃으며 그쪽이 아니고 저쪽이 구린굴이라고 알려준다. 위쪽을 보니 커다란 굴이 보인다. 젊은이들에게 배울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구린굴은 예전에 얼음을 저장하던 석빙고로 쓰였고 주위에 집터와 숯가마 터도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며 내려오는데 뒤에서 하순희씨가 내려온다. 함께 얼마를 내려오니 관음사 탐방로 입구 건물이 보인다.

  탐방로 문을 나오니 웬 젊은이들이 또 줄을 서 있다. 뭔가하고 다가가니 등정 인증서를 받는 줄이다. 키오스크라는 자동화 기기 앞에서 어리버리하고 있으니 젊은 사람이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신청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한라산 정상에 여러 번 왔지만, 그동안 이런 기계도 없었고 인증서 발급 제도가 없었다.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 등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인증서 발급하는 줄에 서서 해보기로 했다. 내 꼴을 보아하니 쭈그렁 할머니라 도저히 못 하게 생겼는지라 뒤의 젊은이가 친절하게 일러준다. 가르쳐주는 대로 정상 사진도 전송하고 kb페이로 결재를 하니 인증서가 프린트되어 나온다. 옆에 있는 파일 넣는 비닐봉지에 넣으라고 일러준다.

  갈수록 세상 살기가 힘들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다. 젊은 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이 지구상에 살아남을 수가 없다. 어려서는 어른들의 도움으로 살았지만 늙어서는 젊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인증서까지 받아들고 차에 오르니 장미반 회원들이 손뼉을 쳐주며 맞아준다. 조금 기다리니 대장님이 나타나고 다른 회원들도 인증서를 들고 차에 오른다.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저녁에는 방어회를 먹어보자고 5만 원씩 걷는데 옆에 앉은 연희 씨가 뭘 찾느라고 배낭을 다 뒤집어엎는다. 뭘 찾느냐고 하니 핸드폰이 없다는 것이다. 핸드폰 지갑에 카드로 들어있고 돈도 들었다는 것이다. 내 핸드폰으로 연희 씨에게 전화를 해봐도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받지를 않는다. 차 안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속밭 대피소에서 땅콩 먹다가 흘렸나보다고 한다. 모두들 당황해서 대장님은 한라산 국립공원 관리소에 분실물 들어온 것 없느냐고 전화하고, 기사님은 SK에 전화해서 핸드폰 위치 추적을 부탁하고, 연희 씨는 카드사에 전화하여 카드 사용 중지를 요청하느라 차 안이 호떡집에 불 난 듯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으니 그냥 저녁을 먹으러 횟집으로 들어갔다. 다들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잠시 후 대장님이 들어오며 찾았다고 소리친다. 다들 놀라서 어떻게 찾았느냐고 하니 의자에 깔고 앉았다는 것이다. 내가 볼 때는 안 보였는데 어디 있었느냐고 하니 의자 뒤쪽 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우리가 다 내린 후 시동을 끄고 대장님이 다시 전화해보니 아주 작은 소리가 들리더란다. 소리 볼륨이 너무 작아서 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 때문에 안 들렸나 보다. 대장은 아무나 하나? 역시 대장은 대장이다.

  다들 맘 편히 저녁 식사를 마치자 연희 씨가 모두 계산을 해버렸다. 카드를 다시 찾아 너무 좋다고 한다. 이 카드는 법인 카드라서 사인 없이도 1,000만 원까지 결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천국과 지옥을 두 번씩이나 왔다 갔다 했다. 대장님 배낭 때문에 한 번 갔다 오고, 연희 씨 카드 때문에 또 갔다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해피엔딩으로 끝나 더 행복하고 스릴 있는 하루였다.

  호텔에 도착하여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났는데 누가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어보니 기영 씨와 정아 씨가 귤을 한 팩씩 준다. 그야말로 귤 아가씨다. 젊은 사람들과 같이 다니니 너무 편하고 좋다.

 

120일 관음사, 절물휴양림, 에코랜드

관음사

  오늘 아침은 느긋하게 8시에 일어나 9시 출발이다. 짐을 챙기고 냉장고에 있던 사과를 배낭에 넣었다. 등산화에 스패츠까지 차고 배낭을 지려고 하는데 아차 아랫도리가 허전하다. 내복 바람이다. 깜짝 놀라 신을 벗고 다시 등산바지를 입은 후 스패츠도 다시 했다.

  어제 차에서 연희 씨가 옛날에 수영장에서 샤워한 후 수영복도 안 입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다들 배꼽 빠지게 웃었는데 나도 제주도까지 와서 개망신당할 뻔했다.

  체크 아웃을 하고 차로 가는 길에 사과부터 꺼내어 대장님과 기사님께 하나씩 드렸다. 또 잊어버리면 서울까지 다시 가지고 갈 판이니 정신 똑똑히 차렸다. 차에 타자마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주어 모두 팔았다. 요새는 실수 연발이라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불안 불안하다.

  차에 오르니 기사님이 오메기떡을 세 개씩 주며 맛을 보고 필요한 사람은 신청하라고 한다. 오메기는 제주도 말로 차조를 뜻한다고 한다. 그동안 오메기떡을 여러 번 먹었지만 오메기가 차조인 줄은 처음 알았다.

  어제 기영 씨가 정상 사진이 대장님 핸드폰에 있어 등정 인증서를 못 받았다고 해서 다시 관음사 주차장으로 갔다. 사무실에 들러 사정 이야기를 하고 인증서를 받은 후 관음사로 갔다.

  관음사 주차장으로 내려온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관음사 구경을 못 한지라 대장님께 관음사에 들러보자고 했다. 기사님이 일주문 안쪽의 부처님 손 모양이 모두 다르니 자세히 보라고 일러준다. 과연 안으로 들어가며 자세히 살펴보니 그 많은 부처님의 손 모양이 제각각이다.

  대웅전을 향해 가는데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나무에 금빛 나뭇잎 모양의 조각들이 잔뜩 달려있다. 가까이 가보니 소원을 적어서 매달아 놓은 것이다. 그 앞에서 소원은 안 빌고 사진만 찍고 위로 올라갔다.

  대웅전 옆으로 올라가니 커다란 부처님이 있고 그 뒤로 무수한 부처상이 있다. 천불은 훨씬 넘을 것 같다. 거기서 계단을 내려오는데 정정애 씨와 연희 씨가 손을 잡고 내려온다. 내가 뒤에서 둘이 무슨 관계냐고 물었더니 이상한 관계란다. 이 상해서 치과에 다녀왔다고 농담을 한다.

 

절물휴양림

  절물은 절 옆에 물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절물 약수터가 있고 바위에서 물이 흐르고 있다. 약수라고 해서 한 번 마셔보니 차지도 않고 달달하다.

  삼나무 숲길이 무척 아름다운 휴양림이다. 피톤치드를 흠뻑 마시며 산림욕을 즐겼다.

에코랜드

  에코랜드는 기차를 타고 순환하며 곳곳을 구경할 수 있다. 정류장이 네 군데 있어서 정류장마다 내려서 주변을 산책하며 즐긴 후 다음 기차를 타면 된다.

  에코랜드에는 큰 호수가 있는데 제주도는 현무암층이라 빗물이 다 빠져나가 호수가 없다. 쓸모없는 곶자왈 땅에 인공으로 방수 처리를 하여 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을 뜻하는 제주도 말이다. 즉 곶자왈은 가시나무가 뒤엉킨 자갈밭을 말한다.

  호숫가에는 멋진 건물도 있어 유럽에 온 듯하다. 하트 모양의 조형물에서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가니 풍차가 보인다. 풍차 앞에는 돈키호테가 탔을 것 같은 당나귀도 있다. 여기 기어 올라가서 사진을 찍었다.

  중간에 카페도 있다. 여기 들어가서 차를 마시며 어제 있던 일로 또 얘기꽃을 피웠다. 내가 앞에 앉은 연희 씨에게 49년생이라더니 어제 카드사에 전화할 때 주민등록 번호가 왜 48로 시작하느냐고 물으니 과거사가 복잡하단다.

  어렸을 때 사는 동네에 수해가 나서 동사무소가 물에 잠겼단다. 호적도 잠겨서 동직원이 젖은 호적을 보고 새로 만들었는데 49년을 48년으로 쓰고 여자를 남자로 적었단다. 19살이 되어 갑자기 영장이 나오는 바람에 그때서야 알게 됐는데 친정엄마가 동사무소에 달려가 여자라고 하니 산부인과에 가서 여자라는 증명서를 떼어오라고 했단다. 엄마는 아직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우리 딸인데 벌 한 마리, 나비 한 마리 지나간 적 없는데 산부인과가 무슨 말이냐고 안 된다고 했단다. 동직원은 나라에서 지정해준 병원에 가서 떼어야 한다며 여자 의사가 하는 곳을 소개해 줄 테니 거기 가서 검사하라고 해서 할 수 없이 거기 가서 증명서를 떼다가 냈다고 한다. 참 별별 일이 다 있던 시절이었다. 본의 아니게 연희씨 과거사 진상 조사위원회가 열렸다.

  연희 씨는 말을 할 때 어찌나 예쁘고 애교가 찰찰 넘치는지 여자인 내가 봐도 쏙 빠져든다. 볼 때마다 저런 여자하고 사는 사람은 평생 얼마나 좋을까 싶다. 마른 장작개비처럼 뻣뻣한 나 같은 인간하고 사는 내 남편은 골라도 너~무 잘못 골랐다.

  기차를 타고 라벤더 역에 내리니 라벤더가 가득한 언덕이 보인다. 라벤더가 필 때 오면 엄청 아름다울 것 같다. 사람들은 라벤더 필 때 다시 오자, 철쪽 필 때 다시 오자며 또 대장님을 졸라댄다. 이러다가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도 오게 생겼다.

  에코랜드 구경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 족욕 체험을 하였다. 둥근 양동이처럼 생긴 곳에 뜨거운 물을 넣고 각종 물질을 넣고 소금으로 문지르며 본인이 직접 마사지를 하는 곳이다. 따끈한 물에 발을 담그고 마사지를 하니 3일 동안의 피로가 싹 가신다.

 

  공항으로 오니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바글바글하다. 올 때도 비행기가 만석이었는데 갈 때도 꽉 찼다. 의자에 앉으니 온몸이 노곤하니 피로가 몰려온다. 3일간의 여행이 30일은 된 것 같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날씨도 좋고, 사람도 좋고, 경치도 좋은 환상의 탐라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