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0일 옛 군수관사, 내수전 둘레길, 독도 전망대
★ 옛 군수관사
7시에 일어나 도동항 부두로 가니 한치 배가 들어왔다. 동네 횟집의 사장님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속속 도착한다. 펄펄 뛰는 한치를 한 양동이씩 사가지고 쏜살같이 사라진다. 우리도 10만 원을 주고 5마리 샀다. 아침 식사 때 회로 먹었는데 낚시꾼 남편을 둔 순환 씨가 주방으로 들어가 숙련된 솜씨로 회를 친다. 오늘도 대장님과 부반장님은 먹지 못해 구경만 하고 있다.
식사 후 다시 옛 군수관사로 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했을 때 묵었던 곳이다. 박정희 사진과 그의 시찰 모습이 전시되어있다. 일본식 다다미방인데 화장실 모습도 특이하다. 미숙 씨는 자기도 어려서 적산가옥에 살았다고 하며 화장실에서 쭈그려 앉아 볼일 보는 흉내를 낸다.
★ 내수전 둘레길
여기서 나와 렌터카를 타고 내수전 전망대로 향했다. 길에 눈이 많아 중간에 내려서 걸어 올라갔다. 내수전 전망대에 오르니 관음도와 죽도, 북저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내수전은 김내수라는 사람이 화전을 일구며 살던 밭(전 田)이란 뜻이다. 내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자기 이름 하나는 확실하게 남겼다. 북저바위는 저동의 북쪽에 있는 바위다.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앞에 둥그스름한 산이 보인다. 쇠불알 같이 생겨서 쇠불알 봉이라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적나라하게 이름도 잘 붙인다. 코끼리 바위 뒤의 작은 바위는 똥 바위, 삼선암 옆에 조금 떨어져 있는 바위는 딴 바위라고 한다.
내수전 전망대에서 내려와 내수전 둘레길로 들어섰다. 내수전에서 석포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길도 완만하고 숲이 우거져 태고의 원시림을 보는 듯하다. 가다가 전호나물이 보이니 이걸 뜯느라고 갈 생각들을 안 한다.
곳곳에 고로쇠나무가 있는데 고로쇠 물을 받느라고 비닐 주머니를 주렁주렁 달아놨다. 마치 인간이 나무의 고혈을 빨아먹는 것 같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석포산장을 지나 계속 내려가니 둘레길 입구가 보이고 포장길이 나타난다. 원래는 대장님이 이곳에 차를 대기로 했는데 중간에 눈과 얼음이 덮여 올라올 수 없으니 안용복기념관까지 내려오라고 한다.
안용복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안용복에 관한 여러 가지 그림과 안내문이 있다. 안용복은 동래의 수군인 능로군 출신으로 왜관에 출입하면서 일본말을 익혔다고 한다. 그는 울릉도와 독도에서 어로 활동을 하던 일본인을 쫓아냈다. 그러자 일본인은 안용복을 납치해 일본으로 끌고 갔다. 그는 일본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 땅이라고 주장했고 일본 정부도 결국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안용복 기념관에서 내려와 다시 천부로 왔다. 오늘도 대가야 반점에 들러 야외가 아닌 식당 안으로 들어가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 나리분지
점심 식사 후 다시 나리분지 전망대로 갔다. 나리분지는 여전히 흰 눈에 싸여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 나리분지는 화산활동으로 마그마가 분출된 후 화구 주변이 함몰되어 우묵하게 생긴 땅이다. 이런 땅을 칼데라라고 하는데 예전에는 여기에 물이 고여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호수를 칼데라 호수라고 하는데 백두산 천지도 칼데라 호수다. 하지만 백록담은 화구호이다.
나리분지 앞에는 알봉이 있다. 알봉에는 지그재그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알봉은 나리분지가 생긴 후 나리분지의 틈으로 마그마가 다시 분출하면서 멀리 흐르지 못하고 화구 주변에 봉긋하게 쌓여 알 모양이 되었다. 무슨 알인지는 모르겠고 하여튼 알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겼다.
★ 울릉 천국
나리분지 전망대에서 내려와 이장희 집이 있는 울릉 천국으로 갔다. 이장희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나 보다. 울릉농협에서 축하의 현수막을 걸어놨다.
마당에는 이장희 동상이 있는데 대머리가 흉하다고 미숙 씨는 자기 모자를 씌운다.
울릉 천국은 천국처럼 예쁘게 꾸며 놓았다.
명금씨는 송창식 팬이라고 송창식이라고 쓴 바위 앞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명금씨는 이번 여행의 총무다. 자진하여 회비도 걷고 뭐든지 척척 알아서 한다. 한 마디로 명금씨는 명 총무다.
★ 추산
다음에는 추산으로 갔다. 송곳봉이 있는 곳이다. 한 바퀴 둘러보니 빨간 지붕의 아담한 교회도 있고, 야외에 커다란 부처님이 있는 성불사도 있다. 여기는 부처님이 마당에 있고 대웅전은 보이지 않는다.
★ 독도 전망대
추산을 떠나 다시 도동으로 돌아와 케이블카를 탔다. 정상에는 독도 전망대가 있다. 독도 전망대에는 독도까지 87.4km라고 쓰여있고 독도 방향이 표시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도동항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다시 도동으로 내려와 도동약수터로 올라갔다. 약수터 가는 길에 안용복 장군 충혼비가 있다. 안용복은 울릉도 사람들에겐 완전 영웅이다. 약수터에 가보니 온통 붉은 빛이다. 물에 철분이 함유되어 있나 보다. 맛을 보니 비릿한 철 냄새가 나고 사이다처럼 톡 쏜다.
약수터 물이 나오는 구멍의 조각이 뱀이냐 용이냐 한바탕 토론이 벌어졌다. 머리에 비늘이 있으니 뱀이라는 사람이 있고, 울릉도에는 뱀이 없는데 사람들이 뱀을 만들었을 리가 없다는 사람들이 서로 주장을 한다. 둘 다 일리가 있으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
★ 촛대바위
오늘의 일정이 여기서 끝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다. 대장님은 눈에 보이는 게 없을 때까지 돌아다닌다. 다시 차를 타고 저동으로 갔다. 저동에 가니 비가 쏟아진다. 웬만하면 그냥 집으로 갔으면 싶은데 또 촛대바위를 보러 간다. 날이 어두워져 촛대바위에는 조명이 들어왔다. 밤에 보는 촛대바위는 또 새로운 맛이다.
촛대바위에는 이런 전설이 있다. 옛날 저동에 한 노인이 살았다.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딸과 살았는데 어느 날 풍랑이 심해 조업 나간 노인이 돌아오지 못했다. 상심한 딸은 며칠 동안 눈물로 지새우다가 어느 날 돛단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바다로 헤엄쳐 나갔다. 하지만 심한 파도에 휩쓸려 점점 지쳐갔고 그 자리에서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로 이 바위를 촛대바위 또는 효녀 바위라고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2월 11일 알봉, 깃대봉, 석봉
★ 알봉
8시 50분 도동에서 천부 가는 버스를 탔다. 오늘도 노래자랑 기사님이다. 어제는 렌터카를 빌려서 버스를 안 탔다고 하니 자기도 어제는 휴무였단다. 그러면서 여태 안 갔느냐고 한다. 우리처럼 7박 8일을 보내는 사람은 별로 없나 보다.
이 기사님은 노래를 잘한다고 하더니 목소리가 끝내준다. 천부에서 내려 나리분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식당 주방 문 앞에 강아지 두 마리가 앉아 주방을 바라보고 있다. 먹을 것을 달라고 하나 보다. 머리를 쳐들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다가 갑자기 검은 개가 흰 개를 올라타려고 한다. 밥 기다리다 보니 딴생각이 들었나 보다. 밑을 보니 검은 개는 수놈이고 흰 개는 암놈이다. 암놈은 별생각이 없는지 도망가려 하자 수놈이 암놈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난리가 났다. 우리는 이 모양을 보고 숏다리가 롱다리 올라타려고 고생한다고 배꼽 잡고 웃었다. 우리가 남의 사정도 모르고 너무 했나? 사람이나 개나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나 보다.
나리분지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버스가 서더니 앞에는 눈이 많아 못 간다고 내리라고 한다. 할 수 없이 내려서 걸어가는데 웬 트럭이 배낭과 카고백을 가득 싣고 간다. 옆에는 이중화를 신은 등산객들이 줄줄이 간다. 물어보니 대한 산악연맹 구조대팀인데 전국에서 300명이 모여 동계 훈련을 왔다는 것이다.
나리분지에서 눈길을 헤치고 알봉에 오르니 넓은 데크가 나타난다. 데크 한쪽 벤치에는 눈 뭉치가 쌓여 마치 쿠션처럼 보인다. 지가 알봉이면 알봉이라고 말을 해야지 표지판도 없고 정상석도 없다.
★ 깃대봉
여기서 다시 러셀을 해가며 깃대봉으로 향했다. 깃대봉이라고 해서 무슨 깃발이라도 세워져 있나 했더니 달랑 나무 기둥에 깃대봉 608이라고 쓴 표지뿐이다.
여기서 나리분지와 알봉이 아련히 내려다보인다. 알봉을 바라보며 대장님이 또 옛날얘기를 꺼낸다. 울릉도에 와서 부반장을 처음 만난 얘기다. 울릉도에서 만났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알봉에서 만난 줄은 몰랐다.
알봉 왼쪽의 계곡에서 부반장이 세수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물에 젖은 그 얼굴이 너무 예뻐서 한눈에 반했다는 것이다. 부반장님은 누가 봐도 훤칠한 키에 빼어난 미인인데다 한창나이에 세수까지 했으니 얼마나 예뻤을까 가히 짐작이 간다. 천하일색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가 나타난다고 해도 대장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대장님은 친구들과 네 명이 울릉도 여행을 왔고 부반장은 지리과 답사 여행을 왔다가 만났다는데 사람이 만나는 인연이란 생각할수록 신비하다. 둘 중 하나라도 이 여행에 빠졌으면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텐데 그야말로 부부가 되라는 하늘의 뜻이었나보다.
★ 석봉
날씨가 쾌청하고 바람도 없어서 여기서 마냥 머물며 울릉도를 만끽하다가 왼쪽 계곡으로 치고 내려와 석봉으로 갔다. 석봉은 한석봉인지 김석봉인지는 몰라도 정상에서 바라보는 송곳산이 일품이다.
석봉에서 내려오니 울릉 천국이다. 이장희 가옥을 또 한 번 보고 계속 내려오니 현포마을이다. 2021년 집사부일체라는 프로를 여기서 찍었나 보다. 20년 후 그러니까 2041년에 다시 만나자는 표지판이 보인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5명 모두 여기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오니 현포마을이다. 여기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산에서 따온 전호나물과 약소 로스구이로 맛깔스러운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을 먹는데 아침에 같은 버스를 탄 남자에게서 식당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 남자도 우리와 같이 이곳에 숙소를 정한 모양이다. 성인봉에 올랐다가 KBS 중계탑 쪽으로 내려왔는데 사방은 캄캄하고 안경까지 잃어버려 꼼짝 못 하겠다는 것이다. 대장님은 이 소리를 듣더니 밥 먹다 말고 슬리퍼 차림으로 택시를 타고 중계탑으로 가서 이 남자를 데리고 왔다. 택시비까지 본인이 내면서 말이다. 부반장은 대장 오지랖이 너무 넓다고 투정하면서도 자기가 가져온 안경 여분이 있다며 안경까지 줬다. 생각할수록 천사표 부부다. 아마 틀림없이 복 받을껴. 본인이 아니면 자손이라도 복 받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방으로 들어오니 사방이 쑤셔댄다. 연일 강행군을 하고 오늘은 또 세 개의 봉우리를 올랐으니 칠순이 넘은 나이에 당연한 일이다. 미숙 씨가 가져온 동전 파스로 여기저기 도배를 했다. 미숙 씨는 여기저기 혈 자리를 짚어가며 잘도 붙여준다. 거의 한의사 수준이다.
2월 12일 죽도, 예림원, 학포
어제 강행군을 했으니 오늘은 느긋하게 출발하기로 했다. 우리 숙소 앞에 있는 적산가옥 카페에 가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울릉 역사문화 체험센터다. 적산가옥은 적의 재산인 가옥이란 뜻인데 주로 일본 사람들이 살던 집을 말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다다미방에 격자로 된 창이 아름답다.
여기 전시된 사진은 1960년대에 7년 동안 여기서 살던 외국인이 찍은 거라고 한다. 울릉도 여인들의 힘든 삶을 보여주는 사진도 있다.
기록영화도 그 사람이 찍은 건데 라이센스를 받고 상영한다고 한다. 시간이 없으니 영화를 잠깐 보았는데 태풍이 얼마나 센지 닭의 뒤꽁무니가 활딱 젖혀져 똥꼬까지 다 보여 한바탕 웃었다.
★ 죽도
식당 사장님 차를 타고 저동으로 가서 어선을 빌려 죽도에 가기로 했다. 30만 원에 죽도와 관음도까지 돌아주기로 했다. 바람이 제법 불어서 배가 춤을 춘다. 방파제를 빠져나오니 북저바위가 파도 위에서 굳건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죽도에 도착하니 나선형으로 된 계단 탑이 있다. 20여 년 전에는 절벽에 있는 돌계단으로 올라갔는데 새로 만들었나 보다. 위로 올라가니 죽도 주민의 집도 보인다. 아주 커다란 저택이다.
조금 더 오르니 관음도와 삼선암이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고 그 전설을 말해주는 안내판도 보인다. 삼선암은 하늘나라에 살던 세 선녀가 울릉도에 내려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승천 시간을 어겨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바위로 변했다는 것이다.
관음도는 경주에 살던 월성 김 씨가 고기를 잡으러 왔다가 태풍을 만나 여기 머물렀다. 밤에 불을 피워놓으니 수많은 깍새가 날아와 깍새를 잡아먹고 살았다고 하여 일명 깍새섬이라고 한다.
죽도는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엄청 많다.
죽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와 관음도로 향했다. 파도가 어찌나 센지 배가 흔들릴 때마다 바다로 처박힐 것 같다. 관음도를 한 바퀴 돌기로 했지만 포기하고 다시 저동항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를 보았다. 이름이 염소 폭포라고 하는데 염소가 도망할 수 없는 절벽과 해안선으로 되어 있어 예로부터 여기에 염소를 방목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다시 저동항으로 돌아오니 관해정이란 정자가 보인다. 관해정은 아침 해를 바라보는 정자다. 저동은 예전에 모시가 많아 모시 저 苧 자를 써서 저동이라고 했단다.
저동에서 점심을 먹고 추산의 성불사로 갔다. 성불사는 노천에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인데 일본으로부터 독도를 지켜내기 위한 염원을 담아 만들었다. 이 부처님은 한 개의 원석으로 만들어졌으며 몸 안에는 티베트의 달라이라마가 기증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이 염원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 예림원
성불사에서 내려와 예림원으로 향했다.
예림원은 정원도 아름답지만 그림으로 쓴 글자도 특이하다. 정원에는 목어도 있었는데 대장님이 나무막대로 목어를 치는 솜씨가 프로급이다. 아마 어디서 치는 법을 배웠나 보다.
숲속 미술관도 있었는데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라는 시구가 특히 마음에 와닿는다.
★ 현포리 고분군
예림원에서 나와 현포에 있는 고분군을 보러 갔다. 고분군이라고 해서 지석묘를 연상했는데 그게 아니고 텅 빈 돌무덤이다. 고분군이 있는 걸 보면 오랜 옛날부터 울릉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나보다.
★ 학포
학포에는 학이 살았었는지 학 모형도 만들어놓고, 학포정이란 정자도 있다.
바닷가로 나가니 기막힌 절경이 펼쳐진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가 역동적이다.
★ 나리분지
대장님은 나리분지에서 동계 훈련하고 있는 구조대팀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 꼴을 보러 가자고 한다. 미숙 씨는 그 꼴 별로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데 대장님은 꼭 보고 싶은지 그리로 차를 돌린다.
요새 나리분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눈이 있지만, 그런대로 나리분지까지 잘 도착했다. 예상대로 눈밭에 텐트를 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눈 벽돌을 쌓고 텐트 친 것을 보니 매킨리 갔을 때 생각이 난다. 대장님과 내가 매킨리 갔었다고 하자 우리보고 대선배님이라고 깍듯이 인사를 한다.
여기서 차를 돌려 나오려는데 차가 눈에 미끄러져 헛바퀴만 돈다. 앞에서 밀고 뒤에서 밀고 모래주머니 갖다가 모래를 뿌리고 난리를 치다가 겨우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와 양숙 씨가 쏜 한우 불고기와 순자 씨와 미숙 씨가 사 온 한치를 데쳐 또 포식했다.
2월 13일 울릉 역사문화 체험센터
오늘은 드디어 7박 8일의 울릉도 여행을 마치고 귀경하는 날이다. 점심때 배를 타야 하니 오전에는 쇼핑도 하고 각자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으러 1층으로 내려갔다. 요즘 식사때마다 우리 회원들이 주방에 들어가 반찬도 담고 서빙도 하고 다 한다. 앞에 앉은 순환 씨는 주희 씨와 고등학교 친구다. 무얼 부탁할 때는 언니라고 부르다가 다른 때는 지지배라고 하며 서로 농담을 한다. 이래서 마음이 말랑말랑할 때 만난 친구가 흉허물이 없고 좋은 것 같다.
순자 씨는 주방에 드나들며 서빙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기 직원인 줄 알고 계산을 하려고 한다. 오늘 우리가 떠난다고 사장님은 우리에게 전호나물을 선물한다. 우리가 자기 자식이라도 되는 듯 애틋하다.
성인봉에서 길 잃었던 남자는 아예 우리와 합석을 한다. 그새 대장님과 정이 들었나 보다.
도동 시내를 돌아다니니 여러 가지 조형물과 벽화가 눈에 띈다. 관광 사업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쓴 듯하다.
대장님은 여기가 자기 처갓집이라도 되는 듯 실외 장식에 공을 들인다. 며칠 전에는 바닷가에서 주워온 소라로 화분을 장식하더니 오늘은 어제 죽도에서 주워온 솔방울까지 곁들여 그럴듯하게 꾸며 놓았다.
게다가 식당 주인아주머니에게 어머니라고 부른다. 내가 대장님 처갓집 같다고 하니 30년 넘게 이 집과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부반장은 대장님이 처갓집에는 잘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딸을 고생시킨다고 장모가 미워했다는 것이다. 어떤 엄마도 내 딸 고생하는 건 원치 않는다. 하지만 장모님이 여태 살아있었다면 사위를 엄청 좋아했을 것 같다. 70이 넘도록 일하고 자기 딸을 세계방방곡곡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키니 이런 사위가 어디 있냐 말이다. 아마도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며 이런 사위는 세상 천하에 없을 거라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이다.
★ 울릉 역사문화 체험센터
어제 보다만 영화를 본다고 또 역사문화 체험센터로 갔다. 다다미방에 앉더니 일본 여자처럼 섹시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차를 마신다.
영화는 울릉도의 옛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할아버지들이 갓을 쓰고 앉아서 장기를 두는 모습도 신기하다.
우리는 소리가 안 들려 무성영화인 줄 알았더니 소리가 죽어있었다. 사장님이 올라와 소리를 키우니 소리가 잘 들린다. 절벽에서 떨어지려는 소를 구하려다가 손자가 떨어져 죽는 장면도 애처롭다. 이 손자를 화장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애처롭다 못해 숙연하기까지 하다.
송아지를 죽도에 방목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송아지 다리를 묶어 배에 태워 죽도까지 가서 어깨에 메고 절벽을 올라가 풀어준다. 먼저 데려다 놓은 다 큰 소는 그 자리에서 잡아 목을 따고 선지피를 받는다. 일일이 해부를 하여 조각조각 토막을 내는데 그걸 바라보는 송아지의 눈망울이 애처롭다. 아마 송아지는 자신의 미래도 저렇게 된다는 것을 직감했을 것이다. 생명을 먹어야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모든 생물의 숙명이 가슴 저리게 느껴진다.
태풍에 닭 속치마 뒤집히는 것을 다시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어 그냥 나왔다. 총 상영시간이 1시간이 넘는다고 한다.
숙소로 돌아와 짐을 가지고 사동항으로 갔다. 선착장 앞에서 구조대팀을 또 만났다. 허영호 대장과 함께 하는 동계 훈련이라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였다.
크루즈에 오르며 배의 이름을 보니 SHIDAO라도 쓰여있다. 중국어에 능통한 부반장에게 물으니 석도(石島)라고 한다. 즉 돌섬이란 뜻이다. 갑판 위에서 울릉도를 바라보니 그간의 일정이 아스라이 꿈속 같이 떠오른다. 1주일간의 여행이 한 달은 된 것 같다.
이번 울릉도 여행은 온 섬을 쥐잡듯이 다 뒤지고 다닌 여행이다. 울릉도의 속살까지 다 들여다 본 것 같다. 울릉도는 올 때마다 가슴이 울렁울렁 뛰는 여행이다. 다음에 또 간다면 이렇게 가슴 뛰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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