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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2021. 8. 15. 안개 속 횡성 여행

by 아~ 네모네! 2021. 8. 23.

안개 속 횡성 여행

 

이현숙

 

기간 : 2021815~ 817

장소 : 발왕산, 태기산, 안반대기, 강릉바우길, 선자령, 문암골

 

  동생들과 횡성으로 피서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4명 이상 모임 금지인데 5번 동생이 2차 접종받고 2주 이상 지나서 5명이 출발했다.

 

815일 발왕산과 태기산

발왕산(왕이 나올 정기를 지닌 산) : 정상석 찾아 오리걸음

  새벽부터 집을 나서 용평스키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곤돌라 탑승 표를 살 때 5인 이상은 안 될 것 같아 4번 동생 부부는 따로 사고 우리 세 자매 따로 샀다. 여기는 경로 할인이 있는데 70세 이상만 30% 적용된다. 3번 동생은 오늘이 생일인데 주민등록상 아직 생일이 안 돼서 안 되는 줄 알았더니 52년생은 무조건 된단다. 아싸~

매표소 직원은 위에 안개가 껴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미리 다짐을 한다. 아마 미리 말 안 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나 보다. 표를 들고 탑승장으로 들어가니 긴 줄이 늘어서 있다. 25분 기다려야 한다고 방송이 나온다.

  정부에서는 연휴 동안 여행 가지 말고 집에 콕 박혀있으라고 연일 방송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다. 광복절이 일요일이라 월요일까지 쉬는 날로 만들어주고 나서 집에 있으라니 말이 안 된다. 경제는 살려야겠고, 코로나는 잡아야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정부의 입장이 이해되기는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려니 옆에 있는 작은 장식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부엉이 네 마리와 이끼로 장식한 수반이 앙증맞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이런 볼거리라도 만들어 준 게 고맙다.

  과연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안개가 짙어진다. 정상부에 올라가니 코앞만 겨우 보인다. 발왕산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발왕산은 경복 산우회가 지정한 200개 인증 장소 중 하나다. 작년에는 100 명산을 정해 1년 안에 완주한 사람에게 상도 주고 돈도 주며 산행을 격려했는데 올해는 한술 더 떠서 200개란다. 제부는 48회인데 단체 기록에서 48회가 전체 1등이란다. 개인 기록도 전체에서는 2등이고, 48회에서는 1등이라고 한다. 제부의 집념과 성실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한다. 요새는 중국어를 배우고 있단다. 절대 치매 걸릴 일은 없겠다.

  발왕산 정상을 향해 조금 가니 입간판이 서 있다. 공사 중이니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마침 휴일이라 공사는 안 한다. 입간판 옆으로 살짝 들어가니 온갖 야생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마중 나온다. 오리 모양의 진범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깔렸다.

 

사람들도 별로 없으니 그야말로 독채 전세다.

 

  정상 가까이 가니 웬 남자가 내려오며 인증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단다. 정상 부근이 철 구조물로 막혀있어 들어갈 수가 없어 되돌아오는 중이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더 올라가니 과연 정상 앞에 철로 만든 계단이 가로막혀 정상은 보이지도 않는다. 제부와 4번 동생은 철 골조 위로 아슬아슬하게 올라가 정상석까지 가서 인증 사진을 찍고 골조 아래로 기어 내려왔다. 과연 천하무적이다. 동기들이 특전사 부부라고 한다더니 별명도 잘 붙였다.

  조금 내려오다가 길옆에 앉아 간식을 먹는데 아까 그 남자가 미련이 남았는지 다시 올라온다. 여기까지 와서 인증 사진을 못 찍은 것이 못내 아쉬웠나 보다.

  데크 길을 걸어 발왕수를 지나니 서울대 나무가 나온다. 서울대 정문을 닮은 나무다. 백덕산에 있는 서울대 나무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런대로 볼만하다.

 

다시 곤돌라 타는 곳으로 오려니 웬 계단이 보인다. 올림픽 계단이다. 여기서도 한 컷, 저기서도 한 컷 찍고 곤돌라를 타러 오니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돌고 돌아 한참을 기다렸다.

 

  곤돌라를 타고 밑으로 내려오니 아까보다 줄이 훨씬 길어졌다. 1시간 기다려야 탈 수 있단다. 수도권의 방역지침이 까다로우니 경기도로 갈 사람들이 모조리 강원도로 왔나 보다. 거리두기고 뭐고 지킬 수가 없다. 시장 바닥 같은 이곳을 피해 부지런히 태기산으로 향했다.

 

태기산(태기왕이 머물던 산) : 패대기쳐질 뻔한 산

  양구두미재에 도착하니 여기도 차들이 빽빽하다. 그래도 여기는 안개가 없고 햇빛이 쨍쨍하다. 임도 길을 따라 느릿느릿 전진하니 길가에 야생화가 반긴다. 옥동자보다 예쁜 동자꽃과 이질에 걸렸을 때 약으로 썼다는 이질풀이 귀엽다.

 

  작은 풍차 모양의 조형물이 보여 여기서 한 컷 찍고 고개를 넘어가니 4번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예전에는 산길이 그런대로 잘 나 있었는데 철조망으로 막아놨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는지 철망이 짓눌려있어 들어갈 만하다. 정상에 부대가 있어 출입을 금지했나 보다. 오늘 연방 출입 금지를 어긴다. 이래서 노인들을 싫어하나 보다. 사실 노인들은 몰라서도 그렇고, 알면서도 그렇고 규칙을 잘 지키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할머니란 말도 있다. 이유인즉슨 눈에 뵈는 게 없어서란다.

  산길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잘 안 다녀서 그런지 풀이 많이 우거졌다. 가시덩굴을 이리저리 밀며 정상으로 다가가니 군부대가 보인다. 예전에 부대의 오른쪽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나서 그리로 들어서니 갑자기 방송이 나온다. 출입 금지 구역이니 빨리 내려가라고 한다. 앞에는 동생들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느냐고 소리쳐도 반응이 없다. 아차! 왼쪽으로 갔나보다 하고 돌아 나와 다시 왼쪽으로 가니 저만치 앞서가는 동생들이 보인다. 길이 엉망이고 풀이 우거져 철조망을 붙잡고 간신히 전진했다. 가는 길에 곰취꽃이 보여 이 와중에 또 한 컷 찍었다. 까딱하다가는 밑으로 패대기쳐질 판이다.

  철조망을 다 통과하니 부대 정문이 보이고 포장길이 나타난다. 3번 동생은 오는 길에 가시에 찢겨 정강이에 피가 나고 물 고인 곳에 빠졌단다. 이래서 가지 말라고 했나 보다. 포장길을 내려오니 정상석이 보인다. 태기산도 인증 장소라 여기서도 인증 사진을 찍었다. 4번 동생 부부 오늘 6포인트 올렸다. 동창생은 한 곳에 2점이고 부인은 준 회원이라 1점이란다.

 

  조금 더 내려오니 웬 소와 잉꼬 조형물이 보인다. 횡성은 한우가 유명해서 이렇게 했나 보다. 여기서도 네 자매가 또 포즈를 잡았다.

 

  계속 임도를 따라오니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태기산 국가 생태 탐방로라는 글이 보인다. 말 그대로 역사가 서려 있고 자연이 잘 보존된 탐방로다.

 

  태기산은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신라군에게 쫓기어 이곳에 태기 산성을 쌓고 군사를 길러 신라와 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계속 내려가니 처음에 올라갔던 산길 입구가 나타난다. 임도를 따라 양구두미재에 도착하니 아직도 차들이 있고 이제 올라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양구(兩鳩) 두미의 지명에는 이런 유례가 있다. 옛날 이곳에 한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의 소원은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비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묘를 잘 쓰면 부자가 된다는 말을 믿은 선비는 용하다는 지관을 찾아가 묘 쓸 곳을 부탁했다. 지관은 앞이 훤하게 트인 이곳을 잡아주었다. 선비는 소상 대상을 다 치르도록 부자가 될 기미가 없자 다른 지관을 불러 다시 묫자리를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이장을 하려고 묘를 파헤치고 관을 들어내려는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관 밑 땅속에서 두 마리의 황금 비둘기가 날아올라 고개를 넘어간 것이다. 선비는 아차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람들은 부자가 될 욕심으로 선조의 묘를 파헤친 이 선비를 비난하며 이 고개를 양구(비둘기 구)데미재라 불렀다. 데미는 더미의 방언인데 데미가 두미로 바뀌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칠순 축하 파티

  웰리힐리 리조트로 가는 길에 하나로 마트에 들러 술과 고기, 야채를 샀다. 오늘은 3번 동생의 칠순 되는 날이다. 3번 동생은 생일이 칠월 칠석 다음날이라 외우기 쉽다. 아침 일찍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저녁에는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하기로 했다.

  5번 동생이 사 온 아담 사이즈 케이크를 놓고 촛불 7개를 켠 후 축하 노래를 불렀다. 내 칠순 때는 친정 형제자매가 모두 모여 식당에서 거하게 축하를 해줬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약식 파티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이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게 다행이다. 고기를 굽고 맥주를 마시며 신나는 저녁 시간을 가졌다. 나는 내려오다가 태기산 길가에서 따온 네 잎 클로버를 동생에게 선물로 주었다.

 

 

 

816일 안반데기, 강릉 바우길과 선자령

  아침에 일어나니 제부는 아침부터 무릎 공사 중이다. 천하의 제부도 나이를 먹으니 여기저기 아파오나 보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구구절절 수긍이 간다. 나도 요즘 왼쪽 팔이 아파서 팔을 들기도 힘들고 뒤로 돌리기도 어렵다. 정형외과에 가서 프롤로 주사도 맞고, 연골주사도 맞고, 물리치료도 맞으며 3개월 이상 치료를 받았는데 도무지 차도가 없다. 옷을 벗기도 힘들고, 볼일을 본 후 밑을 닦기도 어렵다. 어떨 때는 이놈의 팔을 확 뽑아버리고 싶다. 자기 똥도 못 닦을 정도가 되면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나? 하는 마음이 들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이런 소리를 해도 정작 그런 날이 오면 똥오줌 싸대면서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할지도 모른다. 몸이 약해질수록 장비로 보완하고 치료로 보수 공사를 하는데 이도 저도 안 되면 이 몸을 떠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반데기

  일찌감치 아침밥을 먹고 안반데기로 향했다. 강원도 강릉에 있는 작은 마을 대기리다. 안반데기로 더 잘 알려진 대기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안반은 떡메로 반죽을 칠 때 쓰는 우묵하고 넓은 통나무 받침을 말하고 데기는 평평한 땅을 가리키는 강원도 사투리다. 안반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 집들이 몇 채 있다. 카페 앞 주차장에 내리니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라고 쓴 큰 팻말이 보인다.

 

  탁 트인 전망과 고랭지배추밭이 눈에 확 들어온다.

 

  우선 멍에 전망대로 갔다. 돌로 쌓은 성에 정자모양의 전망대가 있는데 출입 금지라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이름이 왜 멍에가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안내문을 보니 일상에 지친 당신의 마음을 편히 쉬게 하소서.’라고 되어있다. 삶의 멍에를 벗겨주는 전망대인가보다. 하긴 아무리 심신이 복잡하고 머리 골치가 아파도 이렇게 탁 트인 전망을 보면 모든 시름이 일시에 사라질 것 같다.

 

  안반데기 카페 앞에 오니 벤치에 암소 모형이 있고 나도 좀 쉬자. 커피 마시면서라는 글귀가 있다. 글귀가 재미있어서 여기서 사진을 찍고 대관령으로 향했다.

 

  제부는 대사님과 통화를 하고 있다. 대사님 부부는 오늘 새벽에 서울서 출발하여 발왕산 인증을 하고 대관령으로 오기로 했다. 오늘은 정상 부근에 공사 중이라 접근이 어렵다고 한다. 공사장 사람에게 사정하여 들어가기는 했는데 정상 부근 철 구조물에 용접하느라 접근이 안 된단다. 제부는 구조물 앞에서 그냥 사진을 찍고 오라고 한다.

 

강릉 바우길

  대관령휴게소 앞에 오니 여기도 차들이 바글바글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떼 목장 쪽으로 간다. 우리는 강릉 바우길 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로 들어갔다. 여기서도 경복산우회에 올릴 인증 사진을 찍었다.

제부는 대사님 부부를 기다려 같이 오기로 하고 네 자매만 산길로 접어들었다. 선자령에는 여러 번 왔지만, 이 코스는 처음이다. 길이 편하고 아기자기하여 룰루랄라 신나게 전진했다.

 

  가끔씩 안개비가 오락가락한다. 열심히 가고 있는데 뒤에서 거북이 팀 이제 만났네.” 하는 제부의 소리가 들린다. 대사님 부부와 제부는 어찌나 걸음이 빠른지 그야말로 발에 모터를 단 것 같다. 계곡에서 간식을 먹고 계속 올라가니 임도가 나타난다. 안개가 자욱하여 한 치 앞이 안 보인다. 4번 동생은 토끼 팀으로 번개같이 사라지고 2, 3, 5번이 느릿느릿 걸어간다. 동화 속에서는 거북이가 승리하는데 현실은 딴판이다. 그래도 3번과 5번 동생은 순식간에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다. 안개가 자욱해서 눈에 뵈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분위기 하나는 끝내준다. 안개에 젖은 마타리가 신비롭다.

 

선자령

  안개 속에서 임도를 따라가니 선자령 정상석이 보인다. 안개가 자욱한 정상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간식을 먹었다.

 

  토끼 팀이 우리를 기다리느라 엄청 추울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바람이 없어 견딜만하다. 토끼 팀이 먼저 와서 바위에 우산 헝겊을 깔고 식탁을 차려놨다.

  그래도 먹는 동안은 비가 뜸하더니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능선길을 따라 부지런히 내려온다. 여기저기 야생화에 눈길을 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거의 다 내려와 임도 가까이 왔는데 풀숲에 웬 자주색 꽃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 족두리풀 같아서 봄에 피는 꽃이 여태 피어있나 하고 풀을 제치고 보니 앉은부채다. 70 평생에 처음 본다. 토끼 팀은 이미 멀리 가서 보이지 않으니 앞서가는 3번과 5번 동생을 불렀다. 5번 동생이 되돌아오며 뭐가 있는데 그렇게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찍느냐고 한다. 동생이 오더니, 땅에 바짝 붙은 꽃을 찍느라 땅에 주저앉다시피 하고 찍는다. 찍어서 모야모에 물어보니 앉은부채가 맞는다고 한다. 오늘의 최고 수확은 단연 앉은부채다.

 

  숙소로 돌아와 돼지 목살과 김치전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 후 대사님과 제부는 청태산 휴양림으로 가고 금호 씨는 우리와 같이 자기로 했다. 대사님 부부는 조용하고 바지런 바지런하다. 평생 부부싸움 한 번 안 했을 것 같다. 마음씨도 비단결 같다. 금호의 '금'자가 비단 금()인가? 뭔가 선물을 주고 싶은데, 가진 게 없어서 선자령 내려올 때 따온 네 잎 클로버를 주었다.

 

817일 문암산과 문암마을

  새벽 6시에 대사님 부부와 제부는 태기산으로 출발했다. 제부는 그저께 우리와 태기산에 올라 정상 사진을 찍었는데 대사님네는 어제 왔기 때문에 태기산에 못 갔다. 제부는 안내해주려고 새벽같이 함께 나선 것이다. 이 정도니 48 산우회가 1등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네 자매는 느지막이 일어나 먼저 아침을 먹고 점심때 먹을 김밥을 쌌다. 잠시 후 도착한다는 제부의 전화를 받고 부지런히 세 명의 아침상을 보았다. 곧 세 명의 전사가 들어온다. 어찌나 빠른지 특전사 부대 같다.

어제는 토끼 팀과 거북이 팀으로 산행했는데 오늘도 역시 두 팀으로 나누기로 했다. 경복 팀은 문암산 정상으로 가고 세 자매팀은 살둔마을에서 문암마을까지 임도 길을 걷기로 했다.

 

살둔마을

  두 대의 차를 몰고 살둔마을 야영장으로 갔다. 이 야영장은 폐교된 초등학교를 활용한 곳이다. 홍천군 내면에 있는 살둔마을 생둔분교다. 생둔분교는 1948년 개교한 이래 515명의 학생을 배출하였지만 농촌 인구의 감소에 따라 1993년 폐교된 산골 초등학교다. 운동장으로 들어서니 자그마한 건물에 방첩이라고 쓴 글씨가 보인다.

 

  일곱 명이 차에서 우르르 내리니 야영장 직원이 와서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는다. 문암마을 갈 거라고 했더니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누어 4명은 문암산으로 가고, 3명은 계곡 길로 간다고 했더니 다시 돌아간다. 강원도도 방역에 엄청 신경 쓰나 보다.

  경복 팀, 네 명은 다시 차를 타고 문암산 들머리로 향하고 세 자매는 문암마을로 향했다. 제부가 떠나면서 살둔산장을 잘 보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제부가 없으니 한 발짝도 움직이기 힘들다.

야영장 직원에게 문암마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앞의 밭을 돌아 다리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전봇대를 따라가라고 알려준다. 몇 걸음 걷다 보니 살둔산장 가는 길이란 작은 팻말이 보인다. 100m 들어가라고 되어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한옥에 아기자기한 정원이 보인다. 이 구석 저 구석 들러보는데 산장 직원이 나와 어떻게 왔느냐고 한다. 산장 구경을 하고 싶어 들어왔다고 하니 예약자가 아니면 출입이 안 되는데 얼른 구경하고 가란다. 카페도 보고 사진도 찍고 하는데 직원이 다시 나와 안내 팜플렛을 준다. 다음에 다시 와서 한번 묵어보고 싶다. 2층으로 된 기와집인데 황토방도 있고 산장의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도 있다. 안내문을 보니 살둔살만한 둔덕이라고 한다.

 

문암마을

  산장 구경을 마치고 제부가 가르쳐준 대로 트랭글을 켜서 문암마을이라고 치니 검색 결과가 없단다. 살둔이라고 치고 대충 골라서 따라가기를 눌렀더니 다리를 건너고 오른쪽 길을 따라가도 계속 매치율 0%라고 나온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5번 동생이 네이버 지도에서 문암마을을 친 후 지도를 보며 가기로 했다. 나는 4번 동생이 출력해준 안내문을 읽으며 계곡을 우측에 끼고 한참 걸어가니 눈에 익은 장승이 보인다. 큰 돌에 호랑소라고 쓰여있고, 가슴에 두 손을 모은 나무 장승이 있다. 동생이 준 안내문에서 본 그림이다. 반가운 마음에 장승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안내문에는 첫 번째 다리를 건너면 아담한 흙길이 4km 이어진다고 했는데 언제 포장을 했는지 아스팔트 길이 이어진다. 그래도 길가에 야생화도 많고 자전거 장식도 있어 지루한 줄 모르고 걷는다. 안내서에도 걷기보다는 자전거로 가는 게 좋다고 되어있다.

 

  계속 걸어가니 물개 바위라고 쓴 돌이 보이는데 어떤 돌이 물개 모양인지 근처를 둘러봐도 도통 모르겠다.

 

  살둔계곡 수련원 입구 표지판을 지나 찻길을 따라가니 왼쪽에 십자가가 보인다. 기와지붕에 웬 십자가인가 했더니 문암교회다. 교회를 향해 올라가 정문 쪽으로 가니 교회 입구도 전통 한옥식으로 만들었다.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웬 남자가 다가오며 어떻게 왔느냐고 한다. 교회 구경 좀 하러 왔다고 하니 들어가 봐도 된다고 한다. 교회 직원인가보다.

 

  안으로 들어가니 신장에 실내화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웬 인디언 텐트 같은 것이 보인다. 여름 성경 학교 때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었나 보다. 3번과 5번은 벽에 있는 헌금 봉투를 꺼내 헌금함에 헌금도 한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교회도 못 가는데 잘 됐다 싶어 잠시 기도를 했다.

 

  교회에서 나와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곧 비가 올 것 같다고 한다. 4시까지 돌아오라는 제부의 부탁도 있고 해서 되돌아오는데 정말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문암교회는 설립된지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 옛날에 이 산골 오지에 교회가 들어섰다는 것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돌아올 때는 길을 찾아 헤맬 일도 없으니 3번과 5번은 쏜살같이 사라진다. 혼자서 여기저기 둘러보며 천천히 내려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4번 동생이다. 아직 하산을 못 해서 5시는 되야 갈 것 같으니 천천히 내려오란다. 마음이 느긋해져 전후좌우 둘러보며 내려오는데 갈림길에서 두 동생이 기다리고 있다. 다리를 건너 야영장으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간식을 먹고 있는데 경복 팀 4명이 차를 타고 들어온다.

  석화산과 문암산이 엄청 험해서 개고생했다고 하며 우리가 안 가길 잘했다고 한다. 하긴 이런 할망구가 따라갔으면 오늘 안에 못 내려왔을 거다. 이번에 3일 동안 5곳을 인증했으니 제부와 대사님이 20, 4번 동생과 금호 씨가 10점 올려서 30점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이 추세로 가면 앞으로도 계속 48 산우회가 1등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경복 48 산우회 파이팅!

 

  코로나 방역으로 수도권은 6시 이후에 2명 이상 모일 수가 없으니 홍천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강원도는 6시 이후에도 4명까지 모일 수 있다. 식당에 들어갈 때는 경복 팀이 먼저 들어가고 세 자매는 밖에서 한참 기다렸다가 들어가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았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안개 속에서 헤맨 여행이었지만 먼 훗날 이 시간이 그리워질 것이다. 다음 여행은 코로나 없는 마음 편한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