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제주여행
이현숙
기간 : 2020년 10월 29일 ~ 11월 2일
장소 : 제주도
티엔티 여성팀에서 제주여행을 떠났다. 순환씨가 제주도에 2년간 전셋집을 얻었다고 하여 숙박에 대한 염려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코로나19로 여행을 자제하라고 했지만 우리들의 여행 욕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10월 29일 똑순이
오전에 수필수업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도착하니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했다. 간단한 간식을 먹고 기다리며 도착했다고 카톡방에 올렸더니 잠시 후 순환씨도 도착했다는 문자가 올라온다.
양숙씨는 제주도 집에 미리 가 있어서 명수씨, 미숙씨와 함께 네 명이 비행기에 올랐다. 제주 가는 사람들이 많아 비행기는 만석이다. 그래도 한 시간이면 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제주공항에 내려 밖으로 나가니 양숙씨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다. 이마에 붉은 반점이 보여 다쳤냐고 했더니 대상포진이 걸려서 그렇단다. 셔틀버스를 타고 무지개 렌트카 사무실에 가서 우리 차를 배정 받았다. 하얀색 기아차다.
양숙씨는 피로하면 병이 더 심해질 것 같아 순환씨와 미숙씨가 운전하기로 했다. 나는 면허도 없는 인간이니 운전할 수도 없다. 무재주가 상팔자라더니 딱 맞는 말이다. 순환씨는 운전하기 전에 이 구석 저 구석 살펴보고 사진을 찍는다. 운전석에 앉더니 가스가 얼마나 들어있나 확인하고 또 사진을 찍는다. 반납할 때 여기 까지 충전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빈틈이 없다. 그야말로 똑 소리 나는 똑순이다.
저녁때가 다 되어 가파도 별미식당에 가서 보말죽 삼계탕과 보말보리 수제비를 먹었다. 맛이 그야말로 환상이다. 보말은 고동을 뜻하는 제주도 사투리라고 한다. 보말을 얼마나 갈아 넣었는지 국물이 걸쭉하니 엄청 고소하다.
배부르게 포식하고 중문에 있는 순환씨 아파트로 갔다. 침대에 누워서도 한라산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다. 순환씨도 이 전망이 맘에 들어 이 집을 선택했다고 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10월 30일 한라산 둘레길
아침에 일어나니 미숙씨가 더워서 못 잤다고 하며 지난밤에 남편이 카톡으로 ‘내 꿈 꿔~’라고 문자를 보냈단다. 우리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신혼도 아니고 무슨 ‘내 꿈 꿔’냐고 놀려댔다. 그러자 미숙씨가 이런 여편네들한테는 무슨 말을 못하겠다고 하며 이 나이에 남편이 꿈에 나타날까봐 겁난단다. 환갑 진갑 다 지난 나이에 어떻게 그런 문구가 생각났는지 생각할수록 희한하다. 미숙씨 부부는 아직도 잉꼬 부부인가보다. 그 후로 툭하면 ‘내 꿈 꿔’를 들먹이며 미숙씨 별명은 아예 ‘내 꿈 꿔’가 되었다.
아침은 빵과 커피로 때우고 오늘은 빡세게 걷기로 했다. 한라산 둘레길 중 천아 숲길과 돌오름길을 이어서 걷자고 했다. 천아는 오릿과의 철새라고 하는데 여기에 이런 철새가 오는지 아니면 다른 뜻의 제주도 방언인지 모르겠다.
차를 몰고 우선 돌오름길이 끝나는 곳에 차를 세웠다. 서귀포 자연 휴양림 앞에 가서 택시를 불러 천아 숲길 입구까지 갔다. 택시를 타고 가며 보니 버스 정류장에서 천아 숲길 입구까지 엄청 멀다. 2.5km 포장길을 걸어갔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비록 3만원을 썼지만 우리의 탁월한 선택에 감탄했다.
계곡길로 들어서니 단풍이 절정이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도 여기서 한 컷씩 찍었다.
처음에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하지만 곧 평평한 길이 나타난다. 곳곳에 천아 숲길 표지가 있고 얼마나 남았는지 쓰여 있어 길 찾기가 수월하다.
길도 좋고 단풍이 많이 남아있어 눈요기를 시켜준다.
표지판이 없는 곳에서는 한라산 둘레길이라고 쓴 붉은 색 리본을 따라가면 된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걷다보니 천아 숲길의 끝에 있는 보림농장이 나타난다.
농장으로 들어가 보니 토종닭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집 옆에는 커다란 박이 항아리 위에 놓여있다.
여기서 돌오름길로 들어섰다. 돌오름에는 돌이 많은지 그건 모르겠다. 하여튼 여기도 길은 좋다.
계곡에는 단풍이 환상이다. 여기서도 사진을 찍어댔다.
용바위를 지나 단풍 길을 계속 걷다보니 어느 덧 돌오름길 끝에 우리 차가 보인다. 여기서 차를 타고 바다를 본 돼지라는 식당에 가서 제주 오겹살로 포식을 하고 집으로 향했다.
10월 31일 새별오름, 제주 곶자왈도립공원, 본테박물관, 방주교회
★ 샛별 같은 새별오름
오늘 아침에는 근처 순두부집에 가서 푸짐한 아침 식사를 하고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새별오름은 샛별과 같이 빛나는 오름이란 뜻이다.
멀리서 봐도 억새물결 사이로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개미 행렬처럼 이어진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려 물결치는 모습이 마치 은파를 보는 듯하다.
★ 보약 같은 곶자왈공원
새별오름을 내려와 제주 곶자왈 도립공원으로 갔다. 곶은 숲이란 뜻이고 자왈은 암석덩어리란 뜻이다. 즉 곶자왈은 숲과 커다란 자갈로 된 땅이다.
입구로 들어가니 긴 데크길이 이어진다. 테우리길이다. 테우리는 휘파람을 불며 소나 말을 들판에 풀어놓고 기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제주에는 말이 많으니 테우리도 많았을 것이다.
테우리길을 따라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우리는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가시낭길 갈림길이 나온다. 가시낭길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가시낭길이라고 해서 가시나무가 많은가 하고 유심히 보았지만 가시나무는 별로 보이지 않았다. 아마 다른 뜻인지도 모르겠다. 가시낭길 끝에 가니 다시 돌아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숲속을 걷다보니 곳곳에서 묘한 향기가 느껴진다. 서로 다른 특이한 냄새들인데 뭔지 모르지만 냄새로 보약을 먹는 기분이다.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한수기길을 지나 오찬이길로 들어섰다. 한숙이와 오찬이는 어떤 인간인지 모르지만 오찬을 즐기는 느낌으로 느긋하게 걸었다.
오찬이길 끝나는 곳에 전망대가 있다. 4층짜리 건물인데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전망이 기막히다. 다시 내려와 옆의 쉼터에서 간단히 간식을 먹고 다시 입구로 나왔다.
★ 뽄때를 보여주는 본태박물관
곶자왈 공원을 떠나 본태박물관으로 갔다. 제주도에 이런 박물관이 있는지 듣도 보도 못했는데 똘똘한 동생들 덕분에 문화생활 하게 생겼다.
본태박물관은 안도 타다오의 설계로 지은 건물이다. 안도 타다오(일본어: 安藤忠雄,Tadao Ando, 1941년 9월 13일 ~ )는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다. 안도는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을 살았는데 건축가가 되기 전에 트럭 운전사와 권투선수로 일했고 건축에 대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일도 없다. 1995년에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했는데 상금 십만 달러를 고베 지진 고아들에게 기부하였다. 위대한 예술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한자로 本態라고 쓴 걸 보면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인 듯하다. QR코드를 찍고 매표소로 들어가니 간단한 안내를 해준다. 5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5, 4, 3, 2, 1 순서로 보라고 한다. 관람객이 한 곳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5관으로 들어서니 웬 남자의 사진이 보인다. 현재 전시중인 제임스 터렐의 사진이다.
제임스 터렐(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출생)은 1960년대 발생한 ‘빛과 공간 미술운동(Light and Space movement)’의 선두 주자이다. 그는 관람객이 실재한다고 물리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공간이 주는 힘이라고 말했다. 터렐의 작업 재료는 순수한 빛이며 대상, 이미지, 초점을 가리지 않고 관람객이 보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경험을 유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해설사의 안내를 듣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깜깜한 절벽이다. 갑자기 공포가 몰려온다. 옆으로 손을 뻗으니 벽이 만져진다. 계속 더듬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데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니 시각장애인의 심정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옆에 벽도 만져지지 않고 앞에도 아무 것도 없으니 그야말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겠다. 해설사가 앞에 의자가 있으니 앉으라고 하여 손을 앞으로 뻗치고 더듬더듬 나아가니 의자가 만져진다. 한 사람씩 앉아서 옆으로 이동하여 다 앉고 나니 해설사가 어떤 느낌이 들었느냐고 묻는다. 모두들 공포를 느꼈다고 말한다. 빛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야말로 뽄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해설사가 앞의 장막을 옆으로 미니 신비한 푸른빛이 나타난다. 경이롭다. 빛이 이리도 아름다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 앞에서 여러 가지 모션을 취해보라고 하여 너도나도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 색은 오르카 블루(Orca, Blue)인데 오르카는 돌고래라는 뜻이다. 돌고래가 이런 색은 아닐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모르겠다.
밖으로 나가 4관으로 가니 웬 상여가 보인다. 4관은 우리나라 전통 상례를 접할 수 있는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 - 상여와 꼭두의 미학>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서 '꼭두'는 인형극에서 공연을 위해 만든, 사람에 의해 조종되는 물체를 이르는 말이다. 인형과 비슷하지만 다른 물체를 포함하여 사람 모양의 장난감을 뜻한다. '꼭두'라는 이름은 몽골어 godor(고도르)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꼭두는 망자가 저승길을 갈 때 동행하며 안내자와 수호자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3관은 쿠사마 야요이 상설전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쿠사마 야요이의 대표작 <무한 거울방-영혼의 반짝임, 2008>과 호박이 전시되어 있다. 호박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무한 거울방에 들어갈 순서를 기다렸다.
쿠사마 야오이는 유년시절 종묘 도매상을 하던 아버지의 창고에 가득찬 호박을 보며 호박의 불규칙하고 동글납작한 형태에 애착을 가졌다고 한다. 호박에는 무수한 점이 찍혀있어 무언가 영원함을 느끼게 한다.
무한 거울방에는 한 번에 여섯 명 밖에 들어갈 수 없어 한참을 기다리다가 입장했다. 들어가기 전에 해설사가 안에 들어가면 꼭 나무판 위에 서 있어야지 옆으로 가면 물에 빠지니까 조심하라고 일러준다. 안으로 들어가니 여섯 명이 겨우 설 수 있을 정도의 나무 데크가 있고 사방이 거울이다. 바닥은 물로 되어있어 멀리 떨어져 설 수도 없다. 무수한 불빛이 그야말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기분이다. 100여개의 LED등과, 천장과 벽의 거울이 빛을 반사하고 또 물에 비친 불빛이 반사되어 무한한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우리 모두 환상적 광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밖으로 나오니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다음은 2관으로 갔다. 2관은 현대 미술과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대담한 색상과 특유의 '컷아웃 기법'으로 대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 1944~ )의 <불타는 입술Burning lips> 등이 전시되고 있다.
2층에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안도 타다오의 특별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해프닝과 비디오 아트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작품 <티비 첼로 TV Cello>를 비롯한 백남준의 작품들과 산방산 풍경이 한 눈에 펼쳐지는 2층 실내 다리를 지나가면, 본태박물관 설계 변천 과정을 볼 수 있는 스터디 모형과 건축과정을 사진으로 모아둔 스틸컷이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모시조각보를 형상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안도 타다오 <명상의 방>으로 이어진다.
건물 밖으로 나오면 물의 정원이 펼쳐진다. 물에 비친 건물이 인상적이다. 물이 흔들릴 때마다 영상도 달라진다. 벽을 타고 내려오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물의 정원 아래로 가니 실외 조각품들과 아담한 연못이 보인다. 석양에 비친 정원이 신비감을 더한다.
★ 물 위의 방주교회
다음은 그 유명한 방주교회를 보러갔다. 제주도에 노아의 방주를 닮은 방주교회가 있다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들었는데 드디어 오늘 소원 성취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대홍수에 대비하여 큰 배를 만들었다. 그는 길이가 약 150m, 너비는 25m, 높이는 약 15m나 되는 배를 오랜 세월에 걸쳐 산꼭대기에 만들었다. 그 후 대 홍수가 났고 노아의 식구들(아내와 아들 셋 즉 셈, 함, 야벳 그리고 며느리 셋을 포함하여 모두 여덟 명)과 많은 동물들이 이 배안으로 들어가 생명을 건졌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배의 크기보다 훨씬 작아서 조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물에 뜬 모양을 내기 위해 교회주변을 물로 채워 그럴 듯했다. 저녁 시간이라 문이 닫혀있어 내부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교회 앞 정원에는 넓은 잔디밭과 핑크뮬리가 있어 아름다움을 더했다.
하루종일 빡세게 구경을 하고 오늘은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긴 스텐그릇에 칼치를 통째로 넣고 졸였는데 맛도 일품이고 모양새도 그럴 듯하다. 오늘도 깜깜한 밤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어쩌다 골프이야기가 나왔는데 명수씨가 한 마디 한다. 골프장에 가서 남자가 여자에게 15도 올려쳐라 내려쳐라 하다가 성질을 내면 부인이고 코앞에 떨어졌는데도 “굿샷”하고 소리 지르면 애인이라는 것이다. 이 말에 다들 뒤집어지게 웃었다. 어느 부부나 몇 십 년씩 살다보면 다 신물이 나게 되어있나 보다. 오늘도 실컷 수다를 떨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11월 1일 삼다수 숲길, 교래자연휴양림
★ 백종원의 더본호텔
명수씨가 누군가에게 들었는데 백종원의 더본 호텔 뷔페가 값도 싸고 맛있다고 하여 5시에 일어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호텔로 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아 여기저기 기웃기웃 구경을 하며 내년 봄에 우리도 여기 한 번 묵어보자고 하였다. 프론트에 가서 물어보니 적어도 4개월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단다. 백종원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7시에 문을 연다고 하여 식당 앞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나와 줄을 서 있다. 우리도 제일 앞에 서 있다가 QR 코드 찍고 체온을 재고 1등으로 입장했다. 오늘이 남편 생일인데 혼자 여행 온 것이 미안해서 일어날 시간쯤 되어 생일 축하 이모티콘 세 개를 날렸다. 남편 생일은 이모티콘으로 때우고 이리저리 다니며 맛있어 보이는 것만 골라 먹었다.
식사 후 차를 타고 호텔을 빠져 나오는데 웬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고 텐트를 치고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니 돈까스 집 앞이다. 백종원의 돈까스가 맛있어서 몇 시간씩 줄 서서 기다린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텐트까지 치고 날밤 새우면서 기다리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기서도 백종원의 위력을 실감했다.
★ 삼다수 숲길
호텔에서 곧장 삼다수 숲길로 향했다. 가는 도중 양숙씨가 한 마디 한다. 제주의 3다(多)는 원래 바람, 말, 여자인데 요새 신 삼다(新 三多)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게 뭐냐고 하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한다. 그러자 양숙씨가 정답을 말한다. 카페, 펜션, 중국인이란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도 만들었다. 어디를 가나 카페와 펜션이 널려있다. 하지만 요즘은 코로나19로 중국인은 좀 뜸한 것 같다.
이렇게 농담 따먹기를 하다 보니 어느 덧 삼다수 숲길 주차장에 도착했다. 삼다수 숲길은 난이도도 높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울창한 삼나무 숲으로 이뤄진 약 9km 정도의 숲속길이다. 이 길은 옛날 사냥꾼과 말몰이꾼들이 다니던 오솔길을 2010년에 제주개발공사와 교래리 주민들이 함께 조성한 길이라고 한다.
삼다수 숲길이라는 이름은 바로 옆에 삼다수 생수공장이 있어 그렇게 이름을 붙인 듯하다. 9km가 조금 안 되는 3코스 숲길과 3코스의 절반 정도를 잘라 2코스로 만들었다. 이 삼다수 숲길은 2010년에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어울림 상을 받았다고 한다.
숲길로 들어서자 울창한 삼나무 숲이 우리를 압도한다. 우리는 여기서 곧장 왼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보통은 오른쪽으로 가서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데 우리는 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했다.
길도 편하고 단풍도 한창이라 바람이 불면 단풍비가 내린다.
삼나무 숲에서 산림욕도 하고 단풍도 만끽한 후 교래 곶자왈공원으로 향했다.
★ 교래 자연휴양림
교래 곶자왈공원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지역주민에게 물어보니 교래 자연휴양림이 곶자왈 공원이라고 한다. 다시 찾느라 골목길을 뱅뱅 돌다가 겨우 주차장을 찾았다.
곶자왈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한 용암 지형으로 나무와 돌 따위가 제멋대로 뒤섞여있는 제주의 독특한 숲을 의미한다. 주차장에서 조금 들어가니 넓은 잔디밭에 초가집이 나타난다. 매점이다. 여기서 오뎅으로 대충 요기를 하고 숲길로 들어섰다.
휴양림 안에는 생태관찰로와 오름산책로 두 코스가 있다. 우리는 오름산책로를 걷기로 했다. 큰지그리오름 전망대까지는 약 4km다.
곶자왈에는 곧게 뻗어 올라간 나무들이 별로 없다. 돌과 바위를 비집고 태어난 나무들은 휘어지고 구부러진 채로 자랐으며 덩굴을 둘둘 감은 채 살아간다. 교래 자연휴양림 숲에는 겨울철 추위를 피해 내려온 노루들이 피난처로 이용한 노루굴, 곶자왈에 방목된 우마들을 관리하던 움막터, 숯을 만들어 내던 가마터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큰지그리오름의 지그리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사전을 찾아보니 ‘지그리하다: 지껄이다의 방언,
지그리다: 잠그지 않고 지그시 닫아두다.’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냥 찌그리로 외웠다. 숲길에는 돌덩어리들과 고사리가 많아 원시림을 보는듯하다.
이정표를 따라 열심히 오르다보니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하늘이 나타난다. 큰지그리오름이다. 정상에는 넓게 데크가 깔려있어 앉아서 쉬기 좋게 되어있다. 한라산 정상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고 있는데 한 남자가 올라온다.
우리는 길도 묻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했다. 여기서 처음으로 다섯 명이 다 함께 인증 샷을 찍었다.
한라산을 만끽하고 하산 길로 들어섰다. 내려오면서 보니 웬 하얀 나무에 솔방울이 매달려있다. 무슨 기원을 한 것인지 또는 다른 뜻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걸음이 느린 나는 부지런히 쫓아가도 항상 꼴찌인데 이렇게 한 눈을 팔다보니 더 늦어진다.
그래도 열심히 발을 놀려 매점까지 오니 다들 내려와 기다리고 있다. 교래에서 칼국수를 먹으려고 눈여겨 보아둔 칼국수집으로 갔더니 재료가 다 떨어져 팔수가 없단다. 엄청 맛있는 집인가 보다. 여기서 집까지 가려면 가스가 바닥날 것 같아 근처의 충전소를 검색하니 함덕으로 나온다. 집과는 반대방향이지만 어쩔 수 없이 함덕으로 향했다. 함덕 충전소에 가서 똑순이 순환 씨가 또 기지를 발휘한다. 처음에 찍어둔 가스미터기 사진을 보여주고 내일 공항까지 가려면 1시간 40분 정도 더 운전을 해야 하니 그 후에 이만큼이 남도록 충전을 해달라고 한다. 그러자 직원이 3만 5천원어치 넣으면 되겠다고 한다. 4박 5일 동안 차 렌트비가 7만 3천원이었으니 돈 10만원에 5명이 실컷 잘 돌아다녔다.
오늘 저녁은 가는 길에 선흘곶 쌈밥정식을 먹기로 했다. 양숙씨가 잘 아는 집이라 미리 전화하여 준비해달라고 했다. 식당에 들어가니 다 차려놓아 앉자마자 마구 먹어댔다. 음식도 맛있고 가격도 저렴하여 강추다.
집에 와서 오늘도 양숙씨가 가져온 키위로 입가심을 하고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11월 2일 집으로
아침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탈탈 털고 청소기로 구석구석 민 다음 대걸레로 박박 밀어 깨끗이 뒷정리를 했다. 굼뜨고 어리버리한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날로 먹었다.
짐을 다 챙겨 밖으로 나와 쓰레기와 재활용품을 버리고 공항으로 향했다. 8시 정각에 렌트카 사무실에 차를 반납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니 벌써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는 비행기 시간이 넉넉하여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마침 브런치 가게가 있어 여기서 먹기로 했다. 우리 세 명은 일인분씩 다 먹어치웠는데 순환씨와 양숙씨는 둘이서 하나만 시켜 먹었다.
식사 후 양숙씨는 제주집으로 돌아간다고 급히 공항버스를 타러갔다. 우리는 면세점을 돌아다니다가 양숙씨에게 버스를 잘 탔느냐고 물으니 공항버스 운전사가 미리 출발하는 바람에 못 탔다는 것이다. 버스 회사에 전화를 하니 버스터미널로 택시를 타고 오면 버스를 기다리게 하겠다고 하여 터미널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이런 저런 작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알차고 보람 있고 환상적인 제주여행이었다. 이 여행이 앞으로도 쭈~욱 이어졌으면 좋겠다. 단지 정연씨가 같이 못 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 다음에는 6공주 모두 함께 더욱 더 환상적인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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