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9. 7. 22. 돌로미테 기행문 2

아~ 네모네! 2019. 8. 18. 10:22

빵길 ( 722)

   아침 식사를 하면서 몽블랑 둘레길 걸을 때 대사님이 준 멸치를 먹었다. 멸치 똥 발라내는 얘기를 하다가 나는 똥이고 머리고 발라내지 않고 그냥 찌개에 넣는다고 하니 다 놀란다. 5번 동생은

형부가 불쌍하네.”한다. 이게 불쌍할 일인가 의아하다. 하긴 내가 너무 요리를 못하고 게을러서 좀 미안하기는 하다. 요리 잘 하는 여자 만났으면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 말이다.

식사 후 아파트에서 나와 무조건 코르바라로 내려갔더니 그게 아니고 고개를 올라가는 거였다. 내려온 김에 코르바라 전망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아파트 앞을 지나 고개로 올라갔다. 코르바라인지 코로 봐라인지 엄청 많이 오갔다.

 

   포르도이 고개에 차를 세우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포르도이 고개에는 자전거 조각품이 있다. 이 길에 자전거 타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조금 올라가니 작은 성당이 보인다. 안을 들여다보니 촛불로 장식한 제단이 보인다. 여기서 계속 올라가 소위 말하는 빵 길로 갔다. 전쟁 때 이 길로 빵을 운반했다고 하는데 정상에 있는 바위가 마치 식빵 같이 생겨서 우리는 이 산을 빵산이라고 불렀다. 실제 이름도 비엘 델 빵 마르모아다이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월요일인데도 사람이 엄청 많다. 앞에는 설산이고 우리가 걷는 산허리 길은 완만하여 그야말로 실크로드다. 앞에서 걷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일렬로 이어져있다.


   한참을 걸어가니 멀리 호수가 보인다. 호수와 설산에 눈을 뺏겨 아련히 바라본다. 제부도 설산의 매력에 빠졌는지 넋을 잃고 쳐다본다. 호수와 설산, 빵산을 바라보며 계속 걷다보니 멀리 언덕 위에 산장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비엘 달 빵 산장이다. 산장 앞에서 보니까 빵산 정상이 진짜 식빵 닮았다.


   계속 걸어 포르타 베스코보에 와서 케이블카를 타고 아라바로 내려왔다. 아라바에 내려오니 뙤약볕이 작렬한다. 아라바에서 버스를 타고 파소 포르도이로 올라가 주차해놓은 우리 차를 끌고 오늘의 숙소로 향했다. 파소 지아우로 가서 주차하고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니 리프트 내리는 곳이 바로 우리의 숙소 에버라우 산장이다.


   아담하고 예쁜 산장이 맘에 든다. 방으로 가보니 이건 5성급 호텔 부럽지 않게 깔끔하고 전망도 기막히다. 방이 맘에 든다고 침대에 누워서 포즈를 취하며 모두 즐거워했다. 산장 밖에 있는 벽의 그림도 멋지다.


   저녁 먹기 전에 위에 있는 누보라우 산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절벽 위에 있는 유명한 산장이란다. 그곳까지는 온통 바위길이다.


   멀리 발 아래로 내일 가야할 5토리도 보인다.


   누보라우 산장 앞에는 멋진 조형물도 있다. 누보라우 앞에서 세 자매가 또 폼을 잡았다.


   산장 문 앞에는 웬일로 태극기가 꽂혀있다. 한국인이 머물고 있기 때문인가? 산장 테라스 앞도 전망이 기막히다. 여기서 또 여수 아저씨를 만났다. 여수에서 교편을 잡았었다고 한다. 또 단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여 다섯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제부도 반가운지 여수 아저씨와 둘이 사진도 찍고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눈다. 이 분은 우릴 보고 자기도 에버라우에서 숙박하려고 6개월 전부터 시도했는데 실패했다면서 거기 예약해준 사람에게 한 턱 내야한단다. 제부는 7개월 전에 했다고 한다. 누보라우 산장이 전망은 기막힌데 물이 부족한지 샤워실이 없어서 아베라우로 내려가서 씻었다고 한다. 여기서 알프스의 속살을 만끽하고 저녁식사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내려왔다.


   식당으로 가니 써빙하는 사람이 한글로 된 메뉴판을 내민다. 이번 여행 중 처음이다. 식사도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식사 후 디저트를 주문 받으러 왔다. 두 가지라는데 우리가 설명을 잘 못 알아들으니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실물을 직접 들고 왔다. 다음에는 디저트도 한국어로 메뉴판을 만들겠다고 한다.

식사 후 제부는 웬 남자와 테라스에서 한참 얘기를 한다. 나중에 들으니 이스라엘 사람인데 16살 된 딸과 알타비아1 코스를 걷는 중이라고 한다. 한국 회사에 근무하여 한국에는 40번 정도 왔다고 한다. 잠시 일몰을 감상한 후 방으로 들어왔다.

 

칭케 토리 ( 723)

   일출을 보려고 발코니로 나가니 알프스가 단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식사 후 다시 밖에 나가 아베라우 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건물 벽에는 옛날 리프트가 매달려 있는데 1인용이다. 옛날에는 한 명씩 탔나보다.

문 앞에는 작은 배낭이 놓여있다. 이스라엘 아저씨 딸의 것인데 고양이 인형이 매달려있다. 사춘기 소녀의 감성이 느껴진다.


   이스라엘 아저씨와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도 출발했다. 멀리 5토리가 보인다. 칭케 토리라고도 하는 걸 보면 칭케가 5인가보다. 5토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4번 동생이 주특기인 날아가는 모양으로 폼을 잡는다. 난 암만 하려고 해도 이 폼이 안 나온다. 나도 동생만큼은 안 되도 있는 힘껏 팔을 뻗치며 포즈를 취해봤다.


   가까이 가니 말 그대로 다섯 개의 봉우리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뒤쪽으로 돌아가 5토리를 또 한 번 맛본다. 5토리를 한 바퀴 다 돌아 나오니 다섯 개의 봉우리가 합쳐져 하나가 되었다. 1토리가 된 셈이다.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파소 지아우를 향해 걷는다. 살이 익을 것 같은 햇볕에 점점 지쳐간다. 그늘이 없으니 큰 바위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간식을 먹는다. 잠시 쉬니 조금 살아나서 또 행진이다. 그래도 멋진 풍경이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댄다.


   멀리 지아우 고개가 보이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꽃밭이 나오자 또 가지 못하고 꽃밭에 주저앉는다.


   파소 지아우에만 오면 끝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다. 포르셀라 지아우를 향해 계속 전진이다.


  포르셀라 지아우에 도착하니 또 끝이 아니다. 계속 또 전진이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이 한 없이 이어진다.


   나무 한 그루 없으니 햇볕을 피할 곳이 없다.


   조그만 바위가 나타나고 옆에 개울물도 졸졸 흐르는 곳이 나타나 그늘에 몸을 겨우 들이밀고 계곡물로 물통도 채워 겨우 간식을 먹는다. 간신히 기력을 회복하여 또 길을 나선다. 포르셀라 암브리졸라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아래쪽으로 내려섰다. 5토리에서 포르셀라 암브리졸라까지도 알타비아1 코스란다.


   얼마를 더 내려오니 호수가 나타난다. 페데라 호수다.


   호수 옆에는 크로다 다 라고라는 산장이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걷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는 거였지만 산장 주인 말이 이미 버스가 끊어졌으니 짚차를 타고 가라고 한다. 짚차를 타고 파소 지아우를 지나 리프트 탔던 곳까지 왔다. 거기서 우리 차를 타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카나자이로 향했다.


본전 뽑기 ( 724)

   오늘은 주로 케이블카를 타고 즐기기로 했다. 말가라는 곳에서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고 마르몰라다(3265m)까지 올라간다. 정상 가까이 올라가며 밑을 보니 한 사람이 스키를 신고 걸어가는 모습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인다. 케이블카 정류장 정상에 내리니 빙하 위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구름을 잡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솜사탕을 만지는 기분이다.


   빙하로 내려가는 곳에는 마리아상이 있다. 마리아상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찍고 있다.


   밖으로 나가 빙하 위에서 스키 타는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스틱을 가져갔는데 스틱을 빌려달라고 하여 다들 폼을 잡았다.


   빙하 위에서 깔깔대며 신나게 놀다가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 역으로 내려왔다. 중간 역에는 수레 위에 대포가 놓여있고 사람들도 많이 있다.


   여기에는 박물관도 있는데 옛날 이태리 사람들의 초소 모형과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있다.

다음은 사스 포르도이로 이동하여 또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광활한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갑자기 화성에라도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여기도 커다란 십자가가 있다. 이태리 사람들은 유난히 신앙심이 깊은가보다.


   십자가 근처에는 뻥 뚫린 구멍이 있어 밑의 길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십자가 아래쪽에 앉아 점심을 먹었는데 전망이 기막히다. 노란 부리의 까마귀가 우리 먹는 데서 턱 받치고 쳐다보기에 감자를 조금 주었더니 얼른 물고 달아난다. 여기에 먹을 게 있다는 소문이 금방 퍼졌는지 세 마리가 와서 우릴 쳐다보고 있다. 자꾸 주면 야생성을 잃을 것 같아 주지 않았다. 전망이 너무 좋아 도저히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다.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오니 웬 여자 동상이 있는데 이름이 마리아라고 쓰여 있고 스키를 탄 것으로 보아 스키 선수인 듯싶다. 케이블카 1일 권을 구입한 관계로 본전을 빼려고 다음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갔다. 플로리아라는 지역인데 스키 타는 곳인 듯하다. 여기서 짚차를 타고 가면 멋있는 곳이 있는지 짚차 기사는 빅 세일이라고 하지만 오늘의 숙소까지 가려면 시간이 별로 없어 그냥 내려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데 소나기가 엄청 쏟아진다. 빗속에서 강행군을 할 각오로 아우란조 산장 앞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리니 비가 그쳤다. 아우란조 산장을 뒤로 하고 황량한 길을 재촉한다.


   조금 가니 자그마한 성당이 나타나고 여기서 더 가니 이름 모를 산장이 있다. 고개 위로 올라서니 거대한 트레치메가 우리를 압도한다.


   트레치메를 바라보며 오늘의 숙소인 로카텔리 산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멀리서 보니 4번 동생과 5번 동생은 옷까지 갈아입어가며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산장에 가까워질수록 한 개로 보이던 트레치메가 서서히 셋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트리치매로 외우기로 했다. 치매 환자 세 명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산장에 도착한 4번 동생이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715분까지만 식당 써빙을 한다는 것이다. 밥 굶을까봐 뛰다시피 걸어서 배낭을 진 채로 식당으로 직행했다. 동생이 이미 주문을 다 해두어 금방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늦게 온 사람도 있다. 중국 청년인 듯한데 얼마나 달려왔는지 온 얼굴과 목에 땀이 범벅이다. 일몰을 찍으러 왔는지 어마무시하게 큰 카메라를 들고 있다. 이 청년은 식사 후 텐트를 치려는지 밖으로 나갔다.

   식당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일품이다. 우리도 식사를 마치고 일몰을 보러 나갔다. 우리가 이 폼 저 폼으로 사진을 찍어대니 서양여자가 재미있었는지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로카텔리 호텔이 전망 하나는 기막힌데 샤워실이 없는 게 결정타다. 물이 부족한가보다. 세면실에서 겨우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를 했다. 씻지를 못하니 숙소에는 땀 냄새가 진동한다. 20여명이 한 방에서 혼숙을 하는데 서양 남자들은 팬티 바람으로 왔다 갔다 한다. 내 옆 침대에는 독일 남자인 듯한 사람이 누워있다.

 

브라이스 호수 ( 725)

   로카텔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서서히 깨어난다. 건물 외벽 왼쪽 구석에 있는 성모상도 잠을 깬다.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서둘러도 거의 꼴찌로 출발했다. 트레치메가 찬란한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다.


   4번 동생은 트레치메를 배경으로 묘기를 부리며 사진을 찍는다. 로카텔리를 등지고 우리 차가 있는 아우론조 산장을 향해 가는데 넓은 초지가 나타나고 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땅 바닥을 자세히 보니 흰 돌로 글씨를 만들어 놓았다.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자기 이름을 쓴 게 아닌가 싶다. 인간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은 본능이 있는 듯하다.


   걸어가면서 바라보면 트레치메는 봉우리가 세 개가 되었다 네 개가 되었다 다섯 개가 되었다 하면서 수시로 모습을 달리한다. 같은 바위인데도 보는 각도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니 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보는 사물은 제 각각 다른지도 모른다. 똑 같은 위치에서 동시에 볼 수가 없으니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러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트레치메의 거의 끝까지 가니 능선 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아우론조 산장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저 능선을 넘어가면 바로 산장이라고 제부는 트레치메의 허리 길로 다시 돌아가자고 한다. 다시 한 번 음미하려는 모양이다. 하긴 밑에서 보는 트레치메와 허리 길에서 보는 트레치메는 또 다를 것이다. 그런데 허리 길은 완전 너덜지대에 실 같이 가는 길이 나있다. 그래도 햇빛이 뒤에서 비치니 그늘이라 천만다행이다.

   조금 가니 아래쪽으로 물웅덩이 세 개가 보인다. 원래는 하나의 큰 호수인데 물이 줄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밑의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호수다.


   멀리 우리가 묵었던 로카텔리 산장이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


   질질 미끄러지는 길을 마냥 걷는다. 동생들은 걸음이 빨라 멀찌감치 달아났다.


   중간에 큰 바위가 있어 미숙씨와 기어 올라갔다. 바위만 보면 올라가고 싶은 건 무슨 병인지 모르겠다.

 

   트레치메를 다 통과하여 어제 로카텔리 산장으로 갈 때 넘어온 고개에 다다랐다. 그새 구름이 많이 생겨 봉우리 윗부분을 다 가려버렸다. 다시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어제 본 성당이 나타난다. 어제는 사람이 없더니 오늘은 사람들이 퍽 많다.

   아우론조 산장에 도착하여 어제 세워둔 차를 타고 브레이스 호수를 향해 출발했다. 브레이스 호수는 주차공간이 부족한지 중간에 차를 통제한다. 멀리 차를 세워두고 셔틀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마땅히 주차할 곳도 없어서 우왕좌왕 하는데 네비가 좁은 마을길로 안내한다. 네비가 가르쳐주는 대로 가다보니 작은 마을을 통과하여 아까 통제하던 곳을 지나서 본 길로 들어섰다. 이런 횡재가 다 있나?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이 네비년 참 똑똑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브레이스 호수에 도착하여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경치기 좋으니 야외촬영 나온 예비 신랑 신부가 보인다.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고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저렇게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 얼른 결혼해서 애도 낳고 해야 하는데 요새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눈이 너무 밝아서 탈이다. 취직 포기, 결혼 포기, 출산 포기한다고 3포 세대라 한다. 이건 우리나라의 장래가 달린 일이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호수를 거의 다 돌고 나니 팻말이 잔뜩 붙어있는 이정표가 나타난다. 여기가 돌로미테 알타비아1 코스의 시작점이란다. 우리는 알타비아1 코스의 삼분의 일쯤 걸었다고 이 이정표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었다.


   호숫가에는 여기 저기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런 모습을 보며 걷는 우리도 마냥 여유로워진다.

   오늘의 숙소인 미주리나 호텔로 오는데 앞에서 자전거 부대가 나타난다. 무슨 대회가 있는지 자전거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미주리나 호숫가에 있는 아름다운 호텔에 들어가 오늘을 마무리했다.

 

미주리나 호수 ( 726)

   아침 식사 전에 미주리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호숫가에 알록달록 예쁜 보트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묵은 호텔도 호숫가에 있는데 새벽 여명을 받아 아름답게 서있다. 물속에 잠긴 산과 호텔이 실물보다 아름답다.


   어미 오리가 다섯 명의 새끼를 달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어미는 고달프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고 제네바로 출발했다. 햇볕이 어찌나 강한지 눈을 뜨기가 힘들다. 졸음과의 투쟁을 벌이며 베니스 마르코 폴로 공항에 도착하여 차를 반납했다.

   455분 비행기가 두 시간 정도 늦게 출발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 도착하니 인천행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 됐다. 그래도 같은 항공사 비행기라 그런지 기다려준다. 100m 달리기 하듯 달음박질하여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비행기에 올랐다. 5번 동생은 어찌나 달렸는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낸다.

 

오지 않는 짐 ( 727)

   콩나물 시루같은 비행기에 앉아 먹고 자고 영화 보니 어느 덧 인천공항이다. 짐 찾는 곳에 서서 짐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제부가 핸드폰을 보더니 짐이 안 온다는 메시지가 왔다는 것이다.

   어제 미친 듯 달려와 사람은 이 비행기에 탔는데 짐을 옮겨 싣지 못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짐 신고하는 곳에 가서 우리 주소와 짐의 모양, 색깔 등을 적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3주일씩이나 끌고 다닌 짐인데도 색깔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버스에 올라 생각하니 내가 제네바 공항에서 내 짐을 핸드폰으로 찍어둔 기억이 난다. 간단하게 그걸 보여주면 될 것을 한참동안 설명하느라고 힘들었다. 머리가 나쁘면 팔 다리가 고생한다더니 입도 고생이다. 아무튼 짐이 없으니 편하게 집으로 왔다.

   다음 날 항공사에서 메시지가 왔다. 짐이 인천에 도착해서 이튿날 새벽 2시에 배달해주겠다는 것이다. 밤잠도 못 자며 기다리는데 4번 동생이 카톡방에 글을 올렸다. 자기네는 밤 1130분쯤 짐이 왔는데 내 짐이 그리로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도로 주고 배달하는 차에 가서 자기 짐을 찾아왔다는 것이다. 메시지대로 2시쯤 짐을 받았다.

   그런데 5번 동생과 미숙씨 짐이 또 바뀌어 배달되었다. 5번에게 미숙씨 짐이 와서 돌려보냈는데 강동구 쪽은 배달하는 사람이 달라서 다음 날 밤에 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미숙씨는 더 한심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현관 문 앞에 5번 짐을 두고 갔다는 것이다. 회사에 전화하니 다음 날 다시 가지러 오겠다고 한단다. 결국 귀국 후 삼일이 지나서야 모두 짐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그룹 체크인을 하더라도 짐 번호가 적힌 태그는 꼭 자기 짐에 붙이는지 확인해야겠다.

 

   이번 여행에서 무지막지한 우박도 맞아보고, 환승하려고 100m 달리기도 해보고 짐 찾기 해프닝도 겪었지만 참 다양한 경험도 하고 재미도 있는 알찬 여행이었다. 몽블랑 둘레길 종주한 것까지 합치면 20일 동안 약 300킬로를 걸었으니 내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운 셈이다. 경치도 기가 막혀서 마치 20일간 천국일주를 하고 온 것 같다. 제부가 몇 년간 공들여 차린 푸짐한 잔칫상을 받아 배부르게 먹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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