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속 평창여행
이현숙
기간 : 2020년 9월 5일 ~ 9월 7일
장소 : 백운산, 태화산, 백덕산
네 자매와 제부가 평창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자제하라고 TV에서 연일 부르짖는데도 불구하고 못 말리는 우리 자매들은 평창으로 2박 3일간 여행을 떠났다. 5번 동생이 숙소를 예약하고 제부가 일정표를 자세히 짜서 카톡방에 올렸다.
9월 5일 백운산
사가정역에서 모두 만나 룰루랄라 평창으로 향했다. 가다가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한 후 동강 근처 백룡동굴 생태체험학습장 주차장에 차를 댔다. 백룡동굴은 코로나로 인해 출입금지다. 몇 년 전 4번 동생 가족과 이곳에 와서 방수복을 입고 헤드랜턴을 달고 동굴탐사를 했다. 조명도 없는 깜깜한 동굴 속을 가이드를 따라 기어 다니던 기억이 난다.
생태체험관 뒤로 올라가 산길로 들어섰다. 새팥, 산괴불주머니 등 야생화가 반긴다. 계속 올라가니 칠족령 전망대가 나타난다. 굽이쳐 흐르는 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칠족령(漆足嶺)은 일곱 개의 발이 아닌 옻칠이 묻은 발이란 뜻이다. 옛날 한 선비집의 개가 발에 옻칠을 하고 도망가기에 그 자국을 따라가 보니 이 자리였는데 경관이 기가 막혀 이곳 이름을 칠족령이라고 했단다.
백운산에는 여러 번 왔는데 항상 푸르고 깊은 물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비가 너무 자주 와서 그런지 누런 황토물이다. 그래도 그 빼어난 경관은 여전하다.
칠족령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올라가려는데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우릴 보고 이리로 정상에 갈 거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말리고 싶단다. 길이 너무 험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두부라도 자르려는 마음으로 정상을 향해 걸었다. 조금 걷다보니 3번과 5번 동생이 전망대 쪽으로 가는 것이 보인다. 3번 동생이 며칠 전 무릎을 다쳐 두 동생은 정상 쪽은 포기하고 하늘벽 구름다리로 가겠단다. 4번 동생 부부와 나는 정상을 향해 계속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 추락주의 팻말이 붙어있다. 조심 또 조심하며 정상을 향해 가는데 20여 년 전 처음으로 백운산에 올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성수중학교 근무할 때 생물교육연구회에서 이곳으로 답사를 왔었다. 오는 길이 홍수로 유실되어 3박 4일 지낼 무거운 짐을 지고 이글이글 타는 자갈길을 걸어 문희마을에 도착했다. 개울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관찰도 하고 밤에는 별자리도 보았다. 하루는 백운산에 올랐는데 어찌나 길이 험하고 가파른지 아주 돌아가실 뻔 했다. 그 때에 비하면 오늘은 날도 서늘하고 길도 많이 좋아졌다.
마음을 비우고 걷다보니 드디어 정상이다. 정상석은 두 개인데 하나는 한글로, 하나는 한문으로 쓰여 있어 그 뜻을 알기 좋았다. 흰 구름이 머물 정도로 높은 산이라 白雲山이라 했나보다.
하산은 급경사길을 피해서 완경사길로 들어섰다. 안내도에는 급경사길 바로 옆에 완경사길이 그려져 있고 거리도 비슷하게 되어있어 그런 줄 알고 갔더니 오산이었다. 내려와서 이정표를 보니 완경사길이 두 배 이상 멀었다. 구름다리쪽으로 간 동생들이 기다릴 것을 생각해서 부지런히 걸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았단다.
주차장에 내려와 오늘의 숙소인 웰리힐리로 향했다. 가다가 둔내역 근처 하나로마트에 들러 이틀간 먹을 음식 재료와 음료수를 차 트렁크에 가득 채우고 숙소로 달렸다.
숙소에 도착하니 토요일인데도 손님이 적어 한산하다. 3인실로 예약했는데 같은 값으로 5인실을 주겠단다. 재수가 좋으면 앞으로 자빠져도 코가 안 깨진다. 대패 삼겹살을 안주로 맥주와 소주, 막걸리로 배를 채운 후 저녁 식사를 했다.
두 동생은 구름다리로 내려가다가 3번 동생이 또 넘어져 다음 날은 산행을 포기하고 강릉으로 놀러가겠다고 기차표를 예약했다. 구름다리는 생각보다 짧고 경치도 칠족령만 못하다고 했다.
9월 6일 태화산
아침에 일어나 웰리힐리 앞 잔디밭 산책을 했다. ‘I LOVE YOU’라는 조형물에서 4번 동생 부부 사진을 찍고 네 자매는 잔디밭에서 사진을 찍었다.
3번 동생과 5번 동생을 둔내역에 내려주고 4번 부부와 나는 태화산으로 향했다. 원래는 오늘 계방산에 가려했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태화산으로 일정을 바꿨다.
흥교초교를 향해 가다가 4번 동생이 ‘태화산 등산로’라고 쓴 이정표를 보았다. 여기가 등산로입구인 줄로 생각하고 여기서 산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제부는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블로그에서 본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1km가량 임도를 계속 따라가다가 여기는 아닌 것 같다고 여기부터 걸으면 오늘 안에 가기 힘들겠다고 한다. 4번 부부는 연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현재 위치를 확인하더니 다시 내려가자고 한다. 일자무식인 나는 군말 없이 따라 내려왔다.
다시 차를 타고 흥교초교 주차장을 향해 고갯길을 한참 올라갔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주차장이 나타나고 안내판도 있다. 다른 차들도 제법 많이 있고 여기서 정상까지는 2.5km라고 한다. 아까 그곳에서 여기까지는 엄청난 거리다. 거기서 계속 헤맸으면 오늘 안에 정상에 못 갈 뻔 했다.
태풍 하이선의 영향으로 비가 곧 쏟아질 듯 잔뜩 찌푸린 하늘을 보며 정상으로 향했다. 그래도 정상에 도달할 때까지 잘 참아주었다.
부지런히 하산길로 접어드니 금방 비가 쏟아진다. 그나마 경복 산우회 100명산 깃발을 들고 정상 사진을 찍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주차장으로 달음질쳤다. 4번 부부는 어찌나 발이 빠른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1시간 정도 알바를 한 바람에 점심 식사는 생략하고 곧장 둔내역으로 달렸다. 주차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강릉 솔밭길을 걷고 온 두 동생이 나온다. 강릉 여행이 어땠느냐고 물으니 참 좋았다고 한다. 내심 다행이다 싶었다.
다 함께 숙소로 돌아와 감자전과 김치전을 부쳐 막걸리를 마셨다. 역시 비 오는 날은 부침개가 최고다.
9월 7일 백덕산
오늘은 태풍의 영향으로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3번과 5번 동생은 상안리 명품숲을 걷고 4번 부부와 나는 백덕산에 가기로 했다. 상안리 명품숲 입구에 들어서니 천막이 쳐있고 숲 해설사 아저씨가 보인다. 어디 가냐고 하기에 제부가 명품숲을 걸으러 왔다고 하니 이렇게 비 오는데 걸을 거냐고 한다. 그렇다고 하니 들어가란다. 차로 5km 정도 들어가니 안내판이 나온다.
두 동생을 내려주고 세 명은 다시 나왔다. 해설사에게 두 명은 명품숲을 걷고 우리는 몇 시간 후에 다시 올 거라고 얘기하고 백덕산으로 향했다. 운교리에 도착하니 비는 더욱 세차게 퍼붓는다. 백덕산은 여러 번 와 봤지만 항상 문재에서 올라가고 여기서는 처음이다. 빗줄기를 헤치며 비네소골을 지나 능선에 올라서니 헬기장이 나타난다. 짚신나물이 가득 피어있다. 나는 짚신나물로 짚신을 만드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고 그 씨가 짚신에 자꾸 달라붙어서 이름이 짚신나물이 되었단다.
고귀한 자태의 금강초롱도 비를 맞으며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우릴 맞는다.
정상 가까이 가니 문재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다. 여기서 부터는 많이 오던 길이다. 백덕산의 유명 스타 서울대 나무에서 사진을 찍었다. 이건 참나무인데 비바람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꺽이고 또 꺽여서 서울대 정문 모양이 되었다. 여기를 통과할 때마다 여기 들어가면 서울대 들어간 거라고 하며 걷던 기억이 새롭다.
정상 부근에는 바위가 제법 있는데 바위에 찰싹 달라붙은 바위떡풀이 물을 함빡 머금어서 생기가 펄펄 넘친다. 습한 바위에 떡처럼 달라붙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나보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드디어 정상이다. 제부와 동생은 경복 산우회 100명산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4번 동생은 여기 처음 왔다고 독사진을 찍었다. 비옷을 활짝 편 모습이 마치 빨간 박쥐가 날아가는 듯하다.
제부는 경복고를 나왔는데 내년이 개교 100주년이라 그걸 기념하려고 100명산을 오르기로 했단다. 동문이 직접 오르면 2점, 배우자는 1점을 주고 점수가 많은 사람에게 상품도 주고, 고득점을 달성한 기수에게 상금도 준단다. 각 기마다 점수를 따기 위해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하루에 100명산을 두 세 개씩 오르며 카톡방에 사진들을 올린다. 생각할수록 기막히게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님도 보고 뽕도 딴다더니 건강에도 좋고, 상품도 받고, 동문들의 친목도 도모하니 일거양득이 아니고 일거삼득이다.
하산길에 들어서자 제부와 동생은 그야말로 날개 달린 듯 순식간에 사라진다. 걸음이 늦은 나는 미끄러질까봐 조심조심 더듬더듬 혼자 내려온다. 임도를 만난 곳에 오자 둘이서 기다리고 있다. 4번 동생이 5번 동생에게 1시간 정도 후 도착할거라고 전화를 하자 자기들도 여태 걷고 지금 막 해설사가 있는 천막에 도착했다고 한다.
마지막 피치를 다해 주차장에 도착해 비옷을 벗고 차에 올랐다. 명품숲 입구에 도착해 4번 동생이 천막 앞으로 가 내려오라고 하자 해설사 아저씨가 따라 내려온다. 그동안 정이 들어서 배웅하나 했더니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한다. 사진을 찍어서 근무상황을 군청에 보낸다는 것이다. 우리는 입구에서 아저씨와 함께 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두 동생에게 명품숲이 좋았느냐고 하니 소나무숲이 특히 좋았다고 한다. 해설사 아저씨와 얘기했는데 이 아저씨는 개와 고양이를 키운단다. 한 번은 두 마리를 데리고 일하러 왔더니 같이 일하는 분이 일터에는 애완동물을 데려오면 안 된다고 하여 다음부터는 데려오지 않는단다. 같이 일하는 분이 교장선생님 하다가 퇴직한 분인데 그분 말씀이 맞는 것 같다고 한다. 내 생각에는 동물을 데려오면 심심하지도 않고 동물들도 좋을 것 같은데 이분은 엄청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분인가 보다.
안흥찐빵집에 들러 찐빵도 사고 비에 젖은 옷을 모조리 벗어서 가방에 넣고 보송보송한 옷으로 갈아입으니 날아갈 듯 몸과 마음이 가볍다.
올봄에는 남도 여행으로 꽃구경을 원 없이 했는데 가을에는 우중 산행이지만 연일 산행을 했으니 올해의 자매여행은 그야말로 베리굿이다. 단지 3번 동생 무릎 땜시 함께 한 시간이 적어서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내년 자매여행은 모두 팔다리가 쌩쌩하여 함께 걷고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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