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남도여행
이현숙
기간 : 2020년 3월 28일 ~ 3월 30일
장소 : 안양산, 견두봉, 불일폭포
네 자매와 제부가 남도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을 자제하라고 국무총리 지시가 내렸지만 못 말리는 우리 자매들 용감무쌍하게 2박 3일 여행길에 올랐다.
제부가 숙소도 예약하고 일정표를 자세히 짜서 카톡방에 올렸다. 남편이 차를 폐차시킨 후 통 꽃구경을 못 갔는데 절호의 기회다 싶어 무조건 따라 나섰다.
3월 28일 안양산
화창한 날씨가 우리를 축복해주는 듯하다. 제부는 열심히 운전을 하고 우리 네 자매는 연신 입방아를 찧느라 차 안이 시끌벅적하다. 화순에 있는 수림정이란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마당도 아담하고 예쁘다. 오방색의 큰 항아리가 눈에 띈다. 사람이 많아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야한다.
마당 구경을 하고 대기실로 오니 직원이 들어오라고 한다. 따로 마련된 방에 들어가니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일이 없어서 좋다. 반찬의 가짓수도 많지만 보리굴비가 특히 맛있다. 만장일치로 이걸 사가지고 가기로 했다. 한 집 당 두 마리씩 여덟 마리를 샀다.
하나로 마트에 들러 장을 본 후 무등산 편백 자연휴양림에 짐을 풀고 안양산으로 향했다. 무등산을 산행할 때마다 말 안정처럼 편안하게 생긴 안양산 능선을 바라보곤 했다. 언제 한 번 오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드디어 오늘 소원성취하게 생겼다.
임도처럼 편안한 길을 지나 오솔길을 올라서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면서 정상이 나타난다. 무등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무등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철쭉군락지를 지나 들국화마을로 내려섰다. 천사표 우리 제부가 우리들에게 들국화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있으라고 한다. 자기가 출발점까지 가서 차를 가지고 오겠단다. 제부 덕에 따뜻한 차를 마시며 제부를 기다렸다. 군고구마도 먹고 차를 다 마시고 나자 제부에게서 전화가 온다. 다 왔으니 나오라는 것이다.
다시 휴양림으로 돌아와 소고기와 쭈꾸미 볶음을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며 오붓한 시간을 즐겼다.
3월 29일 견두산과 지리산 둘레길
아침 식사를 하고 점심 때 먹을 주먹밥까지 싸 놓고 근처 편백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빽빽한 편백나무들이 쭉쭉 뻗어 산림욕하기 딱 좋게 생겼다.
출렁다리를 지나 숙소 앞으로 와서 차를 타고 지리산 둘레길에 있는 현천마을로 갔다. 둘레길 옆에 있는 견두봉 등산을 하고 둘레길을 거쳐 원점회귀 하기로 했다.
주민들이 불안해 할까봐 마스크를 쓰고 조용히 마을을 통과했다. 견두봉 오름길은 따뜻한 봄볕에 온갖 야생화가 우리를 맞고 있다. 나무 위에 올라서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어느 덧 정상에 다다른다.
견두산(犬頭山)이라고 해서 개머리 모양을 찾았지만 아무리 봐도 개머리 모양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마 아래 마을에서 봐야 그렇게 보이나보다. 개머리는 안 보여도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일품이다. 지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을 지나 조금 내려오니 마애불상이 보인다. 오래 되었는지 희미하다.
조금 더 오니 개머리 비슷한 바위가 있기는 있다. 마을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다.
계척봉을 지나 밤재까지 정신없이 내려왔다. 3번 동생은 무릎이 아프다고 내려오다가 진통제까지 먹었다. 밤재부터는 지리산 둘레길 22코스다. 완만한 길을 여유 있게 걸으니 룰루랄라 콧노래가 나온다.
둘레길에도 편백나무, 삼나무들이 많고 곳곳에 벤치를 만들어 쉬어갈 수 있게 해놓았다.
계속 걸으니 시목광장이 나온다. 중국 산둥성에 살던 처녀가 이곳으로 시집을 오면서 고향의 풍경을 잊지 않으려고 산수유 한 그루를 가져와 심었다는 것이다. 수령이 천년이나 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 산수유나무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현천마을 가까이 가자 제부가 또 나는 듯이 달려간다. 우리가 도착하는 곳으로 차를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감사 또 감사할 뿐이다. 오늘 아침부터 총 16킬로를 걸었다. 3번 동생은 오늘 기록갱신 했다고 뿌듯해한다.
현천마을을 떠나 쌍계사로 달렸다. 그곳에 오늘의 숙소인 자연애가 펜션이 있다. 코로나19로 길이 뻥뻥 뚫릴 줄 알았더니 다들 우리처럼 생각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차를 끌고 나왔나 보다. 수 킬로 전부터 꼼짝을 못한다. 덕분에 벚꽃 터널을 만끽하니 좋은 점도 있기는 하다. 본의 아니게 밤 벚꽃까지 감상하고 캄캄해져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차 소리가 나자 주인이 달려 나와 우리를 맞아주며 방도 안내해준다. 오늘은 벚꽃 막걸리를 마시며 하루를 마감했다.
3월 30일 불일폭포, 최참판댁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도 점심 때 먹을 주먹밥을 만들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출발하려는데 또 주인아주머니가 나와 인사를 한다. 우리가 펜션이 맘에 든다고 사진을 찍으니 자기가 찍어주겠다고 한다. 이 펜션은 시설도 좋지만 주인도 맘에 든다.
우선 칠불사에 들렀다. 칠불사는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여기서 성불한 것을 기념하여 수로왕이 창건했다고 한다. 연못에는 하얀 공 같은 것이 일곱 개 있었는데 이것도 7불을 의미하는 듯하다.
나는 경주 남산에 있는 칠불암과 착각하고 일곱 분의 마애불을 찾느라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더니 스님 한 분이 나온다. 커다란 바위 사면에 부처님 네 분이 새겨진 곳을 찾는다고 하니 그것은 경주 남산에 있는 거라고 친절히 알려주신다.
칠불사를 나와 쌍계사로 향했다. 화창한 햇빛을 받아 화사하게 빛나는 벚꽃 터널을 통과하며 다시 한 번 봄을 만끽했다. 봄은 이토록 무르익었건만 코로나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우리 인간들이 과연 만물의 영장이 맞나 싶다.
쌍계사 제일 위쪽 금당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가 쓴 것이라고 하여 끝까지 올라가 현판을 보았다. 단아한 필체가 아름답다.
쌍계사를 나와 불일폭포로 향했다. 폭포로 가는 길에 환학대가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 선생이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 다녔는데 이곳 환학대에서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것이다. 환학대 바위가 널찍한 것이 최치원 선생이 앉아있었음직하다.
그 모습을 흉내내보고 싶어 노약자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기어 올라가려고 기를 쓰니 5번 동생이 자기 어깨를 잡고 올라가라고 한다. 한 손으로 바위를 잡고 한 손은 동생을 잡으니 동생이 번쩍 들어 올려준다. 5번이 이렇게 힘이 센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최치원처럼 양반 다리를 하고 사진을 찍은 후 내려오려니 또 엄두가 안 난다. 이번에는 4번 동생이 자기 어깨를 짚고 내려오란다. 염치 불구하고 또 동생 신세를 지고 겨우 내려왔다. 나는 왜 이다지도 주제 파악을 못하고 날 뛰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계속 올라가니 불일평전이 나온다. 말 그대로 평평한 곳인데 최치원이 이곳에서 청학을 타고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서 이곳을 청학동이라고 했단다. 정말 이상향인 듯 아름답고 평온한 기운이 맴도는 곳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불일암이 나타난다. 불일암은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하던 곳이다. 안내판을 읽다보니 교사로 근무할 때 한 역사 선생님이 하던 말이 떠오른다. 수업 시간에 보조국사 지눌을 설명하면서 간단히 첫 자만 칠판에 썼단다. 갑자기 아이들이 킥 킥 웃어서 칠판을 보니 ‘보. 지.’라고 쓰여 있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불일암에서 내려가니 불일폭포가 나타난다. 고려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은 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그가 입적한 후 희종은 불일보조라는 시호를 내렸고 그 시호를 따서 불일폭포라고 불렀다. 불일폭포 전망대에는 겸재 정선이 그린 불일폭포가 있는데 겸재가 불일폭포를 방문한 기록이 없어서 그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마침 사람이 있어 불일폭포에서 모처럼 단체 사진을 찍었다. 시원한 물줄기가 언제 봐도 장관이다.
불일폭포에서 다시 불일암으로 올라와 또 한 번 둘러보고 불일평전으로 내려왔다. 여기 널찍한 바위에서 준비해간 빵을 먹을 먹으며 무르익은 봄을 만끽했다.
곶감까지 배부르게 먹고 다시 쌍계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쌍계사에서 출발하여 최 참판 댁으로 갔다. 코로나 때문에 입구에서 소독을 해야 한다. 소독약이 뿜어져 나오는 문을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봄날의 공유’라고 쓴 포토 존이 있다. 여기서 또 한 컷씩 사진을 찍었다. 봄날을 공유하는 우리들이 참 복이 많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이곳 평사리 들녘이 한 눈에 들어온다. 작품 속 서희와 길상이는 실제 인물이었을까? 아마도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있었을 것 같다. 뒷마당으로 가니 유채꽃과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서울로 출발하기 전 동정호에 들러 주먹밥으로 요기를 했다. 햇볕은 따가운데 물가라 그런지 바람이 차다. 요즘 같은 시국에 감기 걸릴까봐 차에 가서 겉옷을 가져왔다.
동생들은 벌써 주먹밥을 먹고 있다가 내가 오자 젓가락을 주려고 비닐봉지를 뒤진다. 죽 집에서 받은 젓가락이 한 번 쓰고 버리기 아깝다고 꺼냈다가 도로 넣기를 세 번째 하더니 다른 젓가락이 없다고 일회용 숟가락으로 먹으란다. 3번 동생이 넘 웃긴다고 이건 꼭 기행문에 써야한다고 깔깔댄다. 사실 별로 웃길 일도 아닌데 마구 웃음보를 터트리는 우리들이 더 웃긴다. 함께 울고 웃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네 자매는 비몽사몽간에 헤매는데 제부는 운전하느라 졸음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번 여행은 모처럼 네 자매가 함께 한 환상의 남도여행이었다. 날씨도 좋고 봄꽃도 절정이고 먹거리도 풍성한 이런 삼박자 여행을 앞으로 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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