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9. 7. 16. 돌로미테 기행문 1

아~ 네모네! 2019. 8. 18. 10:01

20일간의 천국일주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9716~ 727

장소 : 이태리 돌로미테

 

   언젠가 영상앨범 산이라는 프로에서 돌로미테가 나왔는데 어찌나 멋진지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5번 동생도 이 프로를 보고는 여기 가면 신을 찬양하게 될 것 같다고 하였다. 4번 동생부부가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은 한 번 가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을 위하여 여기 또 가주었다. 미숙씨도 돌로미테는 간 적이 있지만 일부 밖에 못 보았다고 함께 가기로 했다.


베니스 아파트 ( 716)



   경복 48산우회 회원들과 뚜르 드 몽블랑 종주를 마치고 제네바 공항에서 일곱 명의 회원은 한국으로 돌아갔다. 제부와 네 여자는 돌로미테 트레킹을 하려고 베네치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에 내려 허츠에서 차를 렌트하였다. 다섯 명의 짐을 뒷 트렁크에 미어져라 터져라 넣고 베니스 아파트로 향했다.


   네비가 일러주는 대로 가니 목적지에 다 왔다고 하는데 어느 집인지 모르겠다. 우왕좌왕하는데 한 아저씨가 나와 저 집이라고 일러준다.


   그 집을 향해 후진하는데 우리가 예약한 집 주인 아저씨가 나온다. 84유로 밖에 안 되는데 웬만한 펜션 저리 가라로 훌륭하다. 5성급 호텔 같다. 안으로 들어가 모처럼 우리가 요리하여 와인을 곁들여 멋진 식사를 하고 세탁기에 빨래도 왕창 했다.

 

카레차 호수 ( 717)

   아침 일찍 돌로미테를 향해 출발했다. 시골로 가면 장보기가 어려울까봐 마트 앞에 가서 8시 반까지 기다렸다가 먹거리를 엄청 샀다. 차는 안쪽까지 빈틈없이 가득 찼다. 한참 가는데 터널이 나타난다. 일방통행이라 파란불이 들어와야 갈 수 있다.


   조금 기다려 터널로 진입했는데 앞차가 서있다. 기사가 나와서 오 마이 갓을 외치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친다. 웬일인가 했더니 반대편에서 큰 화물차가 오고 있다. 화물차 운전자가 신호를 못 보았는지 빨간불에서 진입을 한 것이다. 결국 화물차가 한참을 후진하여 우리가 통과할 수 있었다.

   이런 터널을 몇 개 통과하여 계속 가는데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마침 장날인지 장사들이 많이 나와 있다. 우리도 내려 장 구경을 하기로 했다. 마을 중심에는 성당도 있기에 들어가서 보니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천장에 벽화도 있고 파이프 오르간도 있다.


   전기구이 통닭을 파는 차도 있다. 여기서 통닭도 사고 소고기 구이도 샀다. 통닭 파는 아저씨는 내가 찍으려고 하자 손까지 들며 포즈를 취해준다.


   근처 공원에 가서 통닭과 소고기 구이를 먹고 다시 출발하였다. 페다이아 산장이 있는 고개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산장에서 고갯길을 올라가니 호수가 보인다. 댐으로 막힌 페다이아 호수다. 댐 아래쪽에도 작은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가 더 예쁘다.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간 곳에서 간식을 먹었다. 다시 출발하여 카레차 호수로 갔다. 물속에 비친 바위산이 기막히다.


   호수가 작아서 한 바퀴 도는데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카레차 호수를 보고 발 가르데나로 가서 로레스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이 아파트는 주차장이 지하에 있는데 어찌나 진입로가 좁은지 차에서 내려 앞뒤에서 보면서 오라이 오라이를 외쳐대고야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지역에서 버스를 탈 수 있는 패스를 주어 잘 이용했다.

 

시우시 지역 ( 718)

   프리패스가 있으니 버스를 타고 움직이기로 했다. 아침에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예쁜 꽃들이 가득하다. 버스를 타고 오르티세이로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니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된다. 앞에 보이는 웅장한 바위산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넓은 초원에 점점이 들어있는 집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알프스란 이런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앞서 가는 미숙씨와 5번 동생이 친자매보다 더 다정하다.


   초원을 누비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이들이 마냥 행복해 보인다. 학원 다니느라 늘 바쁜 우리나라 아이들이 안쓰럽다.



   싸소 룽고와 싸소 피아토가 눈앞에 다가온다. 싸소는 산이란 뜻이고, 파소는 고개라고 한다. 풀숲을 걸어가는데 웬 나무 조각품이 보인다. 5유로라고 쓰여 있고 돈 넣는 깡통도 있다. 이게 우리나라에 있었으면 조각품은 물론이고 돈 통까지 다 가져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5번 동생이 10유로를 넣고 버섯 두 개 사서 나에게 하나 준다.


   가다보니 한 집 앞에 여러 마리의 말이 보인다. 5번은 겁도 없이 말 앞에 앉아 사진을 찍는다. 살트리아 호텔을 지나 계속 걸었다. 마치 동화 속 나라로 들어가는 듯 몽롱하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 동상도 보인다. 파소 두론 고개로 올라서니 자그마한 성당이 나타난다. 성당 앞에는 물 받는 곳도 있다. 성당의 하얀 벽이 인상적이다.


   2300미터에 있는 싸소 피아토 산장에서 싸소 피아토 뒤쪽 길로 들어섰다. 제부는 갈 길이 멀다고 재촉하는데 두 동생은 철없이 목마를 타고 좋아라 웃어댄다.

   부지런히 걷는데 갑자기 우박이 쏟아진다. 팥알보다는 조금 크고 콩알보다는 조금 작은 우박이 머리를 때리는데 모자를 쓰고 비옷을 입어도 머리가 아프다. 속된 말로 대갈빡 빠개질 지경이다. 그래도 머리는 참을 만한데 스틱 잡은 손을 때리는 건 너무 아파서 스틱을 짚고 걸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스틱을 짚지 못하고 질질 끌고 갔다. 가장 취약한 곳은 무릎이다. 이건 걷지 않을 수 없으니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무릎을 강타하여 어찌나 아픈지 눈물이 찔끔찔끔 날 지경이다. 우박의 위력이 이 정도인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한 산장의 처마 밑으로 들어서니 다른 사람들도 거기서 피신을 하고 있다. 바닥에는 우박이 하얗게 쌓였다.


   프리드리히 산장을 지나 고개로 올라서니 햇빛이 난다. 앞으로는 우박을 대비하여 우산을 가지고 다녀야겠다.


   고개를 넘어 돌로미테 마운틴리조트 앞에 와서 버스를 탔다. 발 가르드너에 있는 우리의 보금자리 로레스 아파트로 오니 땅이 보송보송하다. 여기는 비가 안 왔나보다. 오늘은 우박 때문에 21킬로를 7시간에 주파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본 후 장미숙 셰프가 실력을 발휘하여 뜨끈한 국수에 와인을 곁들여 맛난 식사를 했다. 밖에는 천둥번개가 치니 안쪽이 더 아늑하게 느껴진다.

 

세체다 지역 ( 719)

   오늘도 버스를 타고 오르티세이로 갔다. 프리패스가 있으니 좋긴 좋다. 로레스 아파트가 주차장 빼고는 다 좋다.

   버스에서 내려 어제와는 반대 방향으로 곤돌라를 타러갔다. 곤돌라 타는 곳 앞에 멋진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각자 맘에 드는 사진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매표소에는 쟁반 같은 것이 있어서 돈을 놓으면 빙그르 돌아 안으로 들어간다. 안에 있는 직원이 표를 놓고 다시 바깥쪽으로 돌려주면 가져오면 된다.


   2500m에 있는 세체다 정류장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했다. 앞에 보이는 산세가 기막히다.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예수상 앞에 가서 예수님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산세는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광활한 산들이 달음질하듯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에델바이스가 웃고 있다. 몽블랑에서는 화단에 있는 것만 보았는데 여기는 야생화다.


   눈앞에 보이는 픽산을 향해 뙤약볕을 받으며 묵묵히 걷는다. 픽산 가는 길에 산장이 하나 보였는데 여러 가지 동물을 키우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계속 걷다보니 웬 아이들이 허브차를 팔고 있다. 아마도 오누이인 듯하다. 집에서 부모님이 만든 것을 파는 모양이다. 인정 많은 미숙씨는 그냥 지나치기 미안했는지 두 봉지 산다.


   조금 더 가는데 웬 아코디언 소리가 들린다. 음악에 이끌려 그 산장으로 들어갔다. 다니엘 산장이다. 여기서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달랬다. 산장 안으로 들어가니 교황님 사진이 걸려있다. 교황님이 여기 오셨나보다. 다시 픽산을 향해 가는데 여기도 야생화 천국이다. 사진 찍느라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픽산(몬테 픽, pic , 2363m)에는 유난히 예수상이 많다. 절에 다니는 미숙씨는 두 손 모아 경건하게 예를 표한다.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도 존중하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뒤돌아보는 경치도 일품이다.


   정상 못 미친 곳에 자연목을 사용한 조각상이 있다. 마리아와 제자들 모습을 새겨놓았다. 물고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베드로인 것 같다.


   제부와 4번 동생은 벌써 정상에 가있다.


   산은 별로 높지 않은데 전망은 기막히다. 싸소 롱고가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미숙씨는 제부 옷이 너무 수수해서 때깔이 안 난다고 다니엘 산장에서 산 빨간 버프를 모자에 둘러준다. 마당발 미숙씨는 이제 남의 남편까지 관리한다. 픽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오두막이 있는데 그 앞에 웬 남자가 풀밭에 누워있다. 세상에서 가장 팔자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주필님 말대로 인생 뭐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싶다.


   더 내려오니 세우라사스 오두막이 보인다. 집 앞에 커다란 구두를 만들어 꽃으로 장식한 것이 특이하다. 목장을 지나서 나오려는데 문 앞에 당나귀 한 마리가 문을 막고 있다. 겨우 옆으로 비집고 통과했다. 크리스티나 마을로 내려오니 땅바닥에 우리 어렸을 때 하던 사방놀이판을 그려놓았다. 이곳 아이들도 이런 놀이를 하고 노나 보다. 이걸 보자 미숙씨는 옛날 기억이 나는지 시범을 보인다.


   크리스티나에서 버스를 타고 발가르드나에 와서 시장을 보고 우리의 숙소 로레스로 돌아왔다.

 

치베타 지역 ( 720)

   오늘은 숙소가 바뀌는 날이다. 삼일 만에 차를 빼서 다시 짐을 빼곡히 싣고 로레스를 떠났다.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도 두 명이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며 한참 오라이 오라이 스톱을 반복한 후에 겨우 빠져나왔다.

   피아니 디 페제에 주차하고 케이블카를 타려고 했는데 주차장을 찾는 게 보통일이 아니다. 알레기에서 네비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하는데 도저히 그곳에는 곤돌라 스테이션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다시 나왔다. 결국은 다시 그 길로 올라가 좁은 산길을 돌고 돌아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곤돌라를 타고 콜다이 발디 산장까지 올라갔다. 산장 옆에는 웬 여자 아이가 염소를 만지며 놀고 있다.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듯하다.


   여기서 콜다이 산장을 향해 내리막길을 한참 갔다. 앞에는 까마득한 오르막이 보인다. 가다가 바위를 보니 삼각형 안에 1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다. 여기가 알타비아 1코스라는 뜻이다.


   숨을 헐떡이며 한 고개에 올라서니 콜다이 산장이 보인다.


   마지막 케이블카가 끊어지기 전에 티시 산장까지 갔다 오려고 쉬지도 않고 계속 올라갔다. 또 한 고개를 넘으니 갑자기 눈앞에 수정 같은 호수가 나타난다.


   뒤이어 올라오는 미숙씨의 모습이 마치 구름 속에서 내려온 인간 같다.


   다들 올라온 후 호수를 배경으로 또 사진을 찍었다.


   호수가로 내려가 건너편 언덕에서 준비해온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치베타를 향하여 너덜 길을 마냥 걸었다. 뙤약볕에 너덜 길을 걸으려니 골이 핑 핑 돈다. 일반적인 길은 아래쪽으로 가게 되어있는데 지름길로 가려고 치베타 허리 길로 질러갔더니 풀 한 포기 없는 것이 그야말로 일사병 걸리게 생겼다. 이런 돌밭에서도 꽃이 피는 것이 경이롭다.


   이건 도저히 길이라고 볼 수 없는 길로 마냥 갔다. 한 마디로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치는 길이 치베타 길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대장이 앞에 갔으니 속수무책으로 따라가는 수밖에.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걷고 있는데 4번 동생이 앞에서 되돌아가자고 한다. 나는 다 같이 돌아가는 줄 알았더니 제부는 계속 앞으로 오라고 한다. 하지만 도저히 케이블카 시간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아 여자들만 먼저 돌아가자는 것이다. 나야 뭐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다시 사막 같은 길을 걸어 고개를 넘어오니 호수가 나타난다. 푸른 물만 봐도 갈증이 가시는 듯 생기가 돈다. 이번에는 호수 왼쪽 길로 왔는데 오다가 미숙씨는 호수 물을 만져본다고 호숫가로 내려간다. 참 체력도 좋다.

   콜다이 산장을 지나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와 초원 위를 걷다가 뒤 돌아보니 제부가 오는 것이 보인다. 티시 산장까지 갔었느냐고 물으니 못 가고 되돌아 왔단다.

   케이블카를 내렸던 발디 산장까지 오니 시간이 넉넉하다. 하지만 더 가지 않고 되돌아 온 것은 참 잘 한 것 같다. 날이 너무 뜨겁고 그늘이 없어 잘못하다간 돌아가시게 생겼다.

   발디 산장에서 느긋하게 맥주를 마시고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내려와 오늘의 숙소가 있는 아라바로 향했다가다가 마트에 들러 저녁거리를 잔뜩 사들고 아라바에 있는 몬테 체르츠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라가주오이 지역 ( 721)

   요즘은 연일 족발 공사로 바쁘다. 저녁에는 약을 바르고 맛사지를 한다. 아침이면 약을 먹는 사람, 테이프를 붙이는 사람, 압봉과 파스를 붙이는 사람, 발가락에 약을 바르고 솜을 감는 사람 등 등 온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연일 걸었더니 모두 말씀이 아니다. 아픈 데가 점점 많아져 공사가 점점 커지는 게 문제다.

   오늘은 파소 팔자레고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라가주오이로 올라갔다. 라가주오이 정류장에서 군복을 입은 직원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파네스 산장을 거쳐 페데루까지 20킬로 이상 걸어야한다. 고도 2700m가 넘으니 패딩 점퍼를 입어도 춥다.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바윗길로 올라서니 지구가 아닌 딴 행성에 온 듯하다.


   여기도 언덕 위에 예수상이 있다. 그 옆에는 대포알도 보인다. 대포알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의 전망도 한 점 막힘없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골고다 언덕 같은 이곳에서 내려와 정식 트레킹 길로 접어들었다. 멋진 풍경이 나타날 때마다 우리의 발목을 잡으니 어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있으랴?


   이곳은 오스트리아군과 치열한 전투가 있던 지역이라 곳곳에 초소로 쓰던 굴 같은 것이 보인다. 굴을 통해서 적의 침입을 파악하고 전투를 벌였을 장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제부는 이정표가 나타날 때마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갈 길을 확인한다. 오늘도 어제의 치베타 못지않게 황량한 길이다. 풀 한 포기 없는 돌길이 이어진다. 좋은 길은 아래쪽으로 이어지는데 설마 저 길로는 안 가겠지 했던 돌투성이 길로 올라간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돌짝밭 허리 길을 걷다가 두 암봉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지그재그 길을 마냥 오른다. 뒤를 돌아다보면 아담한 호수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이 고개가 라고 패스다. 호수가 보여서 라고라고 했나보다.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라고 패스에 오른다. 여기서 한국남자 한 분을 만났는데 여수에서 왔다고 한다. 무릎을 절뚝이기에 웬일인가 물으니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여기로 왔는데 너무 무리를 해서 그렇단다. 모처럼 다섯 명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화내스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도 장난이 아니다. 정말 화낼 수밖에 없을 정도다. 돌길을 마냥 내려오니 넓은 풀밭이 나타난다. 앞서 가는 4번 부부가 아담과 하와 같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왜 인간을 지으셨는지 조금 이해가 될 듯하다. 이 길도 알타비아 1코스 중 일부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와 말들을 보니 여기가 에덴이지 싶다.


   묵묵히 걷다보니 나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 햇살에 스러지는 한 방울 이슬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 하려고 잠시 뭉쳐놓은 진흙덩이 같기도 하다. 비가 오면 곧 물에 흩어져 버릴 것 같은 존재다. 그래도 동생들 잘 둔 덕에 이렇게 세상 구경 잘 하고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단지 체력이 달려서 동생들과 다니려면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다. TNT회원들과 다니려면 재력이 달려서 돈가랭이가 찢어지고 동생들과 다니려면 체력이 달려서 몸가랭이가 찢어진다.

   개울을 건너자 작은 산장이 나타난다. 그랑 화네스 산장이다. 앞마당에는 여러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깃발까지 든 걸 보면 어느 단체에서 소풍을 왔나보다.


   이 산장에서 맥주를 마시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아예 비옷을 입고 출발했다. 당나귀들도 처마 밑으로 바짝 피신을 한다. 얼마를 더 내려오니 유시아 데 화네스 산장이 나타난다. 꽤 큰 산장이다. 이 산장이 유명한 곳이라고 하여 이 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계속 내려왔다. 앞서 가는 4번 동생은 비옷 아래쪽을 묶어서 마치 배트맨 같다.


   조금 더 내려오니 해가 번쩍 난다. 길가 웅덩이에서 소들이 물을 먹고 있다. 하염없이 걸어 내려오니 페데루 산장이 나타난다. 중간에 우릴 만난 서양 남자가 우리가 라가주오이 산장부터 온다고 했더니 ‘long day’라고 했듯이 정말 길고 긴 하루였다.

   버스가 오려면 시간이 좀 남아서 개울가로 내려가 발을 씻었다. 오늘 20킬로 이상 걷느라고 정말 발이 고생 많이 했다.

   페데루에서 462번 버스를 타고 롱게가에서 460번 버스로 갈아탄 후 우리 차가 있는 코르바라로 가야한다. 어디서 내려야하나 신경을 쓰고 가다가 4번 동생이 갑자기 롱게가한다. 밖을 보니 정류장에 longega라고 쓰여있다. 반사적으로 내렸다. 눈 밝고 눈치 빠른 동생 덕에 지나치지 않고 잘 내렸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근처에 460번 버스 타는 곳이 안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제부가 5분 정도 더 가야한다고 했는데 너무 빨리 내렸나보다. 안내소로 가 봐도 문이 굳게 닫혀있으니 막막하다. 제부가 근처에서 한 젊은 남자에게 물으니 여기서 한 5킬로 더 가야한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더 기다렸다가 462번 막차를 타고 다시 더 내려가니 거기도 롱게가다. 롱게가 동네가 넓어서 정류장도 여러 개 있나보다. 그곳에서 무사히 460번 버스를 타고 코르바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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