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9. 7. 5. 몽블랑 기행문 1

아~ 네모네! 2019. 8. 7. 23:27

인생 뭐 별거 있어?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975~ 716

장소 :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뚜르 드 몽블랑(TMB)이란 말은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번 들어왔다. 몽블랑 둘레길이라는데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몽은 산이란 뜻이고 블랑은 희다는 뜻이니 몽블랑은 흰 산이란 뜻이다. 만년설이 항상 덮여있으니 흰 산이라고 했나보다. 그런데 경복 48산우회에서 여기에 간다기에 염치 불구하고 따라 나섰다. 순전히 대장인 제부 빽만 믿고 허연 머리를 들이 밀었다.



에귀 디 미디 ( 75)

- 딸네 집에 가냐고? -

   공항버스에 오르니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 혼자다. 짐만 날라다주고 집으로 가는 남편을 보더니 운전기사가 날더러 딸네 집에 가느냐고 묻는다. 하긴 머리 허연 할망구가 혼자 해외여행 갈 일이 딸네 집 가는 거 말고 뭐가 있을까 싶다.

   인천공항에서 4번 동생 부부와 5번 동생, 장미숙씨까지 모두 만나 체크인을 했다. 48산우회원 일곱 명은 삼일 전에 미리 떠났다. 미리 가서 체르마트 트레킹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제부의 어머니 제사가 전날인 관계로 오늘 떠나기로 했다. 생각할수록 효자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환승하여 제네바 공항에 이르니 체르마트 트레킹을 마친 회원들이 샤모니로 오는 중이라고 문자가 왔다. 우리도 버스를 타고 샤모니로 가서 먼저 간 일곱 명과 합류한 후 호텔에 짐을 맡겼다. 샤모니 중심가에는 몽블랑을 처음 오른 소쉬르와 발마의 동상이 몽블랑을 가리키며 서 있다.


- 에귀 디 미디 -

   100유로 정도를 주고 샤모니 멀티패스를 끊었다. 여기는 경로 할인이 된다. 2주일간 버스와 케이블카를 사용할 수 있는 패스다. 그런데 경로만 여권이 필요한 줄 알았더니 모두 여권을 내란다. 멀티패스에 사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제부가 한국에서 미리 예약한 덕에 많이 기다리지 않고 표를 받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에귀 디 미디 전망대(3842m)로 올라갔다. 갑자기 3000미터 이상 올라가면 고산증이 생길까봐 알바님이 준 고소약을 비행기에서 미리 먹었다. 이곳 전망대는 15년 전에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데 여러 시설물이 새로 들어섰다. 특히 유리로 만든 전망대가 특이하다. 유리 방 안에 들어가니 공중에 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길게 서 있다. 대기 시간 30분이라고 쓰여 있다. 한참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제부는 벌써 사진을 찍고 나온다. 장미숙씨와 나도 뒤 늦게 들어가 폼을 잡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이 시간을 많이 끌까봐 그런지 전속 사진사가 각자의 핸드폰을 받아서 찍어준다.

   날씨가 쾌청한 덕에 눈 덮인 알프스를 눈이 시리도록 감상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레우쉬에서 남보랑 산장까지 ( 76)

   샤모니에서 버스를 타고 레우쉬로 이동하였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1801m까지 올라간다. 첫 시작점에서 성공적인 종주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고 산행을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니 기차가 나타난다. 벨레뷰역이다. 기차로 알프스를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탄 기차다.


   조금 더 내려가니 출렁다리가 보인다. 히말라야 브릿지다. 네팔도 아닌 알프스에서 웬 히말라야 브릿지인가 의아했는데 네팔에서 본 다리와 똑 같이 생겼다.


   다리를 건너 트리코고개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평원에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여 지루한 줄 모르겠다.


   트리코고개에 오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우리도 여기서 한 숨을 돌리고 산행을 계속했다.


   미야지 산장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산장 앞에는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소 가까이 가서 사진을 찍었다. 이 소들은 늘 손님들과 사진을 찍었는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식사 후 계속 걷다가 트뢱산장을 조금 지나니 화장실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한다고 화장실만 보면 소변이 보고 싶다. 안으로 들어가니 톱밥이 든 부대 자루와 국자가 놓여있다. 변을 보고 톱밥을 덮으라는 것 같다. 이렇게 하니 냄새도 안 나고 파리도 꼬이지 않으니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한참을 내려가니 동네가 나타나고 성당이 보인다. 우리는 이곳이 노트르담 성당인 줄 알고 다 왔나보다 착각을 했다. 제부가 안내판을 보더니 노트르담 성당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성당에서는 마침 결혼식이 진행 중이다. 들러리로 온 꼬마들인지 예쁘게 차려입은 꼬마들이 문 앞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놀고 있다. 축가로 아베마리아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경건하고 성스럽게 들리는지 진한 감동이 나에게까지 밀려든다. 문 앞의 남자에게 물으니 이곳은 노트르담 성당이 아니란다. 노트르담 성당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모르겠단다.


   여기서 마을길을 4키로 정도 더 가니 노트르담 성당이 나타난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 장식이 화려하다. 본 성당 오른쪽 뒤에는 옛날 성당인지 아담한 크기의 성당이 또 있다. 화단에 하얀 꽃이 보이기에 가까이 가보니 나뭇가지에 소라를 잔뜩 걸어놓았다. 누구의 솜씨인지 미소가 절로 번진다.


   여기서 산길을 계속 오르니 오늘의 숙소 남보랑 산장이 나타난다. 벽에 걸린 액자를 보니 다식판 같은 무늬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걸 본 딴 것인지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 다식판을 본 딴 것인지 궁금하다.


  오늘은 10시간 동안 18.5키로를 걸었다.

 

남보랑 산장에서 모테 산장까지 ( 77)

   6시 반에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반에 출발했다. 남보랑 산장은 시설도 훌륭하고 음식도 좋았다.


   2756m에 있는 떼뜨 노르 데 푸르까지 가려면 1300m를 올라가야한다. 밤에 빨아 널은 빨래가 마르지 않아 5번 동생은 배낭에 빨래를 주렁주렁 매달았다.


   5번 동생은 조금만 쉬고 빨리 먼저 출발하려고 한다. 자신의 걸음이 느려서 남들에게 지장을 줄까봐 걱정이 돼서 그런가보다. 대원 중 가장 어리고 얼굴도 예쁘니 누가 업고라도 갈 텐데 뭐가 걱정인줄 모르겠다. 혼자 업기 힘들면 교대로라도 업고 갈 것 같은데 말이다. 가장 노땅인 내가 문제다. 아차하면 낙동강 오리알 되게 생겼으니 죽자 사자 걸어야한다.

   본옴므고개에 오르니 눈이 나타난다. 고개에서 조금 내려와 라면을 먹었다.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고 파이팅을 외친 후 힘차게 출발하였다.


   콜데푸르 고개에서 이번 산행의 최고점인 떼뜨 노르 데 푸르(2756m)에 올랐지만 안개가 가득해 주변 경관은 보지 못했다.


   다시 고개로 내려와 하산을 서둘렀다. 눈길을 내려오는 대원들이 개미처럼 작게 보인다.


   나는 겁이 많아서 조심 조심 걸어 내려오는데 용감한 미숙씨가 숙련된 솜씨로 순식간에 썰매를 타고 내려간다.


   다른 대원들도 이걸 보더니 너도 나도 썰매를 탄다. 정석님은 미끄럼을 타다가 자빠져서 팔다리가 공중으로 올라가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내려가는데 대장님이 붙잡아서 겨우 멈췄다. 5번 동생 표현을 빌자면 배낭은 크고 사지가 위로 들려 자빠진 거북이 모양이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배꼽 잡고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난다. 총무님은 스틱이 부러졌지만 다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눈길을 지나니 물이 철철 넘치는 계곡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조심 또 조심 물을 건넜다.


   계속 내려오니 환상적인 꽃밭이 나타난다. 미숙씨와 5번 동생, 나는 탄성을 지르며 꽃밭에 앉아 엎어져서 찍고 자빠져서 찍고 마냥 사진을 찍어댔다.


   한 바탕 영화 한 편 찍고 대원들이 쉬고 있는 물가로 내려오니 물에 발을 담그고 쉬고 있다. 대사님은 물속에서 미끄러져 무릎을 다치는 바람에 약을 바르고 있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일어나 모테 산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빤히 보이는 모테 산장이 가도 가도 가까워지지 않는다. 뙤약볕에 포장길을 걸어가려니 죽을 맛이다. 길가에는 웬 차 뒤에 소들이 줄줄이 모여 있다. 가까이 가보니 차 안에서 우유를 짜나보다. 소들이 스스로 차 안으로 올라가 젖을 짜고 밖으로 나온다. 보면 볼수록 신통방통하다.


   모테 산장에 도착하니 모태에 다시 들어갔다 나온 듯 힘이 쪽 빠진다. 여자들은 41실에 들어가 편안하게 지냈는데 남자들은 서양 사람들과 마구간 같은 방에서 불편하게 지냈다고 한다.

   식사 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가니 숙박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함께 식사를 한다. 식당은 천장에 닭장도 걸어놓고 소의 목에 거는 워낭으로 장식해 놓았다. 한참 식사를 하는데 한 직원이 이상한 기계를 밀고 들어온다. 무슨 판지 같은 것에 구멍이 잔뜩 뚫려있는데 이것이 기계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볼수록 신기하다. 우리 옆의 스페인 사람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신이 나서 합창을 한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 와인을 마시며 환담을 나눴다. 쉐프님이 스스로 앞에 나와 사회를 보며 한 말씀씩 하란다. 다들 기분이 좋아 한 마디 하는데 오던 길에서 만났던 한국인 부부를 다시 만났다. 동국대를 나왔다고 하는데 부부가 TMB 종주를 하고 있단다. 부부가 모두 건강하여 이렇게 걸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싶다. 하긴 4번 동생 부부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어찌나 춥고 바람이 매서운지 쫓기듯 방으로 들어왔다. 이 날도 16키로를 걸었다.

 

모테산장에서 꾸르마예르까지 ( 78)

   아침마다 총무님의 지도로 체조를 하고 출발한다. 48산우회의 탄탄한 조직력이 느껴진다. 스틱 하나를 잡고 허리 운동, 어깨 운동, 팔 다리 운동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한다. 체조를 마치고 손을 맞댄 후 아자! 아자! 파이팅까지 외치고 힘차게 출발했다.

   모테 산장을 떠나 세이뉴 고개까지는 표고차 650m를 올려야한다. 숨이 턱에 닿을 쯤 세이뉴고개 정상에 올랐다. 해발 2500m가 넘으니 눈이 나타난다.


   세이뉴고개를 넘으면 이태리 땅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산우회 깃발을 들고 파이팅을 외친 후 하산을 시작했다. 이 깃발은 승관님이 아들에게 부탁하여 만들었다는데 발대식 때부터 중요 기점마다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마 해단식 때도 식당 벽에 붙이고 할 것 같다.


   고개에는 바람도 차고 거세게 불어서 쫓기듯 하산하여 조금 내려오니 작은 건물이 있다. 무슨 박물관처럼 생겼는데 여러 가지 사진과 산악장비들이 전시되어있다. 우리도 들어가 구경을 했는데 그곳 관리인 여자가 우릴 보고 현지 가이드가 있느냐고 한다. 없다고 하니 “GOOD”하며 엄지를 치켜든다. 현지가이드는 없지만 대장 가이드가 있으니 전혀 어려움이 없다.


   한참 내려오다가 바람이 좀 약해질 즈음 식사할 곳을 찾았다. 엘리자베타 산장 아래 개울가에서 라면을 끓여 점심을 먹었다. 미숙씨는 우리가 오던 길로 안 오고 개울 건너 쪽으로 계속 가고 있다. 거기는 건널 곳이 없으니 되돌아오라고 해도 무슨 배짱인지 계속 간다. 보다 못한 정석님이 얕은 곳을 찾아 이리로 오라고 친히 건너가서 데리고 온다.


   눈앞에 설산을 바라보며 커피까지 마시니 이 보다 더 멋진 식당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다.


   짐을 정리한 후 배낭은 길가에 두고 엘리자베타 산장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꽤 유명한 산장이라고 하여 여기서 맥주를 시켜 먹었다. 맥주로 입가심까지 하니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그늘하나 없는 비포장 길을 마냥 내려오려니 산채로 바비큐가 될 지경이다. 제일 뒤에 쳐져서 한참 내려오니 조그만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서 쉬고 있다. 옆에는 작은 연못도 있는 것이 그런대로 햇빛을 피할만하다.


   콤발호수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다시 올라가 미야지 호수를 보러 갔다. 따가운 햇볕을 무릅쓰고 얼마를 올라가니 황량한 너덜 속에 미야지 호수가 나타난다. 자갈밭 속에 네 개의 호수가 있다. 호수 바닥까지 내려가려면 한참을 내려가게 생겼다. 내려가도 그늘 하나 없으니 모두들 내려가지 말자고 한다. 대장님도 어쩔 수 없이 그냥 내려오기로 했다.


   다시 콤발호수 삼거리로 내려와 쿠르마예르로 향했다. 어제가 힘든 날이고 오늘은 쉬운 날이라고 하더니 오늘이 더 힘들다. 몇 시간씩 햇볕 속을 걸으니 머리가 핑 핑 돈다. 가도 가도 끝날 것 같지 않던 길도 드디어 끝이 나고 라비 사일레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앉거나 아예 누워서 차를 기다린다. 우리도 배낭으로 줄을 세워놓고 그늘에서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버스가 나타난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줄이고 뭐고 없이 마구 달려들어 차를 탄다. 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화를 내보지만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만 질서가 없는 줄 알았더니 이태리 사람들은 한 술 더 뜬다. 우리는 어차피 단체이니 제일 뒤에서 천천히 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다. 버스가 터져나갈 지경이다.

   꾸르마예르에 도착하여 트라베르미어 호텔을 찾았다. 대장이 구글 지도를 보며 걸어가는데 눈 밝고 총기 넘치는 작가님이 저기 있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개울가에 바짝 붙은 호텔이라 방에서도 물소리가 천둥소리처럼 요란하게 들린다.

   모처럼 인간 세상에 내려왔더니 정신이 어리어리하다. 4번 동생은 등산화 바닥이 떨어지려해서 등산화를 사러 가겠다고 한다. 그러자 총무님이 스틱좀 사다 달라고 부탁한다. 지난 번 눈썰매 타다가 부러져 여태 한 쪽만 짚고 다녔단다. 여자 네 명이 아무리 동네를 돌고 돌아도 등산 용품 파는 가게가 없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봐도 이리 가랬다 저리 가랬다 하니 피곤하여 기절할 지경이다. 마침 똘똘이 5번 동생이 호텔에서 가져온 지도를 보여주며 한 여자에게 물으니 여기 있다고 꼭 짚어준다. 성당 앞에서 옆으로 가니 과연 스포츠 용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우리가 헤맬 줄 짐작했는지 대장님도 나왔다. 한 가게에 들어가 등산화와 스틱을 샀다.

   쇼핑을 무사히 마치고 식당에 들어가 모처럼 인간답게 우아한 식사를 했다. 피자도 시키고 파스타도 시켜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호텔로 돌아와 계곡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뽀송뽀송한 침대에서 단잠을 잤다.

 

꾸르마예르에서 보나티산장까지 ( 79)

   출발 전 호텔 로비 앞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5번 동생이 한 마디 한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 하면요. 우리 형부 생일이예요.”

사람들은 오늘이 대장 생일이냐고 저녁에 축하파티를 하자고 한다.

아침 체조를 하고 손을 모아 대장이 가자! 가자!’ 외치면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 보나티!’하고 외친 후 출발한다.


   까르푸에 들러 점심에 먹을 간식을 사서 각자 배낭에 챙겼다.


   산에 오르며 멋진 경관이 나타날 때마다 사진을 찍느라 시간을 끄니 거북이 걸음인 나도 겨우겨우 따라간다.


   오늘도 1300m이상 올려야하니 힘든 날이다. 그래도 길이 워낙 아름다워 여기가 지상인지 천상인지 몽롱한 가운데 걸음을 옮긴다. 대원들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은 전혀 없고 만족한 미소가 넘친다.

   나는 걸음이 느려 여자들로 구성된 B팀과는 한참 떨어져서 간다. 그래도 C조가 천천히 뒤에서 받쳐주니 안심은 된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점심을 먹고 나면 고소라서 외부 기압이 낮은 탓인지 평소에 먹지 않던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줄방구가 나오는데 맘 놓고 뀔 수가 없다. 내 꽁무니에 바짝 붙어서 오니 최대한 참아야한다. 그러다 정 참을 수가 없으면 큰 소리로 얘기를 하면서 뀌던가 계곡물 소리가 시끄러울 때 뀌어야한다. 앞서 가시라고 해도 C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그러는지 절대 앞서지 않는다.


   그 유명한 싹스 능선에서 점심을 해먹고 대장 생일 축하를 했다. 차린 것도 없이 Happy birth 노래를 부른 후 또 깃발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하도 찍어대니 아까운 깃발 닳아 버릴 지경이다.


   싹스 능선에서 바라보는 설산은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일반적인 종주팀에서는 여기를 거치지 않고 그냥 싸핀 고개로 간다는데 우리는 대장의 탁월한 선택으로 기막힌 선경을 보게 되었다.


   싸핀 고개를 지나 보나티 산장으로 가는 길도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다. 가끔씩 쉴 때면 다들 넋을 잃고 주변 풍경에 빠져든다.

   무아지경의 꽃밭이 나타날 때마다 사진을 찍느라 걸음을 뗄 수가 없다. 어찌 보면 사진 찍는 사람들은 욕심이 많은 지도 모른다.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어서 아니 아까워서 마구 찍어대는 것 같다.


   하루 종일 걸어 해 떨어질 즈음 보나티 산장에 도착했다. 남자 여덟 명은 모두 한 방에 들고 여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묵게 되었다. 저녁 식사 후 남자들 방에 모여 와인 한 잔 하며 다시 한 번 대장 생일축하 파티를 하였다.

   보나티 산장은 물이 부족한지 샤워코인을 주고 이걸 넣어야 더운 물이 나온다고 한다. 어찌나 잠깐 나오는지 비누질을 했다간 낭패를 당할 것 같아 물로 대충 씻고 나왔다

 

보나티 산장에서 에델바이스 산장까지 ( 710)

   출발 전 모자를 찾으니 모자가 없다. 어제 저녁까지 분명히 쓰고 왔는데 어디다 흘렸는지 모르겠다. 배낭을 뒤집어엎어 놓고 아무리 뒤져도 없다. 이 살인적인 햇볕을 어떻게 피할까 걱정하며 밖으로 나오니 5번 동생이 모자 하나가 더 있다고 빌려준다. 과연 5번은 준비의 여왕이다. 빨래 말릴 때 쓸 빨래집게는 물론이고 젖은 빨래를 배낭에 고정할 옷핀까지 준비해서 우리에게 나눠줬다.

모자를 찾다보니 체조도 못하고 허둥지둥 그냥 출발했다. 오늘은 페레고개를 넘어 스위스의 라 포울리까지 가야한다. 족히 20키로는 걸어야한다.

   엘레나 산장을 향해 내려오는데 웬 말이 짐을 잔뜩 싣고 좁은 산길을 걸어 올라온다. 우리는 옆으로 비켜서고 마부는 있는 힘껏 말을 잡아끈다. TMB종주하는 사람들의 짐을 다음 산장까지 날라다주는 것이다. 우리는 열흘 간 사용할 모든 짐을 각자 지고 가니 말에게 이런 신세를 질 일이 없다. 대신 우리가 말이 되고 소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지고 다녀야한다.


   엘레나 산장에서 페레고개까지는 계속 오르막길이다. 페레고개에서 찍은 사진을 보니 세프님이 곧 돌아가시게 생겼다. 연일 저녁마다 와인을 마셔서 그런가보다.


   페레고개를 넘으면 스위스다, 고개에서 내려서니 또 눈길이다. 그런데 이 눈길을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는 팀이 있다. 유럽 사람들은 유난히 산악자전거를 많이 탄다. 그냥 걸어 올라오기도 힘 드는데 무거운 자전거까지 끌고 올라오다니 절로 입이 벌어진다.


   한참을 내려와 라플라목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예전에 목장이었는데 지금은 산장으로 개조해 음식을 팔고 있다. 정원에는 구두에 예쁜 꽃들을 잔뜩 심어놓았다.


   마당에는 대팻밥을 잔뜩 깔아놓았는데 강아지 한 마리가 여유롭게 앉아 휴식을 즐기고 있다.


   천상의 화원 같은 길을 마냥 걸어 내려와 라 포울리에 도착했다. 동네가 제법 커서 우리가 묵을 에델바이스 호텔까지도 한참 걸어야했다. 호텔 앞에는 마모트 석상이 있는데 그 손을 잡으면 복이라도 오는지 열심히 붙잡고 사진을 찍는다.

   모처럼 큰 동네에 왔으니 저녁을 먹은 후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피자집에 들러 와인과 피자를 시키고 또 대장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손님들이 쳐다본다. 셰프님이 어제의 생일 축하라고 하니 그들도 Happy birth 노래를 부른다. 우리가 의아해서 바라보니 그들도 그중 한 명의 생일을 축하하는 중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맛난 후식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