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바이스 산장에서 아르뻬떼 산장까지 ( 7월 11일 )
오늘도 “가자! 가자! 아르뻬떼”를 외치고 힘차게 출발하였다. 알프스는 습곡산맥이라 그런지 변성암이 많다. 곳곳에 납작납작한 돌이 많고 지층도 눌리고 휘어져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오늘은 주로 스위스 마을길을 걸었다. 한 동네를 지나는데 잔디밭에서 뭐가 움직인다. 자세히 보니 잔디 깎는 기계다. 이리저리 다니다가 포장된 곳이 나오면 얼른 후진하여 방향을 바꾼다. 볼수록 신통방통하다.
이세르 마을로 들어서니 여러 채의 닭장이 보인다. 이층집도 있고 정원도 그럴싸하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도 미끄러지지 않게 잘 만들어놓았다. 호화 맨션 닭장이다. 그런데 한 암탉을 보니 등의 털이 다 뽑혀 허연 살이 드러났다. 아마도 첩질 하다가 본처에게 털을 다 뽑힌 모양이다.
다른 마을로 가니 집 앞에 온갖 장식물로 단장한 집이 나타난다.
수 십 종류의 예쁜 조각품에 탄성을 지르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댔다. 일반적인 종주팀은 이 구간을 차 타고 그냥 지나간다는데 생각할수록 안타깝다. 우리는 입 안에 넣고 자근자근 씹으며 음미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씹두 않고 삼키는 꼴이다. 한 집 앞에는 빗자루가 세워져 있었는데 미숙씨는 빗자루 타고 날아다니는 마녀의 흉내를 낸다.
숲길에도 나무조각품이 많았는데 이런 저런 조각품으로 장식하여 트레커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스위스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가슴 깊이 느껴졌다.
여기 저기 눈길을 돌리며 걷다보니 상펙스 호수가 나타난다. 호수에 비친 건물이 그림 같다. 여기서 물가로 내려가 너도 나도 사진을 찍었다.
물가에는 한 남자가 두 아들을 데리고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아빠가 미끼를 가져오라고 했는지 꼬마가 부지런히 달려가 미끼를 가져온다. 삼부자의 모습이 호수보다 아름답다.
시내로 들어가 내일 점심 때 먹을 음식과 오늘 저녁 먹을 맥주와 안주를 샀다. 그런데 이곳 마트에서는 카드도 유로도 받지 않는다. 총무님이 현금인출기에 가서 스위스 프랑으로 인출하여 겨우 계산했다.
아르뻬떼 산장에 도착하니 말이 짐을 부리고 있다. 내가 시킨 건 아니지만 공연히 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소나 말을 볼 때마다 인간보다 힘도 세고 덩치도 큰데 왜 인간에게 쩔쩔 매며 일을 하는지 의아하다. 그냥 뿔로 팍 받아버리거나 뒷발로 냅다 걷어차면 될 텐데 말이다.
넓은 마당에는 의자도 있고 캠프화이어 하는 자리도 있다. 텐트를 치는 사람도 많이 있다. 우리는 얼른 빨래를 하여 마당의 빨랫줄에 널었다. 짐이 무거워 옷을 최소한으로 가져왔더니 거의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
저녁 식사 후 남자들은 다시 마당에 나가 캠프화이어를 하며 그 날의 피로를 풀었다.
아르페떼 산장에서 레 페우티 산장까지 ( 7월 12일 )
아르뻬떼 고개를 넘는 코스는 가파르고 난이도가 높아서 일반 팀들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날씨도 좋고 이 길이 특히 아름답다고 대장님이 이 코스를 택했다. 일기가 안 좋으면 안 가려고 했다는데 연일 날씨가 좋으니 이 길로 간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TMB 코스를 걷다보면 비 오는 날이 많다는데 우리는 연일 쾌청이다. 생각할수록 우리 팀의 누군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아닌가 싶다. 아니면 내자지덕을 많이 쌓았나?
- 옛날에 한 선비가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올랐다. 많은 친구들이 와서 축하를 하니 이 선비가 그동안 부인의 내조가 컸다는 뜻으로
“내자지덕이요~”했다.
곁에 있던 친구가 가방끈이 조금 짧았는지
“내 자지 덕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했다.
그랬더니 다른 친구가
“그게 그 소리요~”했단다. -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아무 것도 잘 한 것이 없는데 어느 누구의 덕으로 이렇게 좋은 날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왔는지 알 수 없다고 하자 이구동성으로 채대장님 덕이란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맞는 것 같다. 4번 부부는 어머니 제사를 지내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삼 일 늦게 출발했다. 아들의 행동을 기특하게 생각한 어머니가 특별히 보살펴주는 것 같다.
아르뻬떼 고개로 가는 길도 그야말로 천상의 화원이다. 예쁜 꽃들이 방끗방끗 인사를 하니 힘든 줄도 모르겠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대장님이 바위틈에 손을 넣고 무얼 한다. 자세히 보니 물을 받고 있다. 능선에는 물이 없으니 미리 받아서 지고 가 점심을 해먹으려나보다. 대사님도 물을 받았는데 얼마나 손을 깊숙이 넣었는지 마치 바위를 붙잡고 통 사정을 하는 듯하다.
물을 받을 때마다 주로 대사님과 작가님이 지고 올라간다. 필진 필형 두 형제가 자원하여 노새가 되었다. 대사님은 늙은 노새가 되었고, 작가님은 젊은 노새가 되었다. 그런데 둘 다 C조라서 나보다 뒤에서 천천히 오려니 힘이 몇 배는 더 들었을 것 같다. 걸음도 빠른 사람들이니 얼른 가서 내려놓으면 좋으련만 C조의 책임을 다하느라 굳이 내 뒤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천천히 올라온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너덜 길도 드디어 끝나고 아르뻬떼 고개 정상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깃발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었다. 셰프님이 깃발을 들고 독사진을 찍는데 마침 바람이 불어 그야말로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사진 촬영까지 끝내고 하산을 하는데 그야말로 급경사 너덜길이라 죽을 둥, 살 둥 제정신이 아니게 내려왔다. 옆에 있는 빙하를 바라보며 끝없는 돌길을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무념무상으로 마냥 걸었다.
급경사길이 끝나자 환상의 화원이 펼쳐진다. 앞서 가는 사람들이 이승의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답다.
얼마를 더 내려오니 개울이 나타난다. 너도 나도 발을 벗고 족욕을 즐기는데 미숙씨가 갑자기 옷을 입은 채로 텀벙 뛰어든다. 하여튼 예측불허의 여인이다.
족욕을 마치고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오니 한 산장이 나타난다. 여기서 블루베리 파이와 맥주를 먹었는데 이 집 주인은 요가를 하는 사람이라 한다. 마당에는 부처님상도 있고 특이하게 꾸며 놓았다.
배도 마음도 든든히 채우고 다시 출발하였다. 계속 내려와 라 페우티 산장에 짐을 풀었다. 여기도 사람들이 넘치는지 건물 옆에 게르를 만들어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숙소도 외양간을 개조한 듯 맨바닥에 매트리스만 깔아놓았다.
레 페우티 산장에서 샤모니의 네이게스 호텔까지 ( 7월 13일 )
오늘은 발므고개를 넘어 다시 프랑스로 들어가는 날이다. 오늘도 출발 전 준비 운동으로 몸을 풀었다.
발므 고개까지는 800m이상 올라가야한다. 미숙씨와 나는 4번 부부가 옆의 능선으로 빠지는 것 같아 그쪽으로 따라갔더니 그게 아니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옷도 모습도 똑 같고 우리가 스틱으로 손짓을 하니 그쪽에서도 손짓을 한다. 4번 동생이 그곳이 아니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되돌아왔다. 다 와서 완전 삼천포로 빠질 뻔했다.
발므 고개에 올라서니 몽블랑이 눈앞에 펼쳐진다. 고개 정상에는 스위스와 프랑스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비석이 있다.
산장 앞에는 짐을 잔뜩 진 말이 풀을 뜯고 있다.
산장에서 맥주로 갈증을 풀며 가져온 간식을 먹었다. 여기서도 몽블랑을 향하여 환호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몽블랑을 바라보며 몽블랑과 사랑을 나누었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는 안개가 심해서 아무것도 못 보았는데 이번에는 속살까지 완전히 들여다본 기분이다. 발므고개에서 내려오는 길도 환상 그 자체다. 야생화가 어찌나 많은지 찍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이런 꽃밭을 볼 때 마다 잔칫상을 받는 느낌이다. 이런 꽃상을 칠십 번이 넘게 받았으면서 아직도 꽃을 탐하는 내가 도둑년 심보라는 생각이 든다.
여자들은 꽃밭에 엎어져 사진 찍기 바쁜데 C조는 군대 사열이라도 하는 듯 질서정연하게 행진을 하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기막힌 조 편성이다. C조는 항상 쉴 때도 같이 쉬고 갈 때도 같이 간다.
우리 B조는 오합지졸이다. 조장인 4번 동생은 조원이 오는지 안 오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니 달아나 남편 따라 A조에 붙어서 가고 5번 동생과 미숙씨도 뚝 떨어져서 간다. 나는 C조 앞에 바짝 붙어서 가니 B조는 와해되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다. 내가 우리는 간 쓸개 팀이라고 했더니 셰프님 왈 오늘의 화두는 와신상담으로 하자고 한다.
C조는 매일 매일 사색하는 화두가 있다. 어떤 날은 구도자의 날이고 어떤 날은 반추의 날이다. 주필님은 입만 뻥끗하면 인생 뭐있어? 하는데 주필님의 인생에는 뭔가 있는 듯하다. 마치 철학박사님 같다. C조는 한 마디로 철학자의 팀이다. 게다가 셰프님은 사자성어의 달인이다. 무수한 사자성어가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데 그 많은 걸 어떻게 외웠는지 모르겠다.
알바님은 A조인데도 불구하고 B조의 조장 노릇을 대신해준다. 헷갈릴만한 길이 나오면 기다려서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산우회 회장을 오래 했다더니 회원들 관리하는 게 몸에 배었나보다.
내려가는 길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여자들은 또 연못에 이끌려 물가로 내려간다. 여기서도 또 몽블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런 데서 안 찍으면 정말 몽블랑을 무시하는 것이다.
포세티 정상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었다. C조는 오늘도 자기들끼리 함께 앉아서 식사를 즐긴다.
포세티 정상에서 보는 몽블랑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몽블랑을 보고 또 보며 하루 종일 몽블랑을 만끽했다.
몬트록이란 기차역에 와서 버스를 타고 샤모니 외곽의 호텔로 갔다. 여자들은 호텔 방에 들었는데 남자들은 게르에서 자게 되었다. 우리만 쾌적한 곳에서 자려니 미안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대사님은 게르 문고리의 쇠에 머리를 부딪쳐 머리에서 피가 났다고 한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샤모니 시내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갔다. 가는 길에 광장을 지나갔는데 인공 암벽이 설치돼 있고 사람들이 엄청 많이 모여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오늘이 샤모니 축제 마지막 날이고 셰계 스포츠클라이밍 대회가 열리는 날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선수 서채현양도 7번으로 출전했는데 16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슬아슬한 묘기에 암벽에 매달린 선수의 몸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대회가 끝나고 호텔로 돌아와 쉬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린다. 비도 안 오는데 웬일인가하고 베란다로 나가보니 불꽃놀이가 한창이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그 소리가 산에 부딪쳐 울려대는데 그야말로 산이 으르렁 거리는 것 같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늘 샤모니에 들어왔는데 이런 축제까지 열려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정말 우리 팀은 복이 많은 것 같다.
브레방전망대에서 몬테고개까지 ( 7월 14일 )
오늘도 날씨는 쾌청이다. 게르 뒤로 몽블랑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내자지덕 때문인지 외자지덕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연일 날씨가 좋으니 모두 만족도가 두 배로 높아진다.
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승강장에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우리는 샤모니 패스가 있으니 표를 다시 살 필요가 없다. 케이블카 관리인 여자의 모습이 멋지다.
2525m에 있는 브레방 전망대에서 내리니 몽블랑이 코앞에 보인다. 다시 한 번 몽블랑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러댄다.
여기서 눈길을 걸어 브레방 고개로 내려갔다. 설산이 어찌나 장엄하고 웅장한지 먼저 가는 사람들이 설산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눈길을 지나 한참 내려오니 패러글라이딩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네팔에서 한 번 타봤더니 어찌나 머리가 아픈지 아무 미련이 없다.
해발고도 2000이란 레스토랑 앞에서 또 몽블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도 찍어 대서 몽블랑 닳게 생겼다.
몬테고개를 향해 산길을 마냥 걷는다. 걸으면서도 C조는 인생을 논하느라 바쁘다. 단테의 신곡을 비롯하여 베아트리체까지,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십자군 전쟁까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막힘없이 토론한다.
어쩌다가 메틸알콜과 에틸알콜 소리가 나온다. 셰프님이 그 분자식이 CH 뭐인데 생각이 안 난다고 한다. 내가 메탄올은 CH₃OH이고 에탄올은 C₂H₅OH라고 헸더니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놀라는 시늉을 한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철학자 팀 C조를 열흘간 따라다녔더니 나도 모르게 풍월을 읊었다.
마냥 걷다보니 락블랑 호수 갈림길에 왔는데 그냥 통과한다. 버스 시간 때문에 생략하기로 했단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또 락블랑 호수 가는 길이 나온다. 몇 몇 대원이 가고 싶다고 했는지 다시 락블랑 호수로 간단다. 어차피 갈 거면 아까 갈림길에서 갈 껄 그랬다. 그게 더 가까웠을 듯하다.
오르막길을 따라 마냥 오르니 어느 듯 호수가 보인다. 호수에서도 몽블랑이 보인다. 물결이 없다면 몽블랑이 물에 잠길 듯하다. 락이 호수라는 뜻이고 블랑이 희다는 뜻이니 흰 호수다. 하긴 하얀 몽블랑이 물에 잠기면 흰 호수가 될 듯하다. 호수 위쪽으로 까마득한 높이에 락블랑 산장이 보인다. 우리는 여기가 락블랑 호수인 줄 알고 호숫가에서 놀고 있는데 4번 동생과 총무님은 계속 올라간다. 나중에 들으니 산장 앞에 있는 호수가 진짜 락블랑 호수란다.
우리는 짝퉁 락블랑 호수만 본 셈이다. 그래도 요새는 짝퉁이 더 멋지게 보이는 세상이라 짝퉁 락블랑도 우리가 보기에는 진품 못지않게 멋있다.
호숫가에서 한참 놀다가 다시 내려왔다. 처음 갈림길에 도착하기 전 4번 동생과 총무님이 내려온다. 마지막 버스가 끊어지기 전에 가려고 몬테고개를 향해 정신없이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서서 뭔가를 찍는다. 가까이 가보니 웬 뿔 달린 짐승이 풀을 뜯고 있다. 아이벡스다. 아이벡스는 그 멋진 뿔 때문에 조만간 멸종될까봐 걱정이다. 내려오면서 아이벡스를 네 마리나 보았다.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몬테고개에 오니 벌써 마지막 버스가 지나간 후다. 다시 몬트록 기차역까지 와서 다른 버스를 타고 샤모니로 돌아왔다. 어제는 샤모니 변두리에 있는 호텔에 묵었는데 오늘은 중심가에 있는 처음 묵었던 호텔로 왔다. 맡겼던 짐을 다시 찾아 남자들 여섯 명은 이 호텔에 묵고 총무님과 대장님, 그리고 여자 네 명은 레온이란 빌라에 묵었다. 빌라는 얼마나 오래된 건물인지 걸을 때마다 바닥이 삐걱거린다. 그래도 시내가 가까우니 좋은 점도 있다.
시내로 들어가 멋진 식당에서 오랜만에 맛난 저녁을 먹었다. 식당 앞에는 한 동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기어 올라가 놀고 있다. 올라가기 좋아하는 것은 동양 아이들이나 서양 아이들이나 똑 같다.
몽블랑 베이스캠프를 향하여 ( 7월 15일 )
밤사이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산에는 눈이 내려 에귀디미디가 하얗게 변했다. 오늘은 기차를 타고 몽블랑 베이스켐프쪽에 가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니 어릴 적 소풍 가던 기분이 되어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다. 산악을 달리는 협궤열차라서 철로 가운데 톱니로 된 레일이 또 있다.
2412m에 있는 산장에 도착하니 날씨도 흐려서 어찌나 추운지 덜덜 떨린다. 송박사님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라 미숙씨가 토시를 빌려주어 종아리를 가리고 작가님은 내가 빌려준 비옷을 입었다.
베이스캠프까지는 못 갔지만 빙하 있는 곳까지 가서 주변 경관을 보았다. 빙하 앞에서 또 깃발을 꺼내들고 사진을 찍는다. 이 깃발 정말 그동안 엄청 수고했다.
트램을 타고 내려오며 산행 첫날 우리가 올랐던 트리코 고개를 바라보니 열흘 전 일이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아득하다. 벨레뷰역에서 내려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올라가는데 이제 TMB종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 힘든 길을 어찌 다 가려나? 혼자 속으로 걱정이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레우쉬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샤모니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인터넷에 맛있는 햄버거집이 있다고 그 집을 찾아가 햄버거 열 두 개를 시키는 동안 여자들은 저녁에 먹을 반찬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다. 소고기와 연어에 야채까지 바리바리 사들고 빌라에 들어가 냉장고에 쟁여 넣은 후 햄버거 집에 가니 아직도 못 샀다고 한다. 햄버거 사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제 주문을 했다는 것이다.
성당 앞 의자에 앉아 기다리니 드디어 햄버거를 들고 온다. 지가 맛있어봤자 햄버거지 별 맛이 있으랴 생각했는데 한 입 먹어보니 그게 아니다. 빵이 바삭바삭하고 고소한 게 내가 지금까지 먹어본 중 최고다. 그래서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됐나보다. 처음에는 반도 못 먹을 줄 알았는데 그 큰 햄버거를 다 먹었다. 다들 미어져라 터져라 우겨 넣는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또 케이블카를 타고 브레방 전망대에 올라갔다. 여기서 벨라샤산장을 거쳐 나머지 구간을 종주하였다.
오늘도 아이벡스가 보인다. 이곳에는 아이벡스가 퍽 많은가보다.
한참을 내려오니 큰 부처님 상 같은 것이 보인다.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까막눈이라 그냥 통과했다. 메를렛 주차장을 지나 기차역까지 부지런히 내려왔지만 기차 떠날 시간이 다 됐다. 먼저 간 사람들은 벌써 기차에 탔는데 4번 동생이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아무리 달리려 해도 그게 내 맘 같지 않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기차에 오르니 한숨이 절로 난다. 샤모니로 돌아가는 기차에 앉으니 그동안의 모든 어려움이 눈 녹듯 사라져 다들 느긋한 표정이다. 무언가 큰일을 마친 느긋함이다.
샤모니에 오자 마자 맥주집에 들러 우선 한잔했다. 다들 무사히 잘 마쳤다는 기쁨에 웃음이 절로 난다. 한 말씀 좋아하는 셰프님이 또 한 마디씩 하라고 하자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고 대장님도 그동안 잘 협조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저녁에는 빌라에 모여 쫑파티를 하였다. 점심 때 시장 봐온 소고기를 굽고 연어회도 곁들여 상추쌈에 입이 미어져라 포식을 했다. 보드카에, 와인에 술도 푸짐했다.
빌라에는 샤워시설이 미비하여 호텔에 묵는 남자들 방에 가서 도둑샤워를 하였다. 남자들은 맥줏집에서 2차를 즐기고 있다.
샤모니에서 제네바로 ( 7월 16일 )
이 날은 샤모니 마지막 날이다. 오전에 쇼핑들을 하고 점심 먹은 후 제네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오늘 점심도 햄버거다. 다들 샤모니 햄버거 맛에 푹 빠졌나보다. 오늘은 점잖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 2층으로 가서 제대로 의자에 앉아서 먹었다.
샤모니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모르지만 이 아름다운 마을에 다시 한 번 올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미숙씨는 샤모니가 세 번째라고 하더니 구석구석 잘도 안다.
점심을 먹고 예약해 놓은 승합차에 올라 제네바로 향했다. 제네바 공항에서 일곱 명의 대원들은 암스테르담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가고 여자 네 명과 제부는 돌로미테 여행을 계속하려고 베네치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벅차고 아름답고 환상적인 여행이었다. 송박사님이 인생 뭐 있냐고 하듯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여기 저기 구경 다니다 마지막 눈 감는 날
“구경 한 번 잘 했네~”하며 가고 싶다.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7. 22. 돌로미테 기행문 2 (0) | 2019.08.18 |
---|---|
2019. 7. 16. 돌로미테 기행문 1 (0) | 2019.08.18 |
2019. 7. 5. 몽블랑 기행문 1 (0) | 2019.08.07 |
2019. 3. 30. TMB 1차 연습산행 (0) | 2019.04.04 |
2018. 6. 20. 동유럽 트레킹 4 (불가리아) (0) | 2018.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