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이 사람 잡네
TMB 1차 연습산행 -
이현숙
기간 : 2019년 3월 30일 ~ 31일
장소 : 청계산, 옥산, 유명산, 용문산
경복고 48회 동문 산우회에서 올 여름에 몽블랑 둘레길을 간단다. 이름하여 뚜르 드 몽블랑(TMB)이다.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 꼭 가고 싶었던 곳이다.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고 기회가 오기만 기다렸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기회가 오긴 왔는데 선뜻 따라나서기가 어렵다. 4번 동생과 장미숙씨는 남편이 경복고를 나왔으니 당당한 회원인데 5번 동생과 나는 완전한 무자격자다. 단지 제부가 48회 동창회장이라는 빽만 믿고 슬그머니 얼굴을 들이 밀었다.
나이 들수록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잘 해야 한다는데 이건 한 마디로 똥배짱이다. 할머니가 되면 뵈는 게 없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다. 연습 산행을 두 번 한다는데 5번 동생과 나는 형편상 1차만 참가하기로 했다.(우리 친정에는 딸이 여섯이라 우리끼리 카톡방에서 번호로 부른다.) 산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점점 자신이 없어지고 괜히 간다고 했나 후회도 된다. 머리는 허연데다가 얼굴은 쪼그랑 바가지를 해가지고 이 얼굴을 들이밀면 회원들이 아연실색할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산행 며칠 전 제부가 각자의 준비물과 상세한 일정표를 보내왔다. 나는 빵 11개와 김이다. 가장 가벼운 걸로 맡겨준 배려가 고맙다.
30일 9시 30분에 국수역에 모이기로 했다. 전철 시간표를 확인하고 또 확인하여 상봉역으로 갔다. 4번 동생 부부는 옥수역에서, 5번 동생은 회기역에서 타고 온다고 하여 동생들이 있는 칸으로 갔다. 토요일인데도 다행히 다 앉을 수 있었다. 혹시 장미숙씨가 잘못 찾아올까봐 중앙선을 타라, 용문행을 타라 하며 메시지를 보내도 아무 소식이 없다. 남편이 태워다 주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앞에 앉은 동생에게 장미숙씨는 남편이 국수역까지 태워다 주려는 모양이라고 하니 제부가 피식 피식 웃는다. 우리 자매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남편이 해주기도 전에 먼저 설치고 돌아다니니 평생 보호 받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 어쩌면 아들 하나에 딸이 여섯이나 되다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 남이 챙겨주길 바라고 있다가는 밥 굶을 판인데 어찌 기다릴 수 있겠냐 말이다.
국수역에 내리니 예상대로 미숙씨와 남편 오사장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작년이었나? 미숙씨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었다. 거기서 오사장님을 본 후 오늘 처음 보는데 10년은 젊어 보인다. 모자의 위력이 대단하다.
미숙씨와 나는 롯데문화센터 등산반에서 만나 같이 산에 다닌 게 15년이 넘었다. 그동안 해외여행도 무수히 갔는데 같이 룸메이트를 했다. 하지만 그 남편이 제부와 동기 동창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작년 봄에 동생들과 안나푸르나 트레킹 갔을 때 기행문을 써서 미숙씨에게 보냈다. 하이캠프 롯지에 머물렀는데 그곳 식당 유리창에 ‘경복 48산우회 2016년 11월’ 이란 글이 붙어있었다. 4번 동생과 제부는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글은 읽던 미숙씨가 나의 제부가 자기 남편과 동창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미숙씨 남편도 제부의 사진을 보고는 자기 친구가 맞다고 했단다. 세상 참 좁다. 내가 동생들과 해외 트레킹 다녀올 때마다 기행문을 보내면 그런 동생 둔 내가 부럽다고 그 제부가 존경스럽다고 내 기행문에 댓글도 달았다. 그 후 미숙씨는 경복 동창회 모임에서 제부와 4번 동생에게 인사도 하고 얼굴도 익혔다. 몇 년 전 부터 자기도 우리 팀에 끼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번에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국수역 대기실에서 각자의 짐을 꺼내 나누어지고 청계산으로 향했다. 오사장님은 친구들과 미숙씨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몇 걸음 가지 못해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전국적으로 비 예보가 있었지만 숙소에 도착한 후에 내리기를 빌며 걸음을 재촉했다.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꿈속에서 헤매는 기분이다. 형제봉에 도착하니 보이는 것은 안개뿐 몽환적인 분위기에 정신이 아득하다.
안개비에 촉촉하게 젖어가며 걷고 또 걷는다. 비에 젖은 낙엽색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며 하염없이 걷고 걸어 청계산 정상에 도착하니 여기도 안개가 자욱하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점심을 먹기로 했다. 김밥을 꺼내 요기를 하고 된고개로 향했다. 이름이 왜 된고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길로 올라가려면 경사가 급해서 엄청 될 것 같기는 하다.
말머리봉을 지나 옥산으로 가는 길엔 물기를 가득 머금은 분홍꽃이 자주 보인다. 궁금하여 카메라로 찍어놓고 저녁에 숙소에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핸드폰으로 찍어 모야모에 물어보니 올괴불나무라고 한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싸락눈이 내리다가 우박까지 쏟아진다. 비바람에 쫓기듯 발걸음을 재촉하여 옥산 정상에 이르니 온 몸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옥산에서 농다치고개를 향해 부지런히 내려오니 아스팔트길이 나오고 중미산 쉼터가 나타난다.
여기서 유명산으로 올라가는 급경사 계단이 보인다. 날은 춥고 어두워지는데 유명산을 오를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다. 원래의 계획은 소구니산을 지나 유명산 정상에서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거였다. 하지만 제부가 회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여기서 버스를 타고 유명산 휴양림으로 가기로 했다.
쉼터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해물파전과 막걸리를 마시는데 밖에는 폭설이 쏟아진다. 따땃한 난로가에서 막걸리 한잔하며 바라보는 설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이미 14.5km를 걸었으니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는 제부가 고맙다. 제부가 이렇게 일정을 축소하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항상 플러스 알파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제부도 나이를 먹기는 먹었나보다. 많이 너그러워졌다고 해야 하나?
버스를 타고 유명산 휴양림 아래 동네에 내리니 식당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한 분은 정육점도 있는데 공연히 미리사서 지고 왔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푸념을 한다.
관리사무소에 들러 여자들은 감투봉, 남자들은 참나무방 열쇠를 받아 숙소로 갔다. 사무소에서 숙소까지 또 눈을 맞으며 1km를 걸었다. 원래는 11명이라서 야영 데크도 하나 빌렸는데 한 사람이 오지 못해서 텐트는 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 날씨에 밖에서 자려면 동태 되기 십상일 꺼다.
저녁 식사는 남자들 방에서 자칭 타칭 셰프님이 민물매운탕을 끓였다. 잘 아는 매운탕 집에 부탁하여 이곳으로 직접 택배로 부쳤다고 한다. 관리소에서는 택배를 받아줄 수 없다고 하여 직원아가씨에게 사정사정하여 겨우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안주 삼아 와인과 소주, 맥주를 마셨다. 비에 젖어 잔뜩 움츠러들었던 몸이 훈훈해지며 노골노골 내려앉는다. 빠가사리에 참게를 넣은 매운탕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국물의 깊은 맛이 오묘하다.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다 먹나 걱정했는데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냄비가 바닥을 드러낸다.
오늘 산행에는 참석 못한 산악회장님이 내일 간식으로 먹으라고 떡을 사가지고 숙소로 직접 왔다. 미리 몇 개 먹어보니 야들 야들 쫄깃쫄깃한 게 그야말로 명품 떡이다. 회원들에게 선물로 스카프까지 하나씩 나눠준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선물까지 받았다. 고이 간직했다가 몽블랑 갈 때 가지고 가야겠다. 그야말로 어마무시하게 포식을 하고 여자들은 숙소로 돌아왔다. 밤에도 눈은 계속 내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를 보는 듯하다.
6시에 일어나 어젯밤 빨아 널은 발토시를 만져보니 전혀 마르지 않았다. 인덕션의 불을 약하게 해 놓고 거기에서 말리려고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잘 지키고 서서 이리저리 뒤집으며 잘 말렸는데 차를 마시느라 잠시 깜빡한 사이 발토시가 타서 녹아 버렸다. 인덕션에 나일론이 눌어붙었으니 앞이 캄캄하다. 집에도 없는 인덕션을 물어내게 생겼구나 하며 낙담하고 있는데 4번 동생이 커다란 칼을 빼들더니 벅 벅 벅 긁어낸다.
이런 저런 사고를 칠 때마다 한심한 생각이 든다. 이렇게 정신이 없으니 이걸 머리라고 달고 다녀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4번 동생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하는 해결사다. 언젠가 해외여행 가서 와인 병따개가 없을 때도 송곳을 이용하여 기어이 코르크 마개를 박살내서 와인을 마셨다.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기로 하여 수저와 미리 끓여 놓은 미역국을 들고 남자 숙소로 가니 다들 꿈나라다. 제부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30분만 더 있다 오라고 한다. 국 냄비와 수저는 그곳에 두고 다시 여자 숙소로 돌아와 짐도 챙기고 수다를 떠는데 제부에게서 전화가 온다. 식사 준비가 다 됐으니 오라는 것이다. 다시 남자 숙소로 가니 벌써 밥상을 다 차려놓았다. 70평생에 이렇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남자에게 밥상 받기는 난생 처음이다.
남은 밥은 김으로 돌돌 말아 점심 때 먹기로 했다. 사과와 떡, 삶은 계란까지 챙겨 숙소로 돌아와 출발 준비를 했다. 동생들은 다들 동작이 빨라 벌써 배낭을 지고 방을 나서는데 동작이 굼뜬 나는 허겁지겁 빨랫감을 배낭에 쑤셔 넣고 방을 나섰다. 다 잘 챙겼는줄 알았는데 집에 와 보니 양말 한 짝을 두고 왔다. 미숙씨가 사준 여름용 울 양말이다. 몽블랑 가서 신으려고 아껴두었다가 이번 연습 산행에 신고 왔는데 커튼 밑에 들어있었나 보다. 에고 내 팔자야~
숙소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어주고 산악회장님은 집으로 가고 다시 9명이 출발하였다.
겨우내 구경 못한 설경을 한 방에 만끽하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지루한 줄도 모르겠다.
‘이건 완전 로또 당첨이다.’ ‘대박이다.’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하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올 겨울 눈 구경 못한 한을 오늘 다 풀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느라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유명산 정상에 이르니 그야말로 설국 그 자체다.
정상에서 내려와 배넘이고개로 가는 길은 환상적인 설경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앞서 가는 동생들의 모습이 설국을 향해가는 설국공주들 같다.
시베리아 벌판 같은 설원 위로 달려가는 미숙씨는 알 수 없는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가 버릴 것 같은 두려움까지 느껴진다.
배넘이고개를 지나 용문산 쪽으로 올라가니 점입가경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걷다보니 용문산 정상의 레이더가 보인다. 벌써 정상에 다 왔나하고 기뻐했더니 그게 아니다. 레이더 기지로 가는 아스팔트길은 곧장 정상 쪽으로 가지만 등산로는 기지를 돌고 돌아 1.7km를 가야한다. 그래도 설경에 정신을 뺏겨 지루한 줄 모르겠다.
장군봉 갈림길을 지나 조심조심 걷는데 앞에서 제부가 거기 내려올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제부를 보는 순간 미끄덩하고 주저앉았다. 비 온다는 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폭설이 올지는 몰랐다. 아이젠을 챙겨오지 않은 게 큰 실수다. 얼마 전 골다공증 검사를 했는데 골밀도가 –4.0밖에 안 된다. 의사는 골다공증이 너무 심하다고 절대 넘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넘어져서 고관절이 나가면 최소 6개월 입원이고 이렇게 오래 누워 있다 보면 태반이 폐렴에 걸려 죽는다는 것이다. 안 넘어지려고 아무리 조심해도 속수무책이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오르고 또 오르니 정상인 가섭봉이 나타난다. 여기도 안개에 파묻혀 뵈는 게 없다. 간단히 인증사진만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 길은 더 한심하다. 발을 내 디딜 수가 없다. 멀쩡해 보이는 데도 대책 없이 미끄러진다. 두 동생과 제부는 날다람쥐처럼 시야에서 사라진다. 5번 동생도 가섭봉 계단 길을 오를 때는 앓는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사라진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홍삼까지 먹어가며 연습했다더니 그 효과가 나타나나보다.
미숙씨는 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다가 앞서서 눈에 홈을 파주면서 내려간다. 내가 다른 복은 몰라도 동생 복 하나는 확실하게 타고 났다. 친 동생들도 잘 해주는데 굴러들어온 동생도 나를 너무나 잘 케어해준다. 우리 딸 이름도 미숙이 인데 친딸보다 더 잘 보살펴주니 그저 감지덕지할 뿐이다. 미숙씨가 만든 홈을 밟고 내려와도 연신 미끄러진다.
눈길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이러다가 산에서 날밤 새우는 게 아닌가 겁이 더럭 난다. 이 웬수 같은 눈이 언제나 없어질지 원망스럽기만 하다. 오전에는 환상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는데 하루도 못 되어 마음이 180도 바뀐다. 생각할수록 인간의 마음이 간사스럽다.
그래도 뒤에서 두 남자가 받쳐주니 한결 마음이 안정되고 안심이 된다. 미끄러지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뒹굴면서 사투를 벌인다.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되고 팔 다리에서는 쥐가 나려한다. 이러다간 몽블랑 가기 전에 골로 가게 생겼다. 그래도 죽으란 법은 없는지 용문사 가까이오자 바닥에 흙도 조금씩 보이고 바위도 보인다. 흙과 바위를 골라 밟으며 내려오니 그래도 속도가 조금 붙는다. 검은 흙과 바위를 보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용문사에 도착해 눈이 없는 길을 밟으니 살 것 같다. 선발대 두 남자는 미리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켜놓고 제부와 두 동생은 은행나무 옆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두 얼굴이 퍼렇게 변했다. 보면 볼수록 4번 동생 부부는 천생연분이다. 체력도 성격도 환상적인 결합이다. 결혼 전에 친정 엄마가 점을 보러 갔더니 점쟁이가 결혼시키면 안 된다고 했단다. 결혼하면 30살이 되기 전에 둘 중 한 명 죽는다고 해서 엄마가 엄청 반대했는데 아마 점쟁이가 그 순간에 정신이 나가 헛소리를 했나보다.
잠시 기다리니 뒤의 두 남자도 내려와 함께 식당으로 갔다. 이미 능이버섯 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식당 의자에 앉으니 제부가 오늘 18.5km 걸었다고 수고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식당 사장님이 우리 집에 온 손님들 중 최고로 많이 걸은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운다.
회비를 얼마씩 내면 좋으냐고 물으니 5만원씩만 내란다. 아니 숙박비만 해도 1인당 2만원씩인데 어째 이렇게 쌀까? 누군가 후원금을 두둑이 냈나보다 생각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최승관씨가 못 와서 미안하다고 10만원 찬조금을 냈단다. 뜨끈한 저녁식사를 하고 식당차에 오르니 전신이 두들겨 맞은 듯 노곤하다. 그저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게 감지덕지할 뿐이다. 이번 연습 산행에서 잘못 보여 회원들이 저 할망구 빼라고 하면 몽블랑 근처도 못 가고 잘릴 것 같아 죽자 사자 기를 쓰고 내려왔다. 솔직히 말해서 5번 동생이야 영계니까 눈요기감으로라도 데려가겠지만 이 퇴계는 누가 데려가겠냐말이다. 그저 이런 노약자를 붙여준 회원들께 감사할 뿐이다.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7. 5. 몽블랑 기행문 2 (2) | 2019.08.08 |
---|---|
2019. 7. 5. 몽블랑 기행문 1 (0) | 2019.08.07 |
2018. 6. 20. 동유럽 트레킹 4 (불가리아) (0) | 2018.07.30 |
2018. 6. 20. 동유럽 트레킹 3 (루마니아) (0) | 2018.07.30 |
2018. 6. 20. 동유럽 트레킹 2 (슬로바키아) (0) | 2018.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