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8. 6. 20. 동유럽 트레킹 2 (슬로바키아)

아~ 네모네! 2018. 7. 30. 17:39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 626)

- 오굴린에서 브라티슬라바까지 -

   호텔 밖으로 나가니 어제 헌화한 꽃들도 보이고 촛불은 여전히 타고 있다. 미숙씨와 나도 묵념을 하며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다른 동물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살생을 하는데 왜 인간들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이념을 위해서 무수한 피를 흘리는 것일까? 동물 중 가장 미련한 것이 인간 아닐까?


   오늘은 크로아티아를 떠나 슬로바키아로 가는 날이다. 슬로바키아의 수도가 브라티슬라바다. 슬로바키아는 들어봤지만 브라티슬라바라는 말은 난생 처음 듣는다. 아무리 해도 안 외워져서 세 조각을 내어 외웠다.

  브라++슬라바, 브라자와 티셔츠, 그리고 슬라브족이니까 슬라바로 외우니 금방 외워진다.

   크로아티아에서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를 거쳐 슬로바키아까지 가려면 국경을 세 번 통과해야한다. 한 휴게소에 들렀는데 유명 관광지 안내판에 번호를 붙이고 그 밑에 번호별로 50가지 안내 팜플렛을 칸칸이 넣어 두었다. 이거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도입했으면 좋겠다.

   이곳의 버스들은 한 번 쉴 때마다 처음에는 15분 휴식, 다음 번에는 30분 휴식을 해야 한다. 그러니 빨리 가자고 할 수도 없고 하루에 12시간 이상은 운전할 수 없고 저녁에 주차한 후에는 또 11시간이 지나야 운행할 수 있다. 물론 승객의 안전을 위한 거라지만 너무 번거롭다.

  원래는 EU에 가입된 나라들이라 그냥 통과할 줄 알았더니 국경 통과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요즘 난민 문제로 국경 통과가 까다로워졌단다.

   오늘은 7시간 이상 버스를 타는 관계로 김사장님이 차내 음악 감상실을 열었다. 클래식을 들려주더니 오스트리아에 들어오자 도레미송을 들려준다. 여행사 사장 안 해도 DJ하면 먹고 살 수 있겠다. 김사장님이 핸폰에 다운 받은 것들인데 딸이 부른 검은 고양이 네로도 나온다. 이래저래 이번 여행은 명품여행이다.

   슬로베니아 국경에서 화장실에 가는데 1인당 0.5유로씩이다. 최사장님은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정연씨와 나는 둘이 딱 붙어서 들어갔다. 하여튼 잔머리 굴리는 데는 한국인만한 사람들이 없다. 오스트리아로 들어가 그라쯔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신성반점이라는 중국집이다.

   다시 출발하여 휴게소에 들렀는데 원장님이 저쪽에서 손짓을 하며 부른다. 가까이 가니 전통 화장실 같은 것이 있다. 무슨 일인가 기다리니 문이 덜컥 열리고 남자 술주정뱅이 마네킹이 침을 뱉고 방구를 끼고 난리가 났다. 뭐라고 뭐라고 술주정도 한다. 길 가는 나그네에게 이런 걸 만들어 기분 전환을 시켜주는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다.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하여 가이드 유라를 만나 구시가지 구경을 했다. 모차르트가 연주한 집도 보고, 리스트가 연주했던 곳도 보았다. 왕이 대관식 하러 성당으로 걸어간 길에는 왕관 모양의 동판이 박혀있다.


   미카엘탑과 UFO다리도 보고 폭이 1미터짜리 집도 보았다.


   저녁을 먹고 나오니 웬 오산에서 온 오토바이가 있다. 태극기도 붙어있고 R.O.K라고 한국 국명도 써 붙였다. 오토바이로 세계여행을 하는가보다. 오산 번호판도 선명하다.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고성의 야경을 보러 올라갔는데 마침 스팅의 공연이 있다. 우리는 예약을 안 했으니 밖에서 음악을 들으며 디스코 춤을 추었다. 고성 정원에서 하는데 스팅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소리는 생음악으로 다 들었으니 그야말로 대박이다. 김사장님은 스팅 팬이라고 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고성 구경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긴 줄을 이루고 서있다. 아마도 스팅의 싸인을 받으려는 사람들 같다.

   고성에서 나와 브라티슬라바 골목길을 보았다. 여러 가지 조각품들이 널려있어 재미를 더한다. 하수구 구멍에서 나오는 사람이 보이자 금옥씨가 끌어 올리는 포즈를 취한다.


말라파트라 국립공원 ( 627)

- 브라티슬라바에서 질리나까지 -

   아침에 일어나 UFO 다리를 건넜다. 차도 밑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인도가 따로 있다. UFO 다리는 말 그대로 미확인 비행물체처럼 생겼다. 다리 밑에는 화장실도 있다. 그런데 문을 여니 그대로 열린다. 들어가서 큰일까지 보고 나오니 횡재한 기분이다. 소변 조금 보는데도 0.5유로씩 내는데 말이다.


   UFO 다리 밑의 벽화도 일품이다. 강 건너에서 바라본 고성과 브라티슬라바 도시가 동화 속 같이 아름답다.


   아침 식사 후 브라타슬라바에서 버스로 3시간 이동하여 테르초바로 갔다. 김사장님은 어제의 흥분이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는지 버스에서 스팅의 노래를 틀어준다.

   말라파트라 국립공원에 도착하여 자노시코브 계곡 트레킹을 했다. 말라파트라의 말라는 little 즉 작다는 뜻이다. 작은 파트라 산맥이라고 한다. 3시간 정도 걸었는데 좁은 협곡에 가파른 사다리가 걸쳐져 있어 아슬아슬하다.


  중간에 있는 산장에서 수프를 시켜 도시락을 먹었다. 산장 앞에는 넓은 초원이 있어 가족 나들이하기 딱 좋게 생겼다. 애완견과 함께 소풍 나온 부부도 보인다.


   점심 식사 후 다시 계곡 산행을 하였는데 여전히 급경사의 사다리가 우리를 겁나게 한다. 미끄러 떨어질까봐 네 발로 설설 기었다.


  계곡 산행을 마치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질리나로 갔다. 얼마나 지겹길래 이름이 질리나 일까? 외우기는 쉽다. 질리나에는 기아 자동차 공장이 있어 도로 포장이 잘 되어 있다.

   길가에는 해바라기 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데 해바라기라는 영화에서 열연한 소피아 로렌이 생각난다. 질리나는 2차 대전 시 독일 영토였고 유대인 학살에 쓰인 살상용 가스가 여기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늘은 한국과 독일이 월드컵 경기에서 맞붙는 날이다. 독일을 이기리라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2:0으로 이겼다. 전후반이 다 끝나 갈 때까지 0:0 으로 비기다가 막판에 김영권과 손흥민이 멋진 골을 넣었다. 독일이 우리 팀을 너무 얕잡아 보고 방심했나보다. 갑자기 목에 힘이 들어간다.

   호텔에 들어와 짐을 풀고 사우나를 하러 갔다. 사우나실에 들어서는데 한 남녀가 알몸으로 앉아있다. 연인인 듯 바짝 붙어있는데 보기가 민망하여 얼른 나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된다.

 

벨키산 트레킹 ( 628)

- 벨키크라반의 벨키산 -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이동하여 벨키크라반으로 갔다. 벨키산을 오르는 길은 진흙이 많아서 걷는 게 장난이 아니다. 그나마 스틱을 짚은 사람은 나은데 양숙씨는 스틱도 안 가져왔다. 가이드 유라가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서 지팡이 하라고 준다. 기다란 막대를 짚고 가니 산신령님 같다. 길이 찰흙인데다가 비가 오니 그야말로 개떡길이 되었다.


   울울창창 우거진 숲이 원시림을 보는 듯하다. 가슴 속까지 정화되는 것 같고 공기가 달다.


   참배암차즈기, 천마, 구슬잔대, 자주꽃방망이, 왕관갈퀴나물, 구슬잔대 등 그야말로 야생화 천국이다. 안개가 가득한 산길을 걸으려니 천국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안개 속을 헤매며 철사다리를 오르고, 밧줄에 매달려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정상이다. 벨키 1610m라고 쓰인 안내판이 보인다. 정상에는 십자가가 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정상에서 십자가를 벗 삼아 사진을 찍고 조심조심 바윗길을 내려왔다.


   정상아래 조금 평평한 곳에서 간식을 먹는데 안개 속에서 원장님과 정연씨가 올라온다.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상황이라 빨리 하산하기로 했다.


   개떡 같은 길을 걷자니 옷이고 신발이고 땅강아지가 되었다. 우리는 추워서 고어 자켓에 덧바지까지 껴입고 다니는데 가이드 유라는 현지인이라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반바지 차림이다.


   거의 다 내려오니 안개가 조금 걷히고 넓은 풀밭이 나타난다. 오늘은 길이 안 좋아서 6시간 예정인 길을 7시간 30분이나 걸렸다.


   다시 질리나로 돌아와 흙투성이 옷을 벗어 빨래를 하고 시내구경을 갔다. 큰 성당 아래 광장이 있고 분수대가 있는데 그 모양이 예술적이다. 현지인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끄러미 분수대를 바라보고 있다.

 

로우타트라 초폭산 트레킹 ( 629)

- 질리나에서 돌리나까지 -

   이곳 이름은 참 재미있다. 질리고 돌리고 나중에는 자빠트릴 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서 커피를 먹는데 금사장님이 순희씨를 부른다. 여보도 아니고 당신도 아니고 어이~’한다. ‘어이~’는 화요트레킹에서 회원들끼리 부르는 신호다. 내가

이 집은 집에서도 어이~’.” 하니까 결혼 초부터 계속 이렇게 불렀단다. 부부간의 호칭은 유행이 있는 듯하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자기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남편을 오빠라고 부른다. 호칭이야 어떻든 군소리 말고 잘 살아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질리나를 지나 야스나 리조트까지 이동하여 리프트와 협궤차, 곤돌라를 타고 2000미터까지 갔다. 안개가 심해서 아무 것도 안 보인다. 곤돌라 도착 지점에서 중무장을 한 다음 일부 회원은 정상으로 향하고 일부는 그 곳 카페에서 스프를 시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다.

   정상까지 40분은 가야한다고 하더니 10분도 안 걸렸다. 원장님은 김사장님에게 다시 내려가 안 올라온 사람들도 데리고 오라고 한다. 안개 속에 초폭산 2024m라는 팻말이 보인다.


   김사장님이 내려가서 올라오라고 했지만 안개 때문에 아무 것도 안 보이니 안 오겠다고 한다. 올라간 사람만 인증 샷을 찍고 다시 내려와 카페로 갔다. 이곳은 용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카페 앞에는 용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뜨거운 스프를 시켜 준비해간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운 후 하산을 시작했다. 가끔씩 안개가 벗어지며 광활한 산맥이 나타나는데 마치 백두산에 오른 느낌이다. 잎이 다섯 갈래로 갈라져 손가락을 닮은 가락지나물, 나를 잊지 말라는 물망초, 쥐손이풀 등 이런 저런 야생화를 보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내려온다.


   거의 다 내려오니 풀밭에 블루베리가 잔뜩 달렸다. 너도 나도 풀밭으로 들어가 따먹기 바쁘다. 금옥씨는 등산화 밑바닥이 떨어져 당장 등산화를 사야한다고 달리듯 내려간다.


   가이드 유라는 집이 이 근처라고 버스 타고 가버리고, 금옥씨는 가게가 문을 닫아서 등산화를 사지 못했다. 미숙씨는 등산화 위에 양말을 신고 걸으라고 비행기에서 받은 양말을 준다.

   이 날도 찜질로 피로를 풀려고 사우나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사우나실 앞에 뭐라고 쓰여 있다. 우리는 대충 보고 수영복 채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나와서 보니 수영복 입고 들어가지 말라는 것을 거꾸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현지인들이 알몸으로 사우나를 하나보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돌이킬 길은 없고 수영도 하고 물 폭포도 맞으며 즐기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하이타트라 ( 630)

- 돌리나에서 타트란스캬롬니카까지 -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날은 전쟁터에서 적군에게 쫓기듯 짐 챙겨 나오기 바쁘다. 호텔 문을 나서서 짐을 끌고 버스로 가는데 뒤에서 누가 형님~’하고 부른다. 돌아보니 미숙씨가

그거 우리 버스 아니예요.”한다. 어째 버스 기사가 낯설어서 버스 기사가 바뀌었나했더니 같은 호텔에 묵은 중국인들 버스다. 날이 갈수록 정신이 희미해지는 게 비몽사몽이다. 이래가지고 얼마나 해외여행 다닐지 의문이다.

   오늘은 하이타트라산맥의 휴양도시 타트란스캬롬니카로 이동했다. 금옥씨는 등산화 위에 양말을 신고 산행할 참이다.


   버스에서 김시장님이 엿날 동유럽 여행할 때 길가에 콜걸들이 많았다고 하자 최사장님이 마이크를 낚아채더니 현대 근무할 때 소련 출장 온 얘기를 한다. 콜걸이 많아 하나 꿰어찼다는 것이다. 한 번 자빠졌다 일어나면 10달라 인데 일반인 한 달 월급이라고 한다. 구소련이 붕괴되자 동유럽 국가들은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져 무수한 여자들이 길가에 나와 지나가는 차를 세워 매춘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횡설수설 우스갯소리를 하는 동안 목적지에 도착했다.

   10시 반 곤돌라를 예약했는데 바람이 심해서 운행중지다. 원장님과 유라, 김사장님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 중이다. 나머지 회원들은 여기 저기 가게를 돌아다니며 쇼핑하기 바쁘다.



   금옥씨는 돌아다니다가 등산용품 가게에 들러 등산화를 사서 신었다. 등산화 위에 양말을 신은 걸 보고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그야말로 하늘이 도왔다.

   주최 측의 회의 결과 곤돌라는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트램을 타고 하이킹하기로 했다. 트램 타는 곳으로 다시 이동하여 트램을 탔는데 천장이 유리로 되어있고 곰 발자국을 그려 정겹다.


   트램에서 내리니 커다란 곰 모형이 우리를 반긴다. 아마도 여기는 곰이 많은가보다.


   하늘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투명하고 폭포에는 구경꾼들이 바글바글하다. 다시 한참 걸어가는데 길가에 웬 여우가 한 마리 보인다. 며칠을 굶었는지 몸은 바짝 마르고 눈초리는 마냥 슬퍼 보인다.


   야생동물에게 먹을 것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을 깜빡 잊고 빵을 주려고 배낭 쪽으로 가니 여우가 눈치 채고 얼른 배낭 앞에 납작 엎드린다. 나는 하도 기가 막혀

어머~ 얘좀 봐 벌써 알고 이렇게 달려오네.”하니까 김사장님 왈

그러니까 여우죠.” 한다. 정말 여우는 여우다.

   스틱을 곁에 놓고 빵을 꺼내 주려다가 여우에게 물릴까봐 겁이 나서 땅에 던졌다. 하필 빵이 스틱 근처에 떨어졌다. 여우가 순식간에 빵을 낚아채서 달아나는데 내 스틱 손잡이 끈까지 물었다. 내 스틱까지 물고 숲으로 도망가는데 기가 막혀 소리도 안 나온다. 스틱을 찾으려고 여우가 들어간 숲으로 기어 올라갔다. 길이 없어서 나뭇가지에 찔리고 정강이를 부딪쳐서 피가 난다. 그래도 조금 올라가니 작은 공터가 있고 여우는 그새 빵을 다 먹고 또 길로 내려간다. 스틱을 찾아 한숨 돌리고 내려오니 이 여우놈 또 내 배낭에 와서 냄새를 맡으며 열려고 한다. 안 열리자 이번에는 미숙씨 배낭으로 가서 또 냄새를 맡는다. 좋은 일 하려다가 혹 붙였다. 그래도 스틱 찾은 게 천만 다행이다. 앞으로도 산행이 많이 남았는데 난 스틱 없으면 시체다.


   산장에서 수프와 김사장님이 만들어준 삼각 김밥을 먹었다. 산장에는 어린이 놀이방까지 있다. 주인집 애들인지도 모른다.


   식사 후 계속 걷는데 하늘도 맑고 전망이 기막히다.


   곤돌라 종점에 오니 곤돌라가 움직인다. 우리는 곤돌라를 타고 정상으로 가려했지만 예약이 안 되어 리프트를 타고 다른 봉우리 쪽에 가기로 했다. 오전에 예약한 것은 이미 취소됐고 오후 것은 이미 다른 예약자들이 있어 못 탄다고 했다. 곤돌라까지 예약하는 건 처음 본다.

   리프트를 타고 안개 속으로 들어가는데 바람이 세고 기온이 낮아 동지섣달 개 떨 듯 떨었다. 언제 끝이 나나 앞이 안 보이니 한 없이 길게 느껴진다. 안개 속에 희미하게 건물이 보이고 잽사게 내려 패딩에 고어 자켓에 있는 옷은 모조리 꺼내 입었다.

   우리는 그래도 쉬지 않고 올라왔는데 리프트가 정지했다. 최사장님과 순자씨는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다행히 잠시 후 리프트가 움직이고 우리 모두 내렸다.


  옆으로 조금 이동하여 산 너머의 경치를 바라보는데 어찌나 바람이 센지 도저히 서 있기도 힘들다. 2190m 롬니스키 전망대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얼른 리프트 타는 곳으로 돌아왔다.


   리프트에서 동사할 지경까지 이른 우리들은 리프트를 타지 말고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그곳 직원도 빨리 걸어 내려가라고 한다. 사실 바람이 강해 도중에 리프트가 멈추면 공중에 매달려 천국으로 직행할 것 같다. 내려가는 길은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길인데 지그재그로 내려가 그렇게 경사가 급한 것은 아니다. 강풍 때문에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스틱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걸었다. 모두들 누가 어디 오나 돌아볼 겨를도 없이 쫓기듯 걸음을 옮겼다. 한여름에 이렇게 떨기는 난생 처음이다.

   너덜 길을 내려와 조금 평평한 곳에 이르자 주위에 나무도 있고 바람도 약해져 걸을 만했다. 내려오다가 한국 청년을 만났는데 이곳을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놀란다. 자기는 현지에 와서 현지인의 소개로 왔는데 2개월 정도 더 여행할 거라고 했다. 가이드 유라도 한국 트레킹 팀은 처음이라고 한다.

   리프트 타던 곳에 내려와 하행 곤돌라를 타려고 하는데 이것도 안 움직인다. 또 다시 죽기 살기로 걸어 내려왔다. 곤돌라 시작점까지 오니 다들 지쳐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한다. 포장도로가 나타났으니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유라가 택시를 불러 두 번에 걸쳐 호텔로 갔다.

이날 저녁은 가이드 유라와 작별 인사를 했는데 하금옥씨에게

“You are very strong.”이란다. 미숙씨와 착각했나보다. 미숙씨는 한 마디로 수퍼우먼이다. 슬리퍼를 신고 하루 종일 걸었는데도 끄떡없다.

   슬로바키아는 안개와 비로 얼룩져 끝까지 우리의 애간장을 다 녹인다. 그래도 모두 무사히 내려온 것만 감지덕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