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8. 6. 20. 동유럽 트레킹 1 (크로아티아)

아~ 네모네! 2018. 7. 29. 16:36

다시 보는 동유럽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8620~ 711

장소 :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불가리아.

 

   동유럽은 이번 두 번째다. 10여 년 전에 동생들과 관광으로 한 번 간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트레킹을 겸한다고 하여 부푼 꿈을 품고 비행기에 올랐다. 다른 사람들과 가는 여행도 즐겁지만 트레킹을 겸하는 T.N.T (trekking & travel) 팀과의 여행은 특별한 즐거움이 있다.

 

출발~ ( 620)

- 인천에서 이스탄불로 -

   공항버스를 타고 자양동에 이르니 이순희씨 내외가 보인다. 그런데 탈 생각을 안 하고 운전사에게 안탄다고 손사래를 친다. 웬 일인가 싶어 카톡으로 순희씨에게 왜 안타느냐고 물으니 영감탱이가 집에다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푸념을 한다. 하긴 70살이 넘었으니 깜빡 깜빡 하는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올림픽 대로가 주차장을 방불케 하니 예정시간 보다 늦게 도착했다. 순희씨네만 빼고 다 왔다. 김사장님은 이번에도 역시 라면과 비빔밥 등 간식거리를 잔뜩 준다. 주는 대로 트렁크에 집어넣은 후 짐을 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닫은 가게가 많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빈자리를 살핀다. 몇 좌석 앞에 세 자리가 비어있다. 대충 사람들이 오른 후 잽싸게 그 자리로 갔다. 현숙이, 미숙이, 양숙이 세 명의 숙 트리오가 콩나물시루 같이 박혀 11시간 넘게 가려면 죽을 맛이다.

   비행기 문이 닫히고 안내방송이 나오자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간단한 식사 후 세 자리를 차지하고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청했다. 한 잠을 잘 자고 나니 미숙씨와 양숙씨 생각이 떠오른다. 뒤로 가서 미숙씨에게 내가 맡은 자리에 가서 한잠 자라고 하고 난 미숙씨 자리에 앉았다.

 

밤에 보는 두브로브니크 ( 621)

- 이스탄불에서 두브로브니크로 -

   이스탄불 아타투르크 공항에서 환승하여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갔다. 두브로브니크는 이번이 두 번째다. 두브로브니크 성에 오니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성 앞 광장에는 양을 안고 있는 남자와 한 여인의 조각상이 있는 분수대가 있다. 이 조각상은 양치기를 사랑한 여인이 양으로 변했다는 전설을 말하고 있단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 눈에 익은 분수대가 보이고 사람들이 꼭지에 입을 대고 물 마시는 모습도 여전하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플라차 거리는 운하를 매립하여 만든 거리라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난다.


   스폰자궁과 시계탑도 여전하고 성벽을 걷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까마득히 이어진다. 렉터 궁전은 14세기부터 총독이 머물렀는데 임기는 한 달이고 무보수로 일했다고 한다. 렉터는 최고 통치자를 일컫는 말이다. 재임 기간에는 이 궁전을 떠날 수 없게 했는데 부정부패를 막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성벽 쪽으로 걸어가다가 과일 파는 노점상이 있어서 과일로 목을 축이고 성벽으로 올라갔다. 거리 곳곳에는 벽에 매달린 쓰레기통이 있어 아주 편리하고 깨끗하다.


   성벽에 올라서서 보니 밑의 분수대 옆에 사람들이 개미떼 같다.


   성벽을 따라 걷는 길에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니 사방이 탁 트인 게 10년 묵은 체증이 싹 사라지는 듯하다. 올라가지 말라는 글씨는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성벽에 올라앉아 사진을 찍었다. 여기가 최고의 포토존이다.


   성벽을 돌다보니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 앞에는 커다란 닻이 전시되어있고 안에는 침몰된 배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유물들이 보존되어있다.


   성벽 투어를 마치고 호텔에 와서 휴식을 취한 후 야경을 보려갔다. 성으로 다시 들어가 밤의 두브로브니크를 보았다. 입구에 낮에는 못 보았던 문지기가 보인다.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으로 스르르 오르니 마침 해가 진다.


   밤에 보는 두브로브니크는 더욱 더 고혹적이다.


   야경 감상을 마치고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탄성이 터진다. TV 화면을 보니 마침 크로아티아가 한 골을 넣었다. 강적 아르헨티나를 3:0으로 이기니 거리가 온통 축제다. 요즘 러시아 월드컵을 보느라고 온 세계가 들썩인다.

   춤을 추며 돌아다니는 젊은이들,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 차를 타고 빵빵 대며 경적을 울리는 사람들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다. 이 날 두브로브니크는 밤새 흥분의 열기로 잠들지 못했다.

 

블루호수 레드호수 ( 622)

- 두브로브니크에서 스플리트로 -

   아침에 일어나 고등학교 동창 카톡방을 보니 미국 사는 손숙란이 날 찾는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숙란이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다. 고향이 장흥인데 고등학교 1학년 여름과 2학년 여름에 두 달 간 그곳에 가서 같이 지냈다. 대학교 가면서 헤어져 소식을 몰랐는데 미국에 살고 있다니 갑자기 보고 싶다. 언제나 만날 수 있을는지?

   우리가 묵은 발라마르 아르고시 호텔은 바닷가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바닷가로 내려가니 고기 잡는 노인도 보이고 해변가에는 카페도 있다. 카페 앞 샤워장에는 웬 여인들 사진이 있는데 밀림을 배경으로 찍은 뒷모습이 관능적이다.


   오늘은 보트를 타고 바다에서 두브로브니크를 보기로 했다. 아침에 다시 성으로 들어가 플라차 거리를 걷다보니 물건을 나르는 사람,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일상이 시작되고 있다.

   배를 타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두브로브니크의 새로운 얼굴을 보는 듯하다.


   크로아티아의 크로아는 초승달이란 뜻이다. 크로아상빵이 초승달 모양으로 생긴 것도 이런 연유라고 한다.

   부두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네움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었다. 다시 두 시간을 이동하여 블루 호수와 레드 호수로 유명한 이모트스키로 갔다. 먼저 블루 호수로 갔는데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쏟아진다. 비옷과 우산으로 중무장을 하고 호수를 향해 내려갔다. 얼마 내려가지 않아 푸른 눈동자 같은 호수가 나타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호숫가에 다다르자 원장님과 미숙씨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호수로 뛰어든다. 비는 쏟아지는데 물속에서 즐기는 두 사람을 보자 부럽기도 하지만 귀찮은 생각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 들어갔다가는 밑에서 누군가 내 발을 잡아끌 것만 같다. 호수 물에 손만 담그고 다시 올라오는 길로 들어섰다.


   모두 버스로 돌아왔는데 이순희씨 부부가 보이지 않는다. 전화를 하니 올라오다가 길을 잘못 들어 다른 마을로 갔단다. 프리마라는 건물 앞에 있다고 하는데 우리 기사도 마케도니아 사람이라 이곳 지리를 모른다. 네비를 찍어보라고 해도 안 나온단다. 그냥 돌아내려가 보자고 해도 일방통행길이라 그리로 갈 수가 없단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일방통행 길을 역주행하면서 프리마라는 건물 앞에 가니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구경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프리마 찾아 삼만리다.

   금사장님은 이곳 사람들이 영어를 몰라서 말도 안통하고 결국 경찰서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큰 건물 앞에서 기다렸단다. 우리 기사가 길을 잘 모르니 현지인이 자기 차로 큰 길까지 에스코트해줘서 겨우 빠져 나왔다.

   다음은 레드 호수로 갔다. 레드 호수라고 해서 물이 붉은 색인 줄 알았더니 호수가의 암벽이 붉은 색이다. 한 마디로 적벽이다. 블루 호수와 레드 호수는 지하의 석회암이 녹아서 생긴 씽크홀에 물이 고인 호수다. 약간 실망했지만 그래도 더 가까이 보려고 산 쪽으로 기어 올라가 갔다. 빗줄기가 굵어져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대충 사진만 찍고 버스로 쫓기듯 돌아왔다.


   또 두 시간을 이동하여 스플리트로 갔다.

 

메드베닥 트레일 ( 623)

- 스플리트에서 오굴린까지 -

   우리가 묵은 호텔은 살로나 팰리스 호텔이다. 아침에 호텔을 나와 어디로 갈까 망설이는데 김사장님이 근처에 로마유적지가 있으니 가보라고 길을 일러준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일러준 대로 가보니 과연 수많은 석관과 석주들이 아침햇살을 받으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침을 질질 흘리며 석관에 장식된 조각과 조각상 사이를 뛰어다니며 수 천 년 전 장인의 솜씨를 탐닉했다. 이 정도의 석관에 안장 되려면 엄청난 부를 누리던 귀족이었을 텐데 시신은 어디가고 푸른 풀밭에 뒹구는 석관뿐이니 인생무상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2천 년 전 도시를 상상하며 원형극장 쪽으로 가는데 멀리서 양숙씨와 금숙씨, 금옥씨가 나타난다. 함께 원형극장을 찾아 헤매다가 안 보여서 돌아가려는데 앞에 웬 안내판이 보인다. 급히 달려가 보니 원형의 스탠드로 된 극장이 나타난다. 이 극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경기를 관람했을까? 아침 식사 시간이 급하여 사진 몇 장 찍고 호텔 쪽으로 달려갔다.


   식사 후 스플리트 구시가지로 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 궁전을 보았는데 이 황제는 오스만투르크가 이곳을 침공했을 때 그 시신을 관에서 꺼내어 창문으로 바다에 던졌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이 궁전 앞이 바로 바다였고 바닷물이 성 내부까지 들어와 배를 타고 성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살아생전 부귀영화를 누리면 뭐하나 죽어서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물고기 밥이 되었을 테니 이 또한 헛되도다.

 

   구 시가지 한 곳에 이르니 노래하는 남자들이 있다. 둥근 벽과 하늘로 뚫린 천장이 공명을 일으켜 신의 소리를 듣는 듯하다. CD도 파는데 공금으로 하나 사서 우리 사진 USB에 배경음악으로 깔기로 했다.


   성문 밖에는 주교의 동상이 있는데 그 발을 만지면 만사형통이라고 하여 너도 나도 만졌다.


   바닷가 카페 거리에는 SPLIT라고 쓴 커다란 글씨가 있다. 기념으로 여기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아가씨가 오더니 다리를 척 걸치고 사진을 찍는다. 우리도 해보려고 했지만 다리가 올라가지 않아 포기했다.


   스플리트에는 차를 댈 곳이 없어서 차가 돌아오기를 한 없이 기다리다가 겨우 버스를 타고 플리트비체 예체라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메드베닥 트레일 입구에서 가이드 아가씨를 만났는데 아버지와 함께 나왔다. 딸의 이름은 페트라라고 했다. 요르단의 페트라를 생각하니 외우기 쉬웠다. 아버지는 이 국립공원 관리인이라고 했다. 메드베닥은 크로아티어로 곰의 고향이란 뜻이다. 과연 곰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삼림이 울창하다. 아버지는 길옆의 쓰레기를 치우며 우리와 함께 걸었다. 이 숲에는 비치 트리가 많다고 하여 해변(beach)을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고 beech tree 즉 너도밤나무라고 한다.

   간혹 소나무도 보였는데 이것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심은 거라서 죽은 것은 베어낸다고 한다. 나무를 간벌하여 끌어내리던 길이 지금의 트레일이 되었는데 동굴이 많아서 곰들이 겨울잠을 잔다고 한다. 곳곳에 우묵한 웅덩이가 보였는데 이곳이 석회암지대라서 지하수에 녹은 석회암 위 땅이 움푹 꺼져서 생긴 돌리네라고 한다.


   약 세 시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오굴린으로 갔다. 우리 숙소는 프랑코판 호텔이었는데 호텔 옆에 고성이 있다. 체크인 후 고성을 보러갔는데 고성 안에서 스키 모임이 있는지 스키를 쌓아 놓고 남녀노소가 모여 무슨 세미나를 하는 듯했다. 아빠 무등을 타고 보는 아이, 공갈 젖꼭지 문 애기 등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듯하다.


   고성을 나와 냇가로 가니 커다란 동굴이 있다. 석회암 지대라 동굴이 많은가보다. 오굴린의 야경까지 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코르코바 베이 트레일 ( 624)


- 오굴린의 둘째 날 -

   아침에 일어나 다시 동네 한 바퀴 돌았다. 호텔 옆 고성은 성주가 살던 요새인데 그 후 감옥으로 썼다고 한다. 어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세미나를 하던 잔디밭은 텅 비고 무대 위에는 스키만 놓여있다. 오늘도 도브라강의 큰 동굴을 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굴린에서 다시 버스로 두 시간을 이동하여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갔다. 오늘은 코르코바 베이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21km. 오늘 죽었다 싶다. 셔틀버스를 타고 산행 기점에서 내렸다.


   1, 2, 3, 길을 지나 3주차장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길은 완만하고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지루한 줄 모르겠다. 오늘도 가이드 페트라와 아버지는 우리를 편안하게 인도한다. 이 아버지도 딸 바보인지 연방 딸의 사진을 찍느라고 바쁘다. 김사장님만 딸 바보 인줄 알았더니 세계 모든 아버지들은 다 마찬가지인가보다.

   뻐꾹채, 솔체, 장구채, 솔나물, 하늘말나리에 눈을 빼앗기며 걷다보면 여기가 지상인지 천국인지 정신이 몽롱하다. 이곳은 1년에 55일 정도만 맑고 거의 매일 비가 온다고 하는데 오늘은 대가리 벗어질 지경이다. 그래도 나무 그늘로 걸으니 더운 줄 모르겠다. 우리가 걷는 길이 레드 코스인지 나무나 돌에 붉은 원이 그려있다.


   세 시간 정도 걸으니 넓은 풀밭이 나타난다.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산장이 수리중이라 그냥 길가 나무 그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여기서 약간의 급경사 길을 올라갔다. 그래도 다들 국내에서 산행을 하던 사람들이라 별 무리 없이 잘도 걷는다. 나중에는 아무 생각도 없이 무념무상의 경지에 들어간 듯 무의식적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하루 종일 물리치료가 아닌 화학치료를 받는 느낌이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며 온갖 향기를 맡고 걷자니 온몸의 독소가 빠져 나가고 대지의 충만한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것 같다.

페트라는 한국 트레킹 팀은 처음이라고 하며 무지 잘 걷는다고 엑셀런트란다. A⁺⁺⁺ 학점을 받은 기분이다.

   한동안 내려오니 또 앞이 탁 트이면서 초원이 나타난다. 페트라는 저기 보이는 곳이 자기 집이 있는 동네라고 가리킨다. 여기서도 아버지는 딸의 사진 찍기 바쁘다. 아버지의 사랑이 물씬물씬 풍겨난다. 둘이 소풍 나온 것 같다.


   마냥 걸어 3주차장에 이른 후 임도 길을 걷고 또 걸어 호숫가에 이르니 선착장이 나타난다. 선착장 근처에는 넓은 공터가 있고 화장실과 편의 시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까지 배를 타고 와서 즐기고 있다. 우리도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한글로도 써 놨다.


   오늘 우리 산행 시간이 길어서 버스 기사가 오버타임으로 일했다고 왈가왈부한다. 할 수 없이 내일은 한 시간 늦게 출발하기로 했다.


플리트비체 호수공원 트레일 ( 625)

- 오굴린의 셋째 날 -

   아침에 일어나 카톡방을 보니 어제 밤에 올린 사진이 엄청 많다.

어제 저녁식사하면서 최사장님 왈 마누라에게 먼저 방에 가서 샤워하고 침대에 누워 기다리라고 오더를 내렸다더니 헛물만 켰나보다. 순자씨가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사진을 올린 걸 보니 안 봐도 비디오다.

   아침에 밖으로 나가니 고성 앞 분수대에서 독립기념일 행사를 하고 있다. 향을 피우고 촛불을 바친 다음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충일처럼 엄숙한 분위기다. 독립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듯하다.

 

   미숙씨와 동네 구경을 하다가 열린 빵집이 있어 사려고 들어가니 카드도 안 되고 유로도 안 받는단다. 시골이 되어서 환전이 어려운가보다. 할 수 없이 그냥 나오는데 양숙씨가 보인다. 쿠나가 없어서 빵을 못 샀다고 하자 자기에게 있다고 한다. 다시 들어가 빵을 사가지고 나오니 이번에는 순자씨가 나타난다.

   새벽부터 열린 카페가 있어 들어가 커피를 시켰다. 갓 구운 빵과 따끈한 커피가 우리를 마냥 기쁘게 한다. 말 그대로 커피 한 잔의 행복이다. 순자씨에게 엊저녁에 남편이 샤워하고 기다리라고 했는데 웬 사진을 그렇게 늦도록 올렸느냐고 물으니 남편이 들어오자마자 골아 떨어졌다고 한다. 나이가 드니 어느 집 남편이나 입만 살았나보다.

   커피 맛도 일품이지만 커피 잔도 예사롭지 않다. 커피 잔에 그려진 그림을 보니 주전자 같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 같기도 하다.


   커피는 순자씨가 내겠다고 카드로 계산하려니 여기도 카드를 안 받는다. 유로도 안 받는다고 하여 난감해하고 있으니 커피를 마시던 남자가 주인에게 환율을 알려주며 얼마를 받으라고 일러준다.


   오굴린에서 다시 버스로 두 시간 이동하여 플리트비체 예쩨라 호수공원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려 선착장으로 가는데 최사장님이 버스에 핸드폰을 두고 왔다고 다시 찾으러 갔다. 한참을 기다려 같이 선착장에 갔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배를 탔는데 또 최사장님이 안 보인다. 놀라서 김사장님이 배에서 내려 다시 나가며 최사장님~ 하고 소리 지르니 그제서야 나타나 배를 탄다.

   페트라는 웃으며 트러블 메이커라고 놀린다. 오늘 페트라의 아버지는 안 왔다. 호수 트레킹이라 딸 혼자 하라고 했나보다. 1주차장에서 배를 타고 2주차장에 내린 후 걷기 시작했다. 호숫가에 있는 데크길이 편안하고 아름답다.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변강쇠 오줌발처럼 거창하고 힘차다.


   한참 더 내려오니 물가 나무 등걸에 오리가 집을 짓고 새끼를 돌보고 있다. 다들 신기해서 들여다본다. 오리는 행여나 자기 새끼를 누가 해칠까봐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저렇게 소박한 집에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2주차장으로 돌아와 배를 타고 3주차장으로 가서 가장 큰 폭포를 보았다. 이 폭포는 10여 년 전 발칸 여행 왔을 때도 본 폭포다. 물이 많아서 그런지 더 웅장하다.


   호수 트레킹을 마치고 한 농가에 가서 바베큐와 와인, 과일과 케익을 먹었다. 이 집은 도자기를 만드는 집이다. 마당에는 도자기 굽는 가마도 있고 작업실에는 많은 작품이 진열되어있다.

   최 사장님은 안주인과 주거니 받거니 무슨 말을 하는지 한참 신나게 대화를 한다. 최 사장님이 핸드폰의 번역기를 보고 잘 먹었습니다.’ 라는 말을 크로아티아어로 하니 안주인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것은 여성 형으로 말한 것이라고 남성 형 말을 다시 가르쳐준다. 거창한 저녁을 먹고 다시 오굴린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