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8. 2. 23. 안나푸르나 기행문 1

아~ 네모네! 2018. 4. 7. 22:51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8223~ 318

장소 : 네팔 안나푸르나 써킷,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히말라야는 이번에 세 번째다.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히마(hima)는 눈(), 알라야(alaya)는 거처라는 뜻이다. 즉 히말라야는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가진다.

   2002년 여름에는 인도 북부에 있는 가르왈 히말라야, 2009년 봄에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갔었다. 세 번째이긴 하지만 올해 칠순이 된 나이에 다시 도전하려니 겁부터 더럭 난다.

   떠나기 일 주일 전부터 위염이 심해 제대로 먹지 못했다. 의사는 몸이 이 모양인데 무슨 네팔이냐고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하는데 무모하게 도전을 했다. 그 유명한 안나푸르나를 보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게 길을 나섰다.

 

카트만두 ( 223)

- 인천에서 카트만두까지 -

   제대로 들지도 못하는 카고백을 카트에 싣고 공항으로 들어서니 벌써 와 있는 5번 동생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후 4번 동생과 제부가 역시 무지 막지한 짐을 들고 나타난다. 인천공항 제 2청사는 1청사보다 나중 만들어서 그런지 역시 더 멋지다.


  7시간의 비행 끝에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니 어둠이 내려앉는다. 부지런히 입국 수속하는 데로 가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입국 신고서와 여권을 내미니 비자피를 내고 오라고 한 쪽을 가리킨다. 아차! 돈 내는 데가 따로 있구나 하고 다시 나와 돈 내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한 달짜리 비자는 40달러다. 40달러를 내니 한국 돈 5만원을 달란다. 없다고 했더니 그냥 받는다. 이놈들이 우릴 졸로 보나 5만원이 40달러보다 얼마나 많은데 하며 속으로 웃었다.

   밖으로 나오니 제부의 이름을 들고 서 있는 가이드가 보인다. 가이드를 따라가 차에 짐을 실었다. 제부는 유심을 사서 핸드폰에 끼우느라 조금 늦게 나온다. 네팔에서 한시적으로 사용할 전화를 개통했다. 가이드는 부띠라고 하는데 나이가 40이라고 했다. 한국말을 제법 한다.

   야크 앤 예티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옆에 있는 평양 아리랑 식당으로 갔다. 식당에는 사진촬영 금지 표시가 있고 김치도 따로 돈을 내야준다. 식사비도 카드로 하면 카드 수수료를 더 내야한단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호텔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 도중 불이 나간다. 몸을 굽히다가 수도관에 눈을 부딪쳐 눈탱이 밤탱이 됐다.

 

8명이 힘찬 출발 ( 224)

-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까지 -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화창하다. 어제 부띠가 걸어준 꽃을 걸고 호텔 앞에서 현지 여행사 사장님과 기념 촬영을 했다.


   부띠와 카트만두에 사는 포터 빼마, 우리 세 자매와 제부, 이렇게 차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 포카라에서 온 쏘머라이, 아시스 두 명의 포터를 만나 배시사하르로 향했다.

   점심은 쿠린타르 리버사이드 스프링스 리조트에 있는 식당에서 먹었는데 수영장도 있는 멋진 식당이다.


   6시간을 달려 베시사하르에 있는 게이트웨이 히말라야 리조트에 도착하니 정원에 있는 인어공주가 우릴 맞는다.


   체크인을 하고 시내구경을 나갔다. 길거리엔 타르초가 휘날린다. 포도와 맥주를 사가지고 들어와 정원에서 맥주 파티를 했다.


탈인지 딸인지? ( 225)

- 베시사하르에서 다라파니까지 -

   다시 짚차를 타고 참제로 갔다. 원래는 여기서부터 걸을 생각이었지만 부띠가 여기서부터 걸으면 너무 멀다고 탈이란 마을이 아름다우니 탈부터 걷자고 한다. 네팔 발음은 된소리가 많아서 탈을 딸이라고 발음한다. 원래 딸인데 영어에 발음이 없어서 TAL이라고 한 것 같다.

   탈에 도착하니 우리나라의 하회 마을처럼 강물이 돌아나가는 아늑하고 평온한 마을이다. 여기서 점심을 해결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동네를 빠져 나오는 돌담길이 정겹다.


   계곡의 물을 따라 올라가는 길은 아름답고 평화로워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앞서 가는 부띠가 내가 잘 오고 있는지 돌아본다. 머리 허연 할망구를 데려가려니 심히 걱정스러운가보다.


   가다 보니 동네 어른들이 주사위 놀이 같은 것을 하고 있다. 부띠와 쏘머라이는 곁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다. 마땅히 소일거리가 없으니 이런 놀이로 시간을 보내나보다.


   도중에 배낭을 내려놓고 잠시 쉰 후 다시 배낭을 졌는데 제부가 손에 가시가 박혔단다. 가시가 너무 작아 보이지도 않는다. 깻잎처럼 생긴 풀에 하얀 가시가 가득 덮였는데 실수로 건드렸나보다.


   탈에서 다라파니까지 3시간 정도 걸었다. 다라파니의 헤븐이란 롯지에 들어서자 비가 쏟아진다. 부띠는 우리의 입맛을 고려해서 주방으로 들어가 볶음밥을 해준다. 우리에게 최대한 잘 해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똥 쌀 뻔 ( 226)

- 다라파니에서 차메까지 -

   오늘은 15km8시간 동안 걸었다. 칼국수를 끓여 먹으려했는데 버너가 시원찮다. 부띠에게 가스를 부탁했는데 동계용이 아니라서 그런가보다.

   티망에서 마나슬루를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했다. 부띠는 마나슬루 근처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머니는 5년 전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지금도 누나와 그곳에서 산다고 한다.


   식사 후 계속 걸어가는데 한 할머니가 자기 집 마당에 누워있다. 부띠가 다가가더니 약도 주고 자기 물도 주면서 약을 먹인다. 약을 더 주며 저녁에 또 먹으라고 하는 것 같다. 아픈 사람도 치료해주면서 가이드 생활을 하는 부띠가 존경스럽다.

   한 집 마당에는 예쁜 여자 아이가 나와서 우릴 바라본다. 4번 동생이 과자를 주자 얌전히 받아든다. 어린 아이들은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시골 사는 맛이 날 것 같다. 한국 아이들도 어렸을 때 미군들에게 초컬렛을 많이 얻어먹으며 자랐던 생각이 난다.


   설산을 배경으로 온갖 폼으로 사진을 찍으며 가니 지루한 줄 모르겠다.


   그런데 슬슬 배가 아파온다. 대로에서 엉덩이 까고 큰일을 볼 수도 없고 차메까지 가려니 배가 폭발할 지경이다. 포탈라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다. 1초만 늦었어도 똥 쌀 뻔했다. 그야말로 폭죽이 터지듯 쏟아냈다.

   이 롯지의 주인은 한국에서 7년간 살다가 6년 전 이곳에 와서 게스트하우스를 차렸다고 한다. 작은 딸은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0분 정도 올라가면 핫 스프링이 있다고 해서 수건을 들고 가봤다. 계곡물에 시멘트로 약간의 공간을 만들어 놓은 허름한 온천이다. 외국인 4명이 들어있다가 우리가 가니까 방을 빼준다. 바지를 걷어 올리고 들어가니 바위틈에서 따끈한 물이 새어나온다. 족욕을 즐기다가 다시 롯지로 돌아왔다.

   이곳에서 보는 마나슬루의 석양이 일품이라더니 과연 소문대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세 자매는 닭백숙을 시켜서 맛나게 먹는데 닭고기를 안 먹는 제부는 먹을 게 없어 날아가는 쌀밥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다. 내일부터는 3000m가 넘는 곳으로 가야하니 저녁식사 후 다이나막스를 한 알씩 먹었다.

 

애 만들 일도 없고 ( 227)

- 차매에서 어퍼피상까지 -

   차매(2670m)에서 어퍼피상(3200m)까지 14km7시간 걸려 걸었다. 출발 전 포탈라게스트하우스 아줌마와 기념 촬영을 했다. 얼굴이 둥글둥글하니 인심 좋게 생겼다. 숙박비도 안 받고 음식 값도 실비로 받은 듯하다.


   가는 길에 부라탕의 사과가 맛있다고 하여 사과 2kg100루피 주고 샀다. 저장 창고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쪼글쪼글하다. 쪼그랑 할망구 같이 생겼지만 맛은 일품이다.


   점심은 마늘 스프와 라면으로 때웠다. 길은 계곡을 끼고 계속 이어진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거대한 암벽의 설산이 우릴 압도하는 듯하다.


   어퍼피상에 도착하니 3시 밖에 안 됐다. 이곳에 곰파가 있다고 하여 4시에 곰파 구경을 하러갔다. 산 중턱에 있는 곰파는 전망이 뛰어나고 아래 계곡에 있는 로우어피상 동네가 아련하다.


   사원 안에 들어가 잠시 명상에 잠겼다. 서양 사람도 몇 명이 앉아서 명상 중이다.

주방사용료를 내고 주방에 들어가 황태무국과 스팸을 요리해서 저녁을 먹었다. 우리 음식을 먹으니 잘도 들어간다. 부띠는 포터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히말라야를 찾는 한국인이 많으니 카트만두에 한국어 학원도 있고 한국말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로얄 알파인호텔인데 전기가 안 들어오니 낮에도 헤드랜턴을 켜고 화장실에 가야한다. 그동안 얼마나 편한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실감한다.

   저녁 먹고 세 자매가 모여앉아 일기를 썼다. 일기라야 몇 줄 쓰고 나면 쓸 말이 없으니 긴 긴 밤 할 일이 없다. 5번 동생 왈 이런 사정이니 할 일이라곤 애 만들 일밖에 없겠다고 한다. 환갑 진갑 다 지나고 칠순이 된 나이에 애 만들 일도 없고 속절없이 뒤척일 뿐이다.

   여기서는 뜨거운 물 1리터에 200루피씩 받는다. 물 한 병씩 들고 방에 가 다이나막스를 반 알씩 먹었다. 어제 한꺼번에 한 알을 먹었더니 손끝이 저릿저릿해서 앞으로는 저녁에 반 알, 아침에 반 알씩 먹기로 했다.

 

네 손가락 뻗치고 사진 찍었는데 ( 228)

- 어퍼피상에서 부라카까지 -

   어퍼피상(3300m)에서 부라카(3439m)까지 17km8시간 30분 동안 걸었다. 날이 갈수록 산속으로 들어가니 풍경은 점입가경이다.


   앞에 보이는 설산이 안나푸르나 4봉이라고 해서 네 손가락 뻗치고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자세히 물으니 3봉이란다. 부띠가 한국말 34를 헷갈렸나보다. 우리가 부띠에게 네 손가락 뻗치고 사진 찍었는데 뭔 소리냐고 하자 쏘머라이가 알아들었는지 폭소를 터뜨린다.


   갈수록 지형이 기기묘묘해서 뭐라 표현하기 힘들다. 우리가 사는 행성이 아닌 듯한 착각이 든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무궁무진하다. 이 세상은 한 번은 꼭 와 볼만한 곳이다.


   급경사 오르막길을 올라 가루(3870m)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 나왈(3675m)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밖을 보니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점심 식사 후 뭉지까지 비포장길을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래도 멋진 설산이 나타날 때마다 온갖 포즈로 사진을 찍어댄다.



   지친 걸음으로 뭉지에 들어서니 마을 앞 큰 공터에 부처님 상이 우릴 맞이한다. 뭉지에는 숙소가 없다고 하여 조금 더 가서 브라카에 있는 뉴 야크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엔 오리온이 보이고 새벽에는 북두칠성 보인다. 한국에서 보던 별을 보니 왠지 반갑다.

 

엎어져서 찍고 자빠져서 찍고 ( 31)

- 부라카에서 아이스레이크에 오른 후 마낭까지 -

   오늘은 안나푸르나 써킷 코스 옆에 있는 아이스레이크에 다녀오기로 했다. 출발에 앞서 포터들과 함께 사진 한 컷 찍었다. 무척 부끄러워한다.


   아이스레이크에 처음 간다고 아시스도 신이 났다. 22살이라는데 애교 만점이다.


   부라카는 3400m이고 아이스레이크는 4600m나 되니 고도를 1200미터나 올려야한다. 부띠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옆길로 빠지는 바람에 개 고생했다. 제부가 지도를 보며 겨우 길을 다시 잡아 가기는 갔는데 알바까지 하는 바람에 12km9시간 동안 걷게 되었다. 힘은 들었지만 경치는 기막혀 온갖 폼으로 사진을 찍으며 계속 올라갔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길이 끝나고 꽁꽁 얼어붙은 이름 그대로의 아이스레이크가 나타난다.

부띠는 정상에서 타르초도 묶고 불도 피우며 간단한 예를 표하더니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포터들도 처음 올라와 봤다고 서서 찍고, 팔짝 팔짝 뛰며 찍고 아주 신이 났다.


   우리도 설원 위에 엎어져서 찍고 자빠져서 찍고 생 쇼를 벌이고는 하산을 시작했다.


   호수 아래 대피소가 있어서 들어가 간식을 먹었다. 야크똥과 나무 땔감이 있어서 불을 피우고 몸을 녹였다.


   내려오다가 5번 동생이 진창에서 미끄러져 엉덩이가 흙투성이가 됐다. 부띠는 눈을 집어서 열심히 닦아주고 있다. 내가 외간 남자에게 엉덩이 내밀고 잘도 닦는다고 하니 아들 같은데 어떠냐고 큰소리친다. 하긴 옛날 같으면 그만한 아들도 있겠다.

   중간쯤 내려오니 커피하우스가 있는데 문이 닫혀있다. 부띠는 커피하우스 옆에서 나뭇가지로 불을 피운 후 하늘로 날린다. 아마 산의 신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는 듯하다.

부라카로 내려와 짐을 지고 오늘의 숙소인 마낭의 히말리얀 싱기 호텔로 갔다.

 

황천길 가게 생겼네~ ( 32)

- 마낭에서 틸리초 베이스캠프까지 -

   안나푸르나 써킷 코스에서 옆으로 빠져나가 틸리초 베이스캠프(4150m)로 갔다. 마낭에서 틸리초 B.C.까지 15km 8시간 30분 걸렸다. 가는 길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라 화성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중간에 캉사르란 동네를 지났는데 유난히 소가 많았다.


   틸리초 B.C 쪽에서 걸어오는 한국여자를 만났는데 가이드나 포터 없이 혼자 다닌다고 했다. 어제 틸리초 레이크에 갔었다고 하는데 그 용기가 부럽다. 가는 길에 쉬르카르카에서 점심을 먹고 하루 숙박에 필요한 짐만 챙기고 나머지는 모두 여기에 맡겼다. 내일 틸리초 호수에 갔다 와서 저녁에 여기서 숙박하기로 했다.


   틸리초 B.C로 가는 길은 너덜 길의 연속인데 흙이 쏟아져 내려 아차 하다간 까마득한 계곡으로 쳐 박힐 지경이다. 좋은 경치 구경하려다 그야말로 황천길 가게 생겼다.


  우린 스틱을 짚고도 한 발 디디면 두 발 미끄러지는데 포터들은 스틱도 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잘도 간다.


   초긴장 상태로 몇 시간씩 걷다보니 초죽음이 되어 어둑어둑하여 틸리초 B.C.에 도착했다. 여기는 롯지가 달랑 하나 뿐이다.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도 이불로 무릎을 덮고 앉아 오늘의 일기를 썼다.


   난로가에 앉으니 졸음이 쏟아진다. 어제는 4번 동생이 병든 닭처럼 난롯가에서 꼬박꼬박 졸더니 오늘은 5번 동생이 병 든 닭 됐다.


레이크가 사람 잡~ ( 33)

- 틸리초 베이스캠프에서 틸리초레이크에 오른 후 쉬르카르카까지 -

   틸리초레이크(4900m)까지 왕복 10.4km, 9시간 걸렸다. 새벽 5시에 미수가루 조금 먹고 바로 출발했다. 호수로 가는 길도 어제의 길 못지않게 가파르다.


   급경사면에 작은 돌들이 무너져 내려 까딱하면 시체도 못 찾을 지경이다. 올라가는 길에는 어찌나 강풍이 몰아치는지 바람에 눈가루가 날려 얼굴을 바늘로 찌르는 듯하다. 그래도 설산은 갈수록 점입가경이라 설국으로 들어가는 듯한 환상에 빠진다.


   가도 가도 보이지 않는 호수를 찾아 멘붕에 빠질 즈음 하얀 설원이 나타난다. 호수가 얼어 시베리아 벌판 같다. 바람이 너무 강해 사진 찍기도 힘들다.


   어제는 아이스레이크가 사람 잡더니 오늘은 틸리초레이크가 사람 잡는다. 그렇게 힘들여 올라왔구만 무거운 정적에 사로잡힌 틸리초는 아무 말이 없다. 매서운 칼바람이 앙칼진 여자처럼 우리를 몰아세운다. 우리도 지쳐서 사진 몇 장 찍고는 강풍에 쫓기듯 산을 내려왔다.


   틸리초 B.C.에 도착한 후 롯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짐을 챙겨 쉬르카르카로 향했다.


   2시간 30분 동안 6.6km를 또 걸었다. 오늘은 총 17km11시간 30분 걸었다. 힘은 들었지만 외계의 행성에 다녀온 듯 오가는 길이 눈에 아른거린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 34)

- 쉬르카르카에서 야크카르카까지 -

   쉬르카르카(4076m)에서 야크카르카(4050m)까지 12.1km5시간 30분 걸었다. 부띠에게 카르카가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외양간이나 헛간 같은 곳을 이르는 말이란다. 야크카르카는 이곳에 집이 없을 때 야크들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5번 동생이 앞서 가다가 멈춰 서서 부띠에게 묻는다. 어제 가는 길에는 흰색과 푸른색 줄이 그어있었는데 왜 이 길에는 흰색과 붉은 색 줄이 그려져 있는냐는 것이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걸었는데 눈썰미가 날카롭다. 부띠는 어제 걸은 길은 험한 길이라 그런 표시를 하고 오늘 걷는 길은 편한 길이라 붉은 색으로 칠해 놓았다는 것이다.


   중간에 찻집에서 차도 마셔가며 여유 있게 걸었다. 차를 마시고 나오니 버들강아지가 눈에 띤다. 한국은 아직 안 피었을 것 같은데 네팔은 위도가 낮아서 봄이 빨리 오나보다.


오늘은 일찌감치 숙소에 도착해 편안한 오후를 즐겼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눈 속의 하이캠프 ( 35)

- 야크카르카에서 하이캠프까지 -

   야크카르카(4050m)에서 하이캠프(4900m)까지 8.4km, 6시간 걸렸다. 야크카르카는 야크들이 머무는 곳이라더니 과연 야크가 많다.


   곳곳에 눈이 있어 초긴장 상태로 걸어야했다.


   쏘롱패디에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쏘롱패디에는 빵집도 있어서 빵을 몇 개 샀다.


   배낭에 눈을 가득 얹고 하이캠프 롯지에 도착하니 마당에 눈이 가득하다.


   식당 유리창에 붙은 경복 48산우회 201611기념 싸인 앞에서 사진 찍었다. 제부의 친구들이 2년 전 다녀갔다고 한다.

  방에 전기도 들어오고 식당에는 불도 일찍 때주어서 난롯가에서 불이 꺼질 때까지 붙어있었다.


5번은 배가 아파서 병든 닭처럼 비실 비실댄다. 아무래도 고소증인 듯하다. 난롯가에서 부띠가 한국 남자에게 틸리초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내가 봐도 실물보다 멋지게 나왔다. 그 사진 좀 내 핸드폰으로 보내 달라고 했더니 잭을 연결하여 내 폰으로 옮겨준다. 이걸 프로필 사진으로 해야겠다.


   화장실은 눈이 가득한 마당 건너편에 있으니 밤에 화장실을 가려면 식당 쪽으로 돌아가야 한다. 화장실 앞에도 얼음 범벅이라 조심 또 조심해야지 잘못하면 나가자빠져 뼈도 못 추리겠다. 이 날도 다이나막스 반 알씩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