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7. 9. 8. 제주도 기행문

아~ 네모네! 2017. 9. 18. 16:43

영갑이가 사랑한 섬

아 네모네 이현숙


   모처럼 친정 식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새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과 함께 한 여행이다.

 

-첫째 날 (98)-

   제주공항에 도착하여 렌터카 두 대를 빌렸다. 남동생과 제부가 운전했다. 첫 코스는 환상숲 곶자왈공원이다. 곶은 숲이란 뜻이고 자왈은 자갈이나 바위와 같은 암석덩어리를 말한다.


   입구에 들어서니 인공폭포가 눈에 띈다. 그늘에 앉아 해설사를 기다렸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사진을 찍다보니 해설사가 온다. 그녀는 곶자왈의 뜻을 설명해주고 여기 사는 식물에 대해 말해준다. 콩을 반쪽으로 쪼개놓은 모양의 콩짜개덩굴이 신기하다.


   나무가 넘어지지 않으려고 뿌리에서 근육같이 땅속으로 널찍하게 내려간 것은 판근이라고 한단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 없는 식물들은 자신이 뿌리 박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지혜를 총동원하여 몸부림치는 듯하다.흙이 없으니 넘어지지 않으려고 바위덩이를 뿌리로 칭칭 감아 힘껏 움켜쥐고 있는 모습도 애처롭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칡과 등나무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돌며 나무를 타고 오른다는 것이다. 칡은 오른쪽으로 돌며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도는데 이것은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시계와 반대방향으로 도는 것을 오른쪽 감기라고 한다. 한 나무에 칡덩굴이 감고 그 위에 다시 등나무가 감은 것이 그야말로 갈등하는 모습이다.


   해설사가 한 곳에 이르더니 몇 명을 불러내어 둥그렇게 세운 후 서로 손을 잡고 왼쪽 사람과 오른쪽 사람을 잘 기억하라고 한다. 남동생도 나가서 섰다. 손을 놓은 후 해설사가 사람들을 이리 저리 옮긴 후 다시 손을 잡고 원래의 모양으로 풀어 가는데 서로 엇갈려 뒤죽박죽이 되었다. 자연도 이렇게 원래의 형태를 유지해야지 인위적으로 이리저리 옮기면 생태교란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참 실감나는 교육방법이다.


   곶자왈 안에는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풍혈도 있고, 밭을 만들 때 나온 돌을 쌓아 놓은 머들도 있다.

다음은 제주곶자왈 도립공원으로 갔다. 원시림처럼 우거진 숲의 그늘 속으로 걸으니 시원하고 좋다. 남동생은 타잔 흉내를 내겠다고 덩굴을 잡고 매달려 보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테우리길을 따라가니 높은 전망대가 나타난다. 기를 쓰고 올라가보니 전망은 신통치가 않다. 다시 내려와 데크길을 따라 입구 쪽으로 나왔다.


   도립공원에서 나와 서커스 월드로 갔다. 중국 서커스단이 들어와 멋진 묘기를 펼치는데 중국 관광객이 뚝 끊겨서 그런지 빈자리가 많다. 어린아이들이 그토록 완벽한 동작을 하기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


   여기서 나와 오설록 녹차 박물관으로 갔다. 정원에는 이 박물관을 세운 서성환 회장의 동상이 서있다. 그는 태평양화학 창업주로 말년에 여기에 녹차 밭을 만들고 우리 전통 차 문화를 되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오설록에서 나와 송악산으로 갔다. 송악산에 온 것은 20년은 된 듯하다. 그 때는 분화구가 있는 정상까지 갔었는데 지금은 통제되어 둘레길만 돌았다. 바닷가에 있는 송악산에는 여기 저기 일본군들이 제주도민을 동원하여 굴을 파 놓았다. 2차 대전 때 태평양전쟁을 대비한 굴이다. 제주도민들의 뼈아픈 아픔이 느껴진다.


   지금은 모든 슬픔을 가슴 깊이 묻어둔 채 형제섬과 산방산이 평화로이 우릴 반긴다. 익모초와 계요등, 등골나물도 흐드러지게 피어 모든 상처를 덮고 무심한 말도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다.


   기막힌 절경의 해안절벽을 따라 만든 데크 길은 세월의 무심함을 말하는 듯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가파도와 마라도는 바다에 아련히 떠서 빚을 갚아도 되고 말아도 된다고 위로하는 듯하다.


   어느 덧 해는 뉘엿뉘엿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으려 하고 서늘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간지른다.


   출발점으로 되돌아와 모슬포항으로 갔다. 덕승식당에서 갈치조림과 구이, 갈치 국을 먹었는데 비리지도 않고 담백한 게 천하 일미다.

 

-둘째 날 (99)-

   제주도에 여러 번 왔지만 거문오름은 처음이다. 동생이 미리 예약을 하여 해설을 들으며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거문오름 주차장 옆에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있다. 제주도의 자연경관과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네스코 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거문오름은 샌들이나 슬리퍼, 우산, 양산, 스틱, 아이젠은 물론 음료수도 반입금지다. 오직 생수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 사는 생물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고 보호하려는 철저한 조치다.


   해설사와 만날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아 유산센터 건물 내에 있는 전시물과 영상을 보았다.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과 화산 분출하는 영상이 실제 상황처럼 생생하다. 한라라는 뜻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큼 높은 산이란 뜻이라 한다. 주상절리도 만들어 놓았는데 실물 크기의 거대한 조형물이다.


   전시관에서 나와 해설사를 만나니 왜 탐방조건이 그리도 까다로운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 아름다운 자연 유산을 잘 보존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가슴을 울린다우리는 거문오름 정상에 오른 후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 돌아오는 분화구 코스를 택했다.

   거문오름은 원래 검은 오름에서 유래하였다. 검은 색 돌이 많아 검은 오름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돌에 2가의 철이 많이 함유하여 있기 때문이라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삼나무 숲이 우거지고 그 사이로 노루가 노닐고 있다. 방울꽃, 나무수국, 망개 덩굴이 우거진 사이로 큰 구멍도 있는데 이런 구멍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암반수가 된다. 우리가 먹는 삼다수는 빗물이 25년간 암반 속으로 스며들어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용암이 흘러간 동굴이 무너져 생긴 계곡(용암협곡)도 있는데 여기서 스며든 물이 만장굴, 김녕굴을 거쳐 바다까지 가려면 17년이 걸린단다. 이렇게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지는 물을 마구 퍼 올려 펑 펑 쓰다보면 지하수가 고갈되어 먹을 물도 없게 된다고 하니 참 걱정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정상에 오른 후 분화구 안으로 내려갔다. 알봉에 이르니 누리장나무꽃이 한창이다. 된장 누린내가 난다고 하여 이름이 누리장나무인데 꽃은 기막히게 아름답다.


   내려오는 길에는 풍혈도 있는데 에어컨보다 시원한 바람이 나온다. 길옆에 쭉쭉 뻗은 삼나무 숲이 환상적이다.


   하늘보리 식당에서 흑돼지와 청국장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으로 갔다. 두모악은 한라산의 옛 이름이다. 폐교된 삼달국민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갤러리다.


   문으로 들어서니 아담한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의 아기자기한 조각들은 조각가 김숙자님이 기증한 것이라 한다. 20여 년간 이곳에서 살며 제주도의 속살을 찍어댄 김영갑 선생의 작품이 전시되어있다.


   그는 제주도의 오름을 무수히 오르내리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담았다. 말년에는 루게릭병에 걸려 전신이 마비되어오는 중에도 사진 촬영과 전시회를 멈추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혀도 마비되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생전에 찍은 동영상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카메라 셔터를 누를 힘이 없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동안 찍은 사진으로 전시회를 기획하는 그의 열정이 눈물겹다.

   그의 영혼을 빼앗은 오름은 그의 몸까지 앗아갔다. 너무도 사랑해서 너무도 열정을 쏟아서 모든 예너지가 소진된 것일까? 그가 가장 사랑한 용눈이 오름 사진이 특별히 많다. 억새밭에 외로이 선 나무 한 그루가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평생 결혼도 안한 그는 아마도 용눈이와 결혼한 게 아닐까? 너무도 용눈이를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50도 못된 나이에 생을 마감했을 지도 모른다. 그의 몸은 갔지만 그의 영혼은 사진에 깃들어 지금도 이곳을 맴돌고 있다.

   전시장을 보고 밖으로 나오니 무인 카페가 있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차를 마시고 값은 통에 넣도록 되어있다. 다 마신 컵은 각자 잘 씻어서 다음 사람이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이곳 카페의 창밖 풍경도 한 폭의 그림이다. 김영갑도 여기 앉아 차를 마시며 작품구상을 했을까? 마당으로 나오니 배롱나무꽃이 한창이다.


   갤러리에서 나와 제주 민속촌으로 갔다. 정문에 들어서니 물허벅을 진 여인 조각상이 동이에서 물을 쏟고 있다. 여기서 손을 씻고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더 들어가니 인공폭포에서 물이 힘차게 쏟아져 내린다. 길가의 노란 코스모스도 한껏 몸매를 자랑한다.


   제주 전통집의 장독대 옆에 핀 조이삭과 허수아비도 정겹다.


   나오는 길에 있는 관아에 들어가니 곤장을 때리는 형틀과 주리를 틀던 의자가 있다. 동생들은 서로 엎어져 곤장 때리는 흉내를 내고 주리를 틀며 재미있어한다.


   민속촌에서 나와 새섬으로 향했다. 새섬은 다리가 놓여 걸어서 갈 수 있다. 새섬 다리는 돛대모양으로 만들어진 멋진 다리다.


   섬으로 들어가니 일몰 장면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바위 위에 가득하다. 일몰보다 그 모습이 더 장관이다.


   새섬은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데 옛날 초가지붕을 만들 때 쓰던 새()가 많아 새섬이라고 했다. 나는 날아다니는 새인 줄 알았더니 풀이름인가보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붉은 해와 이별하고 저녁식사를 하러 이어도 식당으로 갔다.

 

-셋째 날 (910)-

   한라산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산행하기로 했다. 어리목 주차장에 이르니 구두나 슬리퍼를 신고 산행하지 마라, 윗세오름까지는 화장실이 없다는 안내문이 보인다. 4.7km 가야 화장실이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소리다. 한 시간이 멀다하고 뻔질나게 화장실에 가야하는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된다. 화장실에 가서 최후의 한 방울까지 짜내고 산행을 시작했다.


   나무그늘로 들어서니 서늘하여 걷기가 쾌적하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며 전망이 탁 트인다. 여기가 사재비 동산이다. 사제비의 뜻은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사제비오름 또는 새제비동산이라고도 하는데 인근 묘비에 새겨진 조접(鳥接)이라는 글자에서 새재비의 유래를 찾기도 한다. 조접은 새접 또는 새접이로 볼 수 있고, 새접이는 새잽이 즉 새매의 제주 방언이라고 한다. 사재비 동산에는 조릿대가 유난히 많다.


   나무가 없으니 땡볕을 마냥 걸을 수밖에 없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계속 오르니 전망대가 나타난다. 만세동산이다. 여기서는 만세를 불러야 제격이다.


   여기서는 한라산 분화구벽도 보이고 저 멀리 윗세오름 대피소도 보인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니 한결 걸음이 가벼워진다. 윗세오름 대피소에 이르니 사람들이 많아 바글바글 시장 바닥이다. 나무 바닥으로 된 그늘에 앉아 가져간 계란과 빵으로 요기를 했다. 여기서 다 함께 인증 사진을 찍었다. 3번 동생은 난생 처음 1700미터에 올랐다고 즐거워한다.


   내려올 때는 발에 모터를 단 듯 발걸음이 빨라진다. 멀리서 구름이 슬슬 몰려온다.


   어리목 주차장에 이르니 잘 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주차장에 이르니 화산분출시 생긴 해골모양의 바위가 보인다.


   점심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 그냥 한라생태숲으로 갔다. 입구에는 세 개의 막대를 가로지른 제주도 전통 문이 보인다.


   숫ᄆᆞ르 숲길을 걸었는데 숫ᄆᆞ르는 숯을 굽는 동산이란 뜻으로 이 지역의 옛 이름이다. 길에는 마대 자루 같은 매트가 깔려있고 나무 그늘에는 노루가 한가로이 노니는 평화로운 길이다. 말 그대로 힐링 하기 딱 좋은 길이다.


 -네째 날 (911)- 

   오늘은 김영갑이 그토록 사랑한 용눈이 오름에 오르기로 했다.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아침이 되도 그칠 줄 모른다. 제주도에는 호우 경보가 내렸다.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린 간다.

   용눈이 오름 주차장에 도착하니 여전히 비바람이 우리 기를 죽인다. 입구의 나무 막대 사이를 돌고 돌아 들어간다. 막대기를 좁게 세워서 사람은 돌아들어갈 수 있지만 말이나 소는 돌 수가 없으니 밖으로 빠져 나갈 수 없다. 누구 아이디어 인지 참 잘 생각했다.

   용눈이를 배경으로 한 방 찍고 매트 길을 따라 서서히 올라갔다. 먼저 올라간 사람들은 정상에 못 갔는지 되돌아오며 여기 같이만 바람이 불면 정상에 갔을 텐데 너무 세게 불어 못 갔다고 아쉬워한다. 능선에 올라서자 과연 바람이 엄청 나다. 그래도 우린 계속 전진했다. 용눈이를 그토록 사랑한 영갑이가 서로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상 가까이 가지 드넓은 억새밭이 나타난다. 억새밭에 유난히 큰 나무가 눈에 띈다. 제부가 저거 어제 사진에서 본 거 같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김영갑 갤러리에 여러 장 전시된 나무다. 우리는 이걸 영갑 트리로 이름 지었다. 이 나무에 김영갑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 외로워 보였다.


   그는 이 오름을 너무도 사랑하여 여인을 사랑하지 못한 것일까? 사랑의 모든 에너지를 여기에 쏟아 부어 더 이상 사랑할 힘이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초록의 들판에 검은 밭들이 어우러져 조각이불을 보는 듯하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용눈이의 완만한 능선이 여인의 허리선처럼 우아하다. 영갑이는 이 모습에 반했을까?


   앞에 있는 다랑쉬오름을 배경으로 찍고 용눈이 정상을 배경으로 찍으며 분화구를 돌았다. 정상에서 3분의 1쯤은 생태복원을 위해 막아 놓아 되돌아 와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비가 그치고 바람도 약해졌다. 용눈이와 영갑이의 눈물 바람이 끝났나보다. 나는 용눈이라고 해서 용의 눈알을 생각했는데 용와(龍臥) 용이 엎드린 오름, 즉 용이 누운 오름이다. 하긴 용이 누운 형상 같기도 하다.



   다음은 백약이 오름으로 갔다. 백가지 약초가 산다고 하여 백약이라 한다. 이 오름도 완만하여 오르기 쉽다.


   정상에는 작은 돌이 드러나 있고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일품이다. 이 오름은 막아놓은 곳이 없어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내려왔다.


   백약이 오름에서 내려와 한라수목원으로 갔다. 가정집 정원처럼 잘 다듬어진 수목원이다. 입구에 나무 자로 뚫린 조형물이 있다.


   곳곳에 아담한 연못도 있고 예쁜 다리도 만들어 놓았다. 아기자기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떠오른다.

   수목원 근처 연우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여 평화롭던 제주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속세로 돌아온 듯 정신이 번쩍 난다.

 

   이번 여행은 영갑이가 죽도록 사랑한 섬 제주를 맘껏 포식한 여행이었다. 제주를 그토록 사랑한 영갑이 마음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