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기스탄 1 ( 7월 28일 )
- 키질아트패스 -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니 웬 당나귀가 땅에서 뒹굴고 있다. 어디가 아파서 그런가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다. 흙으로 목욕을 하는 것이다. 동물들은 털에 붙은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 흙에 몸을 비비면서 몸을 깨끗하게 씻는다더니 정말이다. 생전 처음 실제 상황을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키질아트패스(4280m)에 올라서니 타지키스탄 지도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다. 출입국 사무소에서는 일일이 여권을 보고 인적상황을 쓰니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린다. 원체 고소라서 너무 추워 차 안에서 대기하다가 한 명씩 나가 심사를 받고 다시 차로 왔다.
고갯마루에서 뿔이 어마어마하게 큰 아이벡스 조각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집채만 한 버스가 온다. 독일인 관광객인데 침대와 주방까지 있는 호텔 같은 버스다. 이 버스를 타고 20일간 여행 중이란다. 이런 여행도 꽤 매력적일 듯하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자 우리의 가이드가 고개 아래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단다. 그런데 한 쪽 팔이 없는 사람이라고 귀뜸해준다.
타지키스탄 입국 심사를 할 때는 파미르고원 입장 허가서도 내야한다. 무라도는 허가서가 없어서 사리타쉬에서 헤어졌다. 김사장님이 각자의 허가서를 나눠줬는데 내 것을 보니 성별이 MALE로 되어있다. 다른 여자들은 다 FEMALE로 되어있는데 걱정이 태산이다. 내가 비록 머리도 짧고 남자 같이 생기기는 했지만 여권에 분명히 FEMALE로 되어있으니 허가서가 잘못 되었다고 나만 입국을 안 시키면 어떡하나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어디서 거시기를 하나 사다 붙일 수도 없고, 남의 것을 꾸어올 수도 없고 난감하기 그지없다. 잔뜩 긴장하고 심사원 앞에 서니 치매노인처럼 보여서 그랬는지, 별 의심 없이 도장을 쾅 쾅 찍어준다. 십 년 감수한 기분이다.
국경을 통과하니 타지키스탄 가이드 오리스가 반갑게 맞아준다. 독일인 들이 말한 대로 한 쪽 팔이 없어 소매를 주머니에 넣고 있다. 그래도 인상도 좋고 영어도 능통하여 아무 지장이 없다.
- 카라쿨 -
카라쿨로 이동하여 호수 옆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쿨은 호수라는 뜻이다. 여자 싱글 네 명이 한 방을 쓰라고 침대를 놓았는데 비좁아서 짐도 풀지 못하게 생겼다. 두 명이 별채로 이동하라고 하여 미숙씨와 내가 다른 건물로 옮겼다. 여기는 주인이 살림집으로 쓰는 듯하다. 이불도 많고 여러 가지 가재도구들도 있다. 하도 얼룩덜룩해서 무당 집 같기는 한데 그런대로 전통적인 분위기가 풍겨 괜찮았다.
점심 식사 후 해가 조금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너무 뜨거워서 작열하는 햇빛에 그냥 나갔다가는 살이 타들어갈 것 같다. 식사는 별로 먹을 것은 없는데 색채만큼은 휘황찬란하다.
저녁 5시쯤 되어 호숫가를 걸어보려고 배낭까지 지고 밖으로 나갔다. 물가로 가까이 가자 온 동네 모기가 다 달려든다. 이게 웬 별식인가 하나보다. 얼굴이고 손이고 살이 나와 있는 곳에는 모기들이 새카맣게 달려든다. 모기 퇴치제를 배낭과 옷에 아무리 발라도 효력 빵점이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서 모기에게 쫓겨 집으로 돌아섰다.
다들 돌아가고 미숙씨와 내가 꼴찌로 걸어오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오더니 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람에 날려갔는지 온도가 내려가니 어디로 피신을 갔는지 정말 희한하다. 모기도 없는데 동네 구경이나 하기로 했다.
외국인 관광객이 이상하게 보였는지 웬 꼬마가 다가온다. 인심 좋은 미숙씨는 또 참지 못하고 과자를 꺼내준다. 아이들이 자꾸 나타나자 내 배낭에 있는 것까지 몽땅 다 털어 줬다.
이 골목 저 골목 다녀보니 거의 모든 집 앞에 웬 화덕 같은 것이 있다. 아마도 빵을 굽는 화덕인가보다. 그런데 요즘은 쓰지 않는지 싸늘하니 식어있다.
한쪽으로 가니 웬 학교 건물 같은 것이 보인다. 운동장에서는 배구가 한창이다. 다들 경기에 정신 팔려 우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있는 수도에서 대충 손을 씻고 방에 누워 쉬었다.
타지기스탄 2 ( 7월 29일 )
- 카라쿨호수 -
아침에 모기가 나타나기 전에 빨리 호수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기온이 낮으니 모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설산을 물에 담은 호수도 장관이고 곳곳에 있는 웅덩이에 비친 그림자도 아름다움 그 자체다.
호수에 생긴 긴 모래톱을 향해 가는데 곳곳의 습지에 생긴 볼록볼록 솟은 풀밭이 신비롭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솟아 오른 풀을 밟으며 모래톱으로 갔다.
긴 모래톱을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모래사장에는 폐가도 있었는데 벽에 그린 그림도 재미있다. 밑에는 해발고도 3900미터라고 쓰여 있다. 이런 데서는 조신 조신 색시걸음으로 다녀야지 함부로 까불며 날뛰다가는 고소증이 오기 십상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또 방을 바꾸란다. 손님이 늘어서 방이 부족하니 우릴 보고 더 안쪽 방으로 옮기던지 아니면 안쪽에 든 사람이 우리 방을 통과하여 드나드는 걸 감수하란다. 할 수 없이 안쪽 방으로 다시 옮겼다. 방은 허접하고 퀴퀴한 냄새도 나지만 색체 하나는 왕비의 침실 부럽지 않다.
- 아크바이탈 패스 -
아침 식사 후 아크바이탈 패스로 갔다. 고갯마루에는 4655미터라고 쓴 팻말이 있고 켜켜이 둘러선 산의 색깔이 외계의 행성에 온 듯하다. 여기서 옆의 봉우리로 100미터를 또 기어 올라갔다. 여행 오기 전부터 이명은 계속 되는데 주제 파악 못하고 달려드는 이런 버릇을 언제 고치려나 모르겠다. 그래도 그곳에 펼쳐질 환상적인 광경이 눈앞에 어른거려 포기할 수가 없다.
고개를 내려와 점심 식사할 장소를 찾다가 우연히 호텔이라고 쓴 유르타가 보인다. 초라한 천막집에 호텔이라고 쓴 게 너무도 웃겨서 다들 폭소를 자아냈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니 안온하고 꽤 넓은 공간이 있다. 둘러 앉아 차와 빵을 시켰는데 땟국물이 꼬작꼬작 흐르는 보자기를 바닥에 펴더니 쟁반만한 빵을 내던진다. 도저히 손이 갈 것 같지 않았지만 한 조각 뜯어 먹어보니 맛이 환상이다. 다들 달려들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를 산책했다. 땅에 달라붙은 채 다닥다닥 꽃을 피워낸 야생화들의 투지가 느껴진다.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박고 살아온 이곳 사람들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키르키스스탄 재입국 ( 7월 30일 )
- 사리타쉬 -
카라쿨을 떠나 키르키스스탄으로 다시 입국하여 전에 묵었던 사리타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번 묵었던 곳이라 익숙해서 좋았다. 이 집은 시설은 별로인데 전망하나는 일품이다. 천산산맥의 설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있다.
- 슐레이만 산 -
7시간을 이동하여 4일 전에 묵었던 오쉬의 썬라이즈 호텔로 갔다. 짐을 풀고 해가 기울기를 기다려 슐레이만 산으로 갔다. 슐레이만은 솔로몬의 현지어 발음인데 솔로몬이 여기 와서 기도하던 곳이라 한다. 안내판에는 ‘슐레이만 투 마운틴’이라고 쓰여 있는데 솔로몬의 왕좌라는 뜻이다. 올라가는 길은 넓고 계단도 많다. 나지막한 산이지만 오쉬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작은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 여자들이 있다. 무슨 동굴인가 했더니 동굴 안에 약수가 있는데 그 물을 먹으면 질병 치료에 좋다고 한다.
정상 직전에 있는 바위에는 홈이 파여져 있어 미끄럼 타기 딱 좋게 생겼다. 세 번 타고 내려오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너도 나도 세 번씩 미끄럼을 탔다.
정상에는 작은 회교 사원이 있고 키르키스스탄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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