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7. 7. 18. 중앙아시아 기행문 1 (카자흐스탄)

아~ 네모네! 2017. 8. 29. 16:23

탄 탄 탄

 

아 네모네 이현숙

 

기간 : 2017718~ 85

장소 :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도 몰랐다. 단지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에 간다는 말에 솔깃하여 따라나섰다. 우즈베키스탄은 10년 전에 다녀온 적이 있어 나라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나머지 세 나라 이름은 도무지 외어지지 않았다. 단지 자 돌림이라고만 기억했다.

   연탄 공장도 아니고 왜 이렇게 탄이 많은가? 탄이 우리나라 말의 땅인가 했더니 그게 아니고 스탄이 땅이라고 한다. 카자흐 사람들이 사는 땅은 카자흐스탄, 키르기스 사람들이 사는 땅은 키르기스스탄, 타지기 사람들이 사는 땅은 타지기스탄, 우즈베키 사람들이 사는 땅은 우즈베키스탄이다.

 

카자흐스탄 1 ( 718)

- 인천에서 알마티까지 -

   공항에서 기다리는데 얼마 전까지도 못 간다던 양숙씨가 큰 배낭을 지고 나타난다. 우여곡절 끝에 가게 됐다는 것이다. 다들 잘 됐다고 얼싸안고 기뻐하는데 양숙씨가 한마디 한다. 이번에 여행 잘 다녀오라고 남편이 5백만 원을 줬다는 것이다. 충격을 먹은 나도 한 마디 했다.

나는 남편이 생활비 내놓고 가라고 해서 하루에 만 원씩 쳐서 20만원 주고 왔는데~” 하고 동정의 눈초리를 기대하고 둘러보니 싸늘한 눈빛이 감돈다.

자기는 800만원 쓰면서 남편은 겨우 20만원 주고 오냐? 무슨 애들 껌 값도 아니고~” 공연히 말 한 마디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졌다.

   알마티 공항에 내리니 다들 잘 통과하는데 김사장님의 김치 보따리가 걸렸다. 식품이라서 품질 보증서를 내라는 것이다. 없다고 하니 20달러를 내란다. 밖의 가이드를 손짓으로 불러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냥 나가라고 한다. 공항에서부터 부정부패의 사회상이 보인다.

   공항 로비에는 꽃 파는 사람이 보인다. 해외여행하고 온 사람을 맞이할 때 꽃을 주나보다.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이드라고 나온 총각을 보니 완전 어린 애다. 웬 아이가 나왔나 했더니 24살이고 딸도 있단다. 이름은 알텐 벡이라고 했다. 알텐은 우리 말로 금()이다. 김씨라는 뜻이다.

 

카자흐스탄 2 ( 719)

- 일레알라타우국립공원 -

   메데우 침블락으로 이동하여 케이블카를 세 번 타고 3200미터까지 올라갔다. 눈앞에 빙하가 걸쳐있는 천산산맥 줄기가 나타나고 옆에는 3500미터 높이의 탈가르봉이 보인다.


  야생화가 융단처럼 깔린 잔디밭이 말 그대로 천상의 화원이다. 정상을 향해 출발하니 고소라 그런지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주저앉을 때마다 지천으로 깔린 야생화가 힘내라고 속삭인다.


   돌아내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고 하염없이 걷다보니 정상이 보인다. 정상에는 뾰족한 돌들이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


   다들 하산하고 세 명 밖에 안 남아 걸음이 느린 나는 먼저 내려간다고 나선 것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너덜지대로 가니 발걸음을 내 디딜 때마다 돌들이 우르르 무너진다. 이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돌 속에 파묻히는 거 아닌가 겁이 더럭 난다. 겨우 너덜에서 벗어나 능선상의 본 궤도에 오르니 나도 모르게 한 숨이 나온다. 앞서 내려가는 미숙씨의 뒷모습이 보이자 안심이 되어 천천히 내려왔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오는데 같이 탄 현지 여자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한국말 아느냐고 하니 조금 안다고 한다. 딸과 함께 키르키스스탄에서 관광 왔다고 한다. 어디서 한국말 배웠냐고 하니 한국어 학원에서 배웠단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한국이라고 하면 일본과 같은 나라냐고 했는데 어느 새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져 한국말 하는 사람이 꽤 많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쭉 펴진다.

케이블카의 중간 지점에 있는 식당에 이르자 원장님이 발을 삐었다고 한다. 발을 식탁에 얹어 놓고 한창 치료중이다. 나도 가지고 있는 진통제와 동전 파스를 드렸다. 정연씨는 밥까지 떠 먹여주며 간호를 하고 있다.


   여기 오기 전에 점을 보러 갔더니 이번 여행은 안 가는 게 좋겠다고 하더란다. 그래도 원장님이 계획하고 주선한 여행이라 안 올 수 없어서 왔더니 첫날부터 다쳤다고 하소연을 한다.

 

- 판필로브 공원 -

   알마티로 돌아와 판필로브 공원으로 갔다. 공원에는 비들기가 가득하다. 꼬마들이 비들기를 잡으려고 쫓아다니는 모습이 정겹다.


   공원 안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있다. 여자들은 머리에 스카프를 써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하여 입구에 있는 것을 하나씩 머리에 둘렀다.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 나오는데 문 앞에 웬 할머니가 서 있다. 고려인 할머니라고 하는데 금사장님과 한참 무슨 얘기를 주고받더니 도라지 노래를 부른다. 한국 사람을 보니 무척 반가웠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는데 교회에서 성가대도 한단다.


  건물도 아름답고 정원도 아름다운 교회다.


   공원 안으로 더 들어가니 2차 대전 참전 용사들을 기린 동상도 있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공원 한쪽에는 2차 대전 때 소련이 각 도시를 탈환한 날짜가 적힌 돌비석도 있다.


카자흐스탄 3 ( 720)

- 알틴에멜 국립공원 -

   바씨로 이동하다가 길가의 과일 가게에 들렀다. 생전 과일 구경 못한 사람들처럼 즐거워한다. 금사장님은 아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인 행세를 한다.


   커다란 메론을 사서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바씨에 있는 알틴에멜리조트에 짐을 풀고 singing dune(노래하는 모래언덕)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이 거대한 사구는 근처 일리강가의 모래가 바람에 날려 와 쌓인 것인데 세 개의 사구가 마치 모래산처럼 보인다. 모래가 쌓일 때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은 완만하고 반대쪽은 모래가 급히 떨어지며 급경사를 이룬다. 이런 사구를 카자흐스탄에서는 바르한이라고 부르는데 초승달 모양의 모래언덕이란 뜻이다.

   모래언덕의 능선을 오르며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노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노래는 무슨 개뿔? 하며 능선에 앉아 사진들을 찍고 엉덩이를 대고 모래절벽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웅~ 하며 산이 운다. 내려오는 동안 계속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장엄하고 웅장한지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듯도 하고 산이 커다란 호른을 불어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들으면 산이 방구를 뀌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난다. 엉덩이가 모래를 마찰시키며 어떤 공명이 일어나나 보다.


   모래절벽을 다 내려와 주차장 쪽으로 오는데 앞 서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뭔가를 보고 있다. 조심조심 다가가니 도마뱀 한 마리가 햇볕을 쬐고 있다. 물 한 방울 없는 척박한 모래땅에서 뭘 먹고 사는지 그 생명의 강인함이 놀랍다.


   주차장에서 조금 더 가니 웬 안내판이 있다. 성냥불을 붙이는 것 같아 천연가스가 나오나 했더니 그게 아니다. 숲으로 조금 들어가니 약수물이 흐른다. 메마른 사막에도 이렇게 한 줄기 물이 있어 도마뱀이나 새들이 먹고 사나보다.


   집으로 돌아오다가 자연사 박물관에 들렀다. 이름 모를 동물 뼈와 그 지역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들이 방금 전에 갔던 노래하는 모래언덕 사진도 있다.


카자흐스탄 4 ( 721)

- 카투타우 -

   아침에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산책했다. 어미젖을 빠는 망아지도 보이고 조그만 시냇물도 보인다. 평온한 시골 풍경에 내 마음도 평온해진다.


   우리 집 건너편에는 아담한 사원이 있는데 담장에는 조촐한 벽화도 보인다.


   기암괴석이 멋있다는 카투타우로 이동하다가 어제 자연사 박물관의 사진에서 보았던 오래 된 나무를 보러갔다. 나무는 한 농가의 마당에 있었는데 가지가 옆으로 기울어 고양이가 올라간다. 우리도 여기 기어올라 고양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마당에는 이 집 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했는지 모래성을 쌓고 나뭇가지로 울타리도 만들었다. 한 옆에는 장난감 자동차도 보인다. 집 앞에 앉아있는 오누이가 만들었나보다. 인생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카투타우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중천에 떠올라 살이 익어버릴 것 같은 폭염이다. 그래도 쌍지팡이를 짚고 바위 골짜기로 들어섰다. 바위 산 위쪽은 마치 중세 시대의 성곽을 보는 듯하고 바위색은 기기묘묘하여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 악타우 -

   일사병에 걸려 쓰러지기 직전에 다시 차를 타고 악타우로 갔다. 악타우는 하얀 산맥이란 뜻인데 하얀 바위도 많지만 붉은 색 사암으로 이루어진 기묘한 모양의 바위가 특히 멋지다. 움푹 들어간 바위에서는 속으로 기어들어가 미라처럼 누워 사진을 찍고 구멍이 뚫린 바위에는 목을 들이밀고 사진을 찍었다. 찍는 모습이 우스워 깔깔대며 찍다보니 다들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악타우인지 낙타우인지 타우 타우 하는 바람에 바위를 타고 한참 놀았다.


   오늘의 숙소가 있는 싸티로 이동하다가 낙타 떼를 만났다. 다른 차들이 서 있기에 우리도 내려 보니 자연 상태의 낙타가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다. 인간에게 혹사당하지 않고 자연에서 놀고먹는 이들은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계속 달리다가 과일 파는 천막을 만났다. 다들 목이 마른지라 수박을 사서 폭풍 흡입했다.


- 차른캐년 국립공원 -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차른캐년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차른캐년은 중앙아시아의 그랜드캐년이라 불릴 만큼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협곡이다. 협곡 밑으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이고 미끄러워 쌍지팡이를 집고 조심조심 내려갔다. 석양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협곡이 환상적이다.


   해가 지려고 하는 능선에 선 사람들의 모습이 까만 개미처럼 보인다.


   협곡 밑에 있는 길을 따라 어느 정도 내려가다가 날이 어두워져 다시 돌아 나왔다. 더 가면 또 어떤 절경이 나타날지 아쉽기 그지없다.


   사티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자그마한 민박집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에 외양간이 보이고 송아지가 환영 인사를 한다. 마당에는 넓은 감자밭에 하얀 꽃이 가득 피고 그 사이에서 빨간 벼슬의 수탉이 노닐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각자 방을 잡았는데 단전이라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저녁 7시는 되어야 들어온다는 것이다. 시골이라 전력 사정이 안 좋은가보다.

 

카자흐스탄 5 ( 722)

- 사티 마을 -

   아침에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시냇물이 흐른다. 시냇물에서 세수도 하고 이집 저집 기웃기웃 들여다본다. 나무 판때기로 얼기설기 엮어 놓은 울타리도 정겹고 아무 꾸밈없는 살림살이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동네 끝자락에는 이슬람 사원이 있다. 철문을 슬쩍 밀어보니 열린다. 안으로 들어가 한 바퀴 둘러보고 건물 안으로 통하는 문으로 가니 잠겨있다. 대부분의 이슬람 사원은 여자의 출입을 금한다더니 여기도 그런지 모르겠다.


   강아지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이나 앞마당에서 부지런히 모이를 찾는 암탉의 모습이 평화롭다. 다시 집을 향해 돌아오는데 개울가에 웬 소가 있다. 나뭇잎을 뜯어먹고 있는 소를 보니 가운데 부분만 하얀 것이 이채롭다. 개울 물 속에 까지 들어가 정신없이 먹는 걸 보면 이 나무의 잎이 특별히 맛있나보다.


   막대기 하나 들고 소를 몰아가는 동네 아저씨의 모습도 보인다. 사람보다 힘도 세고 몸집도 큰 소 여러 마리가 가느다란 회초리 하나에 꼼짝 못하고 순순히 끌려가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정말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시냇물에서 세수를 하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갑자기 웬 말이 나타난다. 개울을 건너 집으로 가는 모습이 평화롭다.


   대문을 들어서니 송아지 두 마리가 외양간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누가 뭐라도 해도 순둥이라고 눈망울에 쓰여 있다. 엄마들은 주인에게 끌려가서 젖을 착취당하고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다 짠 후 빈 젖이나 빨아야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인간이 가장 잔인한 동물이 아닐까?

 

- 콜사이 호수 -

   아침 식사 후 콜사이 호수로 갔다. 보통 차는 갈 수가 없어 사륜구동의 승합차를 탔는데 그야말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서커스 하듯 달린다. 앞의 의자를 잔뜩 움켜지고 요동을 치니 온몸에 쥐가 나려한다.

콜사이 호수는 산 중턱에 있는 수정 같은 호수다. 호수의 물빛은 보면 볼수록 빨려 들어갈 듯 오묘하다.


   호수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호숫가에는 바늘꽃, 모싯대, 칼잎용담 등 이름 모를 꽃들이 지천이다. 호수 끝자락까지 가니 개울물이 호수로 흘러든다. 더 올라가야 개울을 건널 것 같은데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신발을 벗고 건너기로 했다. 그곳에는 텐트를 친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 여자가 쫓아 나오며 개울을 건너 오른쪽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작은 개울의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자기가 물속으로 걸어가며 잡아주기까지 한다. 머리 허연 노인네가 건너는 게 불안해 보였나보다. 큰 개울로 신을 벗고 들어가니 물이 어찌나 찬지 뼛속까지 얼어버리는 듯하다. 중간의 작은 자갈밭에서 햇볕에 발을 잠시 녹인 후 다시 물로 들어섰다. 다 건너니 발이 무감각하다.


   물에서 나와 오르막길로 오르는데 말들이 수시로 지나간다. 이쪽 길은 넓어서 걷기 힘든 사람들이 말을 타고 호수 끝까지 오는 것 같다. 한 꼬마가 말꼬리를 잡고 올라오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이쪽에서 바라보니 햇빛의 방향이 바뀌어 물빛은 더 찬란하고 야생화와 어우러져 여기가 천국인가 싶게 아름답다.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도 한 폭의 그림이다.


- 카인듸 호수 -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카인듸 호수로 갔다. 카인듸로 가는 길은 보통 차는 갈 수가 없어 사륜구동의 특수승합차를 탔는데 뒤집어질 듯 요동을 치며 서커스 하듯 달린다. 나뒹굴지 않으려고 앞의 의자를 잔뜩 움켜지고 온몸으로 버텼다.


   넓은 길을 한참 올라가다가 왼쪽 샛길로 걸어 내려가니 호수가 보인다. 이 호수에는 둘레길은 없고 물속에 죽은 고사목이 즐비하다. 우리나라 주산지의 왕버드나무처럼 물에 잠겼다. 지진이 나서 산사태로 계곡이 막히는 바람에 호수가 생겼고 골짜기의 나무가 물에 잠기게 되었다고 한다.


   정신없이 사진 찍고 놀다보니 우리를 태울 마지막 차가 올 시간이 되어간다. 걸어서 내려오면 버스가 떠날까봐 중간에 말을 타기로 했다. 말을 타려면 항상 두려움이 앞선다. 특히 산길을 내려오려니 말에서 굴러 떨어질까 봐 심장이 쪼그라드는듯하다. 안 떨어지려고 다리에 있는 대로 힘을 주니 사타구니가 다 까질 판이다.

   주차장에 와서 아무리 버스를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버스 안 오면 수 십 킬로를 걸어서 집에 가야하나 여기서 날 밤을 새야하나 걱정이 태산이다. 우리의 가이드 알텐 벡은 버스비를 안 주었기 때문에 분명히 올 거라고 장담한다. 다섯 시에 온다던 버스는 여섯시도 훨씬 넘어서 도착했다. 이곳 현지인들은 늘상 있는 일인지 천하태평이다. 운전기사도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그런 표정도 전혀 없다. 내려오는 길은 차가 더 요동을 치니 쿵 쿵 땅을 때릴 때마다 골반 뼈가 깨질 것 같다. 다시 곡예를 하듯 산을 내려와 숙소로 왔다.

   어제는 단전이더니 오늘은 단수다. 다들 수건을 들고 개울로 내려가 세수도 하고 빨래도 한다. 이런 일이 수시로 있는지 동네 사람들도 커다란 물통에 물을 채워 작은 수레에 싣고 간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다들 아무 불평 없이 자연에 동화되어 간다.

   개울로 내려가는데 원장님이 진흙탕에 빠져 쩔쩔 맨다. 신발이 빠져나오지 않아 발만 뺀 후 신발을 끌어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옆의 마른 땅으로 가지 왜 그리로 갔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아도 발목을 삐어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무지 아플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정연씨도 거기 빠져 신발이 진흙범벅이 되었다고 한다. 누가 천생연분 아니랄까봐 그런 것까지 세트로 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