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1 ( 7월 23일 )
- 국경 통과 -
아침 일찍 케켄로드를 경유하여 국경으로 갔다. 출국 심사원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한국에 관심이 많은가보다. 박지성도 알고 태권도도 한다고 한다. 갈 때는 ‘안녕히 가세요.’하며 작별인사까지 한다.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우리나라의 위상을 실감한다. 예전에는 일본사람이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한류 덕인지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반갑게 말을 걸어온다.
사람은 빨리 통과했는데 짐 검사가 오래 걸린다. 가이드 알텐 벡과 짐차의 기사 막심이 나오지 않아 뙤약볕에서 한 시간은 서서 기다렸다. 그야말로 산 채로 바베큐 될 뻔했다.
키르기스스탄으로 입국하여 조금 가다가 한 호텔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호텔 정원도 아름답고 식탁은 상다리 휘게 생겼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지게 감탄하며 허겁지겁 먹어댔다.
- 제티오구즈 -
식사 후 제티오구즈로 이동하여 트레킹을 하였다. 입구에 인터넷에서 본 깨진 심장 바위가 보인다. 정말 인간의 심장처럼 두 쪽으로 갈라진 바위덩어리다.
차를 타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더니 막심과 드미트리가 맨발로 물에 들어간다. 손으로 만져보니 얼음장처럼 차가운데 춥지도 않나보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며 트레킹을 했다. 노도처럼 쏟아져 내리는 빙하물이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듯 무시무시하다. 각자 시간이 되는 데까지 갔다 오라고 하여 어느 정도 가다가 돌아섰다. 내려오는 도중 비가 쏟아진다. 천둥 번개가 치며 쏟아지는데 천지개벽을 하는 듯하다.
제티오구즈는 어디 있느냐고 하니 주차장 근처란다. 제티는 일곱, 오구즈는 황소, 즉 일곱 마리 황소라는 뜻인데 붉은 빛이 도는 바위 봉우리를 말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봉우리가 여덟 개로 보인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차를 타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카라콜로 향했다.
키르기스스탄 2 ( 7월 24일 )
- 카라콜 -
아침에 일어나 해 뜨기 전에 카라콜 동네를 둘러보았다. 백옥 같이 하얀 미루나무가 인상적이다. 동네 사람들이 너도 나도 소를 몰고 한 곳을 향해 간다. 우리도 따라가 봤다.
커다란 공터로 가니 온 동네 소들이 다 모였다. 마치 우시장 같다. 말을 탄 두 명의 남자가 보인다. 소를 몰고 온 사람들은 여기에 소를 두고 집으로 돌아간다. 말을 탄 남자들이 온 동네 소를 몰고 산으로 올라가는데 작은 개울이 있다. 소들이 개울을 건너는데 마치 TV에서 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것 같이 장관이다.
- 알틴 아라샨 -
오늘은 가이드 연습생 무라도라는 청년이 합류했다. 영어가 유창한데 열심히 우리를 돕겠다고 인사를 한다. 알텐 벡은 여리디 여린 아이처럼 보이는데 무라도는 단단하고 다부지게 생겼다. 짐도 열심히 나르고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앞으로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다. 가이드 한 명 이름 외우기도 힘든데 또 한 명이 나타나니 더 난감하다. 그래서 어거지로 외웠는데 배추대신 무, 배추가 없으면 무라도 달라고 외었다.
아라샨은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이란 뜻이다. 이름 그대로 계곡에 온천이 있다. 알틴 아라샨으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군용 트럭 같은 차를 타고 곡예를 하듯 산을 오른다.
차가 곤두박질치듯 산을 오르다가 고갯마루에 오르자 갑자기 앞이 탁 트이면서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된다.
온천지구의 유르타(키르기스스탄식 게르) 들이 점점이 보인다. 유르타는 몽골의 게르보다 작고 높이는 좀 높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한 후 트레킹을 시작했다. 유르타 앞에는 키르기스스탄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이 나라 국기에 있는 40개의 햇살은 건국 조상 마나스 휘하의 40장군을 나타내고 가운데 둥근 문양은 유르타 천장의 구멍을 나타낸다.
왼쪽에 계곡을 끼고 안으로 이어지는 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워 융단 위를 걷는 것 같다. 개울 건너편에서는 말들이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다. 지구상에 낙원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싶다.
개울가의 길이 끝나고 오른쪽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가팔라서 제법 숨 가쁘게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가다가 전망 좋은 바위에서 가져간 간식을 먹고 하산하려니 양숙씨와 명란씨가 올라온다. 두 명은 온천을 하지 않겠다고 더 올라가고 미숙씨와 나는 온천욕을 하려고 거기서 내려왔다.
물가의 초원을 끼고 내려오는 길도 그야말로 비단결 같은 실크로드다.
주차장까지 내려와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온천장으로 들어갔다. 온천장이라야 조그마한 방갈로 같은 허름한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머리 꼭대기에 샤워기 하나 달랑 달려있고 욕조만한 크기의 목욕탕이 하나 있다. 대충 씻고 탕에 들어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온몸의 피로가 스르르 물러간다. 트레킹 하는 동안 비가 오락가락해서 옷이 젖는 바람에 추웠는데 추위도 싹 가시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고슬고슬해서 날아갈 듯 상쾌하다.
찬물에 담가놓은 시원한 수박을 다 먹어치우고 차로 올라오니 배부르고 등 따시고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
내려오는 길도 험난하여 차가 곤두박질을 치는데 이 길을 걸어 올라오는 사람도 많다. 먹을 것 입을 것 튜브 등을 바리바리 지고 올라오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넘친다. 이게 세상사는 맛이 아닐까?
키르기스스탄 3 ( 7월 25일 )
- 카라콜 남자-
아침에 일어나 어제의 누우 떼 같은 장관을 보려고 해 뜨기 전에 집을 나서니 소들이 안 보인다. 어제 산으로 간 후 다시 내려오지 않았나? 아니 우리가 너무 늦게 나와서 벌써 산으로 갔나? 하면서 산으로 향했다. 천천히 올라가며 남의 집 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안을 들여다보니 건초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다.
계속 올라가는데 길가에 웬 차가 서 있다. 주인은 어디 갔나 싶어 숲속을 보니 웬 남자가 술병을 들고 숲으로 들어간다. 미숙씨가 아마도 산소에 성묘를 하러 왔나보다고 한다. 남의 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데 소떼가 올라온다. 우리가 너무 빨리 나와서 개울을 건너는 소떼의 장관을 놓치고 만 것이다. 오늘도 말을 탄 사람이 소떼를 몰며 산으로 가고 있다. 가끔 옆으로 가는 소가 있으면 개들이 쫓아가서 다른 소가 있는 쪽으로 몰아간다. 큰 소가 조그만 개에게 조종당하는 걸 보면 아이러니하다.
소떼가 지나갈 즈음 아까 길옆에 있던 차가 올라온다. 우리를 보더니 위에 경치가 좋은 곳을 보여줄 테니 타라고 한다. 덥석 타고 생각하니 이러다 엉뚱한 곳으로 우릴 데려가면 어쩌나 은근히 걱정된다. 앞에는 소떼가 길을 막아 천천히 소 뒤를 따라갔다.
나중에 산수 갑산을 갈망정 일단 여기저기 구경을 하며 계속 달렸다. 조금 가니 무슨 국립공원이 나온다. 이 남자는 비쉬케크에 사는 은행원이라 했다. 오늘이 자기 생일인데 아버지 생각이 나서 성묘 왔단다. 아버지는 2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하며 우울한 표정을 짓는다. 생일이라고 하기에 미숙씨와 둘이서 ‘해피 버쓰 데이’ 노래도 불러주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즐거워한다. 핸드폰을 꺼내더니 아내와 아들 사진도 보여주고 누나와 조카들 사진도 보여주며 신이 났다.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고 하니 다시 차를 돌려 원래의 자리로 왔다. 우리가 내리려하자 메모지를 꺼내더니 자기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며 비쉬케크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한다. 미숙씨는 생일 선물이라고 하며 팔찌를 빼어준다. 자기 엄마가 지금 사는 집이라고 하는 곳을 보니 아까 우리가 사진 찍던 건초더미 가득한 집이다.
동네로 들어와 집으로 오다가 웬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걸 보더니 또 과자를 꺼내어준다. 미숙씨 오지랖은 세상천하보다 넓다. 난 죽었다 깨나도 이건 못 배우겠다.
- 이쉬쿨 호수 -
촐폰아타로 이동하여 이쉬쿨 호수로 갔다. 쿨은 호수라는 뜻이다. 호숫가에 이르니 모터보트와 멋진 요트들이 즐비하다.
우리도 배 하나를 전세 내어 유람을 하며 점심 식사를 했다. 배 안에는 푸짐한 음식이 진수성찬이다.
남자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물로 뛰어들었다. 알텐 벡과 무라도, 막심도 신이 났다. 원장님도 다리 아프다더니 통증도 잊었는지 물에서는 나올 줄을 모른다.
- 카라오이 선사시대 암각화 박물관 -
배에서 내려와 암각화 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이라고 해서 실내에 있는 줄 알았더니 땡볕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돌무더기가 모여 있는 곳이다. 커다란 바위에 여러 가지 그림이 그려져 있다.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 정도의 그림인데 주로 양과 염소, 낙타 같은 원시인들이 주로 접하던 동물이 다.
나린으로 이동하다가 독수리 사냥 쇼를 보았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사냥꾼 차와 만나 벌판으로 들어갔다. 사냥꾼은 독수리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독수리가 날지 못하게 눈을 가려놓았다.
사냥꾼 아저씨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독수리를 날리면 그의 아들이 죽은 오소리 같은 것을 줄에 매달고 뛰어간다. 독수리가 이걸 보고 살아있는 동물로 착각하고 공중에서 낚아채야하는데 가짜라는 걸 아는지 달려들지를 않는다.
몇 번을 시도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어린 아들만 뙤약볕 아래서 몇 번을 달리다가 포기하고 이번에는 산 토끼를 자루에 넣어 들고 온다. 토끼를 땅에 내려놓자 어리버리한다. 토끼가 달려서 도망가야 독수리가 잡으러 올 텐데 뛰지를 못하니 이것도 실패다. 아이도 토끼도 다 지쳤나보다.
너무 보기가 딱해서 그만하자고 했더니 독수리에게 먹이를 준 후 한 번씩 들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들어보니 제법 묵직하여 한 손으로 들기도 어렵다. 그래도 김사장님과 무라도, 알텐 벡은 멋지게 잘 들어올린다.
나린에 도착하여 칸텐그리라는 호텔에 들었는데 목조 건물이 아담하다.
키르기스스탄 4 ( 7월 26일 )
- 허브향 가득한 나린 -
아침에 일어나 앞산에 올랐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산이다. 온통 허브로 덮여있는 산에 오르니 나린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민둥한 산들이 마치 경주에 있는 고분군을 보는 듯하다.
- 먼지 풀풀 비포장길 -
집으로 돌아와 키르키즈스탄 제 2의 도시인 오쉬로 이동했다. 가다가 멋진 경치가 보이면 차를 세우고 길바닥에서 생 쇼를 벌이며 사진도 찍었다. 오쉬까지 7시간 걸린다더니 14시간이나 걸렸다.
중간에 식당도 없으니 점심 먹을 곳도 없다.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 길을 달리다가 조그마한 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내려가 준비해간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굽이굽이 고갯길을 올라가면 그곳에도 가축들이 보이고 목동들도 보인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힘든 환경에서 자라니 이곳 아이들은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될 수밖에 없다. 시멘트 더미 속에서 학원 다니느라 파리한 우리나라 아이들이 더 행복한지 의문이다.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오쉬에 있는 썬라이즈 호텔에 도착했다.
키르기스스탄 5 ( 7월 27일 )
- 오쉬 -
아침에 오쉬 길거리 구경을 나갔다. 호텔 근처에 학교가 있는데 부모들이 아이를 등교시키고 있다. 한 아이는 학교 가기 싫은지 징징 울며 끌려가고 있다. 학교는 누가 만들었는지 누구를 위해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 사리타쉬 -
사리타쉬로 이동하다가 고갯길에 차를 세웠다. 고개에서 바라보이는 지그재그길이 보기에도 아찔하다.
우리들이 사진을 찍는데 현지인들이 다가와 같이 찍자고 한다. 이곳 사람들도 외국인과 사진 찍기를 좋아하나보다. 항상 웃음이 넘치고 먼저 다가오는 모습이 구 소련 사람들 같지 않다.
사리타쉬에 도착하여 게스트하우스에 들었다. 방에는 양탄자 위에 이부자리가 깔려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너도 나도 누워 사진을 찍었다.
- 레닌봉 -
잠시 쉬다가 레닌봉을 향해 출발했다. 다른 국가에서는 소련이 해체된 후 레닌 동상도 파괴하고 소련의 자취를 없애는데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산 이름에 레닌봉을 그대로 둔 걸 보면 크게 반감이 없나보다.
아스팔트길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니 레닌봉이라고 쓴 철 구조물이 나타난다. 이걸 보자 막심과 김사장님은 구조물 위로 기어오르고 원장님은 만세를 부르며 포즈를 취한다. 나도 올라가고 싶었지만 주제 파악하고 참았다.
이런 우리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웬 꼬마 둘이 다가온다. 옷이 같은 걸로 보아 형제인 듯하다. 비포장길에 이정표도 없는데 물을 건너 잘도 달린다.
레닌봉은 꽤 높은지 이 여름에도 만년설을 이고 있다. 아직타쉬라는 곳에 이르자 유르타가 많다. 여름 휴양지로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여기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붉은 암석과 초록의 풀들이 어우러져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트레킹을 시작할 때부터 부슬부슬 비가 오더니 점점 빗발이 세어진다. 한참 가다가 큰 바위를 지나자 웬 파가 가득하다. 누가 심은 것 같지는 않고 야생파인가보다. 설산을 배경으로 초록의 파가 멋진 풍경을 이룬다. 파는 밭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야생파도 있다.
정해진 시간만큼 걷다가 되돌아 나왔다. 내려오는 길도 눈과 바위와 풀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서양화를 보는 듯하다.
소나기가 퍼붓더니 주차장에 이르자 무지개가 떴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지개 보기도 힘든데 공기가 맑으니 무지개도 뜬다. 무지개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오다가 흰머리풀 있는데서 차를 세웠다. 들어갈 때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풀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나올 때 찍기로 했다. 그런데 태양이 이미 기울어져 들어갈 때의 그 모습이 아니다. 아쉬운 대로 대충 찍고 다시 차에 올랐다. 고소에서 비를 맞고 걸었더니 고소증이 나타나 빌빌 대며 저녁도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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