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2018. 2. 23. 안나푸르나 기행문 2

아~ 네모네! 2018. 4. 10. 15:58

환상의 쏘롱나 패스 ( 36)

- 하이캠프에서 묵티나트까지 -

   하이캠프에서 쏘롱나패스를 넘어 묵티나트 13.4km를 걷는데 11시간이나 걸렸다. 한 마디로 온몸의 에너지가 다 고갈된 날이다. 걸음이 늦은 우리는 캄캄한 새벽에 헤드랜턴을 켜고 산행을 시작했다. 5천 미터가 넘으니 공기가 50% 정도밖에 안되어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5번 동생은 숨을 못 쉬겠다고 몇 발짝 가서 쉬고 또 몇 발짝 가서 주저앉고 하며 죽을상이다. 부띠가 등을 두드리고 문질러 주고 배낭도 져 주지만 대책이 없다.


   그래도 의지의 한국인답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드디어 쏘롱나패스에 올랐다.


   날씨는 바람도 불지 않고 햇볕도 따가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이승의 세계 같지 않다. 신의 세계에 잠시 발을 들여놓은 듯 몽롱하다. 나는 쏘롱나가 틸리초 호수보다 더 춥고 바람도 강하다고 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고 동이고 잔뜩 입었더니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힘들게 생겼다. 나중에 이 사진을 3번 동생에게 카톡으로 보냈더니 미라 같다고 한다. 내가 봐도 이집트에서 본 미라와 똑같다.

우릴 여기까지 끌어올리느라 고생한 부띠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스패츠에 아이젠까지 끼어서 신나게 내려오는데 서양여자는 운동화만 신고 질질 미끄러지고 자빠지며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눈이 많을 줄 몰랐나보다.

   묵티나트 못 미쳐서 힌두고 성지가 있다기에 구경하기로 했다. 벽 위에 물이 나오는 구멍을 만들어 물줄기가 뿜어져 내리니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 아래쪽으로 오니 불교 사원도 있다. 야외에 모셔진 거대한 불상이 우릴 압도한다.


   사원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길가에 앉아 자선을 바라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왠지 낯설고 눈길이 부담스러워 빠른 걸음으로 통과했다.

   묵티나트에 도착하니 웬 과일 트럭이 들어와 장사를 하고 있다. 4번 동생과 5번 동생은 과일을 보자 힘이 나는지 달려가 포도와 토마토를 사서 들고 온다. 그랜드 호텔에 들어가 오랜 만에 샤워도 하고 과일도 먹으며 오늘의 성공을 자축했다.

 

똥꼬가 문드러질 뻔 ( 37)

- 묵티나트에서 따또파니까지 -

   포터들은 묵티나트에서 버스를 타고 까그베니까지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우린 걸어가서 짚차를 타기로 했다. 묵티나트에서 까그베니는 10km 정도인데 4시간 걸렸다. 묵티나트 마을 아래쪽으로 가니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우리는 여기서 우측으로 꺾어 자르코트 마을 쪽으로 갔다. 가는 길은 평화로운 우리네 시골길을 걷는 듯했다. 길가에 의자도 있어 전망을 보며 쉬어갈 수도 있다.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한 곳에도 마을이 있다. 집과 집을 이어 굴처럼 만든 골목도 있다.


   계곡 건너편은 무스탕 지역이라고 하는데 황량하기 그지없다. 저런 곳에 어떻게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고 무스탕 왕국까지 세웠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계속되는 비포장 길을 뙤약볕 아래서 걸으려니 마음도 몸도 허기가 몰려온다. 딱히 쉴만한 곳도 없어 길가에 앉아 어제 먹다 남은 토마토로 갈증을 풀었다.


   외국인 한 팀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걸었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그 자녀, 손자들이 함께 가는 모습이 퍽이나 아름다워 보인다. 사실 행복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지 싶다.

   닐기리봉과 다울라기리봉, 무스탕을 보며 무념무상으로 걷다보니 오른쪽 계곡 속에 그림 같은 마을이 나타난다. 까그베니다. 밭에는 푸른빛이 감돌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마냥 정겹다.


   까그베니에서 짚차를 타고 비포장 길을 달리는데 먼지도 먼지지만 술 취한 듯 비틀거리고 까불어대는데 그야말로 똥꼬가 문드러질 지경이다. 짐을 차 지붕에 싣고 달리다가 커버가 날아간 줄도 모르고 한참 갔다.


   좀솜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따또파니까지 정신이 나갈 지경으로 흔들어대는데 앞의 의자를 잡고 안간 힘을 쓰려니 손에서 쥐가 나려한다.

   우리 앞에 구급차가 지나가는데 할머니 한 분이 누워있다. 길이 하도 나빠 시속 20km도 못 가고 곳곳에 일방통행을 시키니 명 짧은 사람은 병원 가기도 전에 저 세상 가게 생겼다. 부띠에게 저렇게 구급차를 부르면 나라에서 경비를 부담해 주느냐고 물으니 본인이 부담해야한단다.

   저녁때가 다 되어 따또파니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따뜻하다. 따또는 따뜻하다는 뜻이고 파니는 물이라고 하니 따뜻한 물이 나오는 곳 즉 온천이다. 제부가 조사한 바로는 히말라야롯지가 좋다고 해서 그리로 갔다. 과연 정원도 아름답고 음식도 훌륭하다.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도 하고 시원한 맥주도 즐겼다.


말이 물 먹던 고레파니 ( 38)

- 따또파니에서 고레파니까지 -

   히말라야 롯지를 나서는데 개 한 마리가 계속 좇아온다. 엊저녁 식사 때 우리 식탁 근처에서 맴돌던 녀석 같기도 하다. 저러다가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나 싶다. 5번 동생이 집에 가라고 돌 까지 던져보지만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끈질기게 따라온다.


   따또파니에서 고라파니까지는 14km인데 9시간 걸렸다. 엄홍길이 지어주었다는 학교에 들어서니 현관 앞에 엄홍길 사진이 붙어있다.


   무슨 체크 포스트가 그리도 많은지 거의 동네마다 있는 것 같다.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어디서 실종됐는지 알아보려는 건지도 모른다.


   봄이라 그런지 염소들이 새끼를 낳아 바글바글하다. 어미와 새끼가 함께 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평온하고 아름답다.


   시카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부띠가 국수를 만들어주겠다고 칼을 들고 주방으로 들락날락한다. 양배추를 보여주며 이것 넣을까 묻고 잠시 후 당근, 양파, 무우를 들고 나와 또 이거 넣을까 묻는다. 어찌하든지 맛난 것을 먹이려는 마음이 갸륵하다. 부띠는 요리사, 사진사, 가이드, 포터, 간호사 못하는 게 없다. 만능인간이라고나 할까?


   이때까지는 머리 벗어지게 뜨겁더니 슬슬 구름이 몰려온다. 잠시 후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쏟아진다. 비는 눈으로, 눈은 우박으로 변하며 우리를 정신없이 몰아댄다. 퍼붓는 비, , 우박을 쫄딱 맞으며 물 한 모금 못 먹고 쫓기듯 고레파니를 향해 걸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니 말들이 여기서 물을 먹었나보다. 비는 쏟아지지만 네팔 국화인 랄리구라스가 환상적인 자태로 트레커를 유혹한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그린뷰 롯지에 도착하자마자 젖은 옷을 벗고 조카 정민이가 일본 서 사온 핫 팩을 앞판에 두 개, 뒤판에 두 개씩 처덕처덕 도배하듯 붙였다. 그거 없었으면 저체온증 걸릴 뻔 했다.

  젖은 옷을 들고 내려가 난로 위에 널어 말렸다. 여기는 원체 비가 잘 와서 그런지 난로 위에 빨랫줄도 있다. 빼마는 5번 동생 손수건을 들고 난로에 바짝 대고 말려준다. 이거 공주가 따로 없네~


   부띠가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핸드폰을 달란다. 왜 그런가 했더니 와이파이를 연결해준다. 벽을 보니 와이파이가 150루피라고 쓰여 있는데 비밀번호를 아는 부띠가 몰래 연결해준 것이다. 도둑질 한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린다.

   우리 곁에서 웬 서양남자가 브라운이란 걸 먹길래 맛있겠다고 쳐다보니 눈치로 알았는지 한 개씩 먹어 보라고 준다. 이거 거지가 따로 없네~. 우린 여기 샌드위치가 맛있다는 평이 있어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과연 소문대로 맛이 꽤 좋았다. 불도 빵빵하게 때 주니 몸과 옷을 모두 말리고 방으로 돌아왔다.

 

붉은 천국 ( 39)

- 고레파니에서 추일레까지 -

   새벽어둠을 가르고 푼힐 전망대(3210m)로 향했다. 전망대까지는 2.3km로 왕복 3시간 걸린다. 기어가듯 느릿느릿 걸어 전망대에 오르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일출을 기다리고 있다.


   다울라기리와 마차부차레가 환상이다. 마차부차레는 물고기 꼬리라는 뜻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마치 꼬리지느러미처럼 생겼다. 네팔 사람들은 이 봉을 신성하게 여겨 정상에 오르는 것을 금지한다고 한다.


   부띠와 제부도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듯하다. 부띠 부인은 이태리에 가서 마사지 일을 하고, 아들이 하나인데 사립학교 기숙사에서 산다고 했다. 그는 아들의 앞날을 위해 기도했을까?


   일출을 보는데 한 여자가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자기는 중국에서 왔는데 김종국 팬이라고 한다. 한국말도 제법 잘 한다. 다시 한 번 한류의 위력을 실감한다.

   푼힐 전망대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다시 고레파니로 내려왔다. 고레파니에는 푼힐족이 많이 살아서 이곳 전망대를 푼힐 전망대라 한단다.


   내려오는 길에 바라보는 다울라기리가 랄리구라스와 어우러져 눈부시게 빛난다. 랄리구라스는 1800m 이상의 고소에서만 산다고 하는데 붉은색, 흰색, 핑크, 노란색, 보라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붉은 색 밖에 못 봤다. 네팔 국화는 붉은 랄리구라스인데 랄리는 붉은 색, 구라스는 꽃잎이라고 한다.


   오늘은 원래 고라파니에서 타다파니까지 갈 예정이었지만 좀 더 욕심을 내어 추일레까지 가기로 했다. 12.2km6시간 걸려 걸었다. 푼힐 왕복까지 합치면 16.8km, 9시간 걸었다. 고레파니에서 타다파니로 가는 능선은 랄리구라스가 만발하여 그야말로 붉은 색 천국에 들어온 기분이다. 천상의 화원도 아마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싶다.


   3천 미터 봉우리를 넘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은 기막힌 절경에 취해 구름 위를 걷듯 환상 속에 걸었다.


   타다파니에 이르니 동네가 제법 크고 물건 파는 상점도 많다. 타다는 멀다는 뜻이고 파니는 물, 즉 물이 있는 곳까지 멀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단다. 골목길을 지나는데 아래쪽에 사람들이 여럿 모여 고기를 나누고 있다. 부띠 말로는 물소를 잡은 것 같다고 한다. 동네잔치라도 있는 모양이다.


   오늘도 오후로 접어들자 구름이 슬슬 밀려오더니 추일레 가까이 가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뛰다시피 걸어 마운틴 디스커버리 롯지에 도착하자 비바람이 몰아친다.

   부띠 말로는 오늘 고레파니에서 일본 남자 한 명이 고소증으로 죽었단다.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안 가면 될 것을 공연히 기어 올라가 죽다니 다른 동물이 보면 인간처럼 어리석은 동물이 있을까? 하긴 나도 똑 같은 인간이지만 말이다. 이런 헛된 욕망은 어쩌다가 인간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을까?

   핫 샤워가 가능하다고 해서 허름한 욕실로 가니 문짝이 붕 떠서 밑으로 찬바람이 슝 슝 들어온다. 핫 샤워하려다 얼어 죽을 뻔 했다. 핫은 무슨 개뿔? 그래도 며칠 만에 씻고 나니 개운하다.

 

시누인지 올캐인지? ( 310)

- 추일레에서 시누와까지 -

   디스커버리 롯지는 앞마당이 넓고 전망이 기막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마차부차레가 일품이다. 날씨는 언제 그랬냐 싶게 화창하다.


   추일레에서 시누아까지는 8.4km5시간 반 정도 걸렸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업 다운이 엄청 심하다. 추일레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밀밭이 많아 동양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 5번 동생이 그림 속에서 나온 여인 같다.


   촘롱에 도착하니 초입에 한국 음식을 파는 롯지가 있다. 안내판도 한글로 잘 써놨다. 나중에 푼힐에서 만난 중국 아가씨를 만났는데 여기서 김치찌개 먹었다고 한다.


   우린 좀 더 올라가서 다음 롯지로 갔는데 여기서 김치 볶음밥을 먹었다. 촘롱에는 한국인이 많이 오나보다. 김치볶음밥도 맛있지만 축대에 가득 핀 히말라야 바위취가 눈길을 끈다.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바위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촘롱에는 빵집도 있어서 빵도 좀 샀다. 이곳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가는 길목이라 한국인을 종종 만난다. 태극기를 배낭에 꽂고 휘날리며 가는 남자, 부부가 함께 온 사람도 만났다.

   식사를 마치고 계단 길을 끝도 없이 내려가 바닥을 치니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부부가 보인다. 우리도 옛날에는 모두 소로 밭을 갈던 시절이 있어 그 풍경이 정겹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자 비가 쏟아진다. 안나푸르나는 날씨가 하도 변덕스러워 변덕 심한 네팔 아가씨를 안나푸르나 마음이라고 한단다. 정말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니 그 비위를 누가 맞출 수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비가 많이 오니까 농사가 잘 되나 보다. 부띠 말로는 안나는 네팔 말로 쌀이나 밀 같은 곡식을 뜻하고, 푸르나는 여신이라고 한다. 그래서 안나푸르나를 수확의 여신이라고도 하고 풍요의 여신이라고도 하나보다.

   시누와는 아래 시누와와 윗 시누아가 있는데 우린 아래 시누와에서 머물기로 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데도 어찌나 가파른지 숨이 턱에 닿을 쯤 겨우 도착했다. 시누인지 올캐인지 성질도 더럽다.

   연일 햇볕을 받으며 하루 종일 걷다보니 모두들 얼굴이 엉망 됐다. 특히 제부는 얼굴 위쪽은 하얗고 아래쪽은 새카맣게 타서 두 얼굴의 사나이로 변신했다. 나는 힘들어서 코를 땅에 박고 다녔더니 그래도 가장 준수하다.

   매일 걸었더니 오늘은 발가락 사이에 있는 신경종이 커졌는지 발가락이 아파 절뚝절뚝하며 걸었다. 날이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 제부도 일본 가서 다친 발목이 아파 매일 진통제로 견디고 있다.

그래도 2시도 안 돼 롯지에 도착하여 핫 샤워를 하고 나니 날아갈 듯 상쾌하다. 핫샤워는 1인당 150루피 하는데도 있고 200루피 받는 곳도 있다. 200루피면 우리 돈 2200원 정도니 그래도 싼 편이다.

   식당에는 8848 트레킹’ ‘오산 총동문 산악회등 많은 리본과 깃발들이 붙어있다. 한국사람이 많이 오는 것인지 유독 한국인들만 이런 표시 달기를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산 산악회 리본을 보니 오산 사는 금형씨 생각이 떠오른다.

   부띠는 오늘도 주방에 들어가 칼을 휘두르며 우리 음식을 준비하는데 5번 동생이 스프를 주며 끓을 때 넣으라고 설명을 한다. 표현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보글보글 퐁당~”하니까 알겠다고 들고 들어간다. 5번은 우리 중 가장 어휘력은 딸리는 것 같은데 말은 제일 잘 한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하나 머리를 굴리는 사이 벌써 말이 튀어나온다. 오늘 산 토마토를 먹으라고 내가 부띠에게 주니 그냥 우리들끼리 먹으라고 사양한다. 나는 두 말도 못하고 말았는데 5번은 들고 나가 토마토 먹어~”하고 소리를 냅다 지른다. 다들 군말 없이 먹는다.

   촘롱에 통신탑 같은 것이 보이더니 여기까지 와이파이가 잘 된다. 카톡을 열어보니 딸이 아빠 드시라고 반찬 해왔다고 사진을 올렸다. 그릇이 세 개나 되는 것으로 보아 세 가지 반찬을 했나보다. 아들 밖에 없는 4번이 이래서 딸이 있어야한다고 부러워한다.


썩은 내가 진동하네~ ( 311)

- 시누와에서 데우랄리까지 -

   730분에 아래 시누와를 출발하여 윗 시누와를 지나 밤부(BAMBOO)에 도착하니 이름 그대로 대나무가 엄청 많다.

   도반을 거쳐 히말라야라는 마을에서 칼국수 먹었다. 칼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제부와 부띠는 열심히 스케줄을 짜고 있다.


   썸머라이는 치통으로 죽을상을 하고 잘 먹지도 못한다. 네팔 약을 먹었는데 효과가 없다고 해서 우리가 가져간 에드빌을 주고 먹어 보라고 했다. 몸은 아픈데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그를 보니 너무도 미안하다.

   종교적 이유로 시누와 위부터는 소, 야크, , 돼지 모두 먹지 말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철 철 내린다.

   히말라야를 지나서 계곡 길을 가는데 웬 서양여자가 업혀 내려온다. 다리를 다친 듯하다. 일행인 남자가 앞서 내려오며 삐용 삐용 사이렌 소리 내는 걸 보니 웃음이 절로난다. 그 여자의 덩치가 커서 포터가 엄청 힘들 것 같다.

   3시 쯤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오늘도 7시간 반 정도 걸었다. 우리는 포터들이 미리 와서 숙소를 잡았는데 늦게 온 사람들은 방이 없어 도로 내려갔다.

   롯지마다 열쇠가 달린 나무가 물고기 모양이다. 마차부차레를 신성시 한다더니 그 모양을 본 뜬 것 같다.


   허구한 날 하는 일이라곤 먹고 걷는 것 밖에 없다. 비는 매일 오는데 옷을 말리지 못하니 옷에서 쉰내를 지나 썩은 내가 난다. 연일 물탱크 속에 빠져서 지내는 것 같다.

 

클라이밍 팀이라고? ( 312)

- 데우랄리에서 ABC를 거쳐 밤부까지 -

   데우랄리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왕복 14km를 걷고 데우랄리에서 밤부까지 7.5km, 21.5km 11시간 30분 걸었다. 동생 핸드폰 만보기를 보니 총 42500보 걸었다.

   이 날도 새벽 5시에 일어나 간식을 약간 먹은 후 헤드랜턴을 켜고 ABC로 향했다. 해가 뜨기 전에는 엄청 춥더니 해가 나자 갑자기 더워진다. 사방이 밝아오자 훨씬 걷기 편하다. 마차부차레 베이스캠프인 MBC를 지나 계속 오르니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롯지가 눈에 보인다.

   그런데 아무리 가도 롯지가 가까워지지 않는다. 주위에 온통 산 밖에 없으니 변화가 없어서 그런지 도무지 거리가 줄지 않는다.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롯지도 마침내 지척으로 다가오고 ABC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먼저 도착한 동생들과 제부는 한바탕 사진을 찍고 있다.


   이 날은 부띠와 아시스만 같이 올라가서 아시스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산을 사랑한 대한민국 여성 산악인 지현옥이란 안내판과 사진이 보인다. 태극기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지금도 살아있는 듯하다. 여기서 왼쪽으로 조금 가니 박영석과 신동민, 강기석의 추모비가 보인다.


   추모비에 쓰인 글이 가슴 뭉클하다. 이들이 이곳에서 산이 되었다는 말이 실감난다. 이들은 지금도 이 얼음 속 어딘가에 묻혀 있으니 산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은 사실이다. 얼마나 긴 세월이 지나야 이 빙하가 녹아 이들이 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인간에게 산을 향한 이런 욕망을 불어넣은 존재는 누구일까? 왜 이들은 하나 밖에 없는 생명을 여기에 투자했을까? 그래도 한 번 태어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니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하나?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면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다른 동물이 우릴 보면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까?

   ABC롯지의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료수와 간식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하산했다. 하산 중에 바라보는 안나푸르나는 환상 그 자체다. 정신이 아득하여 우리도 산의 일부가 될 것만 같다.


   데우랄리로 내려와 점심을 먹고 짐을 챙겨 밤부로 향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구름이 몰려오더니 얼마 내려오지 않아 또 퍼붓는다. 12시간 가까이 걸었더니 무릎이 아작날 지경이다.


   내 걸음이 소처럼 느려서 허구한 날 부띠가 내 뒤에 바짝 따라오니 소변은커녕 방구 뀌기도 힘들다. 한참씩 참으면 배가 아픈데 살짝 뀌려고 해도 잘못 뀌다간 똥 쌀 판이다. 이럴 땐 시끄러운 물소리라도 들리면 좋은데 왜 이리도 사방이 조용한지?

   부띠는 우리 걸음이 느리다고 우리를 비스터리팀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클라이밍팀이라고 개명했다. 비스터리는 천천히라는 네팔 말이다. “비스터리 비스터리 정~”하면 천천히 천천히 갑시다.’라는 뜻이다.

   숨 넘어가게 힘든 길이지만 아빠 배낭 위에 앉아 있는 아기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른다. 절뚝거리는 할머니부터 어린 아기까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길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이 부르는 소리를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일까? 오늘도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밤부에 도착했다.


홀딱 벗고 화끈하게 보여주면 안되나? ( 313)

- 밤부에서 란드룩까지 -

   밤부~시누와~ 촘롱~지누단다~뉴브릿지~ 란드룩까지 14km를 걷는데 9시간 걸렸다. 일주일 만에 비 안 맞고 걸은 날이다.

   점심때는 촘롱에 있는 히말라야뷰 게스트하우스에서 김치찌게를 먹었다. 안나푸르나 남봉과 마차부차레가 잘 보인다. 마차부차레는 항상 구름이 서려 잘 보이지 않는다. 홀딱 벗고 화끈하게 보여주면 좋으련만 감질나게 만든다. 그래서 더 신비롭게 여기는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본 중 오늘이 가장 선명히 보이는 셈이다. 지상 최고의 전망 좋은 곳에서 식사하니 세상에 부러운 놈 하나 없다.


   여기에는 한국여자가 혼자 있었는데 남편은 ABC 가고 자기는 여기서 기다리기로 했단다. 여기서 ABC 갔다 오려면 4일은 걸릴 텐데 혼자 심심하겠다. 하긴 이 근처만 왔다 갔다 해도 경치는 환상이다.

   지누단다에는 온천물이 있다는데 온천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는 그냥 통과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앞서서 잘 가던 제부가 돌부리에 걸려 갑자기 넘어졌다.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 걸 보니 심하게 다친 모양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이럴 수가? 다들 놀라서 어쩔 줄 모르니 여자들 먼저 가고 있으란다. 부띠가 또 간호를 하고 보온병을 자기 배낭에 넣고 천천히 온다. 진통제를 먹고 파스를 붙이고 대강 치료를 한 후 란드룩을 향해 걸었다. 배낭 옆 주머니에 넣었던 보온병이 넘어질 때 갈비뼈를 때려서 오른쪽 옆구리가 아프단다. 대장님이 다치니 우리 모두 힘이 빠지고 의기소침해진다.

   뉴브릿지를 건너니 폭포가 나온다. 여기서 폭포 물을 받아먹는 흉내를 내느라고 생 쇼를 벌이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 컷 찍는데도 이렇게 힘드니 영화 한 편 찍으려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안 된다.


   란드룩까지 마냥 걷는데 동네에 들어서도 산을 계속 오른다. 이 동네는 트래커들이 별로 없는지 롯지에도 손님이 별로 없다. 2층 방 앞에 빨랫줄이 있어서 그동안 말리지 못한 옷을 주렁주렁 널었다.


   2층 베란다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또 비가 내린다. 하지만 걸을 때 비가 안 온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