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샘 솟는 곳? ( 7월 6일 )
- 부쿠레슈티에서 불가리아 소피아까지 -
부쿠레슈티는 ‘기쁨이 샘솟는 곳’이란 뜻이다. 목축업이 발달했는데 부쿠르라는 목동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국회의사당으로 쓰는 건물은 차우체스쿠 궁전이다. 세계에서 판타곤 다음으로 큰 건물인데 이 건물을 지은 차우체스쿠는 80%정도 지었을 때 민중 봉기로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기쁨이 샘 솟아야할 곳에 슬픔이 서린 듯하다.
차우체스크는 이 건물을 짓기 위해 여기 살던 서민들을 모조리 내쫓고 30개의 성당을 밀어 버렸다. 안타까움을 견디지 못한 시민들이 성당 밑을 파서 레일을 깔고 성당을 통째로 옮겼다. 그 중 한 성당을 보러갔다.
성당 옆에 초를 태우는 곳이 있어서 우리도 양초를 사서 촛불을 꽂았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신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개선문과 혁명광장을 보고 불가리아의 소피아로 향했다. 7시간을 이동하려면 온몸이 비틀리게 생겼다.
불가리아 입국 시에는 관광객이 봉인가보다. 우리의 기사가 그곳 직원들에게 물 주고, 돈 주고, 열심히 기름을 바른다. 잘못하면 2시간 기다릴 수도 있단다. 이런 걸 보면 불가리아는 아직도 후진국인 것 같다.
김사장님이 마이크를 잡더니 우리가 묵으려는 호텔에서 불가리아 외교관 회의가 있어서 객실을 몰수했다고 한다. 아니 아무리 후진국이라지만 이럴 수가 있나? 아직도 공산주의 사고방식을 가진 듯하다. 얼마 후 할라데이인 호텔로 가라고 연락이 왔다.
그동안 우리들과 마찰이 많았던 기사는 오늘로 끝내고 내일은 다른 기사와 버스가 온다고 한다.
릴라산 ( 7월 7일 )
- 소피아에서 보로베츠까지 -
그동안 함께 한 기사 미키와 이별하려니 마음이 짠하다. 서로가 조금씩만 양보하고 조심했으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새로 온 기사는 블라도라고 했다. 유순하게 생겼다.
릴라산으로 이동하여 7개 호수 국립공원으로 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바라기 밭을 보려니 나는 해바라기 인생인가? 돈바라기 인생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돈 바라기에 더 가깝지 싶다. 사실 돈보다 귀한 것이 해인데 말이다.
릴라산에 이르러 리프트를 타고 신나게 올라갔다. 날씨도 맑고 전망도 좋았다. 릴라라는 말은 트라이키어로 많은 물을 뜻하는 roula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물이 많은 곳이다.
가이드는 수시로 인원을 체크하며 뒷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책임감이 철저한 사람인 듯하다. 뒷사람이 다 와야 출발한다. 기다리는 동안 간식도 먹고 사진도 찍으니 여유가 있어서 좋다.
정상에 이르니 여러 개의 호수가 한 눈에 보인다. 근처에는 눈도 쌓여서 더 이국적이다. 7개의 호수에는 각각 이름이 있는데 눈(eye) 모양의 호수도 있고 콩팥을 닮은 콩팥 호수도 있다.
7개의 호수를 다 보고 내려오는데 천둥, 번개, 비, 우박이 정신없이 쏟아진다. 누가 산 날씨를 여자 마음 같다고 했나? 어떤 여자인지 정말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내려오다가 안개 속에 보이지 않는 우리 팀 부르려고 ‘어이~’ 하며 스틱을 들었더니 원장님이 깜짝 놀라며 스틱 들지 말라고 한다. 벼락이 뾰족한 금속에 떨어진다는 것을 깜빡했다. 원장님의 철저한 안전 의식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달리듯 내려오니 리프트가 안 움직인다. 순희씨 부부는 미리 내려간 줄 알았더니 그 때도 리프트가 안 움직여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단다. 순희씨는 다리가 아파서 도저히 못 내려간다고 하여 짚차를 부르기로 했다. 우리는 비를 철철 맞으며 리프트가 움직일 때를 기다리다 지쳐서 걸어 내려갔다.
내려오는 길은 짚차들이 올라오느라 매연이 진동한다. 우리도 짚차를 타고 싶지만 모든 짚차들이 예약된 손님을 태우느라 우리를 태워줄 차가 없으니 죽자 사자 걸을 수밖에 없다. 원래는 오후에 온천을 하기로 했지만 시간이 늦어 포기한지 오래다.
호텔에 와서 겉옷부터 속옷까지 몽땅 벗어 빨았다. 원래는 서울 갈 때까지 빨래 안 하려고 했는데 물 범벅 흙 범벅이 됐으니 빨지 않을 수 없다.
릴라 수도원 ( 7월 8일 )
- 보로베츠에서 반스코까지 -
오늘은 8시에 아침식사하고 8시 30분에 출발이라고 해서 식당에 안 가고 방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즉석 비빔밥도 먹을 만하다. 호텔 밖으로 나가니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스키리조트인데 여름이라서 그런지 오가는 사람도 없고 개들만 어슬렁거린다.
김사장님도 동네 한 바퀴 돌려다 개 밖에 없어서 들어왔다고 한다. 김사장님이 젤로 무서워하는 것이 개와 물이라고 하는데 학창시절에 개에게 물려서 개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단다. 누구나 한 가지씩은 트리우마가 있는 듯하다.
릴라 수도원으로 가니 관광객이 가득하다. 릴라 수도원은 이반이란 수도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이반 = 이안 = 요한인 듯하다. 우리 아들이 결혼한 지 10년이 넘어서 손자가 태어났다. 이름을 지을 때 이안이라고 한다기에 이안의 뜻이 뭐냐고 물으니 요한과 같은 이름인데 ‘하나님은 자비하시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수도원 입구 위쪽에는 사슴뿔을 달아 놓았는데 생뚱맞은 느낌이다. 왜 이런 걸 달아놓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5개의 건물이 있는데 한 건물은 외적의 침입시 안 보이게 숨겨 놓았다고 한다.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궁금하다. 지하인지 숲속인지 알 수 없다. 불가리아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 가운데 하나라고 하더니 유명세에 걸맞게 사람들이 엄청 많다. 아치 모양을 이룬 기둥이 이색적이다.
미사 중에는 경건한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미사가 끝났는지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말 그대로 어마무시하게 삐까 뻔쩍하다. 마침 성도들이 줄을 서서 신부님이 주는 빵을 받아먹고 있다. 성찬식을 하나보다. 양숙씨도 줄을 서서 받기에 나도 줄을 섰다가 받아먹었다. 먹고 나서 생각하니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 교회에서 세례는 받았지만 성당에서 영세는 안 받았는데 말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며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이렇게 돈을 쏟아 붓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하는 건지? 그건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다. 둘 다 하면 좋겠지만 말이다.
물 받으러 온 수도사님, 걸어가면서도 열공하는 수도사님 등 살아있는 수도원이란 느낌이 든다.
수도원에서 내려오다가 송어요리를 먹고 와이너리 구경을 하러 갔다. 와인을 시음하고 생산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윈장님이 설명하는 아가씨에게 TV에서 보니 포도를 통에 넣고 발로 밟더라고 하자 옛날에는 그렇게 했다고 하며 웃는다. 전 과정이 기계화 된 듯하다.
반스코 시내에 와서 불가리아 장미 오일 크림이 좋다고 앞 다투어 샀다. 내일은 산행 팀과 관광 팀으로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다.
비흐렌산 ( 7월 9일 )
- 반스코에서 두 번째 날 -
7명은 산행, 7명은 관광하기로 했다. 산행 팀은 버스에 올라 산행기점으로 가고 관광 팀은 곤돌라를 타러 갔다. 버스에 오르자 원장님이 알약을 두 개씩 준다. 고소약인가 했더니 피로 회복제라 한다.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하여 정상 쪽은 포기하고 왼쪽 그린 코스로 갔다. 넓은 포장길을 한참 걸어 1972m에 있는 비흐렌 산장에 도착했다. 2층으로 된 아담한 집이다.
비흐렌 산장에서 출발하는데 웬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개는 가이드처럼 앞으로 갔다 뒤로 같다 하며 우리를 호위해주고 있다. 졸지에 가이드가 두 명 됐다.
눈 모양을 닮은 아이(eye) 호수, 물고기모양 호수, 개구리 호수 등 아홉 개의 호수가 있는 이 코스는 온갖 야생화가 어우러져 천상의 화원을 걷는 듯하다. 개구리가 많다는 개구리 호수에는 올챙이가 가득하다. 다리도 안 나왔는데 언제 개구리가 되어 동면에 들어갈지 걱정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너덜이 쌓인 비탈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너덜 길도 끝나고 2690미터 봉우리에 올라서니 돌탑이 기다리고 있다. 불가리아 사람들도 탑 쌓기를 좋아하나보다. 사방으로 탁 트인 조망이 기막히다.
단체로 인증 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둘렀다. 벌써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눈 아래 펼쳐지는 능선과 호수들이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하다.
정상에서 내려와 호숫가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여기까지 충실히 따라온 개는 우리 앞에 납작 엎드려 처분만 바란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샌드위치를 주니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후딱 먹어 치운다. 치즈를 좋아하는지 치즈 먼저 다 먹고 빵을 먹는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주는 빵을 다 먹어 치우더니 후식으로 풀을 뜯어 먹는다. 개가 소처럼 풀 먹는 것은 처음 본다.
우리 가이드는 38살인데 4개월 된 애기도 있단다. 우리가 70살이라고 하자 놀라며 엄지척 시늉을 한다. 한참을 내려오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짐승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우리 개가 산토끼를 쫓고 있다. 산토끼는 죽기 살기로 도망가고 우리 개도 미친 듯이 쫓는 모습을 보니 개의 사냥 본능을 실감한다. 토끼를 잡았는지 한참 동안 보이지 않는다. 거의 다 내려오니 다시 나타나 우리를 인도한다.
비흐렌 산장에 내려와 약수 물을 먹어보니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가 없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어찌나 찬지 뼈가 저리다. 신발까지 깨끗이 닦고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온다.
주차장 가까이 오니 굵은 빗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달리듯 내려와 버스에 오르니 폭우가 쏟아진다. 한 발만 늦었어도 물에 빠진 생쥐 될 뻔 했다. 비 올 확률 80% 라더니 어제 양숙씨가 릴라 수도원에서 성체를 모신 덕에 한참 미루어 주셨나보다. 오늘은 양숙씨의 기도발과 원장님의 약발 덕에 비도 별로 안 맞고 무사히 산행을 잘 마쳤다.
호텔로 돌아오니 관광팀도 곤돌라 타고 올라가 산장에서 그네도 타고 커피도 마시며 즐기다 왔다고 한다. 원장님과 정연씨는 몇 년 만에 만난 견우직녀 모양 두 손을 맞대고 하이 화이브를 하며 상봉을 한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여니 조잘 조잘 빗소리가 정겹다. 오늘은 이번 여행 마지막 밤이라서 김사장님 방에 모여 어제 원장님이 와이너리에서 산 와인을 마시며 쫑파티를 했다. 김사장님이 만든 물냉면과 비빔냉면 맛이 일품이다. 삼각 김밥만 잘 만드는 줄 알았더니 냉면도 달인 수준이다.
소피아 ( 7월 10일 )
- 반스코에서 이스탄불까지 -
아침에 동네를 도는데 웬 물레방아 같은 곳에서 물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가까이 가보니 나무로 만든 큰 원통에 양탄자가 걸쳐있다. 안쪽에서는 물이 돌며 양탄자가 물속에서 빙빙 돌고 있다. 월풀 세탁기가 여기서부터 유래되었나보다. 나중에 들으니 이 자연 세탁기를 발레비짜라고 하는데 빨래를 비틀어 짜지는 못해도 그 두꺼운 양탄자를 손가락 하나 안 대고 세탁할 수 있으니 정말 기막힌 발명품이다.
호텔 옆 풀밭에는 달팽이가 바글바글하다. 엊저녁에 비가 주룩주룩 내리더니 온가족이 나들이를 나왔나보다. 8시 30분쯤 반스코 기차역에 오니 아무도 없다. 10시 23분 기차라더니 너무 빨리 왔나보다. 잠시 기다리니 역무원이 와서 기차표를 예약하고 시내 구경을 갔다.
양숙씨는 호텔에서 준 햄버거를 네 개나 들고 나와 도로 공사 하는 사람들에게 준다. 혹시 실례가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더니 고맙다고 하며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자두 한 봉지를 준다. 양숙씨는 물물 교환했다고 웃으며 기뻐한다.
중심가에 있는 성당에 가보니 정원이 아름답다.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들어가니 신부님 한 분이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 가만히 문을 닫고 나왔다. 구시가지 골목을 요리조리 둘러보는 맛도 쏠쏠하다. 한가로운 암탉이 모이를 찾고 있다.
구시가지 골목을 돌아보는데 집의 문에 웬 사진과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다. 사진 위에 검은 리본으로 장식한 집도 있다. 그런 집들이 꽤 많아서 그 집에 거주하는 사람인가 했더니 돌아가신 분들의 기일이 다가오면 그렇게 사진을 붙인다는 것이다. 귀신이 집 못 찾아 올까봐 그러나?
공원에 오니 한 여자가 비눗방울을 날리고 여자 아이는 비눗방울을 잡으려고 쫓아다닌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은 한 번쯤은 와 볼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10시 쯤 역으로 돌아오니 사람들이 몰려와 표를 사려고 줄을 섰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양숙씨가 얻어온 자두를 먹었다 크기는 체리 정도밖에 안 되는데 맛은 시지도 않고 제법 맛있다.
기차표에는 좌석이 없다고 하여 기차가 들어오기 무섭게 달려가 기차에 올랐다. 서로 자리를 잡느라고 말 그대로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네 량 밖에 안 되는 작은 협궤열차다. 좌석도 많지 않아 우리 회원들이 한 칸을 거의 다 차지했다.
내 옆에 현지인 여자가 앉았는데 일본 사람이냐고 묻는다. 코리아라고 하니 끄떡끄떡한다. 우리가 먹던 과자를 나누어주자 뭐라고 하는데 잘 모르는 표정을 짓자 '멜씨' 한다. 내가 땡큐? 라고 하자 그렇다고 끄떡이더니 미숙씨와 나에게 사탕을 한 개씩 준다. 손자들 줄 것을 우리에게 준 게 아닌지 모르겠다. 불가리아 사람들은 무엇을 받으면 꼭 답례를 하나보다.
가방에 돌나물이 비쭉 나온 걸 보니 시집 간 딸집에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영주 사장님 앞에는 현지인 남자가 앉았는데 둘이서 호탕하게 웃으며 뭔 얘기를 하는지 죽이 척척 맞는가보다.
다음 정류장에서 현지인 두 명이 모두 내리니 완전 독채 전세가 됐다. 몇 정류장을 더 가서 한 여자가 탔는데 엄청 예쁜 여자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가 원장님 옆에 앉는다. 다들 대박 났다고 웃는데 이 여자가 일어서더니 다른 칸으로 간다. 동양인뿐이니 어색했나보다. 원장님은 대박 날려다가 쪽박 찼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화장실에 가서 아래를 보니 구멍이 뻥 뚫려 땅바닥의 철길이 그대로 보인다. 이렇게 철길에 분뇨를 뿌려대면 철길 옆집으로 그 입자가 다 흩어질 것 같다. 혹시 비행기는 하늘 위에서 공중에다 그대로 날려 보내는 게 아닐까?
벨린그라드에 오니 우리 기사가 미리 도착하여 플랫 홈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소피아로 향했다.
시골에서만 놀다가 대도시에 오니 정신이 하나 없다. 소피아는 두 번째다. 지난번에 봤던 그대로다. 로마시대 유적지 밑에는 일곱 시대의 유적이 층층이 지층처럼 묻혀있다고 한다.
오스만투르크 지배 하에서는 말 탄 사람의 키보다 높게 교회를 짓지 못하게 하여 땅을 5미터 깊이로 파서 정교회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반면 옆에 있는 지배 민족의 이슬람 사원은 높고 웅장하다.
소피아 성당이라고도 하는 알렉잔더 네프스키 성당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소피아 관광을 마치고 불고기와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은 후 공항으로 향했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르니 3주간의 여행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마치 아름다운 꿈을 꾼 듯 아련하다.
집으로 ( 7월 11일 )
- 이스탄불에서 인천까지 -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 내리니 시장 바닥처럼 많은 사람들이 물밀듯 몰려다닌다. 조용한 산골에서만 놀다오니 촌년이 갓 상경한 듯 정신이 하나 없다. 새벽 1시나 되어 비행기 좌석에 앉으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 숨이 나온다. 이제 집으로 가나보다.
해외여행이 가슴 설레고 즐겁기는 한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긴장도 되고 걱정도 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갈 수 있는 날은 점점 줄어드는데 가고 싶은 곳은 점점 늘어나니 이게 참 문제다. 아니 이 좁은 육체를 빠져나가면 하늘에서 더 멋진 세상을 볼 수 있으려나? 어쩌면 드론에서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보일지도 모른다. ㅋㅋ 착각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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