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6. 4.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

아~ 네모네! 2020. 6. 8. 14:09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

 

이현숙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앞에 가는 여자가 자꾸 주춤주춤한다. 무얼 하나 자세히 쳐다보니 데크길에 송충이가 보일 때마다 발로 밟아 죽이며 간다. 나는 징그러워서 슬슬 피해 다니는데 용감한 건지 잔인한 건지 계속 벌레를 죽여서 곳곳에 벌레 터진 물이 누르스름하게 묻어있다.

  얼른 앞장서서 걸어간다. 앞에서 웬 남자가 나뭇가지를 들고 올라온다. 이 남자는 데크길에 있는 벌레들을 일일이 길 밖으로 밀어 던진다. 사람들에게 밟혀 죽을까봐 풀숲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 여자와 이 남자 사이에 있는 송충이들은 누구를 먼저 만나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릴 것이다.

  이 세상에는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가 공존한다. 우리 인생에서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사는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송충이가 길에서 기어 다니며 어떤 인간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생명체나 이 지구상에 오래 머물기 원하는 것 같다. 동물들도 굶어죽지 않으려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고 사람도 온갖 보약을 먹어가며 오래 살려고 한다. 코로나 19에 붙잡히지 않으려고 마스크도 쓰고 손소독제도 부지런히 바른다. 코로나 19는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저승사자인지도 모른다. 코로나 19가 죽이는 자라면 치료약이나 백신은 살리는 자일까? 누구를 먼저 만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살리는 자가 나타나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 이 세상은 그토록 좋은 곳일까? 어쩌면 저 세상이 더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자궁 속의 아기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는 이토록 경이로운 세계가 펼쳐질 줄 상상이나 했을까?

  몸이 이 구석 저 구석 망가지고 아플 때는 빨리 이 몸에서 탈출하고 싶기도 하다. 다 낡아빠지고 고장 난 이 몸을 빠져나가면 내가 원하는 대로 훨훨 날아다니며 맘껏 세상 구경을 할 것 같다. 몸이 없으니 배고픔도 모를 것이고 먹을 필요가 없으니 굳이 고생하며 농사지을 필요도 없다. 몸이 없으니 병도 없고 다시 죽을 일도 없으니 죽음을 겁내며 벌벌 떨 일도 없을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지고 스마트한 세상인가? 아무리 돌아다녀도 다리도 안 아플 것이다.

  죽어서 어둡고 축축한 땅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여기가 천국이고 내 몸을 빠져 나가 하늘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그 곳이 천국이다. 어느 곳이 천국이고 어느 곳이 지옥인지 가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죽이는 자와 살리는 자가 무수히 많다. 아홉 살짜리 의붓아들을 여행 가방에 일곱 시간이나 가두어 죽게 만든 계모가 있는가 하면 머나먼 아프리카까지 가서 병 든 아이들을 살리려고 애태우는 자원봉사자도 있다.

  나는 죽이는 자일까 살리는 자일까? 사람을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칠십년 넘게 살아오면서 무수한 생명을 죽여서 내 생명을 이어왔다. 또 주변 사람들의 기를 죽인 일이 무수하다.

  나는 칭찬에 인색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칭찬보다는 책망을 많이 한 편이다. 아들이 학교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 넌 지금 면목동 살아서 그렇지 강남 학교에 가면 땅바닥에서 기어 다녔을 거라고 기를 죽였다. 공대를 졸업하고 장신대 목회자 과정에 들어갔을 때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해에 며느리도 똑 같이 목회자 과정에 합격하자 친정아버지는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우리 딸이 천재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다. 내가 볼 때는 별로 천재인 것 같지 않은데 말이다. 이렇게 기를 살려 키워서 그런지 며느리는 밝고 성격이 원만하다.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용마산 자락길을 걸을 때 뒤에서 보면 어깨는 축 처지고 고개를 숙이고 걷는다. 고개 들고 걸으라고 좋은 말로 해도 될 텐데 땅에 뭐 떨어졌냐? 뭔 죄 졌냐? 왜 땅만 보고 걷느냐?” 하면서 기를 죽인다.

내가 어디라도 갈라치면 코로나 묻혀 올까봐 마스크 가져가라. 장갑 끼고 가라. 하며 잔소리를 한다. 순순히 하라는 대로 하면 좋은 데 또

사람이 죽기 밖에 더 하겠어?” 하며 기를 죽인다.

  이러다 내세에 다시 남편을 만나 내가 한 그대로 당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앞으로라도 남의 기를 팍 팍 살려주는 사람으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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