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6. 18. 지상인과 지하인

아~ 네모네! 2020. 7. 3. 14:00

지상인과 지하인

 

이현숙

 

  나와 함께 매주 구역예배를 보던 할머니가 있다. 딸이 하니 있기는 한데 딸도 살기 힘들어서 그런지 지하방에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이다. 소득도 없으니 나라에서 주는 생계비 30만원으로 산다. 20만원은 월세를 내고 10만원으로 생활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 집에서 예배를 볼 때면 떡을 사다가 우리를 대접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만원 가지고 매달 전기세 수도세 내고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이 할머니 집에 가면 계단을 내려갈 때부터 어두컴컴하고 경사가 심해 항상 조심스럽다. 급기야 할머니가 계단에서 굴러 목을 다쳤다. 목에 깁스를 하고서도 교회에 열심히 나온다.

  보일러가 고장 나면 서비스센터에 전화할 줄 몰라 내가 가서 그 집 보일러에 붙은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해주었다. 장마가 지면 방안까지 물이 들어와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야한다. 항상 습기가 차 있으니 벽지에는 꺼먼 곰팡이가 피었고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난다.

  한 번은 구역예배를 보던 중 예배지침서에 만약 달나라에 가야하는데 딱 한 가지만 가지고 간다면 무엇을 갖고 가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달에는 공기도 없고 물도 없으니 공기를 가져가야하나 물을 가져가야하나 하면서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이 할머니 왈

하나님한다.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띵해졌다. 이 할머니는 그 때 교회에 나온 지 몇 달 되지 않은 때였다. 나는 50년이 넘게 예수 믿는다고 설치고 다녔는데 고작 생각한 게 이 정도다. 하나님만 있으면 공기도 물도 먹을 것도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생각이나 했을까? 할머니의 믿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이 할머니는 걷기도 힘들어서 보행기를 밀고 다녀야했다. 그래도 교회에 가장 먼저 와서 앉아있고 우리 집에서 구역예배를 볼 때는 우리 집 호수를 누를 줄 몰라 미리 와서 아파트 문 앞에 보행기를 깔고 앉아 내가 수영에서 오기를 기다렸다.

  예배를 볼 때 우리 집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면 쓸데없는 미사여구는 다 빼고 미국에서 며느리가 자기 뱃속에 애기가 생겼다는 전화 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며느리가 결혼 후 10년이 되도록 애기가 없으니 그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할머니의 기도 덕분에 며느리가 애기를 낳게 된 것 같다.

  눈이 어두워 성경책도 못 읽는데 어떻게 이토록 큰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희한하다. 나는 성경을 몇 번씩 통독했으면서 아직도 믿음이 약해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거 하나님이 정말 있기는 있는 건가 하면서 반신반의 한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경 한 구절에서도 생명을 얻는데 마음이 혼탁한 사람은 평생 성경을 파고 공부해도 믿음을 얻지 못한다.

  나는 비록 13층에 살지만 내 영혼은 지하에 갇혀 있고 이 할머니는 비록 지하에 살지만 그 영혼은 지상에, 아니 천상에 살고 있다. 내가 지상에 사는 지하인이라면 할머니는 지하에 사는 지상인이다.

  지금은 요양원으로 가신 후 몇 년 동안 소식을 모른다. 아마도 돌아가셨을 것만 같다. 그 순수한 영혼이 하늘나라로 가서 아무 고통 없이 편안한 삶을 이어가셨으면 좋겠다. 그곳에서는 햇빛도 잘 들고 뽀송뽀송한 집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살고 계시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