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6. 23. 독약인가 보약인가

아~ 네모네! 2020. 7. 3. 16:31

독약인가 보약인가?

 

이현숙

 

  젊어서는 남편이 허구한 날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이 싫어서 도대체 술은 어떤 웬수같은 인간이 만들었나 생각했다. 그런데 술은 원숭이가 처음 발견하였다는 설이 있다. 원숭이가 숲에서 뭔가를 마시고는 비틀비틀 하기에 가보니 웬 액체가 있어서 맛을 보았더니 맛이 기막혀서 사람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일이 떨어져 자연 발효된 것을 먹다가 사람이 인위적으로 발효시켜 과일주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죄 없는 원숭이를 원망할 수도 없고.

  적당한 술은 몸에 이롭다는데 적당한 이 문제다. 요새는 잇몸에 염증이 생겨 몇 달 째 술을 입에 대지 못한다. 염증이 있을 때 술을 먹으면 더 심해진다고 해서 몇 달 동안 술을 끊고 치과에 다녀도 차도가 없다. 계속 이렇게 나가면 이를 뽑아야한다니 은근히 겁이 난다. 술이라고 해야 1주일에 막걸리 두세 잔 정도 먹지만 그것도 못 먹으니 괜히 서운하다. 몇 시간씩 땀 흘리고 등산한 다음 시원한 맥주나 막걸리 한 잔 먹으면 땀이 쏙 들어가는데 그걸 못하니 은근히 스트레스 쌓인다.

  친정의 이모는 알콜 중독이었다. 술을 먹으면 아무데서나 길에 쓰러져 잠들곤 했다. 이 꼴을 보다 못한 이모부는 자살했다. 이모는 가출하여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채 몇 십 년이 흘렀다.

  막내 동생도 알콜 중독에 걸려 20년이 넘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아이들은 다 커서 대학생이 되었다. 그래도 제부가 아들 딸 잘 키워서 다행이다. 막내는 지금도 연신 알콜 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고 있다. 이 동생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런데 지난 2월말쯤 남동생도 알콜 병원에 입원했다. 고대 다닐 때부터 술을 퍼마시고 공대를 나와 건설회사에 들어가서도 술을 매일 먹다시피 하더니 급기야 알콜 중독이 되었다.

  병원에서 지내기가 지루한지 아침마다 온갖 그림으로 된 아침인사를 카톡방에 올린다. 거의 매일 책을 보고 독후감도 올린다. 피에로와 모자, 독 짓는 늙은이, 황노인, 좋은 사람 콤플렉스 등 독서라고는 거의 안 하던 남동생이 요즘 책을 엄청 읽나보다. 하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신세가 되었으니 독서 밖에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 어찌하던지 치료를 잘 받고 완치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술이 웬수가 아니고 치료약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친정의 큰아버지는 매일 막걸리를 한두 잔씩 드셨다. 식사 때마다 반주로 드신듯하다. 그런데 99세까지 사셨다. 친정아버지도 매일 막걸리를 한두 잔씩 드셨는데 94세에 돌아가셨다. 이 분들에게는 술이 보약이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모나 동생들은 절제를 할 줄 모른다. 한 번 술이 들어가면 멈추지를 못하고 의식불명이 될 때까지 마신다. 이러니 중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술이 독약이다.

  친정집 유전자에 알콜에 취약한 인자가 있는 듯하다. 나는 술을 별로 즐겨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은 해야겠다. 독약이 아닌 보약이 될 정도로만 마셨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