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6. 29.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아~ 네모네! 2020. 7. 13. 13:19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이현숙

 

  해마다 한 해에 한 번씩은 해외여행에 다녀왔다. 이번 8월에도 노르웨이 트레킹을 가려고 작년부터 계획을 세우고 항공권을 구입했다. 남편은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유행하니 빨리 취소하라고 성화다. 나는 내가 먼저 취소할 수는 없다고 강경하게 맞섰다. 그런데 코로나19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한국인들의 입국을 불허하는 바람에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대한항공은 취소하자 곧 환불이 되었는데 유럽 내에서 이동하려던 항공권은 그대로 날렸다. 거금 80만원이다. 정부지원금은 60만원 밖에 못 받았는데 손해가 막심하다.

  3월에는 동생들과 남도여행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나라에서 여행 다니지 말라는데 무슨 여행이냐고 또 보챈다. 나는 사람이 죽기 밖에 더 하겠느냐고 고집을 부렸다. 남편은 이런 사람하고 같이 못 살겠다고 툴툴거린다. 나는 못 살겠으면 당장 나가라고 소리 지른다. 우리가 사는 집은 내 이름으로 되어있다. 그러니 남편도 군소리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우리 아파트는 망우산 밑에 있다. 거의 매일 남편과 둘이서 둘레길을 걷는다. 남편은 오늘은 다리에 힘이 없다느니, 오늘은 너무 날이 뜨겁다느니, 오늘은 비가 온다느니 하며 조금만 걸으려고 집을 나설 때부터 엄살을 부린다. 나는 속으로 일단 나섰으면 정상까지는 가야지 하며 투덜투덜한다.

  남편하고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나서 지금까지 52년째 함께 지내왔다. 나는 매사에 대책 없이 밀고 나가는 타입이고 남편은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이리 재고 저리 재느라고 아무 것도 못하는 타입이다. 내가 엑셀러레이터라면 남편은 브레이크다. 남편이 옆에서 브레이크를 걸 때마다 남편이 없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브레이크 없는 차가 어찌 존재할 수 있을까 싶다. 마냥 엑셀만 밟아대면 시속 100킬로 아니 1000킬로까지 달리다가 공중 분해되고 말 것이다. 엑셀만 있는 차도, 브레이크만 있는 차도 아무 쓸모가 없듯이 우리는 서로 간에 꼭 필요한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