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2020. 7. 4. 잡초와 화초

아~ 네모네! 2020. 7. 13. 13:34

잡초와 화초

이현숙

 

  용마산 자락길을 걷는다. 코로나19로 요가도 못 하니 그저 걷는 운동만 한다. 데크길 옆에 며느리배꼽이 눈에 띈다. 며느리배꼽은 며느리밑씻개와 비슷한데 잎의 모양이 약간 다르다. 며느리밑씻개는 잎이 좀 길쭉한 삼각형인데 며느리배꼽은 정삼각형에 가깝다. 두 개 다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있다. 며느리밑씻개는 이름에서 보는 것처럼 고부간의 갈등이 이름으로 나타난 식물이다.

  옛날에는 화장실에 화장지가 없었다. 귀한 종이를 어떻게 화장실에 쓰겠는가? 그때는 새끼줄이나 부드러운 나뭇잎, 풀들을 베다가 화장실에 놓아두고 볼일을 본 후 뒤처리용으로 사용했다. 하긴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큰댁에 가면 뒷간에 볏짚을 놓아두고 종이대신 썼다.

  그런 시절 시어머니가 기분 좋게 화장실용 풀들을 베다가 놓아두었다. 그런 일은 다 며느리가 알아서 하는 일인데 그날은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시어머니가 그 일을 해놓아서 며느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급하게 화장실에 들어가 볼일을 보고 그 풀로 밑을 닦는 순간 기절할 듯 놀랐다. 시어머니가 심술궂게 가시덩굴식물을 베다가 놓아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이 풀에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꽃말도 시기, 질투라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고부간의 갈등은 여인들의 영원한 숙명인가보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은 동그란 턱잎이 배꼽모양으로 생겨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며느리배꼽

  며느리밥풀꽃은 갓 시집 온 며느리가 밥이 익었나 보려고 밥풀 몇 알을 먹었다. 이것을 본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때려죽였다. 슬픔에 잠긴 신랑은 그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다음해 그 산소에서 예쁜 꽃이 피었다. 이 꽃이 며느리밥풀꽃이다. 빨간 입술에 하얀 밥풀이 두 개 붙어있는 모양이다.

며느리밥풀꽃

 

  왜 이렇게 야생화에 며느리라는 말이 많이 붙었을까? 아마도 여인들이 꽃을 좋아하다보니 야생화에도 관심이 많고 아들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들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매일 이 길을 걸으며 며느리배꼽 꽃이 피고 동글동글한 열매가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무참하게 이 풀이 사라졌다. 공원 관리하는 사람들이 잡초라고 생각하고 베어버린 것 같다. 허탈했다.

  공원 한편에는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하얀 꽃이 메밀꽃처럼 아련하다. 여기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매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걸었다. 어느 날 개망초가 모두 사라졌다. 박박 민 대머리가 되었다. 상실감에 가슴이 쓰렸다. 다른 쪽에는 맨드라미를 심어놓고 들어가지 못하게 비닐 끈으로 울타리까지 만들어놓았다.

개망초

 

 

맨드라미 심은 곳

 

  잡초와 화초의 차이는 무엇일까?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차이가 없다. 모두 자신의 복사본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의 표현이다. 단지 인간이 두 식물을 구분해 놓았을 뿐이다. 내가 볼 때는 맨드라미보다 개망초가 훨씬 예쁜데 왜 개망초는 잡초로 분류되어 무참히 베어지는 신세가 되었을까? 있어야할 자리에 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개망초가 시골의 들판에 있었으면 아무 탈 없이 천수를 누릴 수 있었을 텐데 도심의 공원에 뿌리내린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사람도 자기가 처한 환경에 따라 잡초도 되고 화초도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있어야할 자리에 있으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천수를 누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주위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제대로 성장도 못하고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죽어갈 것이다.

  요즘 어린이학대가 많다. 계모가 전처의 자식을 여행 가방에 넣고 위에서 뛰며 학대하다가 죽음으로 몰고 간 일도 있고 아사 직전까지 몰고 간 일도 있다. 이 아이들도 착한 부모를 만났으면 무한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한 일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시장은 스스로 사지를 찾아간 것일까? 자신의 본능에 너무 충실했던 것은 아닐까? 이 분도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에 뿌리 내리지 못해 이런 결과가 생겼을 지도 모른다.

  어느 곳이 진정 내가 있어야할 곳이고 내 자신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인지 그걸 알아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내가 뿌린 내린 장소에 따라 나는 잡초가 될 수도 있고 화초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