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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2020. 7. 20. 가짜가 만든 진짜

by 아~ 네모네! 2020. 7. 26.

가짜가 만든 진짜

이현숙

 

  남편과 자주 가던 일식집이 있었다. 그 사장님은 남편을 김박사님이라고 부른다. 사실 남편의 학력은 학사에 불과하다. 김박사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뭔가 거북하다. 일일이 그게 아니라고 부정을 하기도 그렇고 가만히 있자니 사기를 치는 기분이다. 물론 그 사장님도 남편이 박사가 아닌 줄 안다. 하지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이 사장님이 우리 집 근처에서 개업을 했다. 남편은 우리는 집에 자주 갔다. 우리 아이들이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이 사장님은 김밥을 싸서 아침에 우리 집으로 가져다주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나를 위한 배려다.

  언젠가 이 사장님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병원에 문병을 갔다. 목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는 그를 보자 마음이 뭉클하니 아파왔다. 퇴원을 하고 나서도 일식집을 계속했다.

  거기서 돈을 벌어 경찰병원 앞에 조금 큰 가게로 이전을 하였다. 거기도 우리는 자주 찾아갔다. 그 후 더 돈을 벌어 일산에 커다란 가게를 열었다. 면목동 사는 우리는 거기까지 찾아갔다. 친동생을 일찍 잃은 남편은 그 사장님을 친동생처럼 좋아했던 것 같다.

  8월에 미국 유학 간 아들이 11년 만에 드디어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말 그대로 김박사가 되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남편을 김박사라 부르던 그 사장님이 떠올랐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더니 이 사장님의 말이 씨가 되어 진짜 김박사님이 우리 집에 생긴 것 같다. 남편이 김박사님은 못 되었어도 아들을 김박사 만드느라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다. 연금 받는 돈을 쪼개고 쪼개서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게 살았다.

  요즘은 코로나 19로 아들에게 마스크 보내느라 매달 우체국을 드나든다. 어쩌다 실수로 중국산 마스크를 샀을 때는 그건 우리가 쓰고 아들에게는 한국산 마스크로 다시 사서 보낸다. 미국 사정이 좋지 않아 배달이 늦어지자 수시로 인터넷에 들어가 마스크가 어디쯤 가있나 들여다본다. 아들, 손자, 며느리가 코로나에 걸릴까봐 전전긍긍한다. 미국에서 하루에 몇 만 명씩 확진자가 생긴다고 하면 좌불안석이다.

  그러다가 손자가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팠다고 하자 걱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다행이 이틀 정도 지나자 열이 내리고 괜찮아졌다고 한다. 남편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손자가 괜찮으냐고 카톡을 한다. 내가 애들 귀찮게 하지 말고 카톡 그만 하라고 해도 자꾸 한다. 급기야 며느리가 손자 이안이가 집 앞에서 체조하며 잘 노는 사진을 보내주자 조금 안심하는 눈치다.

  아들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들 것 같다고 8월에 한국으로 오겠다고 하자 은근히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사 비용이 천만 원쯤 든다고 하니 얼른 보내자고 한다. 어째 여자인 나보다 더 자식에게 연연해하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가짜 김박사가 진짜 김박사 만드느라 힘든 세월을 보냈다. 하루 빨리 진짜 김박사가 일자리를 얻어 가짜 김박사 마음을 흐뭇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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